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국수
쌀이나 밀보다 척박한 환경에서 잘 자라고 병충해 피해도 적은지라, 주로 산간지방에서 많이 길렀는데, 쌀처럼 밥 지어 먹기는 식감이 나쁘고 주로 가루를 빻아서 메밀가루로만, 또는 밀가루와 섞어서 국수를 해 먹었다. 한국에서는 주로 강원도 지방의 막국수가 유명하고 평양냉면도 메밀을 주 원료로 한다. 단 함흥냉면은 녹말이 주성분이고 메밀은 쓰지 않는다.
메밀은 글루텐 함량이 밀보다 많이 떨어지기 때문에 사실 국수로 만들기에는 꽤 까다롭다. 때문에 늘이거나 때리는 식으로 만들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고 주로 눌러서 구멍을 통해서 국수가락을 뽑거나 반죽을 칼로 자르는 방식을 쓴다. 식감 역시도 밀과는 많이 다르다. 메밀로만 만든 국수는 젓가락으로 집으면 툭툭 끊어질 정도로 찰기가 없고 입 안에서도 그냥 툭툭 부서지는 느낌이다. 특히나 차갑게 먹을 때에는 더더욱 식감이 무뚝뚝하다. 메밀국수는 당연히 메밀 100%여야 하고 밀가루나 녹말을 섞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메밀 100%로 만들면 오히려 식감이 별로다. 메밀가루 8에 밀가루 2의 비율로 섞는 게 메밀의 맛도 잘 살리면서 국수로서 식감도 괜찮은 최적값으로 보는 요리사들이 많다. 일본에서도 이 비율을 하치와리(八割, 8할)라고 할 정도로 잘 알려져 있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메밀국수는 짙은 갈색에 가까운데, 이는 속껍질이 붙어 있는 상태로 빻았기 때문이다. 원래 속껍질까지 벗겨낸, 이른바 백메밀을 빻아서 국수로 만들면 연한 회색이지만 오히려 이런 국수를 마치 밀가루를 많이 섞은 것으로 착각하는 이들도 많다. 먹을 게 부족했을 때야 속껍질도 아까우니 그대로 빻았지만 당연히 식감이 거칠고 맛이 없다. 하지만 이렇게 색깔이 칙칙해야 메밀이 많이 들은 줄로 아는 사람들이 많으니 오히려 창백한 빛깔의 메밀국수를 보면 메밀 함량이 적은 거 아니냐고 의심할 지경이다. 음식점에서는 굳이 속껍질까지 도정하는 수고와 손실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 그래도 정말 제대로 고집스럽게 하는 가게를 가면 회백색의 제대로 된 메밀국수나 막국수를 만나볼 기회가 있다.
평양냉면도 메밀이 주요한 재료이기 때문에 메밀국수라고 할 수 있지만 누구도 평양냉면을 메밀국수라고 부르지 않는다. 평양냉면은 그냥 평양냉면일 뿐. 막국수 역시 메밀이 많이 들어거지만 메밀국수라고 부르지 않는다. 결국 일본식 소바만 메밀국수라고 부르는 셈이다.
일본에서는 '소바'라고 부르며, 우리에게도 꽤 익숙한 이름이기도 하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메밀이 안 들어간 것까지 소바라고 부르는 것들이 심심치 않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 참조.
우리나라에서는 메밀국수라고 하면 비빔국수, 자루소바처럼 차갑게 먹는 국수라고 생각하지만 일본에서는 우동과 호환되는 국수로도 많이 쓰이는 편으로, 우동집에 가 보면 똑같은 음식을 면만 우동과 소바 중에서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따뜻한 가쓰오부시 국물에 메밀국수를 말아먹는 문화가 널리 퍼져 있다. 물론 우동 또는 소바 중 하나에만 집중하는 전문점도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종종 일본식 메밀국수를 '모밀국수' 혹은 그냥 모밀이라고도 부르는데, 일부 모밀 전문점에서 온모밀을 팔기는 하지만 냉모밀에 비해서는 찾는 사람이 별로 없고 겨울철 한정으로 파는 곳도 많다.
일본은 한 해의 마지막날에 소바를 먹는 문화가 있는데 이를 '토시코시소바(年越し蕎麦)[1]'라고 한다. 메밀국수는 밀가루국수보다 잘 끊어지므로 한 해의 액운을 끊고 다음해를 맞이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에도시대 때 토시코시소바 문화가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따뜻한 국물에 메밀국수를 말아서 먹는다.
각주
- ↑ 토시코시(年越し)는 해를 넘기는 것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