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발
돼지의 다리 부위를 간장을 주 재료로 한 양념국물에 삶은 뒤 썰어서 내는 음식. 돼지족발이라고도 하지만 그냥 족발이라고 하면 돼지족발을 뜻한다. 참고로 소는 우족이라고 하며 닭도 닭발을 음식으로 만들어 먹는다. 족발이라는 이름 때문에 돼지의 발이 재료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발목에서 무릎 사이 부위를 쓰므로 발보다는 다리에 가깝다. 단 제주도의 아강발은 무릎에서 발가락이 있는 부분까지 사용하므로 '발'이 들어간다.
족발의 족은 발 또는 다리를 뜻하는 말이라서 사실 겹말이다. 하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쓰여오던 말이라 표준어로 쓰이고 있다.
껍질을 벗기지 않고 삶아서 만들며 쫄깃한 식감과 함께 콜라겐이 많아서 인기가 많다. 삶아서 만드므로 칼로리도 낮은 편. 먹을 때는 그냥 먹거나 새우젓을 찍어 먹는다.
옛 기록을 보면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 족탕이란 음식이 나오는데, 돼지족이나 우족을 이용해 만든 음식으로 물을 많이 부어 끓인 뒤 장과 후추, 계피를 넣어 한소끔 다시 끓이는 요리로 족발의 조상쯤으로 치기도 한다.[1] 하지만 이건 탕이고, 지금 우리가 먹는 족발 요리는 황해도 또는 평안도 쪽에서 먹던 방식의 족발에 더해 중국 쪽에서 오향에 삶은 수육으로 먹는 방식이 한국으로 흘러들어오면서 한국인 입맛에 안 맞는 향신료는 빠지면서 개량을 거듭했다. 오향장육 전문점에 가 보면 족발을 오향에 삶아서 요리한 오향족발이라는 것도 있지만 이건 족발 좋아하는 한국인들의 취향에 맞춘 것이다. 중국은 고기라면 기본이 돼지고기라고 할 정도로 돼지고기를 좋아하고, 족발 역시 다양한 방법으로 요리해 먹었지만 한국의 족발은 중국의 족발 요리보다는 오향장육에 영향을 받았다.
옛날에 비해 많이 오르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가격대비 푸짐한 양을 자랑한다. 족발집에서 그릇에 담아 낼 때는 압도적인 볼륨감 때문에 양이 엄청 많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밑에 큼직한 돼지 다리뼈를 깔아놓기 때문에 보기보단 양이 적다. 회 밑에 무채나 천사채를 깔아서 양이 많게 보이는 것과 비슷한 수법. 배달 시켜 먹을 때는 이 큼직한 뼈를 처지하는 것도 고민이다. 그냥 주문할 때 뼈는 빼달라고 하자.
야식계에서는 보쌈과 함께 존재감을 과시하는 요리다. 배달 야식으로 족발과 보쌈을 함께 취급하는 곳도 많으며 원래는 족발이나 보쌈 중 하나만 하던 전문점이 세를 확장하고 프랜차이즈를 내면서 배달 수요를 잡기 위해 둘 다 하는 곳들도 있다. 대표 사례라 할만한 데가 원래 보쌈만 하던 원할머니보쌈. 본점은 여전히 보쌈만 하지만 체인점은 족발도 취급한다.
가장 인지도가 높은 지역이라면 역시 서울 장충동. 장충동 일대에 빈 적산가옥이 많아서 여기에 6.25 때 북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이 들어가 살면서 피난민촌이 만들어졌다. 피난민들이 돈이 많았을 리가 만무하고, 저렴한 음식들을 만들어 파는 가게들이 하나 둘 생겼다. 60년대 들어 돼지고기를 일본에 수출하면서 일본인들은 먹지 않는 족발이 국내에 싸게 풀렸고, 이것으로 음식을 만들어 팔았다. 사실 장충동만 족발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재래시장에도 족발을 파는 곳들이 있었는데 장충동 족발이 본격적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한 건 6, 70년대에 당시 가장 인기 있었던 스포츠인 프로레슬링의 영향이 컸다. 큰 경기는 당시 가장 큰 실내체육관이었던 장충체육관에서 열렸고, 여기에 오는 관객들을 대상으로 좌판을 펼쳐놓고 족발을 팔면서 장충동 족발이 인기를 얻고 족발 골목이 형성되었다고 한다.[2]
장충동에는 지금도 여러 족발집이 모여있으며 그 중에서도 원조로 치는 곳은 방송에도 여러 번 나온 평안도 족발집의 창업자 이경순 씨라고 한다. 고향에서 먹던 족발과 중국식 오향족발을 합쳐서 개발한 것이라고. 이 동네에서 유명한 집들의 맛 비결로는 수십 년간 써 온 족발 삶는 국물을 꼽는다 즉 수십 년간 계속 국물을 버리지 않고 족발을 삶으면서 모자라는 양념이나 물은 채워 가면서 계속 사용하는 것. 이곳 말고도 족발 좀 한다는 집은 이런 식으로 양념 국물을 계속 사용하는 집들이 꽤 있다. 공덕시장 족발집들도 가격 대비 푸짐한 양으로 인기가 많다.
족발은 종류 다양성이 그다지 많지는 않은데, 그래도 파생된 것으로는 아주 매운 양념을 쓴 불족발, 그리고 냉채와 함께 먹는 냉채족발 같은 것이 있다.
제주도는 족발을 아강발이라고 부른다. '아강'이라는 이름 때문에 새끼돼지의 다리를 사용한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지만 실제로는 그냥 족발을 뜻한다.[3]
돼지 다리를 쓴 외국 요리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독일의 슈바인스학세. 종종 족발과 비교되는 음식이기도 하고, 한국에서는 농담 반으로 독일 족발이라고도 부르지만 조리법이나 먹는 법은 차이가 크다. 족발은 거의 발끝까지 쓰지만 슈바인스학세는 발목 바로 위까지만 쓴다. 족발은 삶아서 만들어 썰어서 내지만 슈바인스학세는 구워서 만들어 통으로 내서 나이프로 잘라 먹는다. 족발은 여러 명이 나눠 먹는 음식이지만 슈바인스학세는 각자 먹는 게 기본이다.
이탈리아와 스페인도 돼지 다리를 음식으로 먹는데 만드는 방법은 전혀 다르다. 다리를 통으로 염장한 다음 장기간에 걸쳐 건조 발효시킨 생햄을 만들어서 먹는데 이탈리아에서 만든 것은 프로슈토, 스페인에서 만든 것은 하몽이라고 부른다. 다리 한 짝을 사려면 100만 원은 줘야 할 정도로 비싸다.
이계진 전 KBS 아나운서가 쓴 <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딸꾹!>을 보면 정보 프로그램에서 한의사가 출연해서 건강 상담을 하는데 돼지 족 같은 데다가 약재를 넣어서 고아 먹으라고 이야기를 하고 아나운서가 확인차 반복해서 이야기하다 보니 '돼지 족같은 데...' 때문에 분위기가 이상해졌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그런 면에서는 겹말이라도 족발이 나을 수도 있겠다.
각주
- ↑ "맛은 쫄깃쫄깃, 피부는 탱탱: 족발", 시정종합일간지 <서울사랑>, 2016년 10월.
- ↑ "족발 골목은 왜 장충동일까", <시사IN>, 2011년 12월 3일.
- ↑ 유승완, "제주도만의 족발, 아강발을 아시나요?", 지역N문화, 한국문화원연합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