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마모토성: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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熊本城。 | 熊本城。 | ||
[[일본]] [[큐슈]] [[쿠마모토시]]에 있는 성. [[큐슈]]에서는 [[키타큐슈시]]에 있는 [[코쿠라성]]과 함께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성이며 더 나아가 [[오사카성]], [[나고야성]]과 함께 일본의 3대 성으로 유명하다. 다만 다른 3대 성과 마찬가지로 일본 국보로는 지정되어 있지 않은데, 대부분 현대에 와서 복원한 거라서 껍데기만 옛날 성의 모양이지 안쪽은 현대적인 건축물에 가까운 수준이다. 그래도 [[쿠마모토]]의 전통 관광지로는 [[스이젠지]]와 함께 투톱이라고 할 수 있다 | [[일본]] [[큐슈]] [[쿠마모토시]]에 있는 성. [[큐슈]]에서는 [[키타큐슈시]]에 있는 [[코쿠라성]]과 함께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성이며 더 나아가 [[오사카성]], [[나고야성]]과 함께 일본의 3대 성으로 유명하다.<ref>나고야성 대신 히메지성을 꼽기도 한다. 히메지성은 옛날 천수각이 파괴되지 않고 살아남아 있다.</ref> 다만 다른 3대 성과 마찬가지로 일본 국보로는 지정되어 있지 않은데, 대부분 현대에 와서 복원한 거라서 껍데기만 옛날 성의 모양이지 안쪽은 현대적인 건축물에 가까운 수준이다. 쉽게 말해 1:1 스케일 모형이나 마찬가지다. 그래도 [[쿠마모토]]의 전통 관광지로는 [[스이젠지]]와 함께 투톱이라고 할 수 있다. | ||
임진왜란 때 한국에 쳐들어온 장수 중 하나인 카토 키요마사가 지은 성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이미 한참 전인 무로마치 시대에 만들어졌던 성을 거대한 요새로 탈바꿈 시켰다. 카토 키요마사는 임진왜란 때 울산성 전투에서 조선-명나라 연합군에게 포위되어 식량과 물이 바닥나서 거의 죽기 직전까지 갔던 지라, 쿠마모토성을 개축할 때에는 타타미에도 토란대를 넣어 비상식량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고, 우물도 겁나게 많이 팠다. 그러나 토요토미 히데요시 사후에 토쿠가와 이에야스가 천하를 통일하면서 키요마사의 아들인 타다히로 대에 카토 가문은 몰락했고, 그래서 카토 가문이 이 성의 덕을 본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이 성은 호소카와 가문으로 넘어가서 성의 개축과 도시의 확장이 이루어졌다. | |||
[[2016년 쿠마모토 지진]]으로 석축 10 미터 정도가 무너지고 두 개의 망루와 지붕 기와의 상당 부분도 무너지는 큰 피해를 입었다. 그나마 건물 자체가 무너지지 않은 것은 다행이지만... 복구 공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피해 규모가 크기 때문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점쳐진다. 완전 복구에는 20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될 정도. | 이 성에서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사건이 여러 번 일어났는데, 특히 일본 본토에서 일어난 마지막 내전이라고 할 수 있는 서남전쟁(세이난전쟁)에서 사츠마군과 정부군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쿠마모토성 공성전의 현장이하다. 사이고 다카모리가 이끄는 사츠마군이 압도적인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ref>성을 지키는 정부군은 3,500명, 사츠마군은 13,000명이었다.</ref> 두 달 가까이에 걸친 공성전을 벌였지만 결국 성 함락에 실패하면서 전세는 정부군으로 급격하게 기울어졌고 결국 전쟁의 승패를 사실상 결정지었다. 오죽하면 쿠마모토성 함락이 실패로 돌아간 후 사이고가 "우리는 정부군에게 진 게 아니라 세이쇼<ref>키요마사(清正)를 훈독이 아니라 음독하면 세이쇼가 된다.</ref>공에게 진 것이다."라고 탄식할 정도였다. 앞에서 언급했든 카토 키요마사가 성을 개축할 때 장기간 포위당해도 버틸 수 있는 구조를 만든 게 컸다. 이 공성전이 벌어지기 며칠 전에 쿠마모토성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천수각에 불이 나서 전소됐고, 1960년대에 와서야 복원했다. 다만 이는 겉모습만 옛날 모습으로 복원한 것이고 구조는 철근 콘크리트로 만들고 내부 역시도 옛날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복원'이라고는 보기 힘들다. | ||
[[파일:Kumamoto castle reproduction of the earthquake damaged tenshukaku.jpg|upright 1.5|섬네일|없음|[[2016년 쿠마모토 지진|지진]]으로 파손된 쿠마모토성 천수각의 모형. 천수각 안 전시관에 있다.]] | |||
쿠마모토가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지역인지라 쿠마모토성도 역사적으로 여러 번 지진 피해를 입었다. 1889년(메이지 22년)에도 큰 지진으로 피해를 입었고 쇼와 시대인 1960년에 와서야 천수각이 복구되었다. 2016년에는 [[2016년 쿠마모토 지진|쿠마모토 지진]]으로 석축 10 미터 정도가 무너지고 두 개의 망루와 지붕 기와의 상당 부분도 무너지는 큰 피해를 입었다. 그나마 건물 자체가 무너지지 않은 것은 다행이지만... 복구 공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피해 규모가 크기 때문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점쳐진다. 완전 복구에는 20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될 정도. 한동안은 견학은 가능하지만 그냥 경내의 주위를 빙 둘러볼 수 있을 뿐, 천수각에는 들어갈 수 없었지만 <del>돈 되는 것부터</del> 일부 복구가 완료되면서 2021년 6월 28일부터 천수각 입장이 완전히 개방되었다.<ref>원래는 2021년 3월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대유행 사태로 일부만 개방되었다가 6월에 완전 개방이 이루어졌다.</ref> 복구 과정에서 내부의 내진 설계를 보강해서 또다시 강력한 지진이 발생하더라도 천수각 안 관광객의 안전을 도모할 수 있도록 했다. | |||
성의 가장 상징적인 건물은 물론 천수각으로, 지하 1층, 지상 6층 구조로 되어 있다. 관광객들은 지하 1층으로 입장해서 한 층 한 층 올라가면서 내부에 전시된 각종 유물이나 사진, 영상 자료들을 볼 수 있다. 관광객들의 동선에 따라 아랫층부터 위층으로 갈수록 과거 → 현재 순서로 전시실이 배치되어 있다. 대천수각 옆에는 소천수각이 있으나 관광객들에게는 개방하고 있지 않다. 대천수각을 통해서 소천수각 안쪽 모습을 어렴풋이 볼 수 있는 정도다. | |||
[[쿠마모토 시영 전차]]를 타면 쿠마모토죠(쿠마모토성)·시야쿠쇼마에역에서 내릴 수 있다. 버스로도 갈 수 있고 경내 무료 셔틀버스도 있다. | [[쿠마모토 시영 전차]]를 타면 쿠마모토죠(쿠마모토성)·시야쿠쇼마에역에서 내릴 수 있다. 버스로도 갈 수 있고 경내 무료 셔틀버스도 있다. | ||
{{각주}} |
2024년 3월 8일 (금) 00:28 기준 최신판
熊本城。
일본 큐슈 쿠마모토시에 있는 성. 큐슈에서는 키타큐슈시에 있는 코쿠라성과 함께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성이며 더 나아가 오사카성, 나고야성과 함께 일본의 3대 성으로 유명하다.[1] 다만 다른 3대 성과 마찬가지로 일본 국보로는 지정되어 있지 않은데, 대부분 현대에 와서 복원한 거라서 껍데기만 옛날 성의 모양이지 안쪽은 현대적인 건축물에 가까운 수준이다. 쉽게 말해 1:1 스케일 모형이나 마찬가지다. 그래도 쿠마모토의 전통 관광지로는 스이젠지와 함께 투톱이라고 할 수 있다.
임진왜란 때 한국에 쳐들어온 장수 중 하나인 카토 키요마사가 지은 성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이미 한참 전인 무로마치 시대에 만들어졌던 성을 거대한 요새로 탈바꿈 시켰다. 카토 키요마사는 임진왜란 때 울산성 전투에서 조선-명나라 연합군에게 포위되어 식량과 물이 바닥나서 거의 죽기 직전까지 갔던 지라, 쿠마모토성을 개축할 때에는 타타미에도 토란대를 넣어 비상식량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고, 우물도 겁나게 많이 팠다. 그러나 토요토미 히데요시 사후에 토쿠가와 이에야스가 천하를 통일하면서 키요마사의 아들인 타다히로 대에 카토 가문은 몰락했고, 그래서 카토 가문이 이 성의 덕을 본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이 성은 호소카와 가문으로 넘어가서 성의 개축과 도시의 확장이 이루어졌다.
이 성에서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사건이 여러 번 일어났는데, 특히 일본 본토에서 일어난 마지막 내전이라고 할 수 있는 서남전쟁(세이난전쟁)에서 사츠마군과 정부군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쿠마모토성 공성전의 현장이하다. 사이고 다카모리가 이끄는 사츠마군이 압도적인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2] 두 달 가까이에 걸친 공성전을 벌였지만 결국 성 함락에 실패하면서 전세는 정부군으로 급격하게 기울어졌고 결국 전쟁의 승패를 사실상 결정지었다. 오죽하면 쿠마모토성 함락이 실패로 돌아간 후 사이고가 "우리는 정부군에게 진 게 아니라 세이쇼[3]공에게 진 것이다."라고 탄식할 정도였다. 앞에서 언급했든 카토 키요마사가 성을 개축할 때 장기간 포위당해도 버틸 수 있는 구조를 만든 게 컸다. 이 공성전이 벌어지기 며칠 전에 쿠마모토성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천수각에 불이 나서 전소됐고, 1960년대에 와서야 복원했다. 다만 이는 겉모습만 옛날 모습으로 복원한 것이고 구조는 철근 콘크리트로 만들고 내부 역시도 옛날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복원'이라고는 보기 힘들다.
쿠마모토가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지역인지라 쿠마모토성도 역사적으로 여러 번 지진 피해를 입었다. 1889년(메이지 22년)에도 큰 지진으로 피해를 입었고 쇼와 시대인 1960년에 와서야 천수각이 복구되었다. 2016년에는 쿠마모토 지진으로 석축 10 미터 정도가 무너지고 두 개의 망루와 지붕 기와의 상당 부분도 무너지는 큰 피해를 입었다. 그나마 건물 자체가 무너지지 않은 것은 다행이지만... 복구 공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피해 규모가 크기 때문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점쳐진다. 완전 복구에는 20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될 정도. 한동안은 견학은 가능하지만 그냥 경내의 주위를 빙 둘러볼 수 있을 뿐, 천수각에는 들어갈 수 없었지만 돈 되는 것부터 일부 복구가 완료되면서 2021년 6월 28일부터 천수각 입장이 완전히 개방되었다.[4] 복구 과정에서 내부의 내진 설계를 보강해서 또다시 강력한 지진이 발생하더라도 천수각 안 관광객의 안전을 도모할 수 있도록 했다.
성의 가장 상징적인 건물은 물론 천수각으로, 지하 1층, 지상 6층 구조로 되어 있다. 관광객들은 지하 1층으로 입장해서 한 층 한 층 올라가면서 내부에 전시된 각종 유물이나 사진, 영상 자료들을 볼 수 있다. 관광객들의 동선에 따라 아랫층부터 위층으로 갈수록 과거 → 현재 순서로 전시실이 배치되어 있다. 대천수각 옆에는 소천수각이 있으나 관광객들에게는 개방하고 있지 않다. 대천수각을 통해서 소천수각 안쪽 모습을 어렴풋이 볼 수 있는 정도다.
쿠마모토 시영 전차를 타면 쿠마모토죠(쿠마모토성)·시야쿠쇼마에역에서 내릴 수 있다. 버스로도 갈 수 있고 경내 무료 셔틀버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