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자 손실분담
영어로는 베일인(bail-in)이라고 한다. 베일아웃과 상대되는 개념.
말 그대로 해석하면 쉽다. 금융회사가 부실화 되었을 때 부채의 일부를 이 금융회사의 채권자에게 분담시키는 것이다.
회사가 부실 위기에 빠지면 보통은 그냥 망하게 내버려둘 수도 있지만 덩치큰 회사라면 그 여파가 장난이 아니다. 회사가 망하면 일단 직원과 가족들이 졸지에 수입이 끊기고, 그 회사와 거래하던 회사들도 줄줄이 피해를 본다. 회사의 주주, 채권자들도 당연히 개발살이 난다. 이 충격파가 이 정도로 그치면 다행이지만 도미노처럼 다른 회사들로 이어지면서 국가 경제 전체에 큰 충격을 몰고 올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덩치큰 회사가 부실화될 때에는 구제책이 마련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구제책은 보통 채권단에서 마련한다. 금융업체들이 가장 많은 채권을 가지고 있게 마련이니 주로 대출을 해 준 금융업체들이 채권단의 주도권을 가진다. 해당 기업의 부채를 일부 탕감하거나 부채를 출자로 전환하는 것과 같은 구제책을 마련하는데 물론 세상에 공짜는 없다.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비롯한 자구책을 회사에 요구한다.
그런데 금융회사가 부실화되면 어떻게 하나? 1997년 IMF 구제금융을 받아야 했던 외환위기를 생각해 보면 빠르다. 금융업체들이 연쇄적으로 부실의 늪에 빠지자 정부가 나서서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당시 투입된 공적자금이 총 180조 원인데 이 중 회수불능으로 처리된 액수가 70조 원이다. 공적자금이 뭐냐고? 쉽게 말해서 우리 세금이다. 우리나라만 그런 건 아니라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미국도 막대한 구제금융을 투입해서 월스트리트를 살려놓았다. 그랬더니 금융회사들이 뭘 했냐... 경영진들이 거액의 보너스를 챙기면서 돈잔치를 했다. 이게 2011년의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시위가 촉발된 계기였다.
이러한 사건들 이후로 금융회사의 부실을 세금을 처발라서 살려주는, 이른바 대마불사의 법칙을 그대로 놔두면 안된다는 여론이 일었고, 그에 따라서 G20 산하 금융안정국에서 몇 가지 제도 개선안 가운데 하나로 내놓은 것이 바로 채권자 손실분담, 곧 베일아웃이다.
어떤 회사에 투자를 하고 싶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주식, 하나는 채권이다. 어느 쪽이 리스크가 높을까? 주식은 회사가 나빠지면 주가가 왕창 떨어지고 망하면 그냥 휴지조각이 된다. 반면 채권은 회사가 망하지 않는 한은 돈 받을 권리는 그대로 유지된다. 회사가 망하더라도 자산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부라도 건질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앞서 말했지만 금융회사는 위기에 몰릴 때 공적자금을 때려박거나 해서 구제하는 경우가 많다. 회사가 상태가 나빠지면 회사채 금리는 올라가는데, 대마불사를 믿고 오히려 투자가 몰리기도 한다. 그래서, 금융회사가 부실에 몰렸을 때에는 채권자들도 책임을 분담하라는 것이 채권자 손실분담의 목적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손실을 분담할까? 채권의 일부를 주식으로 전환하는, 즉 출자전환을 하거나 더 심하면 아예 부채 일부를 탕감해 버리는 것이다.
논란
예금 손실
베일아웃 제도는 채권자들에게 손실 분담을 요구한다. 이렇게 얘기하면 금융회사의 채권을 산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겠군... 하고 생각할 수 있을 텐데, 그게 끝이 아니다. 자, 내가 은행에 예금을 했다고 치자. 나는 은행에 돈을 빌려준 것이다. 즉, 내가 가진 돈을 은행에 맡기고 그걸 대출에 쓰라고 허락한 다음 이자를 챙긴다. 요구불예금이라면 내가 원할 때 아무 때나 찾을 수 있고 적금이라면 만기가 되면 찾는다. 다시 말해서, 예금도 일종의 채권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베일아웃 제도에서는 예금주도 손실을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유럽에서는 베일인 제도를 도입하면서 예금주에게도 손실을 분담시켜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금융위기로 개발살이 난 그리스는 은행 부실이 발생할 경우 8천 유로 이상의 예금주들에게 예금액의 30% 이상을 부담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독일도 베일인 제도를 도입할 예청인데 예금주에게 손실을 분담하는 문제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