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락국수
우리나라의 면요리. 일본의 우동이 한국에 건너와서 우리나라의 사정에 맞게 정착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의 우동과 거의 비슷해 보이기도 하고, 실제로 우동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파는 음식점도 많지만 여러 면에서 일본 우동과는 차이가 있어서 이제는 다른 종류의 면요리로 봐도 될 정도다. 라멘이 중국에서 건너온 거지만 일본화된 것과 비슷하달까. 다만 국립국어원에서는 일본 우동도 '가락국수'를 표준어로 보고 있다. 우동 대신 우리말을 쓰고 싶다면 물론 가락국수가 가장 적당하지만, 실제로는 두 음식 사이에는 차이가 꽤 많은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메뉴를 보면 '가락국수'라고 쓰는 곳은 거의 없고 '우동'이란 말을 주로 쓴다.
우동과 가락국수의 차이점
일본의 우동이 저렴한 것에서부터 고급화된 것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펼쳐져 있다면 한국의 가락국수는 저렴하게 한 끼 때우는 분식 정도에 머물러 있다.
가장 큰 차이는 국물. 사실 일본의 우동은 국물보다는 면을 중심으로 한다. 밀가루와 소금, 물로 반죽해서 굵게 뽑은 면을 우동이라고 하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가쓰오부시 국물에 말아내는 게 가장 널리 먹는 방법이지만 뜨거운 물에 담은 면을 건져서 츠유에 찍어 먹는 가마아게우동이나 진한 국물을 부어서 자작하게 먹는 붓카케우동, 카레우동, 야키우동과 같이 수많은 유형으로 활용된다. 하지만 가락국수는 우동면에 멸치와 다시마, 진간장, 설탕을 주 재료로 만든 국물이 주종으로, 거의 이 이미지로 굳어져 있다.
가쓰오부시 국물에 말아낸 우동을 가지고 일본 우동과 한국 가락국수를 비교해 보면, 가락국수는 멸치국물을 기본으로 한다. 일단 우리나라에서 가다랭이가 별로 나지 않으니 가쓰오부시가 생산되지 않는 게 가장 큰 이유. 맛있게 하는 집들 중에는 멸치와 디포리, 즉 밴댕이 말린 것을 섞어서 국물을 내는 집도 많다. 또한 일본의 우동 국물은 간장을 옅게 타서 색깔이 말갛고 연한 갈색을 띠는 반면[1], 가락국수 국물은 색깔이 짙고 일본 우동 국물보다는 달달한 느낌을 가지고 있다. 한국식 가락국수, 또는 한국화된 우동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제대로 된 일본 스타일의 우동을 먹으면 오히려 적응을 못하고 맛없다고 투덜거린다.
보통 고명으로는 유부, 어묵, 쑥갓과 같은 것들이 올라간다. 기본으로 주문하면 채썬 파 정도나 달랑 얹어주고 마는 일본의 우동에 비하면 기본적으로 고명이 푸짐한 편. 대신 일본의 우동가게는 메뉴에 여러 가지 고명을 올린 다양한 우동을 표시하고 있는 반면 한국의 가락국수는 가짓수가 적다. 고춧가루를 뿌려서 맵게 먹는 사람들도 많다. 특히 포장마차에서 파는 가락국수는 아예 고춧가루를 뿌려서 나오는 데가 많다. 여기에 꼬치어묵을 넣어주는 꼬치우동이라든가, 새우튀김을 넣어주는 새우튀김우동과 같은 것들이 주로 볼 수 있는 가락국수.
멸치국수와도 비슷한 점이 있지만 우동에 비하면 차이가 크다. 일단 가락국수는 두툼한 우동을, 멸치국수는 얇은 소면을 쓴다. 둘 다 멸치국물을 쓰지만 가락국수는 진간장으로 간을 하기 때문에 색깔이 좀 더 짙은 편이다. 멸치국수는 소금과 국간장 약간으로 간을 하는 게 보통이라서 국물 색깔이 아주 옅다. 가락국수 쪽은 설탕을 조금 넣어서 약간의 단맛을 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철도와 가락국수
80년대까지는 기차역 플랫폼의 인기 매뉴 가운데 하나였다.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열차 운영이나 신호 체계가 컴퓨터 시스템을 중심으로 정교하게 돌아가지 못했고, 더군다나 경부선 정도를 빼고는 심지어 호남선마저도 1980년대 중반까지는 상하행이 한 선로를 공유하는 단선이었기 때문에 열차 교행, 즉 맞은편에서 오는 열차가 역에 들어오기를 기다려야 하는 문제도 있었다. 대전역, 익산역과 같은 분기역에서는 10분, 많게는 20분 이상씩 정차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열차 타고 가는 시간도 길어서 중간에 출출할 때 먹는 가락국수는 그야말로 꿀맛.
그 시절에는 열차가 정차하면 손님들이 후다닥 뛰어내려서 플랫폼에 있는 가락국수집에서 한 그릇 사먹고 또 후다닥 열차를 타는 풍경이 벌어졌다. 그 때는 후다닥 먹는 가락국수가 그렇게도 별미였으나 나중에 여유 있을 때, 예를 들면 대전역에서 열차를 기다리면서 먹을 때에는 이게 뭐야, 싶을 정도로 맛이 없다. 제대로 하려면 주문을 받을 때 냉동면을 뜨거운 물에 담가서 풀어 줘야 면이 쫄깃하고 탄력이 있지만 하지만 한꺼번에 몰려드는 손님을 받으려면 그게 될 리가 없다. 미리 해동을 풀어 놔서 팅팅 불은 면발을 그릇에 주욱 담아 놨다가 국물만 부어서 내주는 식이니 맛이 꽝일 수밖에 없다. 물론 국물 역시도 썩 성의 없는 그냥 멸치육수에 간장 푼 수준이고, 좁은 곳에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니 단무지를 따로 내준다든가 할 여유도 없어서 단무지를 그냥 가락국수에 얹어 주니 따끈한 단무지를 먹게 된다.
요즈음은 복선화도 많이 진전되었고 신호 체계도 많이 발전되었기 때문에 열차가 역에 그렇게 오래 정차하지 않는다. 1~2분으로는 내려서 뭘 먹기는커녕 매점에서 잠깐 뭘 사기도 애매한 시간이다. 역사 및 플랫폼에서 파는 음식도 많이 다양화되었기 때문에 플랫폼에서 가락국수 파는 곳도 많이 줄었다. 대신 가락국수 파는 곳의 품질은 전보다 나아졌고. 심지어 우리밀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나이든 분들 중에는 열차 정차 시간에 후다닥 내려서 플랫폼에서 후루룩 먹던 그 가락국수를 아쉬워 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분들에게는 맛보다는 추억이나 향수가 더 클 것이다.
냄비에 담아서 살짝 끓여낸 가락국수를 냄비우동이라는 이름으로 판다. 동대구역 냄비우동이 유명하다. 지금이야 대구도 맛집이 많아졌고 전국구로 진출한 가게들도 꽤 있어서 미식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지만 20세기 때만 해도 대구 사람들조차 '대구 최고의 별미는 동대구역 냄비우동'이라고 자폭 농담을 할 정도로 대구 음식에 대한 이미지는 별로였다. 지금은 대구가 전국구급 미식 도시로 탈바꿈했고 이거 말고도 지금은 많이 세가 죽었지만 한때 잘나가면서 유사 상표도 여럿 있었던 가락국수 체인점인 장우동도 대구에서 시작했다.
고속도로 및 국도 휴게소 가락국수(우동)도 꽤 인기 음식 중 하나다. 무엇보다도 빨리 나오고, 빨리 먹을 수 있기 때문. 그럭저럭 실패 가능성이 적은 음식이기도 하다. 다만 영 아닌 데를 가면 국물보다는 면이 불어 터진 꼬라지인 게 문제. 휴게소 음식이 다양화와 고급화의 테크 트리를 타면서 과거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휴게소에 가면 필수 음식처럼 자리 잡고 있고 먹는 사람들도 많다.
참고로 이런 역 플랫폼의 가락국수 문화는 일본에서 온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이제 역 플랫폼 우동 가게를 보기가 힘들어졌지만 일본은 지금도 손님 많은 역의 플랫폼에 우동과 소바를 파는 가게가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으며, 그 중에는 명물급 대접을 받는 것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큐슈의 코쿠라역이나 토스역 같은 곳에서 볼 수 있는 카시와 우동. 우리나라에 철도망이 본격 깔린 게 일제강점기였고, 장시간 열차 여행 때 허기를 달래기 위한 도시락이나 플랫폼 우동가게 같은 것도 함께 들어왔을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
그밖에
경상남도 통영에 가면 '우짜면'이라는 게 있다. 우동 + 짜장면이라는 뜻인데, 우동, 정확히는 가락국수에 짜장을 한 국자 얹어서 내는 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