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살
屠殺.
동물을 죽이고 해체해서 고기와 가죽을 비롯한 동물성 원료를 얻는 것. 주로 가축이나 생포한 동물을 죽일 때 쓰는 표현이며 야생에서 살아 움직이는 동물을 살아 있는 상태든 죽은 상태로든 잡는 건 사냥이라고 한다.[1] 요즈음은 '도축'이라는 말을 주로 쓴다. 여기서 '축'은 물론 가축을 뜻하는 말. 도살에 들어가는 살(殺)이 죽인다는 뜻을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인지 도축이라는 조금 완화된 표현을 쓰는 듯. 닭이나 오리 같은 가금류는 도살 과정에 차이가 많기 때문에 '도계'라는 용어를 주로 쓰지만 법적으로는 똑같이 '도축'을 사용한다. 도살이든 도축이든 바다생물에게는 잘 쓰이지 않고, 보통은 그냥 '잡는다'라는 표현을 쓴다.
과정
도살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도축장에서 이루어지는 도살은 대부분 다음과 같은 과정으로 진행된다.
계류
도축장에 도착한 가축을 계류장에 일정 시간 동안 두는 과정. 특히 소는 도축장에 도착하면 한나절을 계류한다. 무게를 늘리기 위해 물을 잔뜩 먹이는 꼼수를 부리다 보니 이른바 '물먹인 소'를 가려내기 위해 계류시키는 것.[2] 그 동안 소변을 통해서 수분이 빠져나가므로 몸무게 측정을 정확하게 할 수 있다. 단, 동물도축세부규정 제6조 9항에 따라 계류시간은 12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기절
먼저 동물을 기절시켜서 의식이 없도록 만든다. 의식이 있는 동물을 죽이려면 엄청난 몸부림으로 힘들기도 하고 극심한 고통 속에서 죽어가야 하므로 동물복지 차원의 문제도 있다. 즉사 시키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러면 피를 많이 빼내지 못하므로 고기의 질이 떨어진다. 널리 쓰이는 방식은 전기 충격. 순간적으로 기절시킬 수 있으므로 대량으로 빠르게 기절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널리 애용되고 있다. 다만 드물게 완전히 기절되지 않는 동물도 있으며, 이 경우 다음 단계인 방혈 과정에서 의식을 찾아서 잠시나마 엄청난 몸부림을 친다. 최근에는 동물의 고통을 더욱 줄이기 위해 이산화탄소를 호흡시켜서 가사상태에 빠뜨리는 방법도 시도되고 있다. 몸집이 작은 닭은 단번에 목을 잘라버리는 방법이 많이 쓰이고 있지만 최근에는 동물복지 선진국을 중심으로 가스 실신 방식이 점점 늘고 있는 반면 덩치가 큰 소나 돼지는 아직은 전기 충격이 많이 쓰인다.
예전에는 기절 과정 없이 동물을 꼼짝 못하게 묶어놓고 눈 사이 급소를 뾰족한 도구로 때려서 죽이는 방법을 썼다. 정확히 한 방에 급소를 때려야 하므로 상당한 기술과 숙련도가 필요했다. 물론 정확히 급소를 맞아도 죽어가는 과정은 상당한 몸부림을 치는 고통스러운 시간인데 그나마 잘못 맞으면 그야말로 그 광경은 지옥이 따로 없다. 기절을 제대로 못 시켜서 동물이 날뛰면 보기도 끔찍하고 동물권 차원에서도 문제지만 업자 쪽에서 볼 때에도 결코 좋지 않다. 그렇게 날뛰면 근육 내 출혈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져서 고기 질이 확 떨어지기 때문. 당장 등급 판정에서도 근육 내 출혈이 있으면 등외로 잡힌다. 때문에 기절 과정은 물론이고 그 전에 수송에나 도축장으로 몰고 갈 때에도 스트레스를 적게 받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슬람이나 유대교에서는 각각 할랄과 코셔라는 엄격한 규칙으로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을 구별하는 것은 물론 도축 방법까지도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둘 다 기절 절차를 생략하고 기도를 올린 후 곧바로 칼로 목을 긋도록 규정하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 교도들은 엄격한 도축법으로 잡은 고기만 먹을 수 있어서 무슬림이나 유대교도 고객층이 있는 정육점이나 음식점은 꼭 할랄 또는 코셔 여부를 표시한다. 이 때문에 동물권과 종종 충돌하는 사태가 빚어지고 있다. 그동안은 종교와 문화 존중이라는 차원에서 이러한 도축법을 인정해 왔으나 동물복지를 비롯한 동물권에 관한 여론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데다가 종교와 문화 관련 갈등도 심각해지면서 최근 들어서는 유럽을 중심으로 이러한 방식의 도축법을 금지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입법 또는 정부의 금지 명령까지 실제로 내려지고 있다. 당연히 무슬림이나 유대교도들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어서 또다른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다. 다만 요즈음은 전기충격으로 기절시켜 놓고 종교적 절차에 따라 도축하는 것도 인정하고 있는 추세다. 근본주의자들 중에는 이런 절충도 안 된다면서 무조건 동물이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잡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이런 도축이 이루어지고 있다 보니 동물권을 중시하는 나라에서는 정부의 권한이나 법까지 동원하면서 막으려고 하고, 근본주의자들은 격렬하게 저항하는 갈등이 벌어지는 것. 하여간 어딜 가나 근본주의자들이 악의 축이다.
방혈
기절한 동물을 거꾸로 매달아 놓고 목의 경동맥을 끊어서 피를 빼낸다. 동물도축세부규정에 따르면 기절하지 않은 상태에서 거꾸로 매달면 안되지만, 닭이나 오리는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도 거꾸로 매달 수 있다. 피를 최대한 빨리 많이 빼내야 고기의 질이 좋아진다. 피는 생체 안에서 가장 빨리 부패하므로 피가 많이 남아 있을수록 고기 맛이 빨리 변질되고 피비린내도 나면서 보존성도 떨어진다. 따라서 즉사 시키지 않고 기절만 시킨 상태에서 동맥을 끊어 심장이 펌프질을 하는 힘으로 피를 빼낸다. 가끔 기절이 완전히 되지 않았거나 어쩌다 보니 기절에서 깨어난 동물이 있을 수 있는데 그러면 방혈 과정에서 엄청난 몸부림을 치면서 피가 사방으로 튀고 그야말로 헬게이트가 따로 없다. 작업자가 몸부림치는 동물에 맞아 다칠 수도 있다. 피를 활용하지 않는 곳에서는 그냥 버리고, 우리나라처럼 선지도 먹는 나라에서는 따로 받아낸다.[3]
무슬림이나 유대교도들은 피를 먹지 말아야 하기 때문에 도축법에서도 피를 하여간 최대한 빼내도록 규정하고 있다. 꼭 이들 방식이 아니더라도 피는 많이 뺄수록 신선도나 비린내 면에서 좋다. 반면 몽골과 같은 지역에서는 피를 별로 안 빼고 먹는다. 몽골은 예로부터 피를 땅에 흘리는 것을 금기시했기 때문에 최대한 피를 빼지 않고 도축한다. 몽골에서 고기맛을 봤다가 피비린내에 질겁하는 사람들도 많다. 먹을 게 풍족하지 않던 시절에는 가축을 잡았을 때 먹을 수 있는 건 최대한 먹어야 했고 피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나라는 지금도 선지를 따로 받아다가 여러 음식에 재료로 사용하고 있고, 아시아권은 물론 서양에서도 피를 사용한 음식들이 있다. 물론 시대가 변하고 먹을 게 풍족해지면서는 맛을 점점 따지기 때문에 도축 때 피를 빼기도 하지만 몽골 사람처럼 피 안 뺀 고기에 입맛이 길들여져 있는 사람들은 또 피를 싹 뺀 고기가 밋밋하게 느껴진다.
동물을 기절시킨 다음 방혈에 이르는 시간에도 규정이 있다. 동물도축세부규정 제9조에 따르면 비관통형 타격법 및 전기법을 이용하여 기절시킨 경우에는 20초 이내, 가스법을 이용하여 기절시킨 경우에는 챔버를 나온 후로부터 60초 이내에 방혈이 시작되어야 한다. 즉 기절시킨 다음에 신속하게 방혈해서 죽이라는 뜻이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기절했던 동물이 의식을 되찾을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전문 시설이 있는 도축장과 달리, 동네에서 잔치 한다고 돼지를 잡거나 할 때에는 그냥 꽁꽁 묶고 나서 목에 구멍을 내고 경동맥을 끊은 다음, 물에 담가서 방혈시킨다. 물론 엄청난 몸부림을 치기 때문에 미리 다리를 꽁꽁 묶어놓고 그것도 모자라 장정들이 달라 붙어서 꼼짝 못하게 잡아야 한다. 동네에서 돼지 잡는 모습이 너무 끔찍해서 특히 어릴 때 이 광경을 보면 그 잔치에서 차마 고기를 입에 못 대는 사람들도 있다.
닭을 잡을 때에도 시골 백숙집 같은 곳에서는 키우던 닭을 기절을 시키지 않고 바로 잡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소나 돼지에 비하면 힘이 많이 약하므로 혼자서 닭을 꽉 잡고 목을 칼로 그어서 방혈시킨다. 서양에서는 킬콘(kill cone)이라는 위 아래가 뚫린 깔때기 모양의 도구에 닭을 거꾸로 꽂아서 머리만 나오게 한 다음 칼로 목을 그어서 잡는다. 한편 우리나라의 도계 시설에서는 닭을 기절 또는 실신시킨 후 목을 아예 잘라서 방혈시키지만 프랑스와 같이 닭 머리가 붙어 있는 상태로 유통시키는 곳에서는 동맥만 잘라서 방혈시킨다.
해체
방혈이 끝난 동물은 먼저 뜨거운 물에 잠깐 담가서 살균도 하고 가죽도 벗기기 쉽게 만든다. 동물도축세부규정 제9조 5항에 따르면 방혈을 시작한 후 30초 이내에는 해체 과정을 진행해서는 안 된다. 즉 동물이 죽었거나 최소한 의식을 완전히 잃어서 고통을 느낄 수 없는 상태가 된 다음에 후속 작업을 하라는 뜻이다.
발목을 자르거나 발톱을 뽑아낸 다음 먼저 머리를 잘라낸다. 크고 무거운 머리가 붙어 있는 상태에서는 다른 해체 작업을 하기 힘들기 때문. 닭이나 오리 같이 몸집도 작고 머리도 작은 동물은 우리나라는 머리를 잘라내지만 유럽은 머리를 자르지 않고 그대로 둔 상태로 출하한다. 심지어 토끼도 머리를 자르지 않은 채로 가죽을 벗기고 출하하는데, 이 때문에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유럽 정육점을 둘러보다가 머리가 붙은 채로 가죽이 벗겨진 토끼고기가 통으로 진열된 걸 보고 충격을 먹기도 한다. 퀭한 눈도 안 도려내고 그대로 붙어 나오기 때문에 처음 보면 정말로 기겁할 광경이다.
머리를 잘랐으면 꼬리도 잘라내고 가죽을 벗겨낸 다음 배를 갈라서 내장을 차곡차곡 빼낸다. 물론 머리와 내장도 따로 해체 작업에 들어간다. 마지막으로 몸통 전체를 세로 방향으로 반으로 가른다. 다만 닭과 같이 통째로 소비자한테까지 가는 가금류는 배를 가르지 않고 항문을 통해 내장을 뽑아내서 원형을 유지한다. 이렇게까지 하면 시장으로 출하될 준비가 된다. 소독과 세척 작업을 한 후 냉장실로 옮겨 보관했다가 다음날 등급을 판정하고 경매를 거쳐 팔려나간다. 더욱 세세한 발골이나 해체 작업은 이제 중간 유통 과정이나 최종 판매점에서 진행된다. 해체 작업을 하는 중간 중간에 계속 뜨거운 물을 사용해서 살균을 한다. 다만 계속 온도가 높은 상태로 작업을 하면 오히려 미생물이 증식하기도 좋고 단백질 변성 우려도 있으므로 중간중간 온도를 낮춰 주는 과정을 거치기도 한다.
율법에 따른 도살 방법이 규정된 종교도 있다.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게 이슬람교의 할랄 도축법. 기절을 시키지 않은 상태에서 단번에 경동맥을 끊어서 죽이는 방법인데, 이를 두고 동물 학대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유대교의 코셔 도축법도 비슷한 논란을 안고 있다. 사실 이러한 도축법을 규정할 시기에는 이 방법이 그래도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방법이었는데, 이후 계속 기술이 발전하고 동물복지에 대한 인식도 높아지면서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하고 있는데 반해 몇몇 종교는 무조건 과거 방식만을 고집하고 있기 때문에 마찰이 생기고 있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