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장
중화요리에 쓰이는 소스의 하나. 짜장이라고 널리 알려져 있지만 원래 이름은 춘장이다. 중국의 첨면장을 기반으로 한 것이지만 색깔이나 맛이나 꽤 차이가 나기 때문에 별개로 보는 것이 맞다. 콩과 밀가루, 소금이 주원료고 캐러멜색소가 들어가서 특유의 색깔과 맛을 낸다.
첨면장은 처음에는 적갈색 정도였다가 숙성이 오래 되면 점점 검게 변한다. 속성으로 만들면서 이 색깔을 인위적으로 내기 위해 1948년 영화식품이라는 곳에서 캐러멜색소와 MSG를 넣은 장을 만들고 춘장이라는 이름으로 팔기 시작했다. 캐러멜색소가 색깔만이 아니라 나름대로 특유의 맛[1]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짜장 특유의 맛이 형성된 것. 원래는 영화식품도 '재래식'으로 만들어 색깔이 연한 춘장을 만들어서 팔았는데, 경쟁사에서 색깔이 진할수록 좋은 춘장이라고 선전하면서 점유율이 하락하자, 위기의식을 느낀 영화식품에서 캐러멜을 넣어서 검은색에 가까운 춘장을 만들었고, 이게 히트를 치면서 시장을 단숨에 석권했다고 한다.[2] 중국집이 돼지기름을 안 쓰고 식용유를 쓰게 되면서 맛이 밋밋해지고, 이를 보충하기 위해 설탕과 MSG 사용량도 늘었다는 의견도 있다.
'춘장'이라는 말은 중국에는 없다. 이 이름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산둥지역에서 파를 찍어먹을 때 쓰는 총장(葱醬)이 한국으로 건너와 짜장면 소스로 쓰이게 되었는데, '총장'이 한국에서 돌면서 춘장으로 변했다는 것이다.[3][4] 즉, 총장 → 충장 → 춘장 정도로 변했고, '춘'에 맞는 한자 春이 붙은, 한국에서 만들어진 한자어인 셈이다. 처음에는 국수에 쓰이는 장이라는 뜻의 '면장'이라는 말이 더 많이 쓰이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춘장이라는 말이 더 널리 퍼졌고, 기름에 볶거나 튀기지 않은 상태의 장은 춘장, 춘장을 기름에 튀긴 것을 면장이라고 구분해서 부르게 되었다.[5][6] 따라서 장을 만드는 제조업자들은 제품에 '춘장'만 쓰게 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면장'이라는 말은 사라지고 춘장과 짜장만 남은 결과가 되었다.
이쪽 분야만큼은 원조라 할 수 있는 영화식품에서 만드는 사자표 춘장이 지금까지도 시장을 압도적으로 석권하고 있다. 원래 2위 업체인 '해표춘장'이라는 것도 있었는데, 영화식품에서 인수했다.[2] 해표춘장은 주로 영남 쪽에서 많이 쓰이던 거라, 인수한 이후에도 이쪽 입맛에 맞춰서 한동안은 '해표춘장'을 만들었던 것으로 보이나[7] 지금은 자취를 감추었다. 중국집 쪽에서는 거의, 아니 그냥 100% 사자표를 쓴다. 그러다 보니 한국의 짜장면 맛은 거기서 거기라는 말도 많이 한다. 하지만 중국집에 따라 짜장면 맛은 차이가 상당히 나는데, 춘장 이외에 다른 재료가 내는 맛의 차이, 그리고 요리사가 춘장을 포함한 재료를 다루는 실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중국집이 아니라 우동과 짜장을 같이 하는 기사식당이나 짜장밥, 짜장면이 가끔 나오는 구내식당 같은 곳에서는 사자표가 아닌 다른 춘장을 쓰는 일도 드물게 있다. 샘표 같은 훨씬 인지도 높은 장류 기업들, 그리고 대상이나 CJ 같은 대기업들도 춘장만큼은 맥을 못 추거나 아예 건드리지도 않는다.
사자표 춘장은 일반 슈퍼마켓이나 마트에서는 보기 힘들지만 원한다면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문제는 포장 단위가 14 킬로그램이라는 것. 그나마 작게 나오는 볶음 춘장이나 사자표 거장 짜장소스도 2 킬로그램이다. 한달 내내 짜장만 먹고 살 거 아니라면 대략 후덜덜하다. 중국집에서 배달 때 편하게 활용할 수 있는 6g 짜리 꼬마춘장도 있으나 판매 단위는 무려 6kg... 즉 1,000개 들이 한 박스다. 중국집을 100% 꽉 잡고 있는 영화식품으로서야 굳이 가정용까지 손댈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한국의 그 수많은 중국집들이 거의 사자표 춘장을 쓰는데 여기에 물량 대기도 바쁘고, 가정용으로 소용량을 만들어봐야 번거롭기도 하거니와 가정의 춘장 소비량이 많지도 않다. 배달 문화가 발달한 마당에 집에서 힘들게 짜장면을 해먹을 일도 없고, 아니면 레토르트 짜장이나 짜장라면으로 대충 때우는 방법도 있기 때문에 집에서 직접 짜장을 해먹는 경우는 취미로 중국요리를 배웠다든지 한 정도가 아니라면 정말로 드물다.
춘장이 쓰이는 곳은 뭐니뭐니해도 짜장면. 춘장을 기름에 볶고[8] 녹말과 다른 양념들을 혼합해서 농도를 잡은 다음 고기 및 채소를 함께 볶아서 소스를 만든다. 녹말을 안 넣거나 양을 많이 줄이면 간짜장이 된다. 그밖에도 단무지나 양파를 찍어 먹으라고 나오는 소스도 춘장으로, 이 때에는 볶지 않고 그대로 내기 때문에 위의 사진처럼 검은색을 띤다. 영화식품을 비롯한 전문 기업들 중에는 찍어먹는 용도로 쓰는 춘장은 '홀춘장'[9]이라는 이름으로 따로 제품을 만드는데, 이건 다른 조미료를 첨가하면서 만드는 짜장면과는 달리 그냥 쓸 수 있도록 MSG와 식초 같은 몇 가지 조미료가 첨가되어 있다.
국수 대신 밥과 같이 내면 당연히 짜장밥이 되고, 일부 중국집은 춘장으로 고기를 볶거나 하는 식으로 요리 소스로도 활용한다. 베이징요리인 징장러우쓰(경장육사)가 대표적으로 춘장을 사용하는 볶음 요리. 단, 이건 우리나라 얘기고 중국에서는 당연히 첨면장 쓴다.
중화요리 말고도 춘장이 쓰이는 곳이 있는데, 대표적인 경우가 즉석 떡볶이. 고추장 또는 고추 다대기에 춘장을 약간 섞어서 맛을 내는 게 신당동 떡볶이의 기본 소스다. 춘장이 들어가면 고추장만 썼을 때보다는 약간 어두운 색깔을 띤다. 고추장 떡볶이를 개발했고 신당동 떡볶이의 원조로 잘 알려진 마복림 할머니가 고추장에 춘장을 섞는 방법도 고안해 냈다.
각주
- ↑ 캐러멜색소는 설탕을 가열하여 캐러멜화 반응을 일으키는 것으로, 이 과정에서 독특한 쓴맛이 만들어진다.
- ↑ 2.0 2.1 "[집중 탐구] 짜장면 맛의 비밀", 월간조선, 2011년 11월호.
- ↑ 손문한, 김웅진 "우리나라 춘장(春醬)문화에 관한 연구" 문화산업연구 12, no.4 (2012): 42-43.
- ↑ 실제로 고초 → 고추, 호초 → 후추, 삼촌 → 삼춘과 같이 'ㅗ'가 'ㅜ'로 변하는 사례들은 많다.
- ↑ 손문한 "춘장(春醬) 유통에 관한 연구" 국내석사학위논문, 중앙대학교 산업경영대학원, 2001: 14.
- ↑ 춘창에 관한 두 가지 논문을 쓴 손문한은 영화식품 영업 본부장을 지냈다.
- ↑ 송우영, "자장면 역사와 함께 한 63년 전통 영화식품(주) 사자표춘장", 머니투데이, 2010년 5월 26일.
- ↑ 기름과 춘장의 양을 비슷하게 하고 거의 튀기다시피 할 정도로 바짝 볶아야 맛있다고 한다.
- ↑ 식당 안에서 먹는 공간 '홀(hall)'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