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김밥
김밥의 일종. 다른 김밥은 김 위에 밥과 함께 여러 가지 재료를 올려놓고 말아내는 것과 달리 충무김밥은 그냥 밥으로만 만다. 김이나 밥에 참기름도 안 바른다. 굵은 손가락처럼 밥을 김에 말고 대신 무김치와 오징어무침을 반찬으로 따로 내준다. 여기에 시래기 된장국을 같이 주는 게 정석.
충무김밥의 유래는 경상남도 통영시 충무항. 뱃사람들은 짧게는 하루 길게는 며칠씩 뱃일을 나가는데 간편하게 끼니를 해결하자면 김밥만한 것도 별로 없다. 그래서 항구 근처에는 김밥을 머리에 이고 다니면서 뱃사람들에게 파는 장사꾼들이 많았다. 문제는 특히 날이 더울 때면 김밥의 속재료가 상한다. 속재료가 상하면 밥까지 금방 쉬어버린다. 배 위에서 탈이 나면 바로 병원으로 갈 수도 없으니 난감한 상황. 그러다가 역발상이 나왔다. '그러면 속재료를 안 넣고 밥만 김에 말면 되잖아?'
물론 밥과 김만 있는 김밥을 꾸역꾸역 먹기는 힘들고 당연히 영양도 꽝이다. 그래서 나오는 반찬이 충무항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던 재료인 주꾸미와 홍합을 이용한 무침과 무김치였다. 그 지역에서 구하기 쉬운 재료였을 것이고 금방 상하지도 않으니 충무항 뱃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그 뒤에 홍합은 빠지고 주꾸미는 운송 발달로 가격이 확 싸진 오징어로 바뀌었다. 여기에 어묵이 들어갔다. 싸잖아. 그렇게 지역에서는 자리를 잡았지만 전국구 진출은 그보다 한참 뒤였다.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고 5.18을 유혈진압한 1년 뒤에 정부 주도로 국풍 81이란 대규모 문화 이벤트를 만드는데 각지의 먹을거리들도 여기에 판을 벌렸다. 이 행사에서 충무김밥이 대박을 치면서 단숨에 전국구 음식으로 발돋움한다.
통영에 가면 물론 여기저기에 충무김밥집이 자리를 잡고 있는데, 어느 집이 원조냐가 좀 모호하다. 원래는 강구안 여객터미널에 원조집이 있었는데 여객터미널이 없어져서 이사 가는 과정에서 세 명의 할머니가 각자 가게를 냈기 때문. 그런데 세 집 다 예전만 못하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어느 집이든 역사가 오래되고 대를 잇다 보면 듣는 소리이긴 하다. 옛날 거를 어디서 구해다가 비교 시식을 해 볼 수도 없는 일이고... 그래도 늘 드나들던 단골이라면 맛 변화를 알아차릴 수는 있을 것이다. 재료가 수입산이나 싸구려로 바뀌었다든지 할 수 있으니. 근데 충무김밥이 원래 고급 음식은 아니잖아. 아니야, 아래 명동 얘기를 보면 고급음식이다.
서울 명동에도 충무김밥집이 있다. 꽤 인기가 있어서 명동을 대표하는 오랜 맛집 가운데 하나로 일본인 관광객의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다. 원래는 두 업소가 경쟁하고 있었는데 한 곳만 살아남아서 명동 일대에 분점을 여러 개 냈다. 다만 통영 쪽 사람들은 이게 무슨 충무김밥이냐, 맛이 완전히 다르다고 불만이다. 통영 쪽 충무김밥은 오징어무침에 어묵과 부추가 들어가는데 명동의 충무김밥은 오로지 오징어 뿐이다. 그리고 통영보다 맛이 티나게 달다. 그런데 원래 어떤 지역에 뿌리 박은 음식이 다른 지역으로 가면 그 동네 입맛에 맞춰서 변하는 현상은 충무김밥만이 아니라 흔히 나타난다. 제일 불만은 더럽게 비싼 가격. 2015년 기준으로 무려 7천원이니까, 통영 시세의 두 배다. 2019년에는 9천으로 또 올렸다. 이러다가 1인분에 1만 원 할 날이 머지 않았다. 성인 남자라면 1인분 가지고는 모자라고 2인분은 먹어야 양이 차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거의 2만 원에 육박하는 돈을 줘야 할 판이다. 그나마 좋은 점이 있다면 오징어나 무김치를 넉넉하게 준다. 직원들이 돌아다니면서 반찬이 모자라는지 보고 알아서 더 준다. 사실 통영 충무김밥도 옛날에는 반찬을 넉넉하게 주었다고 한다. 감밥을 다 먹고도 남아서 싸가지고 가서 집 반찬으로 먹을 정도였다는데, 점점 줄더니 이제는 김밥 먹으면 딱 맞을 정도로만 준다.
아무튼 명동은 물론이고 통영의 충무김밥도 지나치게 비싸다는 논란이 많다. 무려 9천 원이 되어버린 명동의 경우는 뭐... 사실 8천 원에 훨씬 넉넉하고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게 많다. 당장에 부대찌개나 김치찌개도 1인분에 7~8천원선이다. 통영도 5~6천 원에 달랑 김밥 8개다 보니까 한참 먹성 좋은 젊은 사람들에게는 1인분으로는 허전하다. 재료라고 할 것도 상당히 단촐한 편이다 보니 원가 대비 지나치게 바가지 아니냐는 논란이 많다. SBS에서 스브스뉴스를 통해 충무김밥이 비싼 이유에 관해 살펴보았는데[1], 가장 큰 이유는 인건비라고 한다. 일반 김밥은 김 전지 한 장에 밥과 재료를 올리고 한 번에 말아내지만 충무김밥은 작은 김밥을 일일이 말아서 내야 하므로 비쌀 수밖에 없다는 것, 하지만 설득력이 떨어지는 게, 일반 김밥은 김에다가 밥을 펼치고, 속재료를 하나씩 차곡차곡 올리고, 크게 말아내야 하고 모양을 잡은 뒤에 칼로 썰어야 하는 여러 가지 단계를 거쳐야 한다. 충무김밥이 과정이 훨씬 단순하기 때문에 숙련된 사람은 금방금방 1인분을 말아낸다. 8개 마는 게 김밥 한 줄 마는 것에 비해서 엄청난 인건비가 들어가는 게 아니다. 게다가 요즘은 충무김밥 말아주는 기계까지 있어서 잘 팔리는 집은 기계를 쓰기도 한다.
다만 맛도 없는데 가격만 비싸다면 진즉 도태되었을 것이다. 비싸네 어쩌네 해도 여전 사먹는 사람들이 많고, 장사가 잘 된다는 건 어쨌거나 맛이 있기 때문에 그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찾는다는 뜻. 그리고 외국 음식은 더 비싼 것도 잘만 사먹으면서 충무김밥만 그러느냐는 반론도 가능하다. 웬만한 파스타 전문점에서 1만 원을 훌쩍 넘는 알료 에 올리오 파스타를 생각해 보자. 뭐가 들어가나? 스파게티, 올리브유, 마늘, 소금, 그 정도가 주 재료다. 원가로 따지면 충무김밥보다도 못할 수 있지만 만원 훌쩍 넘는 가격으로도 잘만 파는 곳들이 한두 군데인가? 원가는 원가고, '맛'에 지불하는 가치도 인정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김밥'이라는 이름 때문에 저렴한 음식이어야 한다는 이미지가 결부되긴 하지만 그래도 엄연히 하나의 명물 음식으로 특화된 만큼 분식집 김밥과 대접은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도 좀 너무하다는 생각은 든다.
부산에 가도 충무김밥 파는 곳이 도처에 있다. 통영에서 가까워서 그런지 오징어무침에 통영처럼 부추와 어묵이 들어가 있다. 부산 이곳저곳에서 충무김밥 파는 곳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고 은근 맛있는 집들도 여기 저기 있고, 지역 체인도 있다. 아예 남포동 세명약국 옆 골목은 충무김밥과 비빔당면을 주로 하는 노점들이 주욱 펼쳐져 있다.
동해 쪽에서 오징어가 잘 안 잡히고 값이 오르자 무침에서 오징어의 비율이 점점 줄어들고 그 자리를 어묵이나 다른 어포가 채우고 있다. 이러다가는 오징어무침이 아니라 어묵무침이라고 해야 할 판.
각주
- ↑ "가격은 부담스럽지만…그만큼 값을 하는 '충무 김밥'", SBS, 2017년 10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