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술
말 그대로 낮에 술 마시는 것.
술이란 하루 일과를 마치고 밤에 마시는 것이라는 게 보통의 생각이다 보니 낮술이라는 말을 따로 쓴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인류 역사를 죽 펼쳐놓고 볼 때 낮술 문화가 밤문화보다는 훨씬 오래 됐다. 옛날에는 밤에 지금처럼 휘황찬란하게 전등을 켤 수도 없었고 기껏해야 안에서는 호롱불, 바깥에서는 모닥불 피우는 정도였을 텐데 그게 전등과 비교하면 엄청 침침한데다 그나마 서민들한테는 불 켜느라 쓰는 기름조차도 사치다. 해 떨어지면 빨리 자는 게 상책. 그런 시대에 술을 밤에 마시는 사람이 오히려 적었을 것이다. 밤에 술 마실 수 있는 사람들은 존나 부르주아. 많은 사람들이 농업에 종사했고 들일 하다가 밥과 함께 막걸리 한 사발 들이키는 게 삶의 낙이었을 것이다.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전등이 생기기 전에는 서민들은 대체로 그랬을 것이다.
고된 일을 하는 사람들, 특히 막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낮에 은근히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술의 힘을 빌려서 살짝 취한 상태가 되면 기분도 좋아지고, 힘들고 짜증나는 기분이나 몸 상태도 좀 잊을 수 있기 때문인데, 사실 고된 일은 그만큼 육체적인 힘도 많이 필요하고 위험성도 있기 때문에 좋을 리가 없다. 그래도 '정서'라는 관점에서 보면 막기는 힘들 듯.
우리나라도 점심에 반주를 즐기는 모습은 자주 볼 수 있지만 서양도 낮술은 굉장히 낯익은 풍경이다. 점심시간에 펍에 가 보면 술 마시는 사람들 많다. 물론 펍이라는 곳이 단지 술집이 아니라 식사도 해결하는 곳이기 때문이지만 맥주나 와인 한 잔 걸쳐가면서 점심 먹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반주 개념은 서양이 더 강할 지도. 여기는 국물 문화가 없으니 국물을 대신하는 게 와인이나 맥주인 셈이다. 걔들은 증류주인 소주를 반주라고 마시는 한국 사람들이 이해될 리 없다. 위스키가 반주라고? 오히려 서양권에는 밤에 떡이 되도록 퍼마시기보다는 점심이나 저녁 때 식사와 함께 기분 좋게 걸치는 정도의 음주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맥주 천국 독일은 심지어 아침부터 마신다! 뮌헨 쪽 사람들은 주말이면 소시지에 맥주로 아침식사를 한다고.
뭐니뭐니해도 낮술의 천국은 국제선 비행기. 물론 저가항공사는 제외. 보통은 주류가 공짜로 제공되는 데다가 기내에서 딱히 할 일도 없으니 시간 가리지 않고 술 마시기에는 딱 좋은 공간이다. 특히나 동서 방향 장거리라면 시간대가 계속 바뀌므로 뭐가 낮이고 뭐가 밤인지 감각이 사라져버린다. 아침 비행기를 타고 기내식과 함께 맥주나 와인을 곁들이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리고 항공권도 존나 비싼데 본전 봅아야 할 거 아냐.
'낮술에 취하면 애비에미도 몰라본다.'는 말이 있다. 이 말 만든 사람도 분명 낮술에 취했을 것이다. 부모 보고 애비 에미라니. 낮보다는 밤에 신진대사가 왕성해서 낮술이 더 빨리 취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간에서 알코올을 분해하는 속도는 신진대사 속도와는 관계 없다고 한다. 곁들여 먹는 음식, 그리고 몸 속 수분의 양이다. 깡술만 마실수록 빨리 취하고, 몸속에 수분이 적으면 알코올 흡수가 빨라지니 낮이나 밤이나 술 마실 때에는 물을 충분히 마셔야 한다. 다만 밤에 술을 마시면 보통은 자기 때문에 그 사이에 어느 정도 알코올이 분해되는데, 낮에 술을 마시면 보통은 깨어 있어야 하므로 알코올이 분해되고 술이 점점 깨어나는 동안의 드러운 기분을 감내해야 한다.
직업의 특수성 때문에 낮술... 이라기보는 아침술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새벽까지 영업하는 가게가 많은 유흥가 일대에는 아침 나절에 술 마시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주로 가게에서 새벽까지 일한 종업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