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 프라이
달걀을 프라이팬에 지져서 익힌 요리라기엔 너무 초라하지 않나.[1]
달걀로 만들 수 있는 요리로는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게 바로 달걀 프라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하다. 달걀 프라이에는 소금과 기름이 필요한데, 재료 가짓수로 따지면 물과 달걀, 소금만 있으면 되는 삶은 달걀도 비슷하게 간단한 요리겠지만 물끓이는 시간과 익히는 시간도 있고, 노른자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하려면 흰자가 어느 정도 굳을 때까지는 달걀을 굴려줘야 하니 의외로 번거롭기도 하다. 프라이팬 달구는 시간이 훨씬 빠르고 익히는 시간도 빠르니 신속성이라는 면에서는 달걀 프라이의 승리.
달걀 프라이니까 영어로는 egg fry일 것 같지만 반대로 fried egg가 되어야 한다. fry라는 말 때문에 달걀 튀김인가? 싶은 생각이 들 수 있는데, 영어에서 기름을 사용해서 지지거나. 볶거나 하는 게 다 fry다. 튀김은 정확히는 deep fry라고 한다.
종류
알고 보면 달걀 프라이도 종류가 여러 가지다. 가장 중요한 건 노른자를 어떻게 할 거냐의 문제다. 일단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모습은 서니 사이드 업(sunny side up). 프라이팬에 달걀을 깨넣은 다음 뒤집지 않고 익힌다. 노른자가 터지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동그랗게 뭉친 상태가 된 노른자 위쪽은 거의 안 익은 상태가 된다. 그 다음부터는 뒤집어서 익히기 때문에 오버(over)가 앞에 붙는다.
- 오버 라이트(over light) : 뒤집어서 굽되 노른자를 터뜨리지 않고 빠르게 끝낸다. 흰자를 익히기 위한 목적이라고 보면 된다.
- 오버 미디엄(over medium) : 뒤집어 굽고 노른자를 반숙 상태까지 익힌다.
- 오버 웰(over well) : 뒤집어 굽고 노른자를 완숙시킨다.
- 오버 하드(over hard) : 뒤집어 굽고 노른자를 터뜨린다. 집에서는 보통 서니 사이드 업이나 오버 라이트를 만들려다가 노른자를 터뜨리면 에라 모르겠다. 하고 만들게 된다.
어째 스테이크의 레어-미디엄-웰던과 비슷한 느낌이다.
반숙 프라이 예쁘게 만들기
달걀 프라이 하면 가장 쉽게 떠올리는 건 흰자 위에 노른자가 동그랗고 이쁘장하게 제 모습을 유지한 반숙 상태의 프라이다. 영어로는 sunny side up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렇게 만드는 게 의외로 힘들다. 가장 문제는 흰자. 위쪽 특히 노른자 근방이 잘 안 익는다. 다 된 줄 알고 먹으려 하면 안 익은 흰자가 콧물처럼 주욱 숟가락이나 포크에서 늘어진다. 이런 상태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날달걀도 먹는데 이 정도를 못먹으랴 싶지만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오래 익히면 위쪽 흰자도 결국 익지만 그랬다간 프라이팬과 닿는 쪽은 홀라당 타버린다. 자, 그럼 어떻게 흰자도 잘 익은 반숙을 만들까?
뚜껑 덮기
프라이팬 뚜껑, 없으면 큰 냄비뚜껑으로 프라이 위를 덮는다. 뚜껑으로 덮은 곳은 열이 빠져나가지 않으므로 공기의 온도도 확 올라가고 그 열로 위쪽의 흰자가 익는다. 이 때에는 불을 꺼버려도 충분히 잘 익는다. 태워먹을 염려가 적다는 것은 장점. 주의할 것은 너무 오래 덮으면 노른자까지 홀라당 익어버린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노른자 위쪽이 익어서 변색될 위험이 크다. 1분 이하면 충분하다.
약한 불로 오래 익히기
약한 불로 천천히 오래 익히면 아래쪽이 별로 안 타면서도 흰자도 익는다. 문제는 그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 대량으로 만들어야 하는 식당에서는 이렇게 만들기 힘들다. 그리고 아래쪽이 타지는 않더라도 너무 익어서 흰자의 단백질이 질기게 엉겨붙는다. 이러면 흰자가 잘 안 잘리거나 지저분하게 잘린다. 노른자의 아래쪽이 은근히 다 익어버린다는 것도 문제가 된다.
흰자 깨기
노른자 주휘의 흰자는 유난히 두껍고 뭉쳐 있는데 포크나 숟가락, 고무 주걱으로 톡톡 깨주면 뭉쳐 있던 흰자가 풀리면서 좀 더 잘 익는다. 기름을 많이 안 써도 되므로 집에서 만들 때는 이 방법이 좋다. 다만 사방팔방으로 죽죽 흘러나가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기름 뿌리기
기름을 흥건하게 한 프라이팬에서 익히면서 숟가락으로 뜨거운 기름을 떠서 흰자에 여러 번 끼얹어 준다. 빨리 만들 수 있으면서 아래가 많이 타지 않으므로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을 만들어야 할 때 좋다. 아침 뷔페를 제공하는 호텔에서 이런 방식을 종종 볼 수 있다. 아주 기름진 영국요리다운 달걀 프라이가 될 수 있으므로 주의.
주로 등장하는 곳
은근히 아침식사로 이걸 먹는 나라가 많다. 빠른 시간 안에 간단하게 조리할 수 있으면서도 단백질이 풍부한 달걀에 기름의 지방이 들어가니 에너지원으로도 좋고 속이 든든하다는 것이 장점. 일단 잉글리시 브렉퍼스트에는 달걀 요리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데, 프라이드, 스크램블드, 포치드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보통이다. 서양권은 말할 것도 없고, 필리핀에서도 달걀 프라이와 스팸, 그리고 볶음밥을 아침으로 많이 먹는다. 이집트에서도 널리 먹는 아침 음식 가운데 하나라고. 미국에서는 달걀 프라이와 프라이팬에 구운 햄을 곁들이는 햄 앤드 에그를 간단 요리로 많이 먹는다. 햄을 베이컨으로 바꾸면 베이컨 앤드 에그. 노른자까지 익힌 달걀 프라이를 샌드위치에 넣기도 하고, 간단히 달걀 프라이만 케첩을 뿌려 식빵 사이에 끼워 먹어도 맛나다. 햄버거에도 달걀 프라이가 들어가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름이 주는 이미지 때문에 외국에서 들어온 음식이고 옛날에는 없었을 것 같지만 <시의전서>에 기름을 두른 뜨거운 번철에 달걀을 깨어 넣고, 반숙으로 익히는 것을 건수란이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2] 하지만 주로 물에 삶는 방식인 수란을 많이 해 먹었다. 달걀 프라이를 건수란, 즉 물을 쓰지 않은 수란으로 불렀던 것만 봐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냥 반찬으로 나오는 달걀 프라이를 제외한다면 우리 주위의 한식에서 달걀 프라이가 자주 등장하는 곳은 비빔밥. 우리가 흔히 아는 비빔밥이나[3] 돌솥비빔밥은 물론이고 입맛 없고 요리하기 귀찮을 때 밥에 달걀 프라이, 간장과 참기름, 버터 혹은 마가린을 넣고 비벼버리는 간장 달걀밥까지, 달걀 프라이는 거의 감초처럼 낀다.
중국집 볶음밥에도 달걀 프라이가 자주 등장한다. 원래는 달걀을 풀어서 프라이팬에 살짝 지진 다음에 밥을 넣고 볶아서 풀어버리는 식인데, 이렇게 하고서도 달걀 프라이를 얹어주는 곳도 있다. 김치볶음밥이라면 달걀을 풀어서 볶지 않고 거의 100% 달걀 프라이.
한국식 토스트에도 달걀 프라이가 들어가는데, 노른자를 터뜨려 굳히거나 아예 달걀물을 만들어서 부치는 방식으로 만든다. 노른자가 살아 있는 상태로 토스트를 만드는 것 자체가 빵 사이에 넣을 때 터지기 쉽고, 먹을 때도 터져서 노른자가 줄줄 흘러내릴 테니 좋지는 않다.
일부 고깃집에서는 프라이팬과 가스 레인지, 식용유와 날달걀을 한켠에 마련해 놓고 손님이 원하는 만큼 달걀 프라이를 직접 부쳐 먹도록 하는 곳들도 있다.
부산 쪽의 중국집에는 간짜장에도 달걀 프라이를 얹어 주는 게 기본이다. 옛날에는 다른 지역도 짜장면이나 간짜장에 삶은 메추리알이나 달걀 반쪽을 올려주는 곳들이 많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거의 대부분 슬금슬금 사라졌는데, 부산은 여전히 최소 간짜장에는 달걀 프라이를 올려 준다. 그밖에도 부산에는 은근히 달걀 프라이 얹어주는 음식들이 이것저것 있다.
학교 급식이 보편화되기 이전에 학생들이 싸가지고 다니던 도시락에도 단골로 들어가던 게 달걀 프라이였다. 특히 양은 도시락에 밥을 담고 그 위에 달걀 프라이를 얹은 모습은 롓날 도시락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요즈음 고깃집이나 술집, 혹은 편의점에 있는 '추억의 도시락'에도 이런 모습을 재현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