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기름
보리 또는 밀의 싹을 틔운 다음 말리고 찧은 것. 쉽게 말해서 맥아 혹은 몰트다.
서양에서는 맥주를 만들 때 엿기름을 널리 써 왔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술에는 잘 안 썼다. 대신 식혜나 엿을 만드는 기본 재료르 널리 써 왔다. 설탕은 고려시대에 한국으로 건너왔지만 멀리 열대지방에서 온 수입품이니 어마어마하게 비싸서 왕 혹은 고관대작들이나 맛볼 수 있었고, 우리나라에서 생산할 수 있었던 꿀도 벌을 치고 꿀을 따야 하는 과정에 복잡하고 위험성도 있는 데다가 그에 비하면 생산량도 적으니 부자들이나 먹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나마 백성들에게 단맛을 안겨준 건 엿이나 물엿이었다. 그러나 보릿고개란 말처럼 보리조차도 없어서 굶어죽는 사람들이 속출했던 게 옛날 형편이라 상당한 양의 쌀을 필요로 하는 엿기름이나 엿도 백성들에게는 꽤나 사치였을 것이다. 할아버지가 혼자서만 조청을 단지에 담아두고 먹으면서 손자들에게 먹으면 죽는 독약이라고 했던 게 할아버지가 치사빤쓰여서 그런 게 아니다. 대가족 시대에 손자한테 조청 한 입씩만 돌아가도 남아나는 게 있을 리가 없다.
식혜와 자주 헷갈리는 식해를 만들 때에도 쌀이나 좁쌀과 함께 엿기름이 쓰인다. 당화효소 때문에 해산물의 조직을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효과가 있다. 고추장을 담을 때에도 찹쌀가루와 엿기름을 사용해서 특유의 단맛을 낸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건 겉보리 80%에 밀 20%으로 만든 것이 대부분이다. 대부분 수입산 재료인 건 말할 것도 없다. 보리로만 만든 건 좀 비싸고 국내산 보리로 만든 건 당연히 더더욱 비싸다.
아밀라아제와 같은 당화효소가 풍부하게 들어 있어서 옛날에는 가정에서 소화제로도 널리 쓰였다. 옛기름에 소금을 넣어서 볶은 다음에 보관하다가 배탈이 났을 때 때 한 숟가락 먹었다. 어욱 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