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酒.
일본의 청주. 한자로 풀어보면 '일본의 술'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일본 국외에서는 '사케'라는 말을 많이 쓰지만 '사케'는 일본에서는 모든 술을 아울러서 이르는 말로도 쓰인다. 일본에서 한자로 써도 사케는 그냥 酒다.[1][2] 일본에서 부르는 일본 청주의 정확한 이름은 니혼슈다. 영어에서도 sake라고 쓰는데, 일본에서는 사케가 술을 통칭하는 단어로 쓰이지만 다른 언어에서는 각자 술을 뜻하는 단어가 따로 있으므로, 사케라고 쓰면 일본 청주를 뜻하는 말로 구분할 수 있다. 일본에서도 술의 종류를 선택하는 문맥에서 그냥 '사케'라고 하면 일본 청주로 알아 듣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종'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이는 상표명이다. 니혼슈 이름 중에 마사무네(正宗)가 들어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조미료를 미원이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한 경우. 正宗이 들어가는 브랜드로 가장 유명한 건 뭐니뭐니 해도 키쿠마사무네(菊正宗).
쌀을 주원료로 해서 일본식 누룩인 입국으로 발효한 술을 가만히 놔두어 침전물이 가라앉으면 맑은 술만 떠낸다. 우리나라에서도 청주를 만들어 마셨지만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와 군사정권을 거치면서 명맥이 많이 끊긴데 반해, 일본은 계속해서 명맥을 이어가면서 일식 세계화와 함께 국제적으로 많이 인기가 오르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일본 사람들은 맥주를 훨씬 많이 마신다. 특히 젊은 층으로 갈수록 니혼슈보다는 맥주나 하이볼을 많이 마시는 편. 니혼슈 제조사들도 젊은 층의 입맛을 잡기 위해 화이트 와인과 비슷한 스타일을 추구하거나 라벨 디자인을 현대 감각에 맞게 하거나, 아예 이름조차도 영어나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술도 있드.
가격대가 은근히 와인만큼이나 광범위하다. 대량생산으로 싸게 나오는 건 무식하게 큰 팩이나 박스 단위로 나오고 가격도 정말 저렴하지만[3] 유명한 지방의 전통 방식 니혼슈, 즉 지자케(地酒)는 생산량은 적고 수요는 워낙에 많은지라 아예 1년 전에 미리 예약을 해놓아야만 구할 수 있는 것들도 있다.
문제는 유명 니혼슈의 상당수가 후쿠시마현에서 나온다는 것, 후쿠시마가 핵발전소 방사능 유출 크리를 맞으면서 농업이 아작이 나는데, 니혼슈 산업도 물론 큰 타격을 입는다. 그러니 마셔서 응원하자? 이런 문제로 니혼슈에 대한 의구심도 많다. 겟케이칸(월계관)을 비롯해서 대형 양조회사에서 대량생산으로 만드는 니혼슈는 정확한 산지 표시가 없는 것도 많고, 후쿠시마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만든 니혼슈라고 해도 꼭 현지 생산 쌀을 썼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고급 니혼슈들은 쌀 자체도 자랑거리라서 어떤 쌀을 썼는지, 산지는 어디인지까지 정확하게 표기하기 때문에 이런 것만 잘 확인하면 별 문제는 없다. 후쿠시마와 이웃하고 있는 니가타현이나 야마가타현도 니혼슈로 유명한 곳인데 이쪽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해외 각국으로 수입이 잘 되고 있다. 물론 니가타나 야마가타 쪽도 믿을 수 없다고 꺼리는 사람들도 있다.
니혼슈의 인기가 일본이나 한국을 넘어서, 일식 세계화와 함께 서양권으로도 퍼지고 있는 추세이기도 하고, 미국 같은 곳의 쌀이 품질에 비해 가격이 싸기 때문에 해외에서 만들어지는 니혼슈도 인기를 끌고 있다. 가장 쉽게 볼 수있는 것이 겟케이칸(월계관)의 쥰마이 750. 겟케이칸에서 만들지만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생산된다. 호주에도 자체 생산되는 니혼슈가 있다.
세계화가 이루어지면서 특히 와인의 영향을 맡이 받는 편이다. 와인 애호가들을 겨냥해서 화이트 와인과 비슷한 스타일의 니혼슈도 나오고 있고, 심지어 스파클링 니혼슈도 있다.
재료
기본은 쌀, 입국, 물이다. 딱 이것만으로 만든 것을 쥰마이(純米, 순쌀이라는 뜻)라고 부른다. 쌀을 덜 쓰면 양조 알코올을 넣어서 도수를 맞추고, 싸구려 니혼슈는 쌀을 더욱 적게 쓰고 모자라는 맛을 신맛을 내는 산미료나 감칠맛을 내는 조미료를 비롯한 각종 첨가물로 채운다.
쌀 품종이 상당히 영향을 미치는데, 고시히카리처럼 밥쌀로도 쓰이는 쌀로도 많이 만들지만 니혼슈 쪽으로 특화된 품종들도 여러 가지 있다. 대표적인 게 야마다니시키(山田錦). 아마도 품종이 표기되어 있는 니혼슈를 보면 대다수가 이 품종일 것이다. 그밖에도 고햐쿠만고쿠(五百万石), 오마치(雄町)를 비롯해서 지역별로 상당히 품종 개량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름난 양조장들은 좋은 쌀을 구하기 위한 경쟁도 치열하고, 스스로 품종 개량을 하면서 계약재배를 통해서 품질이나 양을 안정되게 공급 받기 위해 애쓰고 있다.
니혼슈의 등급
니혼슈의 품질을 분류하는 등급의 기준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미보합이다. 쌀알의 겉을 깎아내고 남은 것이 얼마나 되는지를 뜻하는데, %로 표시된다. 예를 들어 정미보합이 60%라면 쌀알의 40%를 깎아내고 60%이 남았다는 뜻. 이 수치가 낮을수록 겉을 많이 깎아냈다는 것인데, 쌀알은 안으로 둘어갈수록 순수 녹말의 비율이 높고 반대로 바깥으로 갈수록 단백질이나 다른 성분들이 많다. 이런 '다른 성분'은 술을 담을 때에는 잡맛을 내는 불순물이 되므로 정미보합이 낮을수록 잡맛이 적고 숙취도 적은 깔끔한 술이 나온다. 기본적으로 이 정미보합에 따라 등급이 매겨진다.
긴죠는 정미보합 60% 이하여야 한다. 즉 쌀알의 40% 이상은 깎아내야 한다는 뜻. 다이긴죠는 50% 이하, 즉 반 이상을 깎아내야 한다.
쥰마이(純米)도 니혼슈의 품질에 중요하다. 한자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순수한 쌀로 만들었다는 뜻. 주정이나 다른 종류의 알코올, 니혼슈 특유의 신맛을 인공으로 흉내내는 산미료 같은 것들을 섞지 않았다는 의미다. 정미보합을 기준으로 한 등급과는 별개의 개념으로 붙는다. 그러니까 다이긴죠라고 해도 쥰마이가 없으면 주정을 넣었다는 얘기다. 딱 주정만 들어간 건 혼죠죠라고 부르고 여기에 산미료 같은 다른 첨가물이 추가로 들어가면 후츠슈(普通酒, 보통주)가 된다. 따라서 규정에 따른 최상위 등급은 쥰마이 다이긴죠가 되는 것.
가끔 등급 앞에 토쿠베츠(特別. 특별)라는 말을 붙이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토쿠베츠혼죠죠나 토쿠베츠쥰마이다. 등급 자체가 바뀌는 것은 아니고, 보통은 질이 좋은 재료를 사용하되 낮은 등급으로 만드는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쥰마이 다이긴죠 쯤 되면 단순히 정미보합 말고 쌀도 품질이 좋은 것을 쓰는데, 이런 데 쓰는 쌀을 좀 아랫등급 술을 만드는 데 쓰면 토쿠베츠란 말이 붙는게 보통이다. 쉽게 말해서, 높은 등급 니혼슈와 비슷한 맛을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것. 물론 토쿠베츠가 들어가면 같은 등급의 니혼슈보다는 비싸지는데, 유명한 제조사의 토쿠베츠 혼죠죠가 그저그런 회사의 긴죠보다 비싼 경우도 종종 있다. 수치로 결정되는 등급도 중요하지만 쌀이나 물의 품질, 사용하는 입국의 종류, 양조 방법도 역시 중요하다.
사실 주정을 넣었다고 해서 무조건 저질로 볼 건 아니다. 고급 원료로 고급스럽게 만들되, 농도만 좀 묽게 해서 주정으로 도수를 맞추는 술이 질 낮은 원료로 만드는 쥰마이보다 얼마든지 훨씬 맛이 나을 수도 있다.
라벨 보는 법
- 니혼슈도(日本酒度) : 일본주도. 술에 남아있는 당분의 정도를 뜻하는 표시로 술의 비중을 측정한 값이다. 플러스로 갈수록 당분이 적고 마이너스로 갈수록 당분이 많다. 당연한 얘기지만 당분이 많을수록 달게 느껴질 것이고 적을수록 드라이한 편이다. 니혼슈도가 플러스 쪽으로 가 있는 것, 즉 단맛이 별로 없는 것을 카라쿠치(からくち, 辛口)라고 하고, 반대로 마이너스 쪽, 즉 단맛이 나오는 것을 아마쿠치(あまくち, 甘口)라고 부른다. 이 두 가지 용어는 일본에서 와인이나 맥주 같은 다른 술에도 종종 나온다. 어차피 드라이와 스위트로 볼 수 있는 개념이니까. 다만 단맛인지 드라이인지를 니혼슈도만으로 확실히 결론 낼 수는 없다. 산도가 높으면 단맛을 가려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
- 산도 : 술에 남아 있는 산이 어느 정도인지를 뜻한다. 막걸리를 마셔보면 신맛이 꽤 나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니혼슈 역시도 산이 포함되어 있다. 입국을 사용해서 발효를 진행하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미생물이 산을 만들어 내기 때문. 산도가 높으면 신맛이 강해지는 것은 물론 좀 더 드라이한 느낌을 준다. 니혼슈도가 같다면 산도가 높은 쪽이 드라이한 맛을 낸다.
그밖의 니혼슈 용어
- 나마죠죠(生貯蔵) : 한자를 우리 식으로 읽으면 '생저장'이 된다. 가열살균처리를 하지 않고 저온 숙성한 니혼슈.
- 겐슈(原酒) : 한자를 우리 식으로 읽으면 '원주'가 된다. 물을 넣어서 도수 조절을 하지 않은 술. 술을 담을 때부터 도수를 낮게 잡으면 발효 과정에서 미생물이 끼어들 위험이 있어서 보통은 도수를 높게 잡아서 발효하고 물을 넣어서 도수를 맞춘다. 겐슈는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은 것.
니혼슈계의 클라우드?보통 니혼슈들은 15~16도 정도지만 겐슈는 18~20도에 이르는 술도 있다. 물론 겐슈 중에도 일반 니혼슈 정도 도수를 가진 것도 있다. - 나마자케(生酒) : 발효한 술은 보통 출하하기 전에 1~2회 열처리를 해서 미생물 및 잔여 효모를 죽이고 술에 아직 남아 있을 수 있는약간의 탄산가스도 제거하면서 품질을 유지한다. 이러한 열처리를 하지 않은 것을 나마자케, 즉 생주라고 한다. 마셔보면 미미한 탄산감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는 술들이 많다. 물론 그만큼 보존성은 떨어지므로 유통기한이 길지 않다. 열처리를 하긴 하지만 한 번 살짝만 함으로써 나마자케의 느낌을 최대한 살린 술도 있다.
- 무로카(無濾過) : 한자를 우리 식으로 읽으면 '무여과'가 된다. 말 그대로 여과를 거치지 않고 가라앉혀서 맑은 술만 떠낸 것.
- 니고리자케 : 술을 빚은 후 맑은 술만 걸러내지 않고 탁주 상태로 마시는 것. 한국의 막걸리와 비슷하지만 다른 점도 상당히 있다.
마시기
따뜻하게 데워서 마시기도 하는 술로 잘 알려져 있다. 물론 니혼슈만 그런 건 아니고 와인도 따뜻하게 데워 마시기도 하고 향신료와 함께 끓여서 뱅쇼로 마시기도 한다. 심지어 맥주도 향신료와 설탕을 넣어서 끓여 마시는데 이를 뮬드 비어(mulled beer)라고 한다. 그래도 와인이나 맥주는 이런 방법이 널리 애용되지는 않지만 니혼슈는 데워 마시는 술의 대명사처럼 알려져 있다. 청하가 처음에 나왔을 때 '차게 마시는 청주'라는 광고 카피를 내세울 정도로 특히 한국서는 '정종은 데워서 마시는 술'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특히 추운 겨울에 따뜻한 정종 한잔은 추운 몸을 녹이는 이미지라 퇴근길에 정종 대포 한 잔을 찾는 직장인이 많기도 했다.
니혼슈를 데우면 술 속의 감칠맛이 좀 더 잘 살아나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니혼슈는 반드시 데워서 마셔야 하는 술은 아니다. 보통 술마다 데워서 마시는 게 좋은지 차게 마시는 게 좋은지 표시가 되어 있지만 흔히 통하는 룰은 저렴한 건 데워서 또는 차게, 고급 술은 차게 마시는 것. 비싼 니혼슈치고 데워서 마시라고 안내하는 술은 정말 드물다. 또한 단맛이 많은 술은 차게, 단맛이 적은 술은 상온이나 데워서 마시는 것을 권장하는 편이지만 술마다 최적 조건이 다르므로 많은 니혼슈들이 추천하는 온도를 라벨에 표시해 두고 있다. 아니면 같은 술을 잔이나 도쿠리별로 다른 온도로 마시면서 그 술이 어떤 온도에서 가장 맛이 좋은지 찾는 것도 방법이다.
보통 니혼슈를 주문할 때 온도는 다음 세 가지로 주문한다.
- 아츠캉(熱燗): 따뜻하게 혹은 뜨겁게.
- 누루캉(ぬる燗):미지근하게.
- 죠온(常温): 상온.
- 히야시(冷し): 차게.
복어 지느러미를 구운 다음, 잔에 넣고 뜨거운 니혼슈를 부어서 놓아두었다가 마시는 히레자케라는 것도 있다.[4] 술 색깔이 노르스름하게 변하고 구수한 맛이 난다. 이 역시 고급 니혼슈로는 절대로 만들지 않는다.
각주
- ↑ 보통은 앞에 경어 표현인 お를 붙여서 お酒(오사케)라고 많이 부른다.
- ↑ 연어도 사케(鮭)다. 술을 뜻하는 사케와 구분하기 위해서 카타카나(サケ)로 쓰는 경향이 있다. 아예 안 헷갈리게 하려면 영어식으로 사몬(サーモン)으로 쓰든가.
- ↑ 이런 중저급 니혼슈들도 한국에 오면 가격이 몇 배로 뛰는지라 한국에서 니혼슈나 일본 소주 즐기던 사람들이 일본 가서 가격 보고 뒷목 잡는 일들이 흔하다. 수입 주류들이 현지보다 가격 비싼 거야 흔하지만 바로 옆나라라서 배도 실어도 하루이틀밖에 안 걸리는 주제에 뻥튀기 정도는 유럽산 술들도 울고 갈 정도로 너무 심한 게 문제다.
- ↑ 히레(ヒレ)가 지느러미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