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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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불에 구워 익힌 것.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조리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름이나 끓는 물 같은 재료가 반드시 필요한 것도 아니고 그냥 꼬챙이에 꿰어 불 위에 놓기만 해도 구울 수 있고 군고구마처럼 불 아래 모래에 파묻어만 놓아도 되니 가장 원시적인 도구로도, 혹은 그조차 없을 때에도 가능한 조리법인지라 인류가 불을 다루는 법을 터득하면서 가장 먼저 깨달은 방법이 구이였을 것은 당연한 이야기. 이후 인류 기술의 발전으로 다양한 형태의 구이들이 등장했다. 석쇠나 프라이팬, 그릴 같은 조리도구를 사용하는 방법이 등장했고, 숯불이나 가스불을 비롯해서 불의 종류도 다양하게 발전해 나가면서 이들의 특성을 살리는 구이도 발달해 나갔다. 특히 숯불구이는 숯불 특유의 연기향과 강한 열로 구이 요리를 정말 다양하게 발전시키는데 공헌했다. 더 나아가 불가마나 오븐처럼 전체적으로 고른 열을 사용해서 굽는 방법도 발달했다.

불에 구움으로써 소화의 부담을 더는 것은 물론 살균 효과로 음식과 관련한 각종 질병을 줄일 수 있게 되었다. 카라멜화마이야르 반응에 따라 맛이 좋아지는 건 덤. 또한 불이 직접 닿으면서 내는 불맛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대신 열에 약한 영양소들이 파괴되는 문제가 있다. 대표적인 게 비타민 C.

고기, 채소과일, 곡물, 해산물을 비롯해서 어떤 재료든 구이로 먹을 수 있다. 구이하면 가장 인기가 많은 건 고기구이생선구이지만 곡물도 옥수수처럼 구워먹는 방법으로 발달한 것들이 있고 콘플레이크는 미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사랑 받는 아침식사용 옥수수 구이다. 뻥튀기도 알고 보면 구이의 일종이다. 과일도 바나나처럼 동남아시아에서 아주 인기 있는 구이가 있다. 사과도 구워서 디저트로 먹는 방법이 발달해 있고.

이나 과자오븐에 구워서 만드는 방법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피자 역시 오븐에 구워 만드는 음식으로 아래에 밀가루 도우가 있으므로 굳이 우기자면 의 일종이라고 할 수도 있다. 물론 이런 것들을 구워 만든다고는 해도 구이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

영어로는 조리법에 따라서 로스트(roast), 프라이(fry), 그릴(grill)이라고 한다. 프라이를 튀김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영어에서 fry는 튀김, 볶음, 구이를 모두 아우르는 표현으로 쓸 수 있다.[1] 예를 들어 프라이팬에서 구워낸 스테이크를 pan-fried steak라고 부른다. 다만 석쇠를 사용한 직화구이는 grill이라고 부르며, 프라이팬에서 구울 때는 고기에서 나오는 기름과 식용유 또는 버터를 써서 기름지게 굽는다. 오븐에서, 혹은 직화를 쓰더라도 시간을 두고 천천히 굽는 것은 로스트라고 한다.

종류

불을 사용하는 조리법 중에는 가장 원초적이기도 하고, 가장 간단하다고 볼 수 있지만 불이 직접 닿는 조리법이기 때문에 불 자체가 중요하다. 어떤 불을 쓰느냐에 따라서, 얼마나 불이 세느냐에 따라서 혹은 강약 조절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직화구이냐 간접이냐에 따라서, 어떤 도구를 쓰느냐에 따라서 조리법과 맛은 천차만별이다.

  • 숯불구이 : 고기를 구울 때 한국인들이 정말로 선호하는 법이다. 고기만큼 널리 퍼져 있지는 않지만 생선도 숯불구이로 할 수 있다. 일본과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권 여러 나라에서도 좋아하고, 서양에서도 'charcoal'이라고 해서 역시 스테이크를 비롯한 여러 구이 요리를 할 때 고급스러운 방법으로 생각한다. 좋은 숯을 쓰면 강하고 일정한 화력은 물론이고 숯에서 나오는 특유의 향이 배어들어 더욱 맛을 좋게 한다. 하지만 화력 조절이 쉽지 않고, 잘못 쓰면 그을음도 많이 생긴다. 당연히 직화구이여야 하고 숯불이 직접, 최소한 근접할 수 있도록 석쇠나 불판을 주로 사용한다. 숯불은 아니고 연탄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고, 가정에서는 힘들지만 음식점 중에는 연탄구이를 하는 곳도 꽤 있다. 강하고 일정한 화력, 그리고 옛날 느낌을 주는 서민 분위기까지 어우러져서 은근 인기가 있다.
  • 직화구이 : 숯불이 아닌 다른 불, 즉 가스나 장작, 연탄을 태워 나오는 불로 굽는 것. 숯불 특유의 향 차이를 뺀다면 숯불구이와 비슷하다. 물론 장작을 쓸 경우에는 그 나름대로 향이 있다.
  • 오븐구이 : 오븐의 열을 고루 퍼지게 해서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익히는 방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크게 인기가 없지만 서양에서는 이런 조리법이 널리 퍼져 있다. 로스트 비프, 로스트 치킨과 같은 음식이 이런 방식. 우리나라는 닭을 튀겨 먹거나, 삶아 먹는 게 보통이지만 서양은 로스트 치킨이 가장 인기가 있다. 그밖에 갖가지 오븐 요리를 많이 하기 때문에 서양은 오븐이 가정 주방의 필수품이다시피 하다.
  • 팬 프라이 : 프라이팬을 가열해서 구워먹는 방식. 프라이팬 말고도 철판 또는 돌판을 뜨겁게 달궈서 구울 수 있다. 계속 뒤적여가면서 빠르게 조리하는 것은 볶음이라고 구별해서 부르고, 재료를 잠시 두어서 열이 충분히 전달되게 하는 것이 팬 프라이에 속한다. 재료에 직접 불이나 연기가 닿지 않는 방식인데, 뜨겁게 달구면 불맛도 낼 수 있다. 직화구이보다는 열이 고르게 퍼지며 화력이 충분하면 불맛도 낼 수 있다. 고급 고깃집 중에도 숯불이 아니라 두꺼운 무쇠 불판을 사용해서 고기를 굽는 곳들이 있다. 숯불의 향이 고기 본연의 향미를 해칠 수도 있다는 이유로 이 방식을 고집하는 곳도 있다. 프라이팬을 아주 크게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철판구이도 있다.
  • 돌판구이 : 팬 프라이의 일종으로, 우리나라의 고깃집에서 종종 볼 수 있다. 곱돌(각섬석)을 가공해서 만든 돌판을 가열해서 그 위에 재료를 굽는 것으로 돌은 가열속도가 느리지만 일단 가열이 되면 열을 오래 품고 있기 때문에 고기구이용으로 인기가 많다. 무게가 무겁고 기름이 잘 튀는 것, 그리고 깨지기 쉬운 것이 단점이다. 주물과 함께 우리나라 고깃집 불판의 쌍벽을 이루고 있다. 곱돌로 특히 유명한 곳은 전북 장수군으로, 조선시대에 다양한 곱돌 제품들이 궁중에 납품되고[2] '장수곱돌'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예로부터 유명했다. 생각해 보면 돌판구이야말로 팬 프라이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인류가 금속을 다룰 수 있게 되기 전에는 불판으로 쓸 수 있는 게 넓적하고 평평한 돌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 꼬치구이 : 재료를 꼬치에 꿰어서 불에 굽는 것. 직화구이를 할 경우, 석쇠와 같은 도구가 없다면 재료가 홀라당 타기 쉬운데 재료를 막대기에 꿰면 불과 재료의 거리를 조절하거나 재료를 돌려가면서 골고루 굽기가 한결 쉽다. 종종 고대나 정글 생활을 묘사할 때 나오는, 장작불을 피워놓고 좌우로 Y자 모양의 나무 막대기를 땅에 꽂은 다음, 고기를 막대기에 꿰어서 좌우의 막대기 위에 걸쳐서 굽는 게 꼬치구이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각주

  1. 튀김을 정확하게 지칭할 때에는 deep fry, 볶음은 stir fry라고 한다.
  2.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왕이 후궁 처소를 찾을 때 썼던 이 물건, 아시나요”", <서울신문>, 2019년 4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