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쇼가
べにしょうが(紅生姜)。
말 그대로 풀어보면 분홍 생강이다. 보통 분홍색으로 물을 들이기 때문인데, 생강을 얇게 저며서 식초와 설탕, 소금을 섞은 액애 절인 것. 스시집에 가면 물들이지 않은 생강 그대로의 색으로 된 절임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우리는 이것도 그냥 베니쇼가라고 부르지만 일본에서는 가리(がり)라고 구분해서 부른다.
먼저 생강을 소금에 절이거나 볕에 말려서 수분을 뺀 다음 절임액에 담가서 절인다. 원래는 우메보시를 만들고 남은 액에 설탕을 녹인 후 생강을 절이는 게 정통 방법. 특유의 분홍색은 우메보시를 담갔던 액에서 나온 것이다. 물론 요즘 나오는 공장식 대량생산 베니쇼가는 이렇게 하지 않고 설탕과 식초, 소금을 주 재료로 한 액에 절인 다음 식용색소로 색깔을 낸다. 요즘은 우메보시도 식용색소 쓴다. 가리는 여기서 색소가 빠진 것이라고 보면 된다.
아마도 스시에 곁들여 나오는 것으로 가장 많이 접해 보았을 것이다. 한국의 스시집에서는 보통 락교와 함께 나오지만 일본에서는 베니쇼가, 혹은 가리만 나오는 곳도 많으며, 우리나라의 스시집도 요즈음은 대부분 가리를 쓴다. 베니쇼가를 쓰는 곳도 물을 약하게 들인 것을 쓰는 곳이 많다. 전통 방식으로 만든 베니쇼가가 아닌 바에야 베니쇼가와 가리 사이의 차이는 색깔이고, 베니쇼가를 예전처럼 우메보시 만들고 남은 액으로 만드는 경우도 드물어져서 맛은 비슷하다. 입 안의 잡스러운 맛을 없애주고 시원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어서 스시를 먹기 전에 하나 먹어서 입 안을 정리해 주면 스시 맛을 잘 느낄 수 있다. 채썰어서 고명으로도 쓴다. 일본에 가면 덮밥 위에 채썬 베니쇼가가 올라오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절임 반찬 정도 취급을 받는 녀석이지만 오사카 사람들은 굉장히 좋아해서 요리 재료로 종종 쓰인다. 오사카의 꼬치튀김인 쿠시카츠집들 중에는 베니쇼가도 튀겨서 파는 곳도 많다. 뭔가 괴식 같은 느낌이지만 먹어보면 의외로 맛이 괜찮다. 하긴 악어고기나 캥거루고기까지 별별 재료를 튀겨 파는 곳도 있으니 베니쇼가는 아주 희한한 것도 아니다. 그래도 악어나 캥거루는 고기잖아. 또한 오코노미야키에도 잘게 썬 베니쇼가를 반죽에 넣고 섞는다. 반죽에 베니쇼가가 들어가야 진짜 오사카식이라고 주장하는 오사카 사람들도 많다. 히로시마식 오코노미야키는 채썬 베니쇼가를 반죽에 섞지 않고 고명으로 위에 얹어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야키소바에도 고명으로 잘게 썰거나 채썬 베니쇼가를 올린다. 타코야키에도 반죽에 넣거나 고명에 올리기도 한다. 붉은 색이 나름대로 모양을 예쁘게 만들어주는 효과도 있고, 기름진 음식과 같이 먹으면 입 안을 산뜻하게 잡아주는 효과도 있고 해서, 오사카 쪽에서는 일본의 다른 어떤 지역보다도 특히 다양하게 애용되는 모양새다.
큐슈 지역의 돈코츠라멘집에 가 보면 채썬 베니쇼가를 고명으로 올려주거나 아예 테이블에 놓아두는 곳이 많은데, 반찬이 아니라 라멘에 넣어 먹는 용도다. 돈코츠라멘에 넣으면 너무 짠맛이나 돼지 누린내를 누그러뜨리는 효과가 좀 있다. 관광객들이 많이 가는 곳은 누린내를 잡아서 깔끔한 국물을 뽑아내지만 현지인들이 즐겨 가는 곳은 간도 더욱 짜고 누린내가 만만찮은데, 이런 곳에 가 보면 손님들이 베니쇼가를 국물에 넣어 먹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더욱 누린내 작살인 오리지널 나가하마라멘은 먹기 전에 베니쇼가를 듬뿍 넣는 게 아예 기본이다시피 할 정도다. 안 그래도 국물도 엄청 짠데 베니쇼가까지 넣으면 더더욱 짜다. 현지 사람들은 대부분은 국물은 안 먹고 면만 건져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