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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s>[[피겨 스케이팅]] 선수만큼이나 빙글빙글 잘 돌았던</s> 레이싱 드라이버. [[포뮬러 1]] 역사상 최악의 드라이버를 꼽으라면 줄곧 제1순위로 꼽히는 인물. <del>[[F1]]을 거쳐간 여러 일본인 드라이버들에게는 고마운 존재. "이노우에 타키보다는 그래도 낫잖아."</del> [[F1]] 최초의 본격 [[페이 드라이버]]로 간주되기도 한다. 이노우에 본인은 "나만 돈 들고 와서 자리 차지한 거 아니다." 하고 주장한다.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스폰서 자금을 들고 와서 [[F1]] 시트를 얻는 일은 많았지만 이들은 스폰서들이 드라이버의 실력이나 가능성을 보고 투자하는 것이었다면 이노우에 타키는 근본적으로 [[F1]]을 탈 실력이 도저히 안 됨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돈의 힘으로 자리를 차지했다는 점에서, [[페이 드라이버]]의 <s>모범적인</s> 윈조 케이스로 손꼽히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노우에보다도 실력이 못한 것으로 의심되는 [[페이 드라이버]]도 없었던 건 아니지만 보통은 잠깐 나타났다가 존재감도 없이 사라져 버린데 반해, 이노우에는 한 시즌을 버티면서 갖가지 엽기적인 사건의 주인공이 되었기 때문에 [[F1]] 역사에 영광되지는 않아도 지워지지는 않을 발자국을 남겼다. <del>원래 악플보다 무플이 더 서러운 거다.</del> [[F1]]의 풍운아로 한 시대를 풍미하셨던 [[조니 허버트]]는 1995년에 베네통 팀에서 처음으로 테스트를 했을 때 같은 팀의 [[미하엘 슈마허]]보다 한 바퀴에 2초나 느린 기록을 냈다. 그때 허버트 선생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무슨 이노우에 타키가 된 것 같아." <s>무슨 소리야 [[메디컬카]]에 들이 받히는 정도는 해야 이노우에지.</s> 당시 또 다른 일본인 [[F1]] 드라이버로 '[[움직이는 시케인]]'이라는 비웃음을 샀던 [[카타야마 우쿄]]조차도 이노우에 타키를 "쓰레기"라고 <s>사돈 남말</s> 할 정도였다.<ref>1995년 [[프랑스 그랑프리]]에서는 이노우에가 카타야마보다 예선 성적이 한 순위 앞섰다. 그런데 결승 첫 랩에서 둘이 들이받아서 나란히 리타이어했다. 자존심 상한 카타야마가 이노우에를 둘이받아 버렸다 카더라. </ref> 도대체 이노우에란 인간이 얼마나 <s>지랄맞았기에?</s> 심했기에? =F1 이전= [[F1]]에 데뷔하기 전에는 1988년에 [[영국]] [[F3]]에서 뛰었고 1989년부터 93년까지 전일본 [[포뮬러 3]]를 거쳐서 [[포뮬러 3000]]에 한 시즌 참가했다. =<del>영광의</del> F1 시대= 1994년에는 [[일본 그랑프리]]에서 심텍 팀을 통해 F1 데뷔전을 치렀다. 결과는? 당연히 리타이어. 이듬해인 1995년은 이노우에가 본격적으로 [[F1]] 풀 시즌을 뛰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해였다. 물론 그게 성적이 좋아서 받은 스포트라이트일 리는 없다. 일단 이노우에라는 이름을 길이 남긴 첫 번째 사건은 [[모나코 그랑프리]]. 3차 연습주행 도중 <s>늘 그렇듯이</s> 이노우에는 스핀 후 트랙 바깥에서 멈춰서고 말았다. 연습주행이 끝난 후 이노우에의 차량은 견인되어 피트로 돌아가고 있었는데, 그 뒤를 [[세이프티카]]가 들이받았다. 당시 [[세이프티카]]는 [[랠리]] 드라이버 쟝 라뇨티가 몰고 있었는데, 그 사고로 이노우에의 차량은 전복되고 대파되는 바람에 폐차 신세가 되었다. <del>이노우에한테 스폰서 받은 돈보다 해먹은 차값이 더 나갈 기세.</del> 문제는 이노우에가 차에 타고 있었다는 것. 지금이야 무조건 드라이버는 탈출해서 바운더리 드라이버가 [[피트]]까지 데려다 주지만 그때는 그냥 견인되는 차량에 타고 있었다. 다행히 큰 부상은 없어서 예선은 참가 못 해도 레이스에는 출전할 수 있었다.<ref>사고로 차량이 망가졌지만 그 시절에는 스페어카가 허용되었기 때문에 레이스에 참가할 수 있었다.</ref> 얘기하나마나 레이스 성적은 리타이어. 훗날 이노우에의 말에 따르면 [[의사]]가 자기를 보더니 [[불알]]을 건드렸다고 한다. 그 때 [[의사]]들은 뇌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불알]]을 건드려 봤다나. [[불알]]이 움직이면 뇌가 괜찮은 거고, 안 움직이는 뇌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그래도 이노우에 타키의 [[F1]] 인생에 정점을 찍었던, 그를 가장 유명하게 만들었던 경기는 1995년 [[헝가리 그랑프리]]다. 그냥 아래 동영상을 보자. <YouTube>0PNzVbc6QLY</YouTube> 처음에 나오는 부분은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보여주며, 사고의 완전한 장면을 보려면 1분 2초 경부터 보면 된다. 레이스 도중 엔진에 불이 나는 바람에 트랙 바깥에 차를 세운 이노우에는 [[마샬]]의 굼뜬 대응에 화가 났다. 연기는 계속 심해지고, 이노우에는 빨리 좀 끄라고 손짓을 하는데 [[마샬]]은 우물쭈물 하고 있으니 <s>이게 얼마짜리 차인데</s> 차라리 내가 직접 끈다! 하고 [[소화기]]를 가지러 간 이노우에, 그런데 메디컬카가 접근하고 있는 것을 몰랐다. [[소화기]]를 가지고 차로 돌아가려던 이노우에는 메디컬카에 들이 받혀서 [[보닛]] 위에서 한 바퀴 빙글 돌면서 멋진 [[도마]]체조 동작을 선보인 뒤, 두 다리로 착지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옆으로 절뚝 절뚝 거리다가 결국 땅바닥 위에 큰대자로 드러눕고 만다. 훗날 [[BBC]] <[[톱기어]]>와 인터뷰<ref>http://www.topgear.com/car-news/adventures/interview-top-gear-meets-taki-inoue-f1s-worst-ever-driver</ref>에서 이노우에의 말씀. "그래도 두 다리로 착지했잖아요. 아주 좋았어요. 완벽한 착지 동작이었죠. 9.99점 짜리였다니까!" <del>다리는 부러졌지만 혀는 안 부러졌거든.</del> 이노우에의 인터뷰를 보면 사고 이후의 이야기도 웃기는데, 원래 F1 드라이버가 경기 도중 부상을 당하면 일단 메디컬 센터로 간 다음 추가 치료가 필요하면 [[헬리콥터]]로 병원에 후송된다. 그런데 [[헬리콥터]]가 안 떴다. [[F1]] 안전 대표인 [[찰리 와이팅]] 왈, [[헬리콥터]]를 띄우면 경기를 중단시켜야 하니가 좀 기다리라고 했다고. <del>슈마혀였어봐라. 바로 헬기 띄웠지.</del> 한 시간 정도 메디컬 센터에 있던 이노우에는 결국 [[헬리콥터]] 편으로 병원에 갔는데, 검사 결과 뼈에는 별 이상이 없었다. 그런데 이노우에의 말에 따르면 병원 측은 "[[신용카드]]를 내놔라. 그래야 치료해 주겠다."고 요구했다. 레이싱 복장 그대로 병원에 실려왔는데 웬 [[신용카드]]? 결제 먼저 안 하면 치료 못 해준다는 병원 측과 30분 동안 실갱이를 벌인 뒤 치료를 어찌어찌 받기는 했는데 그 뒤 2년 동안 병원에서 이노우에한테 계속 청구서를 날려보냈다고. <del>슈마혀였어봐라. 사인 한 장 해 주면 끝났지.</del> 아무튼 위와 같은 명장면들 말고도 이노우에 타키로 검색해 보면 주로 나오는 게 스핀이다. 이쯤 되면 거의 [[피겨 스케이팅]] 선수 수준이다. <del>가장 강력한 라이벌은 [[아사다 마오]].</del> 약 7분 분량으로 그의 화려했던 [[F1]] 선수 생활을 요약한 동영상도 있다. 제목은 <Taki Inoue: The Movie>. 부제는 "No Talent, No Control, No Hopte(재능도 없고, 실력도 없고, 희망도 없는)" 아무튼 [[F1]] 드라이버들 중에서 가장 많은 조롱과 비웃음의 아이콘으로 어쨌거나 역사에 이름은 길이 남겼다. <del>어쨌거나 존재감이라도 남겼으면 된 거다.</del> <YouTube>R14k8_9jN30</YouTube> 동영상 초반에 나오는 사진을 잘 보면 이노우에의 수트에 [[대한항공]] 마크가 붙어 있다. 차에도 KOREAN AIR가 자랑스럽게 붙어 있는데, 심텍 팀의 스폰서지 이노우에의 스폰서는 아니다. 참고로 [[대한항공]]은 이후에도 베네통 팀에 스폰서를 넣었지만 지금은 F1 스폰서십에서는 손을 뗀 상태. [[F1]]에서 통산 18 경기에 참가했고, 포인트는 당연히 0점. <s>그게 뭐죠? 멤버십 카드 내면 적립해 주는 거요?:</s> [[체커기]] 받은 것도 다섯 번에 불과하다. <del>하지만 그의 화려한 스토리를 보면 다섯 번이나! 하고 놀라게 된다.</del> 1996년에는 [[미나르디]]에서 F1 선수 생활을 계속 하려고 했지만 막판에 스폰서 두 곳이 손을 떼버리면서 돈을 확보하지 못하자 미나르디는 쟝카를로 피지켈라를 선택하고 만다. 이로써 이노우에의 다사다난했던 [[F1]] 시대는 한 시즌 만에 막을 내렸다. =F1 이후= [[F1]]에서 물러난 이후로는 일본으로 돌아가서 국내 경기에 참가하다 현역에서는 은퇴했다. 지금은 일본인 드라이버 매니지먼트 일을 하면서 [[모나코]]에서 살고 있다. 이탈리아에 자기 레이싱 팀도 있다. 자기 말로는 떼부자라서 모나코에 있는 건 아니라고 한다. <del>그렇다고 당신이 [[모나코]] [[편의점]]에서 알바로 살고 있는 건 아닐 거 아냐.</del> 레이스는 못하지만 입은 살아서 종종 [[SNS]]에 뻘글을 잘 쓰는 것으로 유명 혹은 악명이 높다. <del>악플의 달인.</del> 자신의 화려한 전력을 별로 감추려고 하지도 않고 인터뷰도 잘 하는 편이라 잊을 만하면 가끔씩 그의 인터뷰가 F1 관련 매체에 실리곤 한다. =이것저것= 술고래로도 유명하다. 그런데 단식투쟁이 아닌 단주투쟁을 한 적이 있다. 1995년 [[포르투갈]] 그랑프리에서 평소 좋아하던 프랑스 [[레드 와인]]을 마시지 않겠다고 선언했는데, 이유인 즉슨 [[프랑스]]가 그동안 중단해 왔던 핵실험을 남태평양에서 재개한 것에 대한 항의 차원에서였다! <del>아이고 무서워라.</del> 이게 포르투갈 언론을 통해 꽤나 대문짝만하게 나온 모양. <del>근데 그 선언이 얼마나 갔겠어.</del> {{각주}} [[Category:F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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