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루코라이스
トルコライス。
일본식 경양식으로, 어떤 한 가지 요리를 뜻하기보다는 여러 가지 경양식 요리를 한 접시에 담아낸 모둠요리라고 할 수 있다. 나가사키시가 원조로, 나가사키의 경양식 레스토랑에 가면 대부분 토루코라이스를 판다. 토루코(トルコ)는 튀르키예를 뜻하는데 튀르키예에는 이런 음식은 없다.
기본 구성은 돈카츠, 필라프 또는 카레라이스, 스파게티를 정석으로 친다. 토루코라이스가 등장한 초창기에는 카레라이스 또는 드라이 카레(카레 필라프)[1]가 주류였지만 차츰 필라프가 주류를 차지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도 카레라이스나 드라이 카레를 내는 가게들도 종종 볼 수 있다. 돈카츠에 필수로 딸려 나오는 채썬 양배추 역시 같은 접시에 나온다. 돈카츠 위에는 데미글라스 소스를 끼얹는다. 위의 세 가지는 대체로 기본은 이렇다는 정도이고, 구성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경우의 수가 엄청나게 많다. 위의 세 가지 기본 말고도 미트볼, 오믈렛, 고로케 같은 것들이 추가로 딸려나올 수도 있고, 화이트 소스를 끼얹어 주기도 한다. 조합할 수 있는 방법이 많기 때문에 레스토랑에 따라서는 수십 가지에서 100가지가 넘는 토루코라이스를 메뉴에 깔아놓은 곳도 있다. 위 사진의 토루코라이스도 일단 돈카츠, 드라이 카레, 토마토 소스 스파게티[2]의 기본 구성 말고도 오믈렛이 추가되어 있고, 돈카츠도 롤카츠 형태로 제공되었다. 그냥 수많은 구성의 토루코라이스 중 하나로 보면 된다.
일본 경양식집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요리들이기 때문에 뭔가 큰 특징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실제 먹어본 사람들의 후기를 봐도 실망했다는 반응도 적지 않은데,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에서도 별로 낯설지 않은 경양식 요리들을 이것저것 모아놓은 정식 수준이기 때문이다.
오토나노오코사마런치(大人のお子様ランチ), 즉 '어른의 어린이 점심'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일본의 경양식집이나 백화점 레스토랑에는 오코사마런치(お子様ランチ), 즉 '어린이 점심'이라는 게 메뉴에 들어 있는 걸 볼 수 있는데, 어린이용으로 여러 가지 음식을 조금씩 한 접시에 담은 것을 뜻한다. 토루코라이스도 여러 가지 경양식을 한 접시에 담아내되 어른들 입맛이 맞춰서 진한 맛을 내고 양도 많기 때문에 '어른의 어린이 점심'이라는 별명도 잘 어울린다. 하나 하나의 요리는 양이 작지만 여러 요리를 한 접시에 푸짐하게 담아내기 때문에 덩치가 있는 남자들도 배불리 먹을 수 있을 만한 양이다.
이름의 유래
음식을 보면 튀르키예와는 별 관계가 없는데 어째서 '토루코'라는 이름이 붙었는가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설들이 있다.[3]
필라프설
토루코라이스를 구성하는 주요한 음식인 필라프(pilaf)는 튀르키예어 필라우(pilav)에서 온 것이다. 필라프는 튀르키예는 물론 아시아와 유럽, 심지어 아메리카에 걸친 넓은 지역에 있지만 필라프의 어원인 필라우가 튀르키예어인 것이 토루코라이스의 어원이 되었다는 설이다.
삼색설
토루코는 튀르키예와 관계가 없고, 삼색기[4]를 뜻하는 트라이컬러(tricolour), 일본어로는 토리코로루(トリコロール)였던 게 발음이 '토리코'에서 '토루코'로 변한 게 유래라는 설이다. 토루코라이스의 기본 구성은 돈카츠, 필라프, 스파게티, 이렇게 세 가지인데, 그래서 삼색기를 뜻하는 '토리코로루'라는 별명으로 불렀던 게 시간이 흐르면서 '토루코'로 바뀌고 여기에 '라이스'가 붙어서 토루코라이스가 되었다는 설이다.
지리적 특징설
토루코라이스를 구성하는 주요 음식은 돈카츠, 스파게티, 필라프인데 돈카츠는 유럽에서 온 것이긴 하지만 일본화된 것이고, 스파게티는 이탈리아음식, 그리고 필라프는 아시아에서 유럽까지 광범위하게 퍼져 있으니,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다리라고 할 수 있는 튀르키예를 갖다 붙인 것이라는 설이다. 그런데 토루코라이스에 들어가는 스파게티는 나폴리탄 스파게티, 즉 일본식 스파게티이기 때문에 돈카츠와 비슷한 포지션이라고 할 수 있다.
튀르키예와의 관계
이름은 '토루코라이스'인데 앞서 이름의 유래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실제로 튀르키예음식과는 거의 관계가 없다. 일단 튀르키예는 세속국가긴 하지만 무슬림이 절대 다수이기 때문에 돼지고기도 구하기 힘들고 돼지고기 음식도 거의 없다. 따라서 돈카츠가 들어간 것부터가 에러다. 굳이 관계를 찾아 보자면 필라프는 튀르키예에도 있는 요리지만 토루코라이스에 들어가는 필라프는 실제로는 거의 볶음밥에 가깝다. 튀르키예식 필라프는 쌀을 기름에 볶은 다음에 육수를 부어서 졸이는 방식으로 만들어서 시간이 상당히 걸린다. 오히려 이탈리아의 쌀요리인 리소토와 비슷하다.[5] 또한 필라프는 튀르키예에서만 먹는 것도 아니고 아랍권과 유럽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넓은 지역에 걸쳐 많은 문화권에서 먹는 요리다.
2013년에 나가사키시는 9월 16일을 '토루코라이스의 날'로 정한 적이 있었다. 9월 16일로 한 이유는 1890년 이 날에 튀르키예[6] 군함인 에르투으룰(Ertuğrul)호가 와카야마현 앞바다에서 조난당하는 사건이 있어서, 역사적으로 튀르키예와 관계가 있는 날을 토루코라이스의 정한 것이다. 그런데 때마침 주일 튀르키예(터키) 대사관이 음식문화를 통한 문화교류를 추진하고 있어서 일본요리사협회의 사절단이 2013년 5월에 튀르키예를 방문해서 튀르키예 요리사연맹 대표단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일본 측이 토루코라이스를 소개했는데 그 내용을 듣고 난 튀르키예 쪽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던 것.[7]
튀르키예 측에서는 크게 두 가지 문제를 지적했는데, 첫째는 자기네 나라에는 돈카츠라는 요리가 없다는 문제였고, 둘째는 스파게티와 필라프가 같은 접시에 있는 것에 대해서도 '튀르키예는 한 접시에 탄수화물 위주의 음식을 여러 가지 놓는 문화도 없다'고 지적했다. 튀르키예가 법적으로는 세속국가지만 절대 다수가 무슬림인데 하람에 해당하는 돼지고기 요리인[8] 돈카츠가 있을 리 만무한데,[9] 여기다가 뜬금없이 자기네 나라 이름을 붙였으니 튀르키예 요리사들이 어이 없어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이 때문에 일본 측은 반드시 돼지고기일 필요는 없고 소고기나 생선을 사용해도 된다는 식으로 얼버무려야 했다.
게다가 토루코라이스의 날도 문제가 되었는데, 튀르키예 입장에서는 9월 16일이 에르투으룰호의 조난으로 승무원 656명 중에 생존자가 69명에 불과할 정도로 대규모 사망자가 발생한 슬픈 날이다. 비록 이 때 일본의 적극적인 구조로 그나마 저 정도라도 살아남았고, 그 이후 일본과 튀르키예의 관계가 가까워졌다고는 하지만 튀르키예에게 저 날은 사고로 목숨을 잃은 6백 명 가까운 승무원들을 애도하는 날인데 자기네 이름을 붙인 일본음식을, 그것도 근거조차도 뜬금 없이 멋대로 자기네 나라 이름을 붙인 음식을 이런 날에 경축한다고 하니 튀르키예인들에게는 황당할 뿐만 아니라 불쾌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같은 해에 나가사키 시장의 방문을 받은 주일 튀르키예 대사관에서 자국에서는 애도의 날인 9월 16일을 토루코라이스의 날로 지정한 이유를 따져 물었다고 한다.[10] 결국 나가사키시는 7월 19일에 토루코라이스의 날을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그래도 튀르키예 측에서는 '토루코'라는 이름을 쓰지 말라는 요구까지는 하지 않는데, 과거 1980년대에 터키탕 문제가 불거졌을 때에는 튀르키예 대사관 측이 일본에 강력하게 항의해서 이 이름이 사라지고 '소프란도'라는 이름으로 대체되었지만[11] 이 경우는 성매매 업소다 보니 굉장히 안 좋은 이미지만 토루코라이스에 대해서는 위에서 언급한 몇 가지 문제는 있다손 치더라도 딱히 자국 이미지에 큰 손상을 주는 건 아니기 때문에 대사관에서도 토루코라이스의 날에 관해서만 따졌을 뿐 토루코라이스 자체에 대해서는 딱히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각주
- ↑ '드라이 카레'라고 하면 카레 볶음밥, 또는 카레 필라프를 뜻하기도 하지만 물기를 아주 적게 해서 밥 위에 얹어주는 카레라이스를 뜻하기도 한다. 토루코라이스에서는 볶음밥 또는 필라프를 뜻한다.
- ↑ 나폴리탄 스파게티와 비슷하지만 소시지와 피망은 들어가지 않았으므로 정확히는 나폴리탄은 아니다.
- ↑ "トルコライスとは?名前の由来からレシピとカロリーまでご紹介", DELISH KITCHEN, 2021년 5월 22일.
- ↑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의 국기로 자주 볼 수 있다. 주로 16세기에 공화국 수립, 혁명을 비롯한 여러 큰 사건들을 겪으면서 삼색기가 등장한 유럽 국가들이 많았다.
- ↑ 주요한 차이라면 튀르키예식 필라프는 육수를 한 번에 부어서 졸이지만 리소토는 육수를 여러 차례로 나눠 한두 국자씩 부어 가면서 익힌다.
- ↑ 당시는 오스만제국이었다.
- ↑ "「トルコライス」に難色 “母国”トルコ訪問時に指摘受ける", 長崎新聞, 2013년 7월 8일.
- ↑ 가끔 "터키 사람들도 돼지고기 잘 먹던데?" 하는 글들을 볼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무슬림이 아니거나 외국에서 다른 사람 눈치 볼 일 없을 때의 얘기다. 마트 같은 곳에서 돼지고기를 팔긴 하지만 수요가 매우 적어서 거의 수입산이고 가격이 비싸다.
- ↑ 다만 터키식당에 돼지고기 요리가 없는 것이고, 튀르키예에서 볼 때 외국음식 레스토랑에는 돼지고기 요리가 있는 경우가 있으니 튀르키예의 일식 식당에 돈카츠가 있을 수는 있다.
- ↑ "「トルコライスの日」消える 「事故の9・16」在日大使館が難色", 西日本新聞, 2013년 9월 16일.
- ↑ 한국도 1996년경에 튀르키예 대사관에서 공식 항의하면서 터키탕이라는 이름이 증기탕으로 바뀌었다. 당시 항의 서한에서 "튀르키예에서 매음굴을 '한국관'이라고 하면 당신들 기분이 좋겠냐"고 아주 강한 어조로 불만을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