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즈와리
みずわり(水割り)。
술에 물을 타 마시는 것을 뜻하는 일본어. 위스키나 소주 같이 알코올 도수가 높은 술에 물을 타서 도수를 낮추어 마시기 쉽게 한 것. 뜨거운 물을 타서 마실 때에는 오유와리(お湯割り)라고 하며, 탄산수를 타면 하이볼이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소주를 그냥 마시는 게 보통이고[1], 위스키도 온더락스로 주로 마시고 스트레이트를 마시는 사람들도 꽤 있기 때문에 술에 물을 타서 마시는 것을 뜻하는 용어가 딱히 없다. 반면 일본에서는 소주나 위스키를 미즈와리나 온더락스로 마시는 게 기본이다.[2] 따라서 소주 제조사도 이를 전제로, 그냥 마셨을 때보다는 미즈와리로 마실 때 맛있게 마실 수 있도록 초점을 맞추어 술을 만든다.
위스키를 미즈와리로 마시는 건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다른 나라에도 잘 없는 편이다. 서양에서도 니트[3], 온더락스, 업[4]과 같은 방식으로 마시는 걸 선호하는 편이고 아예 물을 타는 일은 별로 없다. 다만 서양의 위스키 전문 사이트에서도 적당한 양의 물을 탈 경우 향미가 더욱 좋아진다는 의견을 제시하는 기사들이 여럿 있고, 실제로 버번이나 스카치 위스키를 만드는 메이커 쪽 사람들이 물을 타는 방법을 추천하기도 하는데, 특히 몇 방울 정도만 물을 넣어줘도 위스키의 향미를 열어준다("open up")고 한다. 이렇게 하면 피트향을 비�해서 위스키의 향미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구아이아콜(guaiacol)이라는 물질이 위스키 표면 쪽으로 모이면서 향미를 느끼게 더 좋다는 것.[5]
일본에서 위스키 미즈와리가 정착된 건 1970년대 산토리의 적극적인 마케팅에 힘입은 영향이 큰데, 일본음식과 위스키의 강한 알코올 도수 및 피트향이 그다지 잘 맞는 조합이 아니다 보니 일식 음식점에서는 니혼슈나 맥주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산토리에서 미즈와리로 마시는 방법을 열심히 밀었던 것. 나중에는 하이볼을 적극 밀어서 크게 히트를 친다.
도수가 높은 증류주는 물을 적당하게 타는 게 향미를 즐기는 데 더 도움이 된다. 도수가 높으면 알코올향이 너무 강해서 다른 향미가 눌리는 경향이 있는데, 물을 탐으로써 알코올 농도를 줄여주면 억눌려 있던 향미가 풀려난다. 위스키에 물을 몇 방울 정도만 넣어줘도 단맛이 살아나는 효과가 있다. 1대 1 정도로 물을 타면 마시기도 편해지고[6] 단맛이 확 올라온다. 다만 한 가지 고려해야 할 점이 있는데, 순수한 증류수가 아닌 바에야 정수한 수돗물 혹은 생수를 타게 될 것이다. 물에도 미량의 미네랄 성분이 있는데 이게 술 속의 성분과 화학 작용을 일으킬 수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물 그 자체의 맛이 영향을 끼칠 수가 있다. 아래에 이야기할 우조 효과 같은 것도 있고, 해서 원래 술에는 없던 캐릭터가 생길 수 있다. 예를 들어 물 자체가 상당히 단맛이 느껴지는 에비앙을 위스키에 탄다면?
와인도 지금은 물을 탄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고대에는 지금처럼 찌꺼기를 걸러낸 맑은 술도 아니었고 농도도 걸쭉했는데 여기에 물을 타서 마셨다. 오히려 그리스 로마시대에는 술의 신인 디오니소스나 박카스만이 와인을 물 안 타고 그냥 마실 수 있고 인간이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이 술에 취해 주정 부리는 걸 지금도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그 때에는 훨씬 심했다. 가톨릭 미사 때에 신부가 마시는 포도주, 즉 성혈에도 물을 약간 섞는데, 그 당시에 유대인들이 포도주를 그렇게 마셨기 때문이다. 후대로 가면서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의 옆구리를 로마 병사가 창으로 찔렀을 때 피와 물이 나왔다는 복음 구절을 상징하는 의미라든가, 신성과 인성의 일치를 상징한다든가 하는 의미를 덧붙였다.
유럽에는 증류주에 아니스라는 약초 및 몇 가지 다른 약초나 향신료를 담가서 만드는 침출주들이 있다. 그리스의 우조가 가장 유명하고 이탈리아의 삼부카, 프랑스의 파스티스와 압생트, 터키의 라크 같은 것들이 여기에 해당하는데, 아니스를 넣은 침출주는 투명하지만 물을 타면 우유처럼 뿌옇게 변하는 특징이 있다. 이를 우조 효과라고 하는데, 이 때문에 우조나 라크 같은 술은 물을 타서 마시는 방식이 널리 쓰인다.
압생트는 술이 담긴 잔 위에 압생트 스푼이라는 도구를 걸쳐놓고 그 위에 각설탕 하나를 올린 다음, 작은 수도꼭지가 달린 물통인 압생트 파운틴에 얼음물을 채우고, 술잔을 수도꼭지 아래에 둔 후 꼭지를 살짝 열어 물이 똑똑 떨어지게 해서 각설탕을 녹여 술에 떨어지게 하는 방법이 있다. 피카소도 이렇게 압생트를 마시려고 기다리는 사람의 그림을 남겼다. 다만 위 그림에서는 각설탕은 보이지 않는다. 반면 삼부카는 물 타지 않고 그냥 마시는 게 보통이다. 과연 에스프레소의 민족.
각주
- ↑ 젊은 층을 중심으로 소주를 토닉워터에 타 마시는 걸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 ↑ 그런데 우리나라는 90년대만 해도 25도였던 희석식 소주의 알코올 도수가 점점 낮아져서 이제는 17도 수준, 혹은 17도보다 조금 낮은 정도로까지 내려왔다. 이 정도면 거의 니혼슈에 가깝다. 일본 소주는 여전히 25~30도다.
- ↑ 우리가 '스트레이트'라고 하는 걸 영어권에서는 니트(neat)라고 한다.
- ↑ 위스키를 쉐이커에 넣고 얼음을 넣어 흔들어 차게 한 다음 얼음은 걸러내고 액체만 잔에 따라 주는 것.
- ↑ "The Real Reason You Should Add Water To Your Whiskey", Mashed.com, 15 June 2020.
- ↑ 위스키의 알코올 도수가 보통 40도이므로 2배로 희석하면 20도 정도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