럼
Rum.
당밀과 같이 설탕을 만들고 남은 부산물이나 사탐수수를 원료로 만든 증류주. 사탕수수는 설탕의 원료이므로 당분이 넘쳐나기 때문에 술 만들기에는 딱 좋은 재료다. 설탕 뽑고 남은 찌꺼기도 여전히 상당량의 당분이 남아 있다.
증류 후 나무통에 숙성시키는 골든 럼이나 다크 럼도 있지만 오드비 상태로 병입하는 화이트 럼도 있다. 숙성을 거친 게 더 품질이 좋겠지만 테킬라처럼 숙성 안한 것 중에도 고급품이 있다. 원래 설탕 만들고 남은 찌꺼기를 주 원료로 하던 거라 별 고급스러운 이미지는 가지고 있지 않다.
사탕수수 농사를 많이 짓는 카리브해 일대를 중심으로 발달했다. 뭔가 뱃사람의 술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박혀 였다. 이는 과거에 영국의 사나포선(privateer)이 유래라고 한다. 사나포선은 민간 배지만 군함처럼 적 군함을 공격하고 배를 나포할 수 있는 권한을 정부로부터 부여받은 배다. 군함과 무역선을 겸업한 셈이다. 이들 중 일부가 해적으로 돌변했고, 상당수가 럼을 좋아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버트 스티븐슨의 유명한 소설 <보물섬>에도 해적선 선장이 럼을 즐기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이런 문학작품들 덕분에 럼 하면 뱃사람이나 해적 같은 이미지가 더욱 더 굳어졌다. 사실 뱃사람들이 일도 고된 데다가 분위기도 워낙 험하니, 그리고 항해 동안에는 꼼짝없이 배 안에 갇혀 지내다 보니, 자연스레 독한 술을 즐게 되었고 독하면서 값도 싼 럼이 인기를 끌었다. 나름대로 눈물 젖은 럼. 또한 옛날에야 정수 기술도 발달하지 않고 하니 장기간 항해를 하다 보면 물도 썩기 쉬운데, 맥주나 와인처럼 도수 낮은 술 역시도 보관에 한계가 있어서 나중에 가면 럼 같은 증류주만 남아 이걸로 수분 보충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기도 한다. 문제는 알코올 분해 과정은 많은 양의 수분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결국 안 마시느니만 못하다는 거.
옛날에는 배에서, 특히 해군의 전함에서 전투 중에 중요 인물이 전사할 경우에 원칙은 수장 또는 육지 바로 옆이라면 가까운 현지에 매장하는 것이지만 예외로 거리가 멀어도 수장하지 않고 육지로 옮길 경우, 혹은 본국으로 운구할 경우에 럼에 담아서 가지고 오는 것. 지금 관점으로 보면 뭔가 엽기적으로 보이지만 당시의 배에 냉장고나 냉동고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배에 놔두면 부패하면서 냄새 등은 물론이고 병을 옮길 위험이 있기 때문에 럼에 담아서 부패를 막는 게 가장 현실적인 방안인 것은 사실이다.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을 격파한 호레이쇼 넬슨 제독도 전투 중에 전사하자 럼에 담아서 육지로 운구한 것은 잘 알려져 있으며, 그밖에도 이와 같이 전사자를 럼에 담에 운구한 기록들이 여럿 있다.[1] 이렇게 사용한 럼에 피가 배어나와 빨간색을 띠는데 이를 '블러디 럼'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운구가 끝나면 군인들이 이 럼을 나눠마시면서 전사자를 추모했다는 썰도 있지만 확인된 건 없으며, 럼을 운구에 사용할 때에는 장뇌나 몰약도 같이 넣었다.
보드카와 함께 칵테일 재료로 널리 이용되는 술이다. 많은 칵테일 레서피에 럼이 들어가 있다. 또한 콜라와 섞어서 마시는 럼콕도 버번콕 만큼이나 인기가 좋다.
우리나라에서도 옛날에 롯데주류에서 만든 캪틴큐라는 럼이 꽤 유명했다. 뱃사람의 술이라는 럼의 이미지를 이용해서 애꾸눈 선장을 라벨에 그려 넣었다. 하지만 실상을 보면 럼 원액 20%에 주정을 넣어서 만든 술이었고, 그나마도 나중에 가면 럼 원액은 아예 빠지고 주정과 색소, 럼 향으로 만든 가짜양주 수준의 물건으로 전락했다. 그래도 명줄이 길어서 2015년에 가서야 단종되었다.
호주에서는 1808년에 럼 반란(Rum Rebellion)이라는 쿠데타가 일어났는데 호주 역사에서 유일한 무장 쿠데타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미국의 보스턴 차 사건처럼 당시 영국의 지배를 받고 있던 나라 전체를 뒤엎은 건 아니고, 뉴사우스웨윌즈 주지사를 무력으로 끌어내린 것. 호주도 뉴사우스웨일스 주 북쪽과 퀸즐랜드 주 일부에서 사탕수수 농사를 많이 짓는데 특히 주산지인 번다버그의 이름을 따서 만든 번다버그는 호주에서 가장 유명한 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