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링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특히 환장하는 소고기의 형태. marbling은 '대리석 무늬'를 뜻하는데, 살코기에 하얀 기름이 고르고 촘촘하게 퍼져 있는 모습이 꼭 대리석 무늬 같다고 해서 붙인 이름.
소고기를 제외한 다른 고기는 잘 쓰이지 않는 개념이다. 돼지고기 역시 기름과 살코기가 적당히 섞인 고기를 선호하긴 하지만 삼겹살처럼 비계와 살코기가 층이 져 있는 형태로 되어 있지 살코기 사이에 기름이 촘촘하게 퍼져 있지는 않다.
꽃등심이라는 이름도 등심에 마블링이 안개꽃처럼 피어 있는 모습을 뜻하는 것. 일본의 고베규 같은 것은 진짜 심해서 위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특등품은 살코기보다 마블링이 훨씬 많다 싶을 정도로 하얀 점들이 촘촘하게 고기를 뒤덮고 있다. 살코기와 지방이 고르게 퍼져 있는 게 중요하다. 기름이 많아도 기름끼리 뭉쳐 있으면 상품가치가 없고 그런 기름 덩어리는 손질 과정에서 다 떼어내야 한다. 위 그림처럼 살코기 안에 촘촘하고 고르게 퍼져 있어야 마블링이라고 하는 것이다. 근데 저 정도면 기름에 살코기가 고르게 퍼져 있는 것 아닌가?
아무래도 먹어 보면 기름이 적고 살코기가 많은 고기는 좀 퍽퍽한 느낌이 있기 때문에 마블링을 선호한다. 기름기가 적은 소 엉덩잇살이라든지, 닭가슴살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살코기는 근육조직이고 익히면 질기다. 지방 조직은 상대적으로 부드럽고 기름지기 때문에 근육조직 안에 촘촘히 박혀 있는 지방은 고기를 아주 부드럽게 만들어준다. 여기에 고기를 구울 때 기름이 지글지글 소리를 내고 고소한 냄새를 확확 풍기는 것 역시 감각을 자극하는 효과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소고기 등급을 결정할 때 가장 중시하는 요소다. 등급은 1++, 1+, 1, 2, 3등급까지 있는데, 등급이 낮을 수록 살코기에 기름 분포가 적다는 얘기. 마블링이라면 역시 환장하는 일본 역시 마블링으로 등급을 매긴다. 단 일본은 등급을 이원화해서 소 그 자체의 등급을 C에서 A까지 3단계로, 마블링은 1에서 5까지 5단계로 매긴다. 따라서 A5면 소의 품질과 마블링 모두 최상급이라는 이야기. 일본 고깃집에서 A5 소고기라고 내세우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건강에는 절대 좋을 수 없다. 소고기 기름은 포화지방 덩어리인데, 마블링이 좋다는 것은 그만큼 기름이 많이 낀, 쉽게 말하면 비만이 심한 소라는 뜻이다. 넓은 초원에서 유유자적하게 돌아다니면서 풀 뜯어먹고 사는 소는 마블링이 별로 안 생긴다. 와규나 앵거스 같이 다른 품종보다 마블링이 잘 생기는 품종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키우는 방법이다. 고기에 마블링이 많다는 것은 지방이 많다는 것, 곧 비만이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만들 수 있을까? 인간과 같다. 많이 먹고 적게 움직이는 것이다. 마블링을 만들기 위해서 좁은 우리에 소를 가둬놓고 옥수수와 같이 탄수화물이 듬뿍 들은 곡물사료를 먹인다. 운동이 적으니 질긴 근육도 안 생기고 먹은 게 소모될 여지도 별로 없어서 곡물 속 탄수화물이 지방으로 바뀌어 몸에 축적된다. 건강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등급이 낮은 소고기가 포화지방이 적다. 풀을 먹여서 키운 소는 보통 2등급이나 3등급밖에는 안 나온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마블링을 기준으로 소고기 등급을 매기는 것에 대해서 반대하는 목소리도 상당하다. 한편 농가 입장에서도 마블링을 높이려면 소를 오래 키워야 하는데, 평균 사육기간이 미국은 22개월, 일본은 29개월이지만 한국은 31.2개월로 더 길다. 오래 기르는 만큼 사육비가 더 들어간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해서 결국 정부에서 2019년 12월부터 소고기 등급 제도를 개편하기로 했다. 근내지방도, 즉 마블링 중심이었던 것에서 조직감, 육색, 지방색도 고려하게 되었으며, 등을 따진다. 우리 국민이 좋아하는 ‘마블링이 좋은 고기’는 ‘근내지방도’가 높은 고기, 다시 말하면 지방이 많이 함유돼 있는 고기를 말한다. 1++등급은 기존에 근내지방도가 17% 이상이어야 했지만 개편 후에는 15.6% 이상으로 하향되었다. 1+등급도 13∼17%에서 12.3∼15.6%로 하향되었다.[1] 이에 따라서 전체 소고기 중 1++ 등급의 비중이 12.2%에서 20.1%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마블링은 한국, 혹은 한국과 일본에서만 따지는 개념이라는 주장도 있는데 그렇지는 않다. 미국도 마블링 따진다. 미국의 소고기 등급은 상위에서 하위 순서로 크게 프라임, 초이스, 셀렉트, 그리고 주로 가공육이나 다짐육으로 쓰이는 스탠더드와 커머셜로 나뉘는데 셀렉트 이상의 등급을 가르는 중요한 기준 중 하나가 마블링이다.
유럽은 마블링을 덜 따지는 편이다. 그렇다고 기름기가 없어서 좀 퍽퍽한 고기를 좋아하는 건 아니고, 이쪽은 숙성 기법이 발달해서 웨트 에이징이나 드라이 에이징과 같은 방법으로 고기를 부드럽게 만든다. 물론 이런 기법은 유럽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쓰이지만 유럽에서 먼저 발달했다. 드라이 에이징은 숙성이긴 하지만 사실상 고기의 겉쪽은 상하게 놔두는 거나 마찬가지다. 길게 하는 곳은 4주 또는 그 이상도 하는데 이런 경우에는 겉의 고기는 절반 넘게 버려야 할 수도 있다. 최근에는 가축에게도 동물 복지 개념을 강화시키고 있는 추세라서 가축을 강제로 고도 비만을 만들어야 하는 마블링은 유럽에서 더더욱 환영을 못 받을 분위기다.
우리나라에도 들어오는 호주나 뉴질랜드는 주로 풀밭에 방목해서 키우기 때문에 기름이 별로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풀냄새 난다고 호주산 소고기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래서 한국과 일본 수출용으로는 도축하기 6개월 전부터 우리에 가둬놓고 곡물 사료를 먹인다. 그 중 일부는 자국 안에서도 소비되는데 이런 소고기에는 곡물을 먹여 키웠다는 뜻으로 grain-fed라는 표시가 되어 있다. 반면 풀 먹여서 키운 소고기라면 grass-fed라고 쓰여 있다. 아무래도 사료값도 들고 그냥 풀밭에 풀어놓고 키우는 것보다 사람 손도 가기 때문에 비싸다. 서양 사람들이라고 해서 마블링 낀 고기가 연하고 향도 좋다는 걸 모를 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자고 곡물을 처묵처묵 시켜서 지방 덩어리로 만들 생각이 없을 뿐이다.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에 따르면 고기를 살 때 소기름의 일종인 두태를 달라고 하면 그냥 주는데, 고기를 구울 때 먼저 두태로 기름을 내면 마블링이 없는 고기를 구워도 마블링 잘 된 고기와 비슷한 맛이 난다고 한다. [2]
각주
- ↑ "쇠고기 ‘마블링’ 적어도 1++ 등급 판정...12월부터 등급제 개편", <경향신문>, 2019년 11월 25일.
- ↑ "마블링 많아야 맛있다? 국가가 조작한 신화", CBS, 2015년 08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