볶음밥
말 그대로 밥을 기름에 볶은 요리. 쌀을 주식으로 하는 문화권에서는 쉽게 볼 수 있는 요리다. 특히 중국식 볶음밥이 유명해서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중국음식점에서 볶음밥은 거의 기본에 속한다. 그밖에도 밥을 주식으로 하는 나라라면 손쉽게 만들 수 있는 요리가 볶음밥이다. 중동을 포함한 대다수 아시아 국가들은 대부분 쌀을 주식으로 하므로 저마다 볶음밥 요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중국과 이웃하고 있는데도 볶음밥이 그다지 발달하지 않았다. 전통적으로는 해주비빔밥 정도가 아는 사람은 아는 정도의 우리식 볶음밥이고, 지금도 대부분 사람들은 볶음밥 하면 중국집 볶음밥이나 김치볶음밥 정도를 생각한다. 일본도 중국을 통해서 볶음밥이 들어온지라, 중국어 '차오판'이 어원인 챠항(チャーハン)을 널리 쓴다.
유럽 중에서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같은 곳은 은근히 쌀을 많이 먹지만 이렇다할 볶음밥 요리는 보기 힘들다. 굳이 얘기하자면 스페인의 파에야, 이탈리아의 리소토가 기름을 써서 쌀을 익히므로 비슷한 형태라고 볼 수 있지만, 파에야는 다른 재료는 볶아도 쌀은 물을 넣어서 밥 짓듯이 익히고, 리소토는 처음에 생쌀을 올리브유에 조금 볶다가 육수를 부어가면서 질척하게[1] 만드는 거라서 조리법도 많이 다르고, 결과물도 기름에 볶은 것보다는 많이 차이가 있어서 볶음밥이라 말하기는 좀 난감하다. 중동을 기원으로 하는 필라프도 쌀을 기름에 볶다가 육수를 넣어서 익히는 방식이다.
밥을 기름에 볶는 게 가장 기본이지만 이걸로 끝나면 그냥 니글거리는 밥일 뿐. 보통 소금이나 간장, 굴소스와 같은 것들로 간을 하고 잘게 썬 고기, 채소, 달걀 정도가 들어간다. 종류에 따라서 김치, 새우, 조개 같은 것들이 추가로 들어간다. 각자 자기네 나라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을 때려 늫고 볶으면 어지간하면 요리가 된다. 가장 간단하게 만든다면 소금과 달걀 정도만 넣고 끝. 실제로 중국 식당에 가면 딱 이 정도의 볶음밥을 파는 곳들이 많은데, 다만 달걀만 스크램블드 에그처럼 볶아서 밥과 섞는 것도 있다. 이런 볶음밥은 다른 여러 음식과 함께 주문해서 곁들여 먹는다.
간단해 보이지만 진짜 제대로 하려면 고도의 실력을 필요로 한다. 중국음식 요리사끼리 실력 대결을 할 때 쓰는 아이템이 볶음밥이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잘 만든 볶음밥은 밥알 하나하나가 따로 논다. 즉 어디는 기름이 잘 먹어서 볶이고 어디는 제대로 안 볶이고 하는 식의 편차가 없어야 한다. 숟가락으로 떠보면 알알이 떨어질 수 있다면 정말 잘 볶아낸 것이고 뭉치고 떡지거나 한 데가 있다면 빵점이다. 그렇다고 너무 볶아서 밥의 수분이 많이 날아가면 딱딱해져서 곤란하다. 타거나 누룽지가 생기면 더더욱 메롱. 빠르게 볶아내면서도 한알 한알이 살아 있도록 제대로 볶아내야 하니 웍을 다루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찬밥으로 볶음밥을 만들면 좋은 이유도 찬밥은 알파화되었던 전분이 굳으면서 밥알이 잘 떨어지기 때문이다.
볶음밥을 맛있게 만드는 방법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은 일단 강한 화력. 중국집 볶음밥 맛이 집에서는 물론 분식집에서도 안 나는 이유는 뭐니뭐니해도 MSG 때문이지만 두꺼운 웍에 강한 화력으로 빠르게 볶아내기 때문에 밥알 안의 수분이 별로 날아가지 않으면서도 겉은 불맛이 나온다. 또 하나는 기름. 보통 식용유보다는 돼지기름이나 버터, 마가린 같은 포화지방 덩어리 기름이 맛은 좋다. 중국식 볶음밥은 물론 만능소스인 굴소스의 버프를 받게 마련이다. 사실 굴소스가 은근히 MSG 덩어리다.
우리나라는 쌀을 주식으로 했지만 볶음밥 요리는 별로 발달하지 않았다. 해주비빔밥이 밥을 볶아서 비빔밥을 만드는 정도. 주로 중국집이나 분식집에서 먹을 수 있는 요리다.
한국의 많은 중국집에서는 볶음밥에 짜장을 조금 곁들여 준다. 정말 볶음밥에 자신 있는 집은 이렇게 안 한다. 볶음밥의 진짜 맛은 한 알 한 알 잘 볶인 밥알과 기름지면서도 깔끔한 맛에 있는 건데, 짜장에 비벼버리면 이런 게 사라지고 그냥 짜장밥 된다. 볶음밥을 잘 하는지 제대로 알려면 짜장에 비비지 않고 먹어 봐야 한다.[2] 외국 요리가 다양하게 들어오면서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권의 볶음밥 요리가 들어오고 하면서 다양화되긴 했지만 아직까지는 동남아시아 음식점이 많지는 않은 편이라 한국에서 볶음밥이라면 중국집과 분식집이 압도적이다.
한국의 분식집 메뉴는 뭐니뭐니해도 김치볶음밥. 한때는 철판볶음밥이 엄청 유행했다. 프라이팬 대신 큰 철판 위에 재료를 뿌리고 밥을 볶아낸다. 양 손으로 금속 뒤지개를 잡고 빠르게 볶아내는 모습을 눈으로 보는 게 철판볶음밥의 재미. 좀 더 쇼맨십이 있는 요리사라면 술을 살짝 뿌리고 불까지 확 붙여서 불맛을 좀 더 올린다. 불쑈가 보기도 멋있고.
우리나라에서는 메인 요리를 먹고 막판에 볶음밥을 해먹는 곳이 많다. 고깃집에서도, 닭갈비집에서도, 곱창집에서도, 해물탕집에서도, 감자탕집에서도 밥을 볶는다! 보통은 먹다 남은 메인 요리 또는 약간의 국물에 밥과 참기름, 김가루, 잘게 썰은 채소, 달걀 같은 것들이 들어간다. 고기구이집이라면 매운 양념을 더해서 볶아주는 게 보통. 밥을 냄비 위에 펼쳐놓고 더 가열해서 밥이 눌어붙도록 만들어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냄비 닦는 사람들은 눌어붙은 거 긁어내려면 죽어난다.[3]
게 전문점이라면 대게, 홍게, 킹크랩처럼 덩치 큰 게의 딱지에 있는 살과 내장을 밥, 김치와 함께 볶은 다음 다시 뚜껑에 담고 김가루와 통깨를 뿌려서 완성한다. 모차렐라 치즈를 얹어 녹이기도 한다. 게 내장 볶음밥 혹은 게딱지 볶음밥이라고 부르며 이거까지 먹어야 제대로 게를 먹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중국에서는 차오판(炒饭)이라고 부른다. 물론 중국의 음식점에서는 아주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음식으로, 각 지방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중화요리 때문에 생긴 기대와는 달리 의외로 입에 안 맞는 게 많은 중국음식 중 어딜 가나 그나마 무난하게 주문할 수 있는 게 차오판이다. 가장 기본이 되는 건 양저우차오판으로 밥, 기름, 달걀, 파 같은 간단한 채소 정도로 그야말로 기본적인 주재료만 사용한다. 볶음밥의 기본에 가장 가까운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달걀을 밥 한알 한알에 코팅하듯 볶아내는 황금볶음밥이라는 것도 있는데, 난이도 높은 볶음밥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일본도 볶음밥이 인기가 좋다. 다만 옛날부터 볶음밥이 발달했던 건 아니고 우리나라처럼 중화요리로 여긴다. 간토오 지방에서는 챠항(チャーハン, 炒飯)이라고 한다. 한자로는 중국의 차오판과 같은데, 즉 차오판이 일본으로 오면서 앞엣 글자는 중국식 읽는 법으로 남고 뒤엣 글자만 일본식으로 읽게 된 셈. 간사이 지방에서는 완전히 일본화된 단어인 야키메시(やきめし, 焼き飯)라는 말도 종종 쓴다. 볶음을 뜻하는 '야키'와 밥을 뜻하는 '메시'가 붙은 것으로 말 그대로 볶음밥. 특히 라멘 가게에 가면 교자와 함께 높은 확률로 볶음밥이 있고 둘을 묶은 세트도 쉽게 볼 수 있다. 어차피 둘 다 중화요리니...
별별 기계 만들기 좋아하는 일본답게 볶음밥 만드는 기계까지 있다. 기울어져 있는 금속통 안에 재료를 넣고 시간을 맞춰주면 통이 가열되고 적절하게 돌리면서 밥을 볶아낸다. 볶음밥 말고도 다른 볶음 요리도 가능하다.[4]
동남아시아 쪽에서도 아주 인기 있는 음식이다. 우리가 잘 아는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식 볶음밥 나시고렝이나 태국식 볶음밥인 카오팟 같은 것들이 잘 알려진 동남아시아식 볶음밥. 사실 볶음밥을 하기에는 한국이나 일본의 찰진 자포니카 품종보다는 길쭉길쭉하고 찰기 없는 쌀이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