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양주
집에서 빚어 만드는 술. 한자로 쓰면 家(집 가)釀(빚을 양)酒(술 주)이므로 역시 '집에서 빚는 술'이라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전통주 중 상당수는 가양주로 만들어졌다. 특히 종갓집에서는 제사를 지낼 때 쓸 술을 직접 빚어서 썼다. 제사를 지내는 동안 계속해서 제삿상에 술을 올리고, 끝나고 나면 어린아이도 음복으로 술을 맛볼 정도로 제사에서 술은 무척 중요한 존재다. 그러니 김치나 장을 직접 담그듯 종갓집에서 술을 빚는 것도 어떻게 보면 당연한 풍습이었다.
이런 가양주의 계보가 초토화된 것은 먼저 일제강점기. 식민지 조선에서 수탈을 일삼던 일제에게 술을 빚기 위해서 쌀을 쓰는 게 좋게 보일 리가 없었다. 또한 술에 세금을 매겨서 수입을 얻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1] 집에서 술을 빚지 못하도록 허가제를 도입했다. 당연히 허가해 줄리가 없었다. 그래도 일부 종갓집이나 가정에서는 몰래몰래 술을 빚어 가면서 명맥을 있기도 했다. 가양주의 계보를 확인사살 시킨 것은 박정희 시대다. 누가 일본군 장교 아니랄까봐. 밥 지을 쌀도 없는데 술 빚을 쌀이 어디 있느냐는 논리로 쌀로 술을 빚는 것을 금지시키면서 쌀로 빚던 막걸리 같은 술마저도 밀가루로 담아야 했으니 쌀이 주원료였던 가양주들이 남아날 수가 없었다. 이러한 제한이 풀린 건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이었으니 지금 시중에 있는 거의 모든 가양주는 명맥이 끊겼다가 복원된 것이다. 즉 옛날 그 전통주와 같다는 보장이 없다.
현재는 집에서 술을 만드는 것이 법적으로 가능하다. 단 판매는 할 수 없다. 따라서 취미로 전통주를 만드는 사람들도 조금씩 늘고 있는 추세.
각주
- ↑ 이 시기 주세로 총독부가 거둔 수입이 전체 조세 수입의 3분의 1에 이르렀다니 말 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