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스크 에일
양조 후에 아무런 조작도 하지 않고 그냥 술집에 공급되는 에일. 캐스크란 양조 및 숙성에 쓰는 큰 술통을 뜻하는데, 곧 캐스크째 그대로 공급되는 에일 맥주를 뜻한다. 옛날에야 맥주가 이런 식으로 유통되었지만 케그 방식이 일반화된 지금 캐스크 에일은 거의 영국 한정이고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힘들다.
살균은커녕 필터링도 하지 않고, 심지어 탄산가스도 안 넣는다. 탄산이야 술집에서 넣으면 되지 않냐고? 아니다. 맥주에 탄산가스가 없다니! 경악할 일이지만 영국에서는 이게 당연하다. 술을 따를 때도 사람의 힘으로 펌프질을 해서 퍼올려야 한다. 거품도 별로 없고 온도도 차가움과는 거리가 멀고 그냥 서늘한 정도에서 제공된다. 우리가 아는 맥주의 상식을 정말 산산이 박살내는 맥주. 물론 영국이라면 이게 상식. 탄산가스가 없는 편이 속도 덜 더부룩하고 편안하다고 말하는 영국인들도 종종 볼 수 있다. 탄산 들어간 영국 에일이 없는 건 아니지만 영국 펍에 가면 에일의 절대 다수가 캐스크 에일이다.
20세기 초부터 라거가 급속도로 맥주 시장을 장악하면서 에일이 라거에 밀리고 대기업 중심으로 에일도 탄산가스를 넣고 차게 마시는 쪽으로 대세가 기우는 통에 캐스크 에일은 자취를 감추었다. 심지어 영국에서도 이 설 땅을 잃어갔는데, 시민운동으로 캠페인 포 리얼 에일이 조직화 되면서 캐스크 에일이 살아났다. 이제는 다시 영국 펍의 주류 자리를 되찾은 상태. 그러나 이런 부활 스토리도 어디까지나 영국에 국한된 야기고 전국 각지의 마이크로브루어리에서 만드는 에일 맥주가 펍에 널려 있는 호주도 캐스크 에일은 찾아보기 힘들다. 영국 펍에서는 캐스크 에일로 팔리는 런던프라이드 같은 녀석들도 외국으로 나갈 때에는 탄산가스를 주입한 케그에 담긴다. 아무래도 시간이 걸리니까 살균도 필터링도 없어서 오래 못 가는 캐스크 에일 상태로 수출하기는 힘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