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차
차의 일종. 아시아 쪽에서는 우려난 차의 색깔이 선홍색이라서 홍차(紅茶)라고 부르지만 서양에서는 차잎 색깔이 검기 때문에 black tea(흑차)라고 부른다.
사실 홍차도 녹차와 같은 차나무 잎이다. 효소의 산화 작용으로 색깔이 검게 변한 것이다. 흔히 발효라고 얘기하지만 잘못된 말로, 발효는 미생물의 작용으로 이루어지는 변화고, 홍차의 변화는 미생물이 아니라 찻잎에 있던 효소가 작용하는 화학적 반응이므로 엄연히 다르다. 하지만 이미 '발효'라는 말이 오랫동안 쓰여 오다 보니 지금도 그대로 쓰이고 있는 게 현실이다.
녹차, 우롱차, 백차, 청차, 황차, 홍차, 보이차 모두가 같은 차나무 잎이다. 좀 더 파고 들어가면 품종 차이가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같은 패밀리. 차를 비벼서 짓이기면 찻잎 안에 들어 있던 효소가 활성화되면서 산화가 이루어지고, 색깔이 점점 어둡게 변한다. 어느 시점에 차를 덖어서 효소 작용을 중단시키느냐가 차의 종류를 결정하는데 중요하다. 홍차는 끝까지 산화시킨다. 갈 데까지 가 보는 거다. 다만 보이차 같은 흑차 계열은 미생물의 발효작용을 필요로 한다.
대부분의 다른 차는 중국이 압도적인 강세를 보이고 있지만 홍차만큼은 얘기가 좀 다르다. 물론 기문이나 정산소종 같은 유명한 중국 홍차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생산량은 인도와 스리랑카를 중심으로 한 동남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이쪽이 영국 식민지였고 홍차에 적합한 대엽종이 잘 크는 기후 조건이기도 했기 때문. 중국이 다른 차에 비해서는 홍차를 많이 마시지 않기 때문이기도 한데, 개혁 개방 이후로 서양 문화가 바람을 탄 이후로는 서양의 홍차 문화가 역수입되는 모습도 보이고 있어서, 중국 내 홍차 소비도 늘어나고 있다.
녹차는 어린잎을 따서 쓰는 것과 반대로, 홍차는 큼직큼직한 잎을 쓴다. 품종 자체부터가 잎이 큰 대엽종을 쓰는 데다가 어린 잎이 아니라 키울만큼 키워서 쓴다. 녹차가 건강에 좋은 이유로 꼽는 항산화물질인 카데킨은 산화가 진행되면 점점 줄어든다. 그러니 녹차가 카데킨이 가장 많을 텐데, 반대로 잎이 작고 어릴수록 카데킨 양이 적다. 즉, 산화를 통해서 카데킨 양이 많이 줄기는 했어도 원래 가지고 있는 양이 많아서 홍차에도 녹차 못지 않은 카데킨이 들어 있다.
유럽에 홍차가 건너간 것은 17세기다. 일기 작가로 유명했던 새뮤얼 피프스가 1660년에 쓴 일기를 보면 "지금까지 한 번도 마셔 본 적이 없는 tea (중국의 음료) 한 잔을 가져다 달라고 했다."라는 글귀가 있다. 이 양반은 아침부터 밤까지 줄창나게 차를 마셔댔다. 그래서 카페인 때문에 잠을 못 자다 보니 일기만 열나게 쓴 거다. 영어 tea는 중국 남동부 쪽의 방언 '테'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고 있는데. 구어로는 '차'도 쓰인다. 하긴 요즘은 어딜가나 중국인 천지라서 '차'라는 말도 익숙할 거다.
홍차가 많이 소비되는 지역도 아시아보다는 유럽, 특히 영국이다. 영국인들은 일단 커피보다는 홍차다. 아프터눈 티와 같은 고급진 차문화도 있지만 서민들부터 귀족까지 남들이 커피 마시듯 홍차를 마셔댄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차의 인기가 점점 줄어들고 커피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는 기사들이 나오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홍차가 대세이긴 하지만.
아시아에서는 '차'라고 하면 기본이 녹차지만 서양에서 녹차는 green tea라고 '녹색'을 붙여줘야 한다. 영어권에서 그냥 tea라고 하면 보통은 홍차다.
카페에 가면 왠지 손해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커피는 그 자리에서 갈아서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내려 주는데, 홍차는 그냥 뜨거운 물에 티백 풍덩 담그고 끝. 그러면서도 카페 아메리카노보다 홍차가 더 비싼 곳이 많다.
종류
홍차의 종류를 나누는 방법이야 천차만별이다. 산지를 기준으로 나누는 방법도 있고, 차의 색깔이나 풍미를 기준으로 나누는 방법도 있고, 그냥 찻잎만 썼느냐 아니면 다른 향이나 재료를 첨가했느냐(가향차)로 나누는 방법이 있다. 여러 가지 산지의 찻잎을 섞는 블렌디드도 있다.
다음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홍차 이름들이다. 물론 깊게 파고 들어가면 산지나 찻잎의 종류, 발효 정도, 가공 방법에 따라서 어마어마한 리스트가 나온다
단일 산지
블렌디드
가향차
우려내기
물을 끓인 다음 약 80도 정도로 식혀서 우려내는 녹차와는 달리, 홍차는 펄펄 끓는 물을 그대로 붓는다. 이것도 모자라서 미리 뜨거운 물을 부어서 다기를 예열시키는가 하면 천으로 만든 두툼한 덮개인 코지로 주전자를 덮어서 열 손실을 막기까지 한다. 물이 센 편인 유럽은 3~4분 정도 걸리고, 그보다 단물에 속하는 우리나라는 2~3분 정도면 충분하다. 타이밍을 놓치면 탄닌이 왕창 배어나와서 떫어져 버리므로 주의. 이것도 취향에 따라서 다른데 떫은 맛이라면 아주 질색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살짝 떫은 느낌이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조건을 최대한 똑같이 맞춰서 자신에게 맞는 우려내는 타이밍을 찾아야 한다.
우려낸 다음에는 찻물만 따라내면 되는데, 티백이나 찻잎을 짜는 만행은 저지르지 말자. 역시 탄닌이 왕창 빠져나올 수 있다. 물론 평소에 떫었던 인간한테 타 주는 거라면 뭐...
하지만 중국 홍차는 우려내는 방법이 좀 다른데, 정산소종이나 금준미 같은 중국 홍차들은 녹차처럼 80도 정도의 물로 우려내고 중국 녹차를 마시듯 여러 차례에 걸쳐서 재탕해서 마시는 것을 정석으로 여긴다.
홍차 마시는 방법
일단 홍차 하면 생각나는 나라, 영국은 그냥 마시기도 하고, 우유를 조금 넣어서 밀크티로 마시기도 한다. 잔에 우유를 먼저 넣고 홍차를 붓는 게 맞느냐, 홍차 먼저 붓고 우유를 넣는 게 맞느냐 하는 문제는 영국인들 사이에서 오랜 병림픽 논쟁거리였다. 과학적으로 보면 우유를 먼저 넣는게 맞다고 한다. 심지어 영국의 왕립화학회에서 정식 연구를 통해서 2003년에 발표한 내용이다. 영국인들의 세금으로 이런 짓이나 하고 있으니 분노할지어다. 영국인들아... 누구?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뜨거운 차를 먼저 붓고 우유를 부으면 우유가 빠르게 분산되어 차의 온도가 내려가기 전에 우유의 단백질이 더 많은 열을 받으며, 그에 따라 더 많이 변성된다는 게 이유다.[2] 어째 한국의 탕수육 부먹 vs 찍먹이나 라면 끓일 때 스프를 먼저 넣냐 면을 먼저 넣냐 하는 논쟁을 생각나게 하는 이런 식의 논쟁은 은근히 이 나라 저 나라에 많다. 일본이라면 낫토를 먹을 때 먼저 휘젓고 간장을 넣을 거냐, 간장을 먼저 넣고 휘저을 거냐 하는 논쟁도 있고...
러시아에서는 잼과 함께 먹는다. 전통적인 방법은 잼을 한 숟갈 퍼서 입에 넣고 홍차를 마시는 것이고, 홍차에 잼을 넣어서 마시기도 한다. 그밖에도 러시아 정부의 특산품으로 워낙에 귀해서 러시아 정부가 선택한 VIP만 마실 수 있는, 폴로늄 210을 넣은 홍차가 있다.
인도에서는 여러 가지 향신료를 넣어서 차이로 마신다. 이게 나름대로 떠서 제대로 된 상품으로 전 세계에 팔린다. 스타벅스에 가도 차이 또는 차이 라떼가 있다.
영국 문화라면 요리 빼고는[3] 환장하는 일본에서도 나름대로의 홍차 문화가 발전했다. 진하면서도 달게 만드는 로얄 밀크티가 바로 일본이 낳은 홍차 레서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