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네페리뇽
로마네콩티 + 돔페리뇽. 부르고뉴 피노 누와 와인 중 가장 비싼, 그리고 전 세계 와인 중 가장 비싼 놈 중 하나인 로마네콩티에 프리미엄 샴페인의 대표격인 돔페리뇽을 섞어서 마신다. 그런데 둘 사이의 가격 차이는 로마네콩티 >>>>>>>>>>> 돔페리뇽이다. 로마네콩티는 우리나라라면 못 해도 400만원으로 시작해서 정맓 좋은 빈티지라면 한 병에 1천만 원이 넘어갈 수도 있다. 반면 돔페리뇽은 20~30만 원 정도에 구할 수 있다. 좀 더 비싼 돔페리뇽 로제를 쓰면 40~50만원 선. 이보다 비싼 샴페인은 널리고 널렸다.[1] 어쨌거나 이건 소매 가격이고 유흥업소에서 마셨다고 한다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일본어로는 로마콩노핑동와리(ロマコンのピンドン割り)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로마네페리뇽'이라는 말로 언론을 통해 소개되었다. '로마콩(ロマコン)'은 로마네콩티를 줄인 말이고 '핑동(ピンドン)'은 '핑크 돔페리뇽', 즉 돔페리뇽 로제를 뜻한다. '와리(割り)'는 어떤 술을 다른 음료에 희석시키는 것을 뜻하니까[2] 로마네콩티를 돔페리뇽 로제에 타서 마신다는 뜻이다.
일본 거품경제의 상징 가운데 하나다. 80년대에 거품경제가 절정에 달했을 때 갑자기 돈이 많아진 벼락부자들이 우리나라의 룸살롱 혹은 착석바와 비슷한 일본의 캬바쿠라, 특히 도쿄의 긴자나 오사카의 키타신치와 같은 고급 환락가에서 로마네페리뇽 마시는 게 유행이었다고 한다. 절정기에는 심지어 중산층 직장인들조차도 캬바쿠라에서 처마실 만큼 돈이 많았다고 할 정도로 당시의 거품경제는 상상을 초월했다. 당시 일본의 중소기업 사장 대여섯 명이 어울려서 이렇게 마시면 하룻밤에 300만 엔 정도가 나왔다고 하니 말 다했다.[3] 물론 거품이 터지고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이라는 혹독한 침체의 나날을 보냈다.
우리나라도 돈 있는 사람들이 돈지랄 차원에서 발렌타인 30년 같은 비싼 위스키로 폭탄주를 만들어 마시는 일들이 있다. 문제는 맥주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안 쓴다는 거... 찾아 보면 맥주도 어이없이 비싼 것들이 있지만 대체로 이런 거 하는 사람들이 맥주에 대해 깊이 있게 알 리는 없으므로 위스키는 값비싼 거 쓰면서 맥주는 그냥 카스에 타 마신다. 내가 말오줌이랑 섞이려고 30년 동안 오크통 속에 갇혀 있었는지 자괴감 들고 괴로워. 그러나 발렌타인 30년이 비싼 위스키이긴 하지만 로마네콩티에 비하면 반의 반도 안 되는 가격이므로 돈지랄에는 한참 모자란다. 그보다는 강남 클럽의 아르망 드 브리냑 돈지랄이 훨씬 세다.
그러면 맛은?
그냥 이건 돈지랄에 불과하다. 정말 로마네콩티로서는 엄청난 모욕이다. 피노 누와는 크고 아름다운 보울의 와인잔에 조금 담아서 은은하면서도 육감적인 향기를 느끼면서 천천히 마시는 게 진리다. 로마네콩티처럼 초초초특급 와인이라면 딱 한 잔 가지고 반나절쯤 천천히 변화를 음미해 가는 것만으로도 황송할 따름일 텐데 여기다가 스파클링 와인을 섞는다? 일단 좁고 긴 샴페인 잔을 써야 할 것이고[4], 온도도 로마네콩티에게는 차가울 것이다. 특유의 우아한 향수 같은 부르고뉴 피노 누와의 극한에 샴페인 특유의 곡물, 견과류 향이 뒤섞인다면? 제대로 뭘 음미하고 느끼는 게 아니라 그냥 룸살롱 언니들한테 돈지랄 하면서 맥주 마시듯 쭉쭉 마셨을 거다.
그런데 샴페인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블랑 드 블랑이 아닌 한은 샴페인에도 피노 누와가 들어가고, 돔페리뇽에도 피노 누와가 들어가니까 둘이 아주 관계가 없지는 않다. 약간만 넣는다면 로제 샴페인 비스무리하게 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