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ygate.
2007년 포뮬러 1은 물론, 포뮬러 1 역사에서 최악의 산업 스파이 스캔들로 기록될 사건. 이후 르노 팀에서 터진 일종의 승부조작 사건인 크래시게이트와 함께 F1의 양대 스캔들로 기록되고 있다.
간략하게 정리하면 페라리의 엔지니어 나이젤 스텝니가 경쟁 팀 맥클라렌의 기술 감독이자 친구인 마이크 코글란에게 페라리의 무려 780여 쪽에 이르는 각종 기술 관련 정보를 넘겨준 사건이다. 그 결과 맥클라렌은 1억 달러라는 모터스포츠 사상 최고 액수의 벌금에 더해 시즌 컨스트럭터 포인트를 몰수 당했다. 드라이버 포인트는 유지되었지만 그 해 팀 메이트였던 페르난도 알론소와 루이스 해밀턴의 불화 속에서 키미 라이코넨이 어부지리로 드라이버 타이틀을 차지하는 바람에 맥클라렌은 망신살 뻗친 최악의 한 해를 보낸다. 또한 이 사건으로 론 데니스는 팀 수장 자리에서 물러난다.
사건의 발단
미하엘 슈마허가 타이틀을 휩쓸던 페라리의 황금기 시절, 팀 감독 쟝 토드, 기술 감독 로스 브론, 차량 설계 책임자 로리 바인으로 이어지는 다국적 드림 팀의 일부로 손꼽히던 인물이 영국 출신의 나이젤 스텝니였다. 당시 슈마허의 수석 미캐닉이었다면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한지? 그런데 슈마허가 은퇴를 선언하고 드림 팀을 이루었던 사람들이 줄줄이 페라리를 떠나고 그 자리들은 이탈리아인 중심으로 채워졌다. 특히 로스 브론까지 팀을 뜨면서 나이젤의 실망감은 굉징히 커졌다. 2007년에는 "지금 팀의 상황에 만족하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말할 정도로 불만이 커졌고, 페라리는 그를 팀 성능개발팀장으로 임명하면서 레이스에서 손을 떼게 한다.
2007년 6월 미국 그랑프리가 열린 시기에 페라리는 스텝니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데, 언론 보도에 따르면 모나코 그랑프리를 앞두고 엔진에 이물질(흰 가루)이 발견되었는데 이 짓을 한 사람이 스텝니였다는 것. 또한 페라리는 스텝니 해고와 함께 맥클라렌의 "한 엔지니어"를 상대로 역시 소송을 제기한다. 곧 그가 기술 감독 마이크 코글란으로 밝혀졌고, 맥클라렌이 그를 정직 처분했다는 것도 밝혀진다.
2007년 7월, 국제자동차연맹(FIA)은 사건 조사와 심리에 들어갔는데, 그 결과 맥클라렌이 [[페라리로부터 기밀 정보를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을 이용했다는 증거가 없다면서 어떠한 처벌도 내리지 않았다. 단, 새로운 증거가 발견될 경우 다시 심리한다는 단서만 붙였다. 페라리는 당연히 이러한 결정에 빡쳤지만 맥클라렌 측은 호주 그랑프리 때 페라리가 규정을 위반한 하체를 사용했다면서, 스텝니는 이러한 위반에 관련한 정보를 제공한, 일종의 "내부 고발자"였다고 주장한다. 또한 스텝니가 넘겨준 자료는 코글란이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었을 뿐 팀 안에서 돌지도 않았고 아무도 알지도 못했다고 주장했다.
맥클라렌의 셀프 빅엿
이렇게 좀 잠잠해지나 했던 스캔들의 실체가 세상에 까발려지게 된 데에는 맥클라렌의 팀 메이트 페르난도 알론소와 루이스 해밀턴의 불화[1]가 작용했다. 베네통에서 두 번이나 월드 챔피언을 차지한 후에 맥클라렌으로 전격 이적을 선언한 페르난도 알론소. 그런데 같은 해 맥클라렌은 전통을 깨고 루이스 해밀턴[2]을 드라이버로 발탁한다. 해밀튼은 론 데니스가 카트 시절부터 키워 온, 거의 자식 같은 드라이버였기 때문에 알랭 프로스트부터 여러 전문가들이 "알론소 너 큰일났다."를 외쳤다. 당연히 두 번이나 챔피언을 차지한 알론소에 더 많은 지원을 해야 하지만 론 데니스의 자식 같은 해밀턴에게 오히려 더 투자할 거라는 걱정이었는데, 캐나다 그랑프리에서 해밀턴이 우승하면서부터 이 둘의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특히 둘 사이의 불화가 극에 달한 것은 헝가리 그랑프리였다. 예선에서 해밀턴은 팀의 지시를 어기고 멋대로 행동해서 그 결과 알론소가 불이익을 받았고, 빡친 알론소는 피트 레인에서 해밀턴을 뒤에 묶어 놓으면서 마지막 예선 랩 시도를 못하게 망쳤다. 론 데니스가 헤드폰을 집어던질 정도로 팀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콩가루. 이 일로 폭발한 알론소는 경기 후에 론 데니스를 만나서 자신을 챔피언으로 대우해 달라면서, 그렇지 않으면 팀의 서드 드라이버인 페드로 데 라 로사[3]와 마이크 코글란 사이에 있었던 이메일을 폭로해 버리겠다고 질러버린 것이다.
그런데 론 데니스는 뭔 약을 처먹었는지 이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FIA 회장 맥스 모즐리에게 알리면서, 알론소가 공갈 협박을 한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그러나 맥스 모즐리는 이거 뭔가 있는데, 하고 다시 조사를 지시하고, 맥클라렌의 드라이버들에게 조사에 협조하면 개인적인 불이익을 주지 않겠다고 제안해서 사건에 관련된 이메일을 넘겨 받았다. 결국 스텝니가 넘겨준 정보가 팀 안에서 돌았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그 정보의 출처가 나이젤 스텝니이고 건네 받은 사람이 마이크 코글란이라는 사실까지도 이미 팀 내부에 아는 사람들이 꽤나 있었다는 사실까지 드러났다.[4] 결국 맥클라렌은 1억 달러 벌금[5] + 컨스트럭터 포인트 몰수라는 전대미문의 처벌을 받았다. 드라이버들은 FIA가 제안한 대로 포인트 몰수와 같은 처벌을 면제 받았다.[6] 여기에 더해서 이듬해인 2008년 맥클라렌 팀의 섀시는 페라리 기밀 정보를 사용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특별 기술검사 대상으로 지정했다.
어쨌거나 스파이게이트의 실체가 드러난 계기가 론 데니스의 자진신고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론 데니스가 과연 스파이게이트의 내막을 알았는가 하는 것도 논란이 되었다. 정황을 보면 아무래도 론 데니스는 잘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
르노 스파이게이트
맥클라렌-페라리의 스파이게이트가 한창 논란이 되던 시기에 이번에는 르노 팀이 2006년과 2007년 맥클라렌 차량과 관련 있는 기밀 정보를 빼갔다는 제2의 스파이게이트가 불거졌다. 맥클라렌의 엔지니어가 르노 팀으로 이적하면서 맥클라렌의 기밀 정보를 CD에 담아 빼갔다는 것인데, FIA 조사 결과 이것이 사실로 인정은 되었지만 실제 르노 팀이 이것으로 이득을 봤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면서 실제 처벌은 하지 않고 징계 유예 처분을 내려서 논란이 되었다. 일부에서는 오히려 이쪽이 더 질이 나쁜 스파이 사건인데도 FIA가 맥클라렌에게만 가혹한 잣대를 들이댄다면서, 그 이유로 '피해자'가 페라리[7]이기 때문이라든가, 맥스 모즐리와 론 데니스가 사이가 나쁘기 때문이라든지 하는 주장들이 나왔다.
이 때 르노 팀을 이끌고 있던 인물은 플라비오 브리아토레와 팻 시몬즈인데, 이 때에는 사실상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으나 이후 터진 크래시게이트 때문에 박살났다.
그 이후
비록 컨스트럭터 포인트는 몰수당했지만 드라이버 포인트는 몰수되지 않았기 때문에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당시 페르난도 알론소든 루이스 해밀턴이든 누구든 우승만 하면 월드 챔피언십을 차지할 수 있을 정도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반목이 극에 달한 두 드라이버, 그리고 콩가루가 된 팀 분위기 속에서 결국 키미 라이코넨이 우승을 차지하면서 딱 1 포인트 차이로 드라이버 챔피언십까지 가져가는 결과를 낳았다. 이후 알론소는 맥클라렌과 3년 계약을 양자 합의로 1년만에 종료하고 친정이었던 르노[8]로 돌아가고, 해밀튼은 2018년에 막판까지 치열한 경합 끝에 마지막 브라질 그랑프리에서 마지막 코너의 대역전 드라마로 첫 월드 챔피언에 등극하는 데 성공한다. 또한 론 데니스는 팀 단장 직에서 물러나고 마틴 위트마시 체제로 굴러가게 된다. 이후 론 데니스가 일종의 내부 쿠데타를 일으켜서 위트마시를 밀어내고 단장으로 복귀하지만 2년만에 다시 경영권 다툼에서 밀려나고 만수르 오제를 필두로 한 아랍 자본이 그룹을 장악한다.
맥클라렌의 벌금은 이후에 좀 감액되었는데 FIA는 이 돈으로 모터스포츠 발전을 위한 기금을 조성했고, 저개발국가의 발전 프로젝트나 유망주 육성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FIA의 징계와는 별개로 페라리는 이탈리아 법원에 맥클라렌의 관련자들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했고 2009년에 마이크 코글란과 패디 로우, 조나선 닐, 롭 테일러에게 벌금 처분을 내리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이 사건으로 1년 8개월을 복역한 나이젤 스텝니는 2014년 교통사고로 일찍 세상을 등진다. 마이크 코글란은 징계가 풀리면서 2011년 윌리엄스 팀의 수석 기술 책임자로 복귀하지만 2013년에 성적 부진으로 추측되는 이유로 팀을 떠나 미국의 나스카 팀인 리처드 차일드리스 레이싱으로 옮겼고, 2107년에 팀에서 나온 이후로는 영국으로 돌아와서 모터스포츠와는 관련이 없는 엔지니어링 일을 하고 있다.
각주
- ↑ 언론에서는 '카인과 아벨'에 비유하는가 하면 최강의 콤비였지만 최악의 원수지간이기도 했던 아일톤 세나와 알랭 프로스트에 비교하기도 했다.
- ↑ 대부분 톱 클래스 팀들이 그렇지만 맥클라렌도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F1 경험이 없는 드라이버를 바로 레귤러로 올리지 않았다. 적어도 중하위팀에서 1~2년 하는 걸 보고 스카웃하는 식이었다.
- ↑ 알론소와 데 라 로사는 같은 스페인 출신이었기 때문에 아마도 별 얘기 다 했을 거고, 그래서 알론소가 이런 내막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 ↑ 다만 둘 사이에 금전거래는 없었던 것으로 확인했다. 즉 스텝니가 팀 돌아가는 분위기에 빡쳐서 엿먹으라는 심산으로 친구였던 코글란에게 기밀 정보를 넘긴 것으로 보인다.
- ↑ 단, 컨스트럭터 포인트 몰수에 따른 TV 중계료 배분 및 물류비 지원 박탈에 해당하는 액수는 공제했다.
- ↑ 물론 당사자 페라리를 비롯해서 많은 F1 관계자와 팬들이 '그게 말이 되냐'고 빡친 것 당연지사.
- ↑ FIA는 예전부터 페라리 및 이탈리아 쪽에 편향적이라는 비난을 종종 받아 왔다. 요즈음은 메르세데스GP 편향이라고 욕먹고 있다.
어느 나라나 협회가 욕받이인 건 마찬가지인가보다. - ↑ 알론소가 있었을 때는 베네통이었지만 르노가 인수하면서 팀 르노로 이름이 바뀌었다. 하지만 알론소의 후견인 격이었던 플라비오 브리아토레는 당시 그대로 팀에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