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면발효
발효 종류의 하나. 주로 맥주 발효에 이용되며 발효 탱크의 밑바닥 쪽에서 발효가 일어나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다. 반대로 위쪽 표면에서 주로 발효가 일어나는 것은 상면발효. 상면발효는 활발하게 만들어지는 이산화탄소가 효모를 위쪽으로 띄워 올리는 데 반해 상대적으로 속도가 느린 하면발효는 효모가 탱크 밑바닥으로 가라앉아서 발효가 주로 바닥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라거가 이러한 발효법으로 만들어지는 대표적인 맥주다. 와인을 비롯한 대부분 술들은 여전히 상면발효가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전체 주류 시장에서 맥주가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크기 때문에 기술 발달이 빠르게 이루어졌다.
상온에서 발효가 진행되는 상면발효와 비교하면 섭씨 10도 이하, 보통은 5도 정도의 정도의 아주 차가운 온도에서 발효가 이루어진다. 쉽게 말해 냉장고 냉장실에서 발효가 이루어진다고 보면 된다. 그 때문에 하면발효를 저온발효라고 부르기도 한다. 같은 효모 종류를 가지고 양쪽 방식의 발효를 다 하지는 못 한다. 즉 상온에서 활성화되는 종류의 효모가 있는가 하면 저온에서도 잘 발효가 이루어지는 효모 종류가 있다. 발효가 진행되는 속도는 상면발효보다는 느리다. 상면발효는 1주일 정도면 되지만 하면발효는 한 달 또는 그 이상 갈 수도 있다.
하면발효에 맞는 온도는 자연 상태에서는 아주 추운 지방이나 특정한 계절에만 가능했기 때문에 대략 15세기 정도부터 이런 발효법이 등장하기는 했어도 널리 퍼지지는 못했고, 날이 서늘한 늦가을에서 초봄 사이, 혹은 낮은 온도가 잘 유지되는 편인 토굴을 주로 이용했다고 한다.[1] 냉장 기술이 발달해서 원하는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방법이 개발된 19세기 말에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보면 조건도 까다롭고 시간도 훨씬 오래 걸리는 하면발효를 왜 하나 싶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라거, 필스너와 같은 하면발효 맥주의 비중이 압도적이다. 하면발효로 만든 라거는 특유의 깔끔하고 청량한 맛으로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는 데다가 차가운 온도에서는 양조를 망치거나 불쾌한 맛을 내는 야생 효모나 잡균이 덜 끼기 때문에 안정된 발효로 품질 관리에도 유리하고, 보존 기간도 더 길기 때문에 수송과 판매에도 유리해서 급속도로 시장을 확대했다. 그에 따라 상면발효로 만드는 에일 계열은 크게 위축되었다. 한 때는 에일의 본진이었던 영국에서조차 70년대까지 라거에 크게 밀려서 에일이 벼랑에 몰렸다가 시민들을 중심으로 리얼 에일 살리기 운동이 벌어지면서 간신히 점유율을 회복했다. 전 세계 맥주 생산량의 99%가 라거라고 할 정도로 압도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만 해도 대량생산하는 맥주들은 거의 다 라거이고, 크래프트 비어를 중심으로 국산 에일이 나오고는 있지만 대량생산 라거가 압도적인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흔히 맥주에서만 쓰이는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와인 쪽으로도 하면발효에 관한 연구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고, 우리나라 전통주도 고두밥이 아닌 생쌀발효법을 사용하는 경우 하면발효에 해당하는 저온발효법을 이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