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화제: 두 판 사이의 차이
편집 요약 없음 |
편집 요약 없음 |
||
(같은 사용자의 중간 판 29개는 보이지 않습니다) | |||
1번째 줄: | 1번째 줄: | ||
물과 기름이 섞일 수 있게 해 주는 물질. 누구나 아는 바지만 물과 기름은 섞이지 않는다. 물과 기름을 아무리 열심히 섞어도 가만히 놓아 두면 둘은 분리된다. | 물과 기름이 섞일 수 있게 해 주는 물질. 누구나 아는 바지만 물과 기름은 섞이지 않는다. 물과 기름을 아무리 열심히 섞어도 가만히 놓아 두면 둘은 분리된다. 물은 수소와 산소가 결합한 것으로 산소의 전기음성도, 즉 전자를 끌어당기는 힘이 수소보다 크기 때문에 산소는 -극, 수소는 +극의 성질을 띠는데, 이를 '극성'분자라고 한다. 반면 기름의 주 성분은 탄소와 수소가 결합된 탄화수소로, 이 두 원소는 전기음성도가 비슷해서 극성을 띠지 않는, 즉 '무극성'분자다. 기름이 물에 녹기 위해서는 물 속의 산소(-)와 수소(+) 원자가 각자 기름 속의 반대 극성을 가진 원소를 끌어 당겨서 붙어야 하는데, 기름은 무극성이라 이게 안 되는 것이다. | ||
그런데 유화제가 들어가면 이 둘이 분리되지 않고 섞인다. 그러나 기름이 물에 녹는 용액 형태가 되는 것은 아니고 에멀션 형태로 섞인다. 즉 물 입자 사이사이에 기름 입자가 고르게 분포되는 것이다. 분자와 분자 단위로 고르게 분포되는 게 아니라 아주 작은 물방울과 아주 작은 기름방울이 섞여 있는 형태라고 보면 된다. 유화제는 친수성, 즉 물과 잘 어울리는 성분과 친유성, 즉 기름과 잘 어울리는 성분이 결합된 화합물이어서 물과 기름 양쪽을 분리되지 않도록 잡아 놓는 것. 즉, 용액은 두 분자가 만나 한몸이 된 것이라면, 에멀션은 두 원자가 한몸은 아니고 여전히 두몸이지만 서로 밧줄로 묶여 있어서 같이 돌아다녀야 하는 신세인데, 이 밧줄 구실을 하는 게 유화제인 셈이다. | |||
이렇게 유화제의 원리를 얘기하면 "뭐지? 세제에 들어가는 [[계면활성제]] 아닌가?" 싶을 수 있는데 정확하다! 알고 보면 세제에 들어가는 [[계면활성제]]도 유화제고 유화제가 [[계면활성제]]다. 세제나 치약 같은 데에 쓰이는, 즉 '세척'을 주요한 기능으로 하는 것은 [[계면활성제]]라고 부르고 식품이나 화장품에 들어가는 것, 즉 '에멀션'을 주요한 기능으로 하는 것을 유화제라고 부른다. 물론 식품이나 화장품, 세제 중에서도 인체에 직접 닿는 치약이나 샴푸 같은 곳에 들어가는 유화제나 [[계면활성제]]는 규제 당국에서 엄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성분을 정하고 있다. | |||
==천연 유화제== | |||
뭔가 안 좋은 식품첨가물 이미지가 있긴 하지만 우리가 먹는 식품에 자연스럽게 들어 있는 천연 유화제도 많다. 예를 들어 [[우유]]에는 3% 안팎의 지방이 들어 있는데, [[우유]]를 가만히 놔둬도 지방이 물과 분리되지 않는다.<ref>다만 갓 짜낸 [[우유]]는 지방(크림)이 뭉쳐져 있을 수 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우유]]는 휘저어서 덩어리를 없내는 균질화 과정을 거친다.</ref> [[우유]] 안에 들어 있는 [[카제인]]이 유화제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모유에도 역시 [[카제인]]이 들어 있다. 송아지나 젖먹이 아기나 성장을 위해서는 온갖 영양소가 필요하며 지방도 예외는 아닌데, 젖에 에멀션 형태로 고르게 섞여 있어야 섭취하기 좋으므로 유화제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모유나 [[우유]]의 색깔이 하얀 이유도 이 때문으로, 고르게 섞여 있는 미세한 기름방울이 빛을 산란시켜서 불투명하고 하얗게 보이는 것이다. [[우유]]에서 뽑아낸 [[버터]]도 많은 양의 기름과 적은 양의 수분이 유화제로 [[에멀션]] 상태를 이루고 있다.<ref>물 속에 기름이 분산되어 있는 [[우유]]와는 반대로 기름 속에 수분이 분산되어 있는 [[에멀션]] 형태다.</ref><ref>[https://www.scienceall.com/%EC%97%90%EB%A9%80%EC%85%98emulsion-2/ "과학백과사전 : 에멀션(emulsion)], 과학문화포털 사이언스올.</ref> [[콩]]이나 [[달걀]] 노른자에도 천연 유화제인 [[레시틴]]이 들어 있다. 오히려 레시틴은 혈중 콜레스테롤 감소 효과가 있는 건강기능성 물질로 인정 받는다.<ref>[http://www.soynet.org/Research/KiNeung.aspx?Contents=S_01_2_6.html&Tot=9&Cur=6 "대두영양 및 기능성성분"], 한국식품과학회 대두가공이용분과.</ref><ref>[[달걀]] 노른자에 [[콜레스테롤]]이 많다고 해서 기피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레시틴]] 성분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고 한다.</ref> | |||
==식품첨가물== | |||
물과 기름을 섞어주고 수분이 잘 증발되지 않도록 오래 잡아주는 특성이 있어서 식품첨가물로 자주 애용된다. 그리고 유해성 시비도 많다. [[우유]]에 들은 카제인이나 [[달걀]] 노른자에 들어 있는 [[레시틴]] 같은 천연 유화제는 별 시비가 안 되지만 화학 합성품의 경우 종종 시비에 걸린다. 심지어 카제인조차도 시비에 걸리는데 남양유업에서 [[커피믹스]]를 내놓으면서 카제인나트륨을 넣지 않았다고 다른 [[커피믹스]]들을 디스하는 바람에 마치 카제인나트륨과 카제인까지도 해로운 것처럼 인식되게 만들었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카제인은 해로운 물질도 아니고 이게 해롭다면 모유도 아기에게 해롭다는 이야기밖에 안 된다. [[맥주]]의 [[오리지널 그래비티]]처럼 문제도 아닌 걸 문제로 뻥튀기한 사례. | |||
[[버터]]를 흉내내는 [[마가린]]도 역시 비슷한 형태의 [[에멀션]] 상태이기 때문에 유화제를 필요로 한다. 식품첨가물에 대한 과다한 공포를 조장하는 일부 사람들은 '물 한 방울 안 쓰는 [[마가린]]에 유화제가 웬말이냐'고 주장하는데<ref>[http://m.food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3562 "최낙언의 진짜 첨가물 이야기 22. 유화제가 물과 기름을 섞는다고?"], 식품저널 foodnews, 2015년 1월 8일.</ref> 명백한 거짓말이다. [[마가린]]에도 [[버터]]와 비슷한 수준인 15% 정도 수분이 들어가며<ref>[https://fsi.seoul.go.kr/front/child/childBbsView.do?currPage=5&bbsSeq=1005&listSize=10&searchType=all&searchValu=&bbsCode=1001 "트랜스지방이야기 : 쇼트닝 마가린 그리고 경화유"], 서울특별시 어린이 식품안전정보.</ref> 소프트 [[마가린]]으로 갈수록 수분함량이 좀 더 늘어난다. 수분이 0.5% 이하인 [[쇼트닝]]에도 유화제가 들어가는데 일반용, 즉 [[튀김]]용으로 쓰는 [[쇼트닝]]에는 안 들어가고 제빵용에는 들어간다. 반죽에 들어가면 수분을 잡아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 |||
==제과 및 제빵== | |||
[[달걀]] 노른자에도 레시틴이 유화제 구실을 하기 때문에 수분과 유분이 잘 섞여 있다. 이런 특성을 요리에 종종 활용하는데 그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게 [[마요네즈]]. 기본으로 들어가는 세 가지 재료가 [[식용유]], [[식초]], 그리고 [[달걀]] 노른자인데 노른자에 들어 있는 레시틴의 유화 작용으로 [[식용유]]와 [[식초]]가 섞인다. 제과에도 [[달걀]]이 널리 쓰이는데, 특히 [[케이크]] 종류는 대부분 [[달걀]]의 유화제 작용이 없으면 만들 수가 없기 때문에 많이 넣는다. 달걀을 넣고 거품기로 매우 치면 많이 거품이 만들어지는데, 레시틴이 이 거품이 잘 없어지지 않도록 잡아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구웠을 때 수많은 공기구멍이 만들어져서 부드러운 식감을 준다. [[카스테라]] 같은 것들은 [[밀가루]]보다 [[설탕]]과 [[달걀]]이 더 많이 들어갈 정도.<ref>다만 대량생산하는 [[케이크]]류는 충분한 재료를 쓰기보다는 [[베이킹파우더]]를 사용해서 가열했을 때 [[이산화탄소]]가 발생해서 [[퀵 브레드|비슷한 효과]]를 낸다.</ref> | |||
제빵에도 유화제가 쓰이는데, [[빵]]을 구우면 처음에는 부드럽고 촉촉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수분이 증발하거나 이동하고 [[녹말]]이 변성하면서 딱딱하고 식감과 맛이 떨어지는데, 이것을 '노화'<ref>한자로는 弩化다. 老化가 아니다. 제빵용어인데 사전에도 안 나온다.</ref>라고 한다. 유화제를 사용해서 반죽하면 빵 안에 [[버터]]나 [[마가린]] 같은 기름 성분이 더욱 미세하고 고르게 분포하며, 수분을 좀더 잘 잡아두는 효과가 있어서 노화를 지연시키는 효과가 있다. 유화제를 쓰지 않은 [[바게트]]<ref>대량생산하는 싸구려 제품은 유화제를 쓸 수도 있겠지만 정통은 [[밀가루]], 물, [[소금]] 세 가지만을 써야 한다.</ref>와 같은 빵은 잘라 놓으면 금방 푸석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 |||
==화장품== | |||
화장품에도 많이 쓰인다. 유화제가 없다면 시중의 화장품들은 시간이 지나면 수분과 유분이 분리되었을 것이다. 최초로 유화제를 개발한 회사는 우리에게도 낯익은 니베아 크림으로 유명한 독일의 베이스도르프로, 상품명으로 '유세린(Eucerin)'을 썼다. 유화제 개발로 화장품은 큰 발전을 이루었다. 니베아보다 좀 상위 브랜드인, 같은 베이스도르프의 화장품 브랜드 유세린이 바로 여기서 따온 이름. | |||
==정말 그렇게 위험한가?== | |||
식품에 사용하는 유화제를 놓고 공포심을 자극하는 글들을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기름에 녹는 각종 화학물질과 유해물질이 몸 속에 잘 퍼지도록 한다는 식의 이야기가 나온다. 당장에 말이 안 되는 게, 그렇다면 우리는 태어났을 때 유화제가 들어 있는 모유나 분유부터 먹으면 안 된다. 그리고 [[우유]], [[유제품]], 콩, [[두유]], [[달걀]]도 모두 피해야 한다. 이런 음식이 건강에 해로운 음식인가?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모유나 [[우유]], [[유제품]]에는 천연 유화제인 [[카제인]]이 들어 있다. [[카제인]]은 [[단백질]] 보충제로도 쓰인다. [[두유]] 역시 콩에 [[레시틴]]이 들어 있기 때문에 [[우유]]처럼 물과 기름이 [[에멀션]] 상태로 섞여 있을 수 있다. 식품첨가물로 많이 사용하는 유화제 중 하나인 대두레시틴은 말 그대로 콩에서 추출한 [[레시틴]]인데, [[레시틴]]은 오히려 혈중 콜레스테롤 농도를 낮춰주는 효과를 인정 받고 있다. 뭐든 지나치면 좋을 게 없지만 유화제를 잔뜩 때려넣는다고 해도 뭐가 더 나아질 게 없기 때문에 필요한 만큼 적정량만 넣으면 되고, [[레시틴]]은 너무 많이 넣으면 또 특유의 냄새나 맛이 드러나서 오히려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 유화제가 가지는 기름, 즉 물과 기름이 [[에멀션]] 상태로 섞이는 그 기능을 가지고 인체에 유해하다고 보기는 힘들다. 가공식품은 온갖 첨가물들을 넣고 이것들이 수분과 잘 섞이도록 유화제를 넣는 것이 문제일 수는 있어도 유화제 그 자체를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 |||
다만 일부 성분은 유화제라서가 아니라 그 성분에 다른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므로 주의할 필요가 있다. 카복시메틸셀룰로스와 폴리소르베이트-80 같은 물질은 장내 미생물 균형을 깨뜨릴 수 있다는 실험 결과가 있다.<ref>[http://dongascience.donga.com/news.php?idx=6302 "식품첨가물 유화제 알고보니…"], 2015년 3월 9일.</ref> 하지만 이 실험은 사람이 아닌 쥐를 대상으로 한 것이라 사람에게 실제로 비슷한 영향이 있는지는 연구되지 않았으며, 이 실험 말고는 딱히 뒷받침할 만한 연구나 실험 결과도 보이지 않으므로 이 실험 하나를 가지고 이들 두 가지 유화제가 장 질환을 일으킬 위험한 물질이라고 낙인 찍기에는 근거가 빈약하다. 또한 유화제로 쓰이는 특정 물질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지, 유화제 자체가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당장 장내 미생물 균형이고 뭐고가 거의 백지 상태인 갓난아기가 유화제가 들어 있는 모유나 분유를 먹는다면 대체 어떻게 되는 것인가? | |||
{{각주}} |
2021년 10월 24일 (일) 18:13 기준 최신판
물과 기름이 섞일 수 있게 해 주는 물질. 누구나 아는 바지만 물과 기름은 섞이지 않는다. 물과 기름을 아무리 열심히 섞어도 가만히 놓아 두면 둘은 분리된다. 물은 수소와 산소가 결합한 것으로 산소의 전기음성도, 즉 전자를 끌어당기는 힘이 수소보다 크기 때문에 산소는 -극, 수소는 +극의 성질을 띠는데, 이를 '극성'분자라고 한다. 반면 기름의 주 성분은 탄소와 수소가 결합된 탄화수소로, 이 두 원소는 전기음성도가 비슷해서 극성을 띠지 않는, 즉 '무극성'분자다. 기름이 물에 녹기 위해서는 물 속의 산소(-)와 수소(+) 원자가 각자 기름 속의 반대 극성을 가진 원소를 끌어 당겨서 붙어야 하는데, 기름은 무극성이라 이게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유화제가 들어가면 이 둘이 분리되지 않고 섞인다. 그러나 기름이 물에 녹는 용액 형태가 되는 것은 아니고 에멀션 형태로 섞인다. 즉 물 입자 사이사이에 기름 입자가 고르게 분포되는 것이다. 분자와 분자 단위로 고르게 분포되는 게 아니라 아주 작은 물방울과 아주 작은 기름방울이 섞여 있는 형태라고 보면 된다. 유화제는 친수성, 즉 물과 잘 어울리는 성분과 친유성, 즉 기름과 잘 어울리는 성분이 결합된 화합물이어서 물과 기름 양쪽을 분리되지 않도록 잡아 놓는 것. 즉, 용액은 두 분자가 만나 한몸이 된 것이라면, 에멀션은 두 원자가 한몸은 아니고 여전히 두몸이지만 서로 밧줄로 묶여 있어서 같이 돌아다녀야 하는 신세인데, 이 밧줄 구실을 하는 게 유화제인 셈이다.
이렇게 유화제의 원리를 얘기하면 "뭐지? 세제에 들어가는 계면활성제 아닌가?" 싶을 수 있는데 정확하다! 알고 보면 세제에 들어가는 계면활성제도 유화제고 유화제가 계면활성제다. 세제나 치약 같은 데에 쓰이는, 즉 '세척'을 주요한 기능으로 하는 것은 계면활성제라고 부르고 식품이나 화장품에 들어가는 것, 즉 '에멀션'을 주요한 기능으로 하는 것을 유화제라고 부른다. 물론 식품이나 화장품, 세제 중에서도 인체에 직접 닿는 치약이나 샴푸 같은 곳에 들어가는 유화제나 계면활성제는 규제 당국에서 엄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성분을 정하고 있다.
천연 유화제
뭔가 안 좋은 식품첨가물 이미지가 있긴 하지만 우리가 먹는 식품에 자연스럽게 들어 있는 천연 유화제도 많다. 예를 들어 우유에는 3% 안팎의 지방이 들어 있는데, 우유를 가만히 놔둬도 지방이 물과 분리되지 않는다.[1] 우유 안에 들어 있는 카제인이 유화제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모유에도 역시 카제인이 들어 있다. 송아지나 젖먹이 아기나 성장을 위해서는 온갖 영양소가 필요하며 지방도 예외는 아닌데, 젖에 에멀션 형태로 고르게 섞여 있어야 섭취하기 좋으므로 유화제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모유나 우유의 색깔이 하얀 이유도 이 때문으로, 고르게 섞여 있는 미세한 기름방울이 빛을 산란시켜서 불투명하고 하얗게 보이는 것이다. 우유에서 뽑아낸 버터도 많은 양의 기름과 적은 양의 수분이 유화제로 에멀션 상태를 이루고 있다.[2][3] 콩이나 달걀 노른자에도 천연 유화제인 레시틴이 들어 있다. 오히려 레시틴은 혈중 콜레스테롤 감소 효과가 있는 건강기능성 물질로 인정 받는다.[4][5]
식품첨가물
물과 기름을 섞어주고 수분이 잘 증발되지 않도록 오래 잡아주는 특성이 있어서 식품첨가물로 자주 애용된다. 그리고 유해성 시비도 많다. 우유에 들은 카제인이나 달걀 노른자에 들어 있는 레시틴 같은 천연 유화제는 별 시비가 안 되지만 화학 합성품의 경우 종종 시비에 걸린다. 심지어 카제인조차도 시비에 걸리는데 남양유업에서 커피믹스를 내놓으면서 카제인나트륨을 넣지 않았다고 다른 커피믹스들을 디스하는 바람에 마치 카제인나트륨과 카제인까지도 해로운 것처럼 인식되게 만들었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카제인은 해로운 물질도 아니고 이게 해롭다면 모유도 아기에게 해롭다는 이야기밖에 안 된다. 맥주의 오리지널 그래비티처럼 문제도 아닌 걸 문제로 뻥튀기한 사례.
버터를 흉내내는 마가린도 역시 비슷한 형태의 에멀션 상태이기 때문에 유화제를 필요로 한다. 식품첨가물에 대한 과다한 공포를 조장하는 일부 사람들은 '물 한 방울 안 쓰는 마가린에 유화제가 웬말이냐'고 주장하는데[6] 명백한 거짓말이다. 마가린에도 버터와 비슷한 수준인 15% 정도 수분이 들어가며[7] 소프트 마가린으로 갈수록 수분함량이 좀 더 늘어난다. 수분이 0.5% 이하인 쇼트닝에도 유화제가 들어가는데 일반용, 즉 튀김용으로 쓰는 쇼트닝에는 안 들어가고 제빵용에는 들어간다. 반죽에 들어가면 수분을 잡아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제과 및 제빵
달걀 노른자에도 레시틴이 유화제 구실을 하기 때문에 수분과 유분이 잘 섞여 있다. 이런 특성을 요리에 종종 활용하는데 그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게 마요네즈. 기본으로 들어가는 세 가지 재료가 식용유, 식초, 그리고 달걀 노른자인데 노른자에 들어 있는 레시틴의 유화 작용으로 식용유와 식초가 섞인다. 제과에도 달걀이 널리 쓰이는데, 특히 케이크 종류는 대부분 달걀의 유화제 작용이 없으면 만들 수가 없기 때문에 많이 넣는다. 달걀을 넣고 거품기로 매우 치면 많이 거품이 만들어지는데, 레시틴이 이 거품이 잘 없어지지 않도록 잡아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구웠을 때 수많은 공기구멍이 만들어져서 부드러운 식감을 준다. 카스테라 같은 것들은 밀가루보다 설탕과 달걀이 더 많이 들어갈 정도.[8]
제빵에도 유화제가 쓰이는데, 빵을 구우면 처음에는 부드럽고 촉촉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수분이 증발하거나 이동하고 녹말이 변성하면서 딱딱하고 식감과 맛이 떨어지는데, 이것을 '노화'[9]라고 한다. 유화제를 사용해서 반죽하면 빵 안에 버터나 마가린 같은 기름 성분이 더욱 미세하고 고르게 분포하며, 수분을 좀더 잘 잡아두는 효과가 있어서 노화를 지연시키는 효과가 있다. 유화제를 쓰지 않은 바게트[10]와 같은 빵은 잘라 놓으면 금방 푸석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화장품
화장품에도 많이 쓰인다. 유화제가 없다면 시중의 화장품들은 시간이 지나면 수분과 유분이 분리되었을 것이다. 최초로 유화제를 개발한 회사는 우리에게도 낯익은 니베아 크림으로 유명한 독일의 베이스도르프로, 상품명으로 '유세린(Eucerin)'을 썼다. 유화제 개발로 화장품은 큰 발전을 이루었다. 니베아보다 좀 상위 브랜드인, 같은 베이스도르프의 화장품 브랜드 유세린이 바로 여기서 따온 이름.
정말 그렇게 위험한가?
식품에 사용하는 유화제를 놓고 공포심을 자극하는 글들을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기름에 녹는 각종 화학물질과 유해물질이 몸 속에 잘 퍼지도록 한다는 식의 이야기가 나온다. 당장에 말이 안 되는 게, 그렇다면 우리는 태어났을 때 유화제가 들어 있는 모유나 분유부터 먹으면 안 된다. 그리고 우유, 유제품, 콩, 두유, 달걀도 모두 피해야 한다. 이런 음식이 건강에 해로운 음식인가?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모유나 우유, 유제품에는 천연 유화제인 카제인이 들어 있다. 카제인은 단백질 보충제로도 쓰인다. 두유 역시 콩에 레시틴이 들어 있기 때문에 우유처럼 물과 기름이 에멀션 상태로 섞여 있을 수 있다. 식품첨가물로 많이 사용하는 유화제 중 하나인 대두레시틴은 말 그대로 콩에서 추출한 레시틴인데, 레시틴은 오히려 혈중 콜레스테롤 농도를 낮춰주는 효과를 인정 받고 있다. 뭐든 지나치면 좋을 게 없지만 유화제를 잔뜩 때려넣는다고 해도 뭐가 더 나아질 게 없기 때문에 필요한 만큼 적정량만 넣으면 되고, 레시틴은 너무 많이 넣으면 또 특유의 냄새나 맛이 드러나서 오히려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 유화제가 가지는 기름, 즉 물과 기름이 에멀션 상태로 섞이는 그 기능을 가지고 인체에 유해하다고 보기는 힘들다. 가공식품은 온갖 첨가물들을 넣고 이것들이 수분과 잘 섞이도록 유화제를 넣는 것이 문제일 수는 있어도 유화제 그 자체를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일부 성분은 유화제라서가 아니라 그 성분에 다른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므로 주의할 필요가 있다. 카복시메틸셀룰로스와 폴리소르베이트-80 같은 물질은 장내 미생물 균형을 깨뜨릴 수 있다는 실험 결과가 있다.[11] 하지만 이 실험은 사람이 아닌 쥐를 대상으로 한 것이라 사람에게 실제로 비슷한 영향이 있는지는 연구되지 않았으며, 이 실험 말고는 딱히 뒷받침할 만한 연구나 실험 결과도 보이지 않으므로 이 실험 하나를 가지고 이들 두 가지 유화제가 장 질환을 일으킬 위험한 물질이라고 낙인 찍기에는 근거가 빈약하다. 또한 유화제로 쓰이는 특정 물질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지, 유화제 자체가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당장 장내 미생물 균형이고 뭐고가 거의 백지 상태인 갓난아기가 유화제가 들어 있는 모유나 분유를 먹는다면 대체 어떻게 되는 것인가?
각주
- ↑ 다만 갓 짜낸 우유는 지방(크림)이 뭉쳐져 있을 수 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우유는 휘저어서 덩어리를 없내는 균질화 과정을 거친다.
- ↑ 물 속에 기름이 분산되어 있는 우유와는 반대로 기름 속에 수분이 분산되어 있는 에멀션 형태다.
- ↑ "과학백과사전 : 에멀션(emulsion), 과학문화포털 사이언스올.
- ↑ "대두영양 및 기능성성분", 한국식품과학회 대두가공이용분과.
- ↑ 달걀 노른자에 콜레스테롤이 많다고 해서 기피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레시틴 성분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고 한다.
- ↑ "최낙언의 진짜 첨가물 이야기 22. 유화제가 물과 기름을 섞는다고?", 식품저널 foodnews, 2015년 1월 8일.
- ↑ "트랜스지방이야기 : 쇼트닝 마가린 그리고 경화유", 서울특별시 어린이 식품안전정보.
- ↑ 다만 대량생산하는 케이크류는 충분한 재료를 쓰기보다는 베이킹파우더를 사용해서 가열했을 때 이산화탄소가 발생해서 비슷한 효과를 낸다.
- ↑ 한자로는 弩化다. 老化가 아니다. 제빵용어인데 사전에도 안 나온다.
- ↑ 대량생산하는 싸구려 제품은 유화제를 쓸 수도 있겠지만 정통은 밀가루, 물, 소금 세 가지만을 써야 한다.
- ↑ "식품첨가물 유화제 알고보니…", 2015년 3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