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쿠데리아 페라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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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F1]] 팀. 1950년에 시작된 [[포물러 1]] 월드 챔피언십에 처음부터 지금까지 나오고 있는 유일한 팀이다. 페라리는 F1에 나오기 위해서 [[스포츠카]]를 만든다는 소리가 있을 정도. F1에서 페라리가 가진 상징성은 그 어떤 다른 팀도 도전 불가일 정도로 압도적이다. 우리나라도 F1 하면 무조건 페라리밖에 몰랐던 사람들이 많았다. | [[이탈리아]]의 [[F1]] 팀. 1950년에 시작된 [[포물러 1]] 월드 챔피언십에 처음부터 지금까지 나오고 있는 유일한 팀이다. 페라리는 F1에 나오기 위해서 [[스포츠카]]를 만든다는 소리가 있을 정도. F1에서 페라리가 가진 상징성은 그 어떤 다른 팀도 도전 불가일 정도로 압도적이다. 우리나라도 F1 하면 무조건 페라리밖에 몰랐던 사람들이 많았다. | ||
그렇게 상징적인 존재고 많은 인기를 한몸에 모아 온 팀이지만 의외로 허당끼도 많다. 특히 1979년 [[조디 쉑터]]가 월드 챔피언을 먹은 이후로는 20년 넘게 챔피언을 배출 못했다. 늘 우승후보인데 우승은 결국 못하는 식으로 이어지다가 2000년에 [[미하엘 슈마허]]가 챔피언을 차지하면서 오랜 공백을 깼고 2004년까지 5년 스트레이트로 챔피언을 차지하면서 페라리의 최대 황금기를 맞는다. | 그렇게 상징적인 존재고 많은 인기를 한몸에 모아 온 팀이지만 의외로 허당끼도 많다. 특히 1979년 [[조디 쉑터]]가 월드 챔피언을 먹은 이후로는 20년 넘게 챔피언을 배출 못했다. 늘 우승후보인데 우승은 결국 못하는 식으로 이어지다가 2000년에 [[미하엘 슈마허]]가 챔피언을 차지하면서 오랜 공백을 깼고 2004년까지 5년 스트레이트로 챔피언을 차지하면서 페라리의 최대 황금기를 맞는다. 그런데 이 시기의 페라리는 이탈리아 팀이 맞나? 싶었던 게, 경기 감독은 프랑스인 [[쟝 토드]], 기술 감독은 영국인 [[로스 브론]], 수석 디자이너는 영국인 [[로리 바인]], 수석 [[미캐닉]]은 영국인 나이젤 스텝니... 이탈리아인들은 별 볼일이 없었다. 대부분이 슈마허가 두 번 챔피언을 차지했던 베네통 팀 츌신들이라 페라리 팀이라기보다는 슈마허 팀이었다. |
2015년 6월 28일 (일) 13:12 판
Scuderia Ferrari.
이탈리아의 F1 팀. 1950년에 시작된 포물러 1 월드 챔피언십에 처음부터 지금까지 나오고 있는 유일한 팀이다. 페라리는 F1에 나오기 위해서 스포츠카를 만든다는 소리가 있을 정도. F1에서 페라리가 가진 상징성은 그 어떤 다른 팀도 도전 불가일 정도로 압도적이다. 우리나라도 F1 하면 무조건 페라리밖에 몰랐던 사람들이 많았다.
그렇게 상징적인 존재고 많은 인기를 한몸에 모아 온 팀이지만 의외로 허당끼도 많다. 특히 1979년 조디 쉑터가 월드 챔피언을 먹은 이후로는 20년 넘게 챔피언을 배출 못했다. 늘 우승후보인데 우승은 결국 못하는 식으로 이어지다가 2000년에 미하엘 슈마허가 챔피언을 차지하면서 오랜 공백을 깼고 2004년까지 5년 스트레이트로 챔피언을 차지하면서 페라리의 최대 황금기를 맞는다. 그런데 이 시기의 페라리는 이탈리아 팀이 맞나? 싶었던 게, 경기 감독은 프랑스인 쟝 토드, 기술 감독은 영국인 로스 브론, 수석 디자이너는 영국인 로리 바인, 수석 미캐닉은 영국인 나이젤 스텝니... 이탈리아인들은 별 볼일이 없었다. 대부분이 슈마허가 두 번 챔피언을 차지했던 베네통 팀 츌신들이라 페라리 팀이라기보다는 슈마허 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