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엇국
북어로 끓인 국. 발음하면 '부거꾹'이 되므로 북어 다음에 사이시옷이 들어가는 게 표준 표기법이다. 그러나 음식점 메뉴에 이렇게 제대로 쓰는 곳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되고 거의 '북어국'이라고 쓴다. 이는 '순댓국', '선짓국'도 비슷한 실정이다.
일단 길게 찢은 북어는 당연히 들어가고, 이 녀석을 참기름에 볶은 다음 물을 붓고 마늘, 무, 파는 일단 기본이다. 간은 소금과 국간장을 함께 사용한다. 새우젓을 넣어서 풍미를 더 진하게 만들기도 하는데, 새우젓을 쓸 거라면 갈아서 새우가 안 보이게 하는 게 더 낫다. 많이 넣으면 새우젓의 강한 향으로 북엇국의 시원한 맛이 반감되므로 주의하자. 국이 끓을 때쯤에 두부를 넣고 마지막에 달걀물을 풀어서 마무리. 대파, 콩나물이나 양파, 감자 같은 재료를 더 넣는 곳도 있다. 고춧가루는 안 넣는다. 칼칼하게 만들고 싶으면 청양고추를 약간 넣자. 보통 국에 두부를 넣을 때에는 두부부침 비슷하게 납작한 직사각형 모양으로 넣는 경우가 많은데, 북엇국은 작은 깍두기 모양으로 썰어 넣는 곳이 많다.
그런데 이것만으로 국을 끓여보면 어째 음식점에서 파는 국물 맛이 안 난다. 음식점 북엇국은 북어만으로는 국물이 진하지 않아서 북어 말고도 육수 재료를 더 넣어야 한다. 육수로는 북어 대가리와 멸치가 즐겨 쓰이는 재료다. 국물내기용으로 북어 대가리만 아예 따로 모아서 팔기도 한다. 사골국물을 쓰는 집도 있다. 집에서 끓일 때도 북어 대가리나 멸치로 육수를 내서 여기에 북엇국을 끓이면 맛이 좀 더 근사해진다. 안 되면 다시다. 쌀뜨물도 즐겨 사용되는 재료로 역시 좀 더 걸쭉하고 구수한 맛을 더하는 효과를 낸다.
해장국으로 널리 애용된다. 일단 국물이 시원하고 담백한 편인 데다가 자극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해장국 중에 은근히 기름지고 매워서 자극적인 게 많다 보니 해장은커녕 오히려 속을 더 버리게 만들 수 있는데, 북엇국은 부드러운 편이다. 기능으로 본다면 북어에 간 보호 효과가 있는 메티오닌이 풍부해서 알코올 분해 하느라 떡이 되어 버린 간을 달래주는 효과가 있다. 여기에 콩나물까지 들어가면 해장 파워가 더더욱 업된다. 황태콩나물해장국을 파는 해장국 전문점도 종종 찾아 볼 수 있다.[1]
지금은 찢어놓은 상태로 나오는 북어채도 쉽게 살 수 있지만 옛날에는 통북어를 사다가 찢어야 했다. 그런데 통북어가 워낙에 단단한지라 손으로 찢는 건 불가능하다. 방망이로 마구 두들겨 패서 조직을 어느 정도 찢어 놔야 손질을 할 수 있었는데, 옛날 집에 있던 도구 중에서 가장 좋았던 게 바로 다듬이 방망이. 다듬잇돌에 북어를 올려 놓고 다듬이 방망이로 팡팡 두들겨 패는 게 어머니들의 스트레스 해소법 중에 하나였다. 남편이 술이 떡이 돼서 들어오면 다음날 해장국으로 쓸 북어를 팡팡 두들겨 패면서 끓는 속을 달랬을 듯. 남편 얼굴이 북어대가리처럼 생겼으면 더욱 리얼한 대리 만족.
좀 더 급이 높은 것은 황태로 끓인 것. 따로 황태국이라고 이름 붙여 파는데 재료는 북어가 황태로 바뀌는 것 말고는 똑같다. 꾹 끓여 놓은 것만 봐서는 북어인지 황태인지 알기가 쉽지 않으니 값싼 북어로 끓여 놓고서 황태국이라고 파는 치사한 곳들도 있다. 제대로 만든 황태라면 조직이 단단한 곳이 거의 없이 스펀지처럼 잘 풀어헤쳐진 조직이 국물을 듬뿍 먹고 있을 것이다. 요즈음은 수온 변화 때문에 명태 서식지가 북쪽으로 많이 올라가서 동해안에서 명태 보기가 힘들다 보니 북어든 황태든 주로 러시아산을 쓴다. 심지어 국내에서 전통 방식으로 만드는 황태조차도 명태 자체의 원산지는 러시아산이 많다.
하지만 아이들은 싫어하는 편이다. 입 짧은 아이들은 해산물을 잘 못 먹는 편이기도 하고, 북어 특유의 냄새나 약간 단단한 식감도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편은 아니다. 가공과정에서 미처 골라내지 못한 생선가시라도 씹거나 입 안을 찔리는 날에는 트라우마가 장난 아니다. 하긴 술도 못 먹는데 니들이 해장국 맛을 알겠냐.
재료가 간단한 편이고 왕창 끓이기도 편해서 구내식당에서도 심심찮게 나오는 음식이고 장례식장에서도 육개장과 함께 꽤 자주 볼 수 있는 음식이다. 아무래도 해장국이라는 인식이 많다 보니 특히 아침 시간에 많이 나오는 편이다.
즉석국이나 국밥으로도 나와 있는데 미역국, 육개장과 함께 인기가 좋은 편이다. 건조블럭 형태로 만든 다음에 물만 붓고 끓여 바로 먹을 수 있는 즉석국 형태로도 나와 있는데 어차피 주 재료인 북어 자체가 원래 명태를 말린 것이라 큰 위화감이 없다. 아침에 해장은 해야겠고 국 끓이는 귀찮은 사람들에게는 딱이다. 항공기 기내에서도 쌈밥이나 비빔밥 같은 한식 기내식에 딸려 나오는 국물로 북엇국이 절찬리에 애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