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
동물, 그 중에서도 육상생물이나 조류의 생체조직을 식용으로 쓸 때 사용하는 용어. 우리가 먹는 고기는 대부분 근육 조직인데, 생명체를 얘기할 때에는 '근육'이라고 하지 고기라고는 하지 않는다. 내장이나 각종 장기는 식용으로 사용할 때에도 그 이름으로 부르지만 넓게 보면 고기에 속한다. 즉, 좁은 의미로 본다면 근육과 지방이 주를 이루는 살코기를 뜻하는 것이고, 넓게 보면 식용하는 동물의 전체 생체조직을 아우를 수 있다. 한자로는 고기 육(肉)을 쓰는데, 이 한자는 고기만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동물에도 많이 쓰인다. 당장 근육(筋肉)도 肉이 들어가고, 영혼과 대비되는 표현으로 쓰이는 육신(肉身), 육체(肉體)에도 肉이 들어간다.[1] 즉, 肉은 넓게 보면 살아 있는 생명체의 '몸'을 뜻하는 말로도 쓰인다.
물고기는 좀 독특한데, '고기'라는 말이 들어가 있는데도 물고기는 주로 살아 있는 것을 뜻하고 잡아 올려서 먹는 것은 '생선'이라는 말을 주로 쓴다. 예를 들어 낚시를 할 때 '물고기를 잡는다'고 하지 '생선을 잡는다'는 말은 잘 쓰지 않지만 요리를 할 때에는 '생선 요리'라고 하지 '물고기 요리'는 말은 거의 쓰지 않는다. 보통 '고기'를 이야기할 때는 생선이나 해산물은 포함하지 않는다.
먹는 방법
인간을 제외한 육식동물, 혹은 잡식동물은 주로 살아 있는 것을 사냥해서 먹거나 이미 죽은 것을 날것으로 먹는다. 영장류 중에서도 오직 인간만이 불을 사용해서 먹을 것을 익히는 방법을 터득했기 때문에 나머지 모든 동물들은 사람이 조리해서 주지 않는 한은 날고기를 먹는다. 또한 식물을 먹지 않는 동물들은 날고기로만 섭취할 수 있는 영양소도 있다. 주로 열 때문에 쉽게 파괴되는 비타민이나 필수아미노산 종류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육식동물들은 사냥한 동물의 내장이나 뇌를 먹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초식동물의 위나 창자 안에는 소화 중인 식물들이 남아 있어서 육식동물은 소화시킬 수 없는 셀룰로스와 같은 물질들이 어느 정도 소화된 상태로 있기 때문에 식물을 통해 섭취해야 하는 영양소를 이 방법으로 간접 섭취할 수 있다. 또한 내장이나 뇌에 풍부하게 들어 있는 영양소도 있기 때문에 살코기만이 아니라 내장이나 뇌도 먹는다. 내장이 먼저 부패하므로 내장부터 먹는 게 보통이다.
신선한 고기는 날것으로도 먹을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빠르게 부패하기 때문에 인간이 불을 발견한 이후로는 대부분은 불에 익혀서 먹는다. 불에 익히면 살균 효과도 있지만[2] 소화도 쉬워지는 효과가 있다. 과일은 주로 날것으로 먹고, 채소도 문화권에 따라 다르지만 날것으로 먹는 방법이 다양하게 있지만 고기만큼은 정말 특정한 몇 가지 요리를 제외하고는 날것으로 먹는 문화는 대부분 실종되었다.
냉장 냉동을 통해서 부패하는 시간을 늦추거나 거의 정지시킬 수는 있지만 인류 역사에서 냉장 냉동 기술이 발전한 것은 정말로 찰나의 시간에 불과하다. 그 이전에는 고기의 저장성을 높이기 위해 여러 가지 조리법을 동원했다. 지금은 햄이라고 하면 대량생산하는 프레스햄이 주종이지만 전통적으로는 고기를 소금에 절인 다음 몇 달에서 길게는 1년 이상 천천히 건조시키면서 발효 작용을 통해 장기보관을 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었다. 육포, 빌통처럼 불에 천천히 구워 수분을 날린 다음 말려서 먹는 방법도 있고, 훈제를 통해 살균과 함께 수분 함량을 떨어뜨리는 방법도 있고, 젓갈은 지금은 거의 생선이나 해산물로만 만들지만 옛날에는 소고기, 돼지고기 같은 것으로도 담았다. 물론 이렇게 저장성을 높이는 방법 중에 상당수는 소금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너무 짜거나, 말려서 최대한 수분을 없애다 보니 이도 안 들어갈 정도로 딱딱해지거나 해서 그냥 먹기는 쉽지 않은 것들도 많았다. 게다가 요즘이나 소금이 흔하지 로마시대에는 화폐 구실도 했고 병사들의 월급을 소금으로 줄 정도로[3] 비싼 것이어서 마음껏 쓰지도 못했다. 요즘은 냉장 냉동 기술이 발달했고 소르빈산칼륨이나 아질산나트륨 같은 방부제도 사용하기 때문에 소금을 쓰지 않아도 보존 기간이 훨씬 길어졌지만 여전히 신선도는 고기의 맛과 영양, 안전성에 중요하다.
고기마다 차이가 있지만 특유의 누린내가 있다. 갖가지 고기 요리법 중 상당수는 이러한 누린내를 없애거나 억제하거나, 다른 재료의 향미를 사용해서 가리거나 할 목적이다. 갖가지 향신료가 발달한 이유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아프리카에서 대량 재배에 성공하기 전 유럽에서는 인도가 주 산지였던 후추가 정말로 금값일 정도로 비쌌는데, 이 역시 고기의 누린내를 후추의 알싸한 향과 맛으로 잡는 데 많이 썼다. 나중에는 그 정도가 심해서 부자들은 돈지랄할 요량으로 아예 고기에 후추를 처바르다시피 할 정도였다고. 사육 및 도축 과정에서 누린내나 비린내를 잡기 위한 노력도 많이 이루어졌다. 양고기의 경우 성체인 머튼(mutton) 누린내가 심하기 때문에 어린 양인 램(lamb)을 주로 먹으며, 도축 과정에서는 피비린내를 최소화 하기 위해 가축에서 최대한 피를 뺀다.[4] 그러나 예외는 있어서 몽골은 피를 빼는 것을 금기시하기 때문에 외지인들이 혹 몽골에 갔다가 집에 초대 받아서 저녁으로 양고기가 나오면 피비린내와 누린내에 질색을 한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역시 불에 굽는 것. 인간이 불을 쓸 줄 알게 되고 익혀 먹는 방법을 터득하면서부터 시작된, 가장 원시적이지만 여전히 가장 인기가 높은 조리법이다. 우리나라의 고기구이, 서양의 스테이크도 기술이 발달했다고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고기를 불에 굽는 아주 단순한 방법에서 출발한다.
종류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소비하는 고기라면 역시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다. 그밖에 양고기, 오리고기, 토끼고기, 말고기도 여러 문화권에서 먹는다. 개고기는 이제는 아시아권 몇몇 나라에만 남아 있고 그나마 우리나라는 반대 여론도 여론이지만 다른 고기에 비해 딱히 맛있거나 영양이 뛰어난 것도 아니라 꺼림칙한 이미지 때문에 자연스레 소비가 줄어드는 추세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거의 자취를 감출 가능성이 높다. 그밖에도 지역에 따라 소비하는 고기들이 있지만 공장식 축산을 통해 고기를 대량 공급하는 현대에는 소, 돼지, 닭의 비중이 압도적이다. 생선을 비롯한 수산물까지 범위를 확장하면 종류는 굉장히 많아진다. 지역이나 문화권에 따라 별의 별 고기를 다 먹지만 이른바 '문명 사회'에서 어느 정도 소비가 있고, 실제 유통망을 통해서 팔리는 고기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개고기 : 한국이 가장 논란이 많지만 중국의 소비량이 압도적으로 많고, 베트남이 2위다. 심지어 스위스의 아펜첼 주와 장크트갈렌 주에도 전통음식으로 개고기 요리가 남아 있다. 먹는 사람은 소수지만 아직도 전통요리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동물보호단체에 따르면 스위스인 중 3% 정도가 은밀하게 개고기나 고양이고기를 즐기고 있다고 한다.[5] 물론 스위스에서도 말은 많다.
- 거위고기 : 오리고기처럼 거위고기도 먹는다. 만드는 방법의 잔인함 때문에 말 많은 프랑스의 푸아그라도 거위 간으로 만드는 게 정통이다.
- 닭고기
- 돼지고기
- 말고기
- 메추라기고기 : 우리나라에서는 가끔 꼬치집 같은 곳에서 볼 수 있는데, 아시아권 여러 나라에서도 소비하는 고기이고, 서양에서도 고급 레스토랑에 가면 가끔 볼 수 있다. 'Quail'이라는 이름이 있으면 메추라기고기다.
- 소고기
- 양고기
- 염소고기
- 오리고기
- 칠면조고기
- 캥거루고기
- 토끼고기 : 스페인식 쌀요리인 파에야는 토끼고기를 넣어야 정통으로 친다. 유럽 정육점에 가보면 토끼고기를 파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는데, 머리까지 붙은 상태로 껍질을 벗겨서 통으로 진열해 놓은 것을 보고 충격 먹는 관광객들도 많다.
논란과 대체품
인류의 초기 역사가 사냥과 채집이었던만큼, 고기는 인류가 처음 나타났을 때부터 주요한 식량으로 생존을 책임져 왔다. 하지만 인간의 이성이 발전하면서 항상 논란이 되어 온 음식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동물을 죽여야만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식물과는 달리 죽이는 과정에서 극심한 고통을 당하며, 이는 잔인함과 야만성이라는 논란에 휩싸이는 주요한 원인이다. 특히 동물의 권리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늘면서 논란은 더욱 거세어질 수밖에 없다. 공장식 축산이 발전하면서 논란은 단순히 동물을 죽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태어나서부터 기르는 과정으로까지 번진다. 공장식 축산의 상당 부분이 태어날 때부터 가축을 생명체가 아닌 고기로 보다 보니 온갖 잔인한 일들이 일어난다. 오히려 죽이는 과정과 그 때 동물이 겪는 고통은 잠깐 사이에 일어나지만 공장식 축산으로 받는 고통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훨씬 잔인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공장식 축산 때문에 고기의 값이 대폭 싸졌고, 과거에는 부자나 귀족이 먹고 남은 부산물 같은 것들이 먹어야 했던 서민들도 쉽게 살코기를 먹을 수 있게 된 측면은 있다. 때문에 공장식 축산이 윤리적으로나 환경 면으로 보나 문제가 많지만 이를 금지하면 옛날처럼 다시 '고기의 양극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고민도 있다. 동물의 권리와 복지를 중시하는 움직임이 먼저 일어난 서구권을 중심으로 공장식 축산을 금지, 혹은 강력하게 규제하는 움직임이 점점 활발해지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공장식 축산에 대한 규제가 서서히 증가하는 한편 동물복지 인증제도를 통해 그래도 살아 있을 때만큼이라도 생명체로서 최소한의 존중과 대우를 해 주는 사육법을 장려하는 인센티브도 실행하고 있다. 물론 한편에서는 이를 비싼 고기 사먹을 경제력이 되는 돈 있는 사람들의 배부른 소리로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아예 이런저런 논란을 피해가는 방법으로 식물성 단백질이나 지방을 활용해서 고기의 맛이나 질감을 재현하는 식물성 고기, 혹은 동물의 세포조직을 인공배양하는 배양육 연구도 활발하다. 식물성 고기는 이미 많은 제품이 나와 있고, 우리 주위에서도 알게 모르게 많이 볼 수 있다. 저렴한 냉동만두에도 들어가며, 라면의 건더기 스프에도 고기 대용으로 쓰인다.[6] 식물성 고기를 패티로 사용한 햄버거는 비건 인구가 많은 서양권은 이미 주요 패스트푸드 체인들이 출시한 상태이고, 우리나라도 롯데리아와 버거킹이 식물성 고기 버거를 내놓았지만 버거킹은 얼마 못 가서 조용히 단종시켰다. 먹어본 사람들의 평가는 진짜 고기와는 차이가 많이 나며 소스의 스모크향이 지나치게 강하다는 게 중론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실제 고기와는 차이가 많이 나는 게 현실이다. 배양육도 현재 기술로는 실제 고기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가격이 비싸다. 기술개발 경쟁으로 가격이 빠르게 하락하고 있지만 아직은 실제 고기와 가격 차이가 너무 크다. 물론 지금의 기술 발전 속도를 보면 언젠가는 실제 고기 수준, 혹은 그 이하로 내려갈 가능성도 있다. 실제 고기와 비슷한 맛과 질감을 내는 것 역시도 숙제다. 식물성 고기보다는 실제 고기에 더욱 가깝지만 근육과 지방, 힘줄이 적절하게 결합된 고기를 재현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는 기름기 없는 살코기를 만들 수 있는 정도이고, 가공육에 적합한 정도다. 그래도 이 정도라도 지금보다 더 저렴하게, 즉 고기 생산비보다 더 적은 비용으로 대량생산할 수 있다면 적어도 공장식 축산의 딜레마를 일부는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종교나 문화에 따른 금기가 은근히 많은 음식이기도 하다.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힌두교는 소를 신성시하는 문화가 있어서 소고기를 먹지 않고, 이슬람교와 유대교는 돼지를 불결하게 여기서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닭고기, 양고기는 딱히 금기가 없는 편이지만 이슬람교나 유대교처럼 율법에 따라 도축한 고기만 먹도록 하는 경우도 있다.
각주
- ↑ 체육(體育)은 肉이 아니라 기를 육(育)을 사용한다.
- ↑ 물론 이미 부패해서 독소가 있으면 불에 익힌다고 다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냄새나 맛이 영 아니기 때문에 일부러 발효시키는 경우가 아니라면 이미 부패한 고기를 익혀 먹기는 힘들다.
- ↑ 영어로 '급료'을 뜻하는 단어 salary의 앞에 있는 sal-이 라틴어로 '소금'을 뜻한다.
- ↑ 피는 따로 받아서 선지로 활용한다. 서양도 블랙 푸딩을 비롯한 여러 가지 블러드 소시지가 있기 때문에 꼭 그냥 버리는 것은 아니다.
- ↑ "개고기 먹는 스위스인들…동물단체 금지 청원", 연합뉴스, 2014년 11월 26일.
- ↑ 짜파게티를 비롯한 짜장라면에는 짜장면의 돼지고기 건더기를 대체하는 필수요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