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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대통령선거에서 국태민안호국당(줄여서 호국당) 후보로 출마했던 승려. 하지만 기존 [[불교]] 교단과는 관련 없는 사이비종교라는 게 불교계의 입장. 공식적인 승적도 없다. | 2002년 대통령선거에서 국태민안호국당(줄여서 호국당) 후보로 출마했던 승려. 하지만 기존 [[불교]] 교단과는 관련 없는 사이비종교라는 게 불교계의 입장. 공식적인 승적도 없다. | ||
특히 2002년 대선에서 처음으로 도입된 군소후보 토론회는 김길수의 포스를 보여주는 | 특히 2002년 대선에서 처음으로 도입된 군소후보 토론회는 김길수의 포스를 보여주는 절정이라 할 수 있다. 법복을 입고 나온 것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대선후보 토론장에 [[선글라스]]를 쓰고 나온 것은 사상 초유.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듯. 일단 비주얼로도 확 관심 집중에다가 삐딱하게 앉아서 굉장히 성의 없는 듯이 툭툭 던지는 말들, 얘기 하다가 잘 안 풀리면 볼펜을 집어던지기도 하는 그의 포스는 정말 압권이었다. 쉽게 말해서 허경영 조차도 김길수의 포스에 눌려 존재감을 상실할 정도였다. 아마도 대선에서 허경영 이상의 미친 (정말로) 존재감을 발휘했던 사람은 김길수 말고는 없을 듯. | ||
당시 하나로국민연합의 이한동 전 총리도 군소후보로 토론회에 나와 있었는데. 김길수의 압도적인 비주얼과 기행, 그 아래에서 어떻게든 존재감을 찾아보려고 하던 허경영과 같은 후보들의 모습을 보고 거의 똥씹은 표정을 지었다. <s>내가 그래도 한 때 일국의 총리를 지낸 몸인데. 어찌 이런 정신 나간 인간들과 같은 테이블에...</s> | |||
포스터 역시 당시 대선에서 가장 유명한 전설이 되었다. | 포스터 역시 당시 대선에서 가장 유명한 전설이 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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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야 말할 것도 없다. 0.2% 득표를 했는데 그래도 5위로 꼴찌는 안 했다. 꼴찌는 사회당 김영규 후보. | 결과야 말할 것도 없다. 0.2% 득표를 했는데 그래도 5위로 꼴찌는 안 했다. 꼴찌는 사회당 김영규 후보. | ||
선거 후 잊혔던 그의 이름이 다시 나온 것은 그로부터 1년 반 뒤. 정치면이 아니라 사회면에 나왔고, 대선 후보나 정치인이 아니라 사기범으로 등장했다. 신도의 소개로 알게 된 모 인사에게 "대통령에 당선되면 국회의원과 국무총리를 시켜주겠다"면서 대선후보 등록금과 선거자금 명목으로 6억원을 받았고, "전남 일대에 세계법왕청을 건립해 복지 및 영리사업을 하자"고 꼬드겨서 2년 동안 74억여원을 받아 가로챘다고 한다. 여기에 더해서 | 선거 후 잊혔던 그의 이름이 다시 나온 것은 그로부터 1년 반 뒤. 정치면이 아니라 사회면에 나왔고, 대선 후보나 정치인이 아니라 사기범으로 등장했다. 신도의 소개로 알게 된 모 인사에게 "대통령에 당선되면 국회의원과 국무총리를 시켜주겠다"면서 대선후보 등록금과 선거자금 명목으로 6억원을 받았고, "전남 일대에 세계법왕청을 건립해 복지 및 영리사업을 하자"고 꼬드겨서 2년 동안 74억여원을 받아 가로챘다고 한다. 여기에 더해서 [[신용카드]]를 빌려다가 1억9천만원을 썼으니까 모두 해서 88억 원을 뜯어낸 혐의로 구속되었다.<ref>http://legacy.www.hani.co.kr/section-005000000/2003/08/005000000200308210038458.html</ref> <del>이런 뻥을 친 사람보다 이런 소리를 듣고 64억이나 준 사람이 더 이상한 거 아닌가?</del> 채판 결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 받았다. [[집행유예]]로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형량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합의가 되었으나까 그나마 이 정도였던 거지 합의 안 됐으면 꽤나 오래 감방에서 썩으셨을 듯.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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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22일 (화) 15:40 판
"불심으로! 대동단결!"
2002년 대통령선거에서 국태민안호국당(줄여서 호국당) 후보로 출마했던 승려. 하지만 기존 불교 교단과는 관련 없는 사이비종교라는 게 불교계의 입장. 공식적인 승적도 없다.
특히 2002년 대선에서 처음으로 도입된 군소후보 토론회는 김길수의 포스를 보여주는 절정이라 할 수 있다. 법복을 입고 나온 것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대선후보 토론장에 선글라스를 쓰고 나온 것은 사상 초유.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듯. 일단 비주얼로도 확 관심 집중에다가 삐딱하게 앉아서 굉장히 성의 없는 듯이 툭툭 던지는 말들, 얘기 하다가 잘 안 풀리면 볼펜을 집어던지기도 하는 그의 포스는 정말 압권이었다. 쉽게 말해서 허경영 조차도 김길수의 포스에 눌려 존재감을 상실할 정도였다. 아마도 대선에서 허경영 이상의 미친 (정말로) 존재감을 발휘했던 사람은 김길수 말고는 없을 듯.
당시 하나로국민연합의 이한동 전 총리도 군소후보로 토론회에 나와 있었는데. 김길수의 압도적인 비주얼과 기행, 그 아래에서 어떻게든 존재감을 찾아보려고 하던 허경영과 같은 후보들의 모습을 보고 거의 똥씹은 표정을 지었다. 내가 그래도 한 때 일국의 총리를 지낸 몸인데. 어찌 이런 정신 나간 인간들과 같은 테이블에...
포스터 역시 당시 대선에서 가장 유명한 전설이 되었다.
워낙에 포스터의 존재감이 강력했기 때문에 디시인사이드를 비롯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패러디 합성이 넘쳐났다. 예를 들어,
원본 포스터를 보면 알겠지만 "불심으로 대동단결!"이 아니라 "불심으로! 대동단결!" 두 개 문장이다.
결과야 말할 것도 없다. 0.2% 득표를 했는데 그래도 5위로 꼴찌는 안 했다. 꼴찌는 사회당 김영규 후보.
선거 후 잊혔던 그의 이름이 다시 나온 것은 그로부터 1년 반 뒤. 정치면이 아니라 사회면에 나왔고, 대선 후보나 정치인이 아니라 사기범으로 등장했다. 신도의 소개로 알게 된 모 인사에게 "대통령에 당선되면 국회의원과 국무총리를 시켜주겠다"면서 대선후보 등록금과 선거자금 명목으로 6억원을 받았고, "전남 일대에 세계법왕청을 건립해 복지 및 영리사업을 하자"고 꼬드겨서 2년 동안 74억여원을 받아 가로챘다고 한다. 여기에 더해서 신용카드를 빌려다가 1억9천만원을 썼으니까 모두 해서 88억 원을 뜯어낸 혐의로 구속되었다.[1] 이런 뻥을 친 사람보다 이런 소리를 듣고 64억이나 준 사람이 더 이상한 거 아닌가? 채판 결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 받았다. 집행유예로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형량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합의가 되었으나까 그나마 이 정도였던 거지 합의 안 됐으면 꽤나 오래 감방에서 썩으셨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