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3 코리아 슈퍼프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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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부터 2003년까지 경상남도 창원시에서 개최되었던 [[포뮬러 3]] 경기. 우리나라에서 개최된 명실상부한 최초의 국제 자동차 경주 대회. 처음에는 그랑프리라는 이름을 썼는데 원래 | 1999년부터 2003년까지 경상남도 창원시에서 개최되었던 [[포뮬러 3]] 경기. 우리나라에서 개최된 명실상부한 최초의 국제 자동차 경주 대회. 처음에는 그랑프리라는 이름을 썼는데 원래 [[그랑프리]]란 말은 [[F1]]을 제외하면 특별히 [[FIA]]기 인정하는 경기만 쓸 수 있기 때문에 이듬해부터는 슈퍼프리(Super Prix)란 말로 바꿨다. 창원종합운동장 일대의 도로를 활용한 [[스트리트 서킷]]에서 개최된 경기로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최초의 [[스트리트 서킷]]이기도 했다. 서킷 레이아웃이 몽키스패너를 닮아서 몽키스패너 서킷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 ||
[[마카오 그랑프리]] 바로 다음 주에 개최되었기 때문에 그 경기에 참여했던 팀과 선수들이 그대로 왔다. 즉 전 세계애서 앞날이 창창한 유망주가 다 모였다는 얘기. 그 중에 [[포뮬러 1]]로 올라간 선수들이 한둘이 아니다. 창원 경기에 참가한 연도 순서로 본다면, (굵은 글씨는 F1 월드 챔피언 먹은 드라이버) | [[마카오 그랑프리]] 바로 다음 주에 개최되었기 때문에 그 경기에 참여했던 팀과 선수들이 그대로 왔다. 즉 전 세계애서 앞날이 창창한 유망주가 다 모였다는 얘기. 그 중에 [[포뮬러 1]]로 올라간 선수들이 한둘이 아니다. 창원 경기에 참가한 연도 순서로 본다면, (굵은 글씨는 [[F1]] 월드 챔피언 먹은 드라이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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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넬슨 피케 주니어]] | ** [[넬슨 피케 주니어]] | ||
물론 이 중에는 실력은 허접한데 돈으로 탄 [[페이 드라이버]]도 있지만 챔피언을 차지한 드라이버도 둘이나 있고 희대의 승부조작 스캔들을 일으킨 [[넬슨 피케 주니어]]도 | 물론 이 중에는 실력은 허접한데 돈으로 탄 [[페이 드라이버]]도 있지만 챔피언을 차지한 드라이버도 둘이나 있고 희대의 승부조작 스캔들을 일으킨 [[넬슨 피케 주니어]]도 있다. | ||
그런데 뭔가 징크스인지 이들의 성적은 썩 좋지 않았다. 반면 우승자 중에는 2000년의 나레인 카티케얀 빼고는 [[F1]]으로 간 사람이 없다. 그나마 나레인 카티케얀조차도 [[F1]] 성적은 그닥... | 그런데 뭔가 징크스인지 이들의 성적은 썩 좋지 않았다. 반면 우승자 중에는 2000년의 나레인 카티케얀 빼고는 [[F1]]으로 간 사람이 없다. 그나마 나레인 카티케얀조차도 [[F1]] 성적은 그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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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9 || 대런 매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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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 || 나레인 카티케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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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 || 조나당 코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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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 || 올리비에 플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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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 || 리처드 안티누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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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우승자 분들 지금 뭐 하는지 아시는 분들? 미국에서 활동하는 선수도 있고, 유럽의 국제 혹은 국내 경기에서 뛰는 선수들도 있다. 어쨌거나 우승자 중 [[F1]] 간 사람은 딱 한 명. | |||
[[마카오 그랑프리]] 역시 [[스트리트 서킷]]에서 개최되는 경기인데, 경기 자체의 역사가 워낙에 오래되었기 때문에 인기나 인지도는 넘사벽이었지만 사실 서킷 자체는 폭이 좁다 보니 박진감 있는 경기를 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반면 [[창원]]의 [[스트리트 서킷]]은 레이아웃도 좋았고 경기 자체의 박진감도 더욱 좋은 환경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다만 마지막 코너로 들어가는 구간이 내리막길 직선이다 보니 위험하다는 얘기가 많아서 억지로 [[시케인]]을 만들기도 했지만 드라이버들이 어떻게든 직진으로 따서 들어가는지라, 늘 조마조마했다. | |||
원래 2004년까지 5년 계약이 되어 있었는데, 당시 이 대회를 주도했던 김혁규 경상남도지사가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열린우리당으로 옮기면서 사달이 나기 시작했다. 김혁규는 국무총리로 임명되려 했으나 한나라당의 극렬한 반대로 결국 좌절되고... 보궐선거에 당선된 김태호 신임 지사가 결국 대회를 접어버리는 바람에 2004년 대회가 날아가 버렸다. | 원래 2004년까지 5년 계약이 되어 있었는데, 당시 이 대회를 주도했던 김혁규 경상남도지사가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열린우리당으로 옮기면서 사달이 나기 시작했다. 김혁규는 국무총리로 임명되려 했으나 한나라당의 극렬한 반대로 결국 좌절되고... 보궐선거에 당선된 김태호 신임 지사가 결국 대회를 접어버리는 바람에 2004년 대회가 날아가 버렸다. | ||
2010년에 [[F1]] [[코리아 그랑프리]]가 개최되고 이듬해 광주 스트리트 서킷 또는 영암 [[코리아인터내셔널서킷]]에서 F3 코리아 슈퍼프리를 다시 하기로 계약까지 했으나, 당시 대회를 주도했던 정영조 KAVO회장 겸 KARA 회장이 양쪽에서 다 잘리는 바람에 결국 슈퍼프리도 날아갔다. [[F1]]은 살아남았지만 결국 2013년을 끝으로 난망한 상태. | 2010년에 [[F1]] [[코리아 그랑프리]]가 개최되고 이듬해 [[광주]]에 [[스트리트 서킷]]을 만들든가 또는 영암 [[코리아인터내셔널서킷]]에서 [[F3]] 코리아 슈퍼프리를 다시 하기로 계약까지 했으나, 당시 대회를 주도했던 정영조 KAVO회장 겸 [[KARA]] 회장이 양쪽에서 다 잘리는 바람에 결국 슈퍼프리도 날아갔다. [[F1]]은 살아남았지만 결국 2013년을 끝으로 난망한 상태. | ||
[[Category:모터스포츠]] |
2016년 1월 24일 (일) 05:00 기준 최신판
1999년부터 2003년까지 경상남도 창원시에서 개최되었던 포뮬러 3 경기. 우리나라에서 개최된 명실상부한 최초의 국제 자동차 경주 대회. 처음에는 그랑프리라는 이름을 썼는데 원래 그랑프리란 말은 F1을 제외하면 특별히 FIA기 인정하는 경기만 쓸 수 있기 때문에 이듬해부터는 슈퍼프리(Super Prix)란 말로 바꿨다. 창원종합운동장 일대의 도로를 활용한 스트리트 서킷에서 개최된 경기로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최초의 스트리트 서킷이기도 했다. 서킷 레이아웃이 몽키스패너를 닮아서 몽키스패너 서킷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마카오 그랑프리 바로 다음 주에 개최되었기 때문에 그 경기에 참여했던 팀과 선수들이 그대로 왔다. 즉 전 세계애서 앞날이 창창한 유망주가 다 모였다는 얘기. 그 중에 포뮬러 1로 올라간 선수들이 한둘이 아니다. 창원 경기에 참가한 연도 순서로 본다면, (굵은 글씨는 F1 월드 챔피언 먹은 드라이버)
- 1999년
- 젠슨 버튼
- 티아고 몬테이로
- 알렉스 융
- 나레인 카티케얀
- 루치아노 부르티
- 2000년
- 사토 타쿠마
- 이데 유지
- 촐트 바움가르트너
- 2001년
- 헤이키 코발라이넨
물론 이 중에는 실력은 허접한데 돈으로 탄 페이 드라이버도 있지만 챔피언을 차지한 드라이버도 둘이나 있고 희대의 승부조작 스캔들을 일으킨 넬슨 피케 주니어도 있다.
그런데 뭔가 징크스인지 이들의 성적은 썩 좋지 않았다. 반면 우승자 중에는 2000년의 나레인 카티케얀 빼고는 F1으로 간 사람이 없다. 그나마 나레인 카티케얀조차도 F1 성적은 그닥...
연도 | 우승자 |
---|---|
1999 | 대런 매닝 |
2000 | 나레인 카티케얀 |
2001 | 조나당 코쉐 |
2002 | 올리비에 플라 |
2003 | 리처드 안티누치 |
위 우승자 분들 지금 뭐 하는지 아시는 분들? 미국에서 활동하는 선수도 있고, 유럽의 국제 혹은 국내 경기에서 뛰는 선수들도 있다. 어쨌거나 우승자 중 F1 간 사람은 딱 한 명.
마카오 그랑프리 역시 스트리트 서킷에서 개최되는 경기인데, 경기 자체의 역사가 워낙에 오래되었기 때문에 인기나 인지도는 넘사벽이었지만 사실 서킷 자체는 폭이 좁다 보니 박진감 있는 경기를 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반면 창원의 스트리트 서킷은 레이아웃도 좋았고 경기 자체의 박진감도 더욱 좋은 환경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다만 마지막 코너로 들어가는 구간이 내리막길 직선이다 보니 위험하다는 얘기가 많아서 억지로 시케인을 만들기도 했지만 드라이버들이 어떻게든 직진으로 따서 들어가는지라, 늘 조마조마했다.
원래 2004년까지 5년 계약이 되어 있었는데, 당시 이 대회를 주도했던 김혁규 경상남도지사가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열린우리당으로 옮기면서 사달이 나기 시작했다. 김혁규는 국무총리로 임명되려 했으나 한나라당의 극렬한 반대로 결국 좌절되고... 보궐선거에 당선된 김태호 신임 지사가 결국 대회를 접어버리는 바람에 2004년 대회가 날아가 버렸다.
2010년에 F1 코리아 그랑프리가 개최되고 이듬해 광주에 스트리트 서킷을 만들든가 또는 영암 코리아인터내셔널서킷에서 F3 코리아 슈퍼프리를 다시 하기로 계약까지 했으나, 당시 대회를 주도했던 정영조 KAVO회장 겸 KARA 회장이 양쪽에서 다 잘리는 바람에 결국 슈퍼프리도 날아갔다. F1은 살아남았지만 결국 2013년을 끝으로 난망한 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