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국
술안주로 먹는 국. 물론 먹자고 하면야 국물은 뭐든 술안주가 될 수 있겠지만 '술국'은 음식점에서 술안주용으로 끓여내는 국물을 뜻한다. 이름만 봐서는 술이 주 재료인 국 같은데. 우리나라에서 국물 안주가 대체로 그렇듯 술국도 대체로 소주 안주다.
식사용 국물, 특히 국밥을 주력으로 파는 곳에서 안주에 적당하게 만든 국을 따로 팔면서 이를 술국이라고 하는데, 술국을 보기 가징 쉬운 예는 순댓국집이다. 순댓국과 밥을 먹으면서 반주를 곁들이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예 안주 전용으로 술국을 따로 파는 순댓국집이 많은데, 전골과는 달리 테이블에서 끓이지 않고 그냥 순댓국처럼 뚝배기 또는 큰 그릇에 나오지만 식사용과는 달리 밥이 딸려나오지 않고, 대신 안주 답게 건더기를 좀 푸짐하게 넣어준다. 순댓국이라면 술국 쪽이 내장이 좀더 넉넉하게 들어가고 부위도 좀 더 다양하게 넣어준다. 같은 음식이라면 식사보다는 술국 쪽이 보통 좀 더 비싸다. 아무래도 밥보다는 건더기들이 좀 더 단가가 나가기 때문이기도 하고 술국 하나로 두세 명이 같이 먹기 때문에 양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선지 해장국집 중에도 술국을 따로 파는 곳들이 꽤 있으며 역시 개념은 비슷하다. 사실 술국의 역사는 순댓국보다는 선짓국 쪽이 더 오래됐다. 선지 해장국으로 유명한 청진동은 원래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대포[1]와 술국을 팔았다고 한다.[2] 일제강점기 시절의 소설가 심훈의 영화소설[3]인 <탈춤>에도 술국이 언급된다.
전 재산인 헌 옷 한 벌을 마지막으로 뎐장국[4]에다가 틀어넣고 나온 일영의 주린 창자를 끌어당기는 것은 선술집의 구수한 술국 냄새다. 얼근히 취한 일영은 야시장이 한참 벌어진 종로 큰길로 휘젓고 나왔다.
얼근히 취했다는 얘기가 나왔으니 술국에 한잔 걸친 것은 보나마나. 아무튼 청진동의 술국집들은 한국전쟁 이후, 종로통에 밤문화가 발달하면서 취객들이 쉬어가면서 쓰린 속을 달래는 해장국집으로 변모해 나갔다. 물론 해장국을 술국 삼아 걸치는 사람들은 지금도 많으며 밥이 없고 건더기가 많은 술국도 팔고 있다.
중국집 술국이 있다면 이건 십중팔구 짬뽕국물이다. 마찬가지로 국수나 밥이 없는 대신[5] 건더기가 푸짐하게 들어 있다. 그밖에 술안주로 걸칠 만한 중국집의 탕요리로는 계란탕이라든가, 누룽지탕 같은 것들이 있지만 이것들은 녹말을 풀어서 국물을 끈적하게 만든 것이라 우리가 생각하는 국물요리와는 차이가 있다.
전골처럼 테이블에서 불로 계속 데울 수는 없지만 술국이 식으면 데워달라고 하자. 인심 좋은 집들은 육수까지 보충해 주면서, 더 인심 좋은 집은 건더기도 조금 넣어주면서까지 데워준다. 그렇다고 한번 시켜놓고 계속 데워달라고만 하면 주인이 화낸다. 술이라도 많이 마시든가.
술국을 파는 집이라고 해서 술국이 아닌 그냥 식사용 국에 반주를 걸치는 것을 막지는 않는다. 밥을 먹으면서 반주를 할 것인지, 아니면 이미 식사는 했기 때문에 밥은 필요 없으니까 안줏거리가 될 만한 술국에 술을 걸칠 것인지는 손님 선택이다. 다만 낮시간에는 밥 장사를 하고, 밤시간에는 술 장사를 하는 가게라면 밤 시간에는 식사 종류를 팔지 않는 곳도 있다.
한편으로는 술 마신 다음날 먹는 해장국을 술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긴 해장국에 술 마시는 사람들도 많긴 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