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게 보면 밥에 다른 재료와 소스를 넣고 비벼서 먹는 음식.
하지만 좀 더 좁은 의미로 보면 밥 위에 여러 가지 나물 및 채소, 고기와 같은 재료들을 올린 후 주로 고추장을 베이스로 한 소스와 약간의 참기름을 넣고 비벼서 먹는 음식이다. 매운맛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고추장 대신 간장을 넣어서 먹기도 한다.[1] 고추 자체가 임진왜란 이후에야 들어온 것이고, 그 전부터 비빔밥은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간장 쪽이 더 오래됐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덮밥과 비슷한 음식으로 볼 수 있지만 덮밥은 꼭 비벼서 먹는 것을 전제로 하지는 않는 반면, 비빔밥은 비벼 먹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면에서 차이가 있다. 덮밥 중에서도 카레라이스 같은 것도 비벼 먹지만 일본에서는 그때 그때 먹을만큼만 비벼 먹거나 아예 비비지 않고 먹는 반면,[2] 비빔밥은 전체를 한꺼번에 잘 비벼서 먹는다. 비빔밥 문화가 주종이다 보니 한국에서는 덮밥도 비빔밥처럼 한번에 비벼 먹는 사람들이 많다.
역사
역사는 꽤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문헌에 처음 언급된 것은 조선조 때로, 조선조 마지막 임금인 순조 때 편찬된 동국세시기(1849년)의 동지달편에 나오는 "骨董之飯"(골동지반)이 그것. 한편 조선 말기의 요리책인 시의전서에서는 "汨董汨飯"(골동골반)이라는 말이 나온다. '골'을 동국세시기와는 다른 한자를 쓰는데 여기서 '골'(汨)은 '골몰하다, 어지럽히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동(董)은 '감독하다, 움직이다'와 같은 뜻을 가지고 있다. 그보다 이전, 중국 명나라의 동기창(董其昌)이 쓴 <골동십삼설(骨董十三說)>이란 책에 따르면 분류가 되지 않는 옛날 물건들을 통틀어 골동(骨董)이라고 블렀다고 하면서, 이 뜻을 여러 음식을 혼합한 것을 이르는 말로 응용했다. 그에 따라 여러 가지 음식을 섞어서 만든 국은 골동갱(骨董羹)[3], 역시 여러 음식을 섞은 밥을 골동반이라고 했다.[4] 지금은 고추장을 넣어 비비는 걸 당연하게 여기지만 옛날에는 간장을 넣은 맵지 않은 음식이었다. 고추는 임진왜란 전후에 들어온 것으로 보이며, 비빔밥은 그보다는 역사가 훨씬 오래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여기에는 반론도 있는데, 우리나라의 비빔밥을 한자로 쓸 때는 骨董飯이라고 썼지만 중국의 골동반은 한국과는 다른 음식이라는 것이다. 중국의 골동반은 밥을 지을 때 육수를 사용하며 솥 위에 해산물을 올려서 같이 밥을 한 다음 푸성귀를 얹어서 내는데, 비벼먹지 않기 때문에 비빔밥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5] 예를 들어 영화 <기생충>에서 '짜파구리'를 영어로 번역할 때 ramen + udon = ram-don으로 번역했는데, 그렇다고 라멘+우동=짜파구리는 아니다. 이런 차이를 언급 안 하고 단순히 비빔밥의 원조가 골동반이라는 식으로 말했다가는 안 그래도 온갖 것의 원조가 다 자기들이라고 억지를 부리는 중국에게 '비빔밥도 원래는 중국 것'이라는 떡밥을 주는 꼴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반론의 주장이다.
비빔밥과 관련된 가장 잘 알려진 풍습은 정월대보름. 오곡밥과 묵은 나물을 넣고 비벼 먹는 것이 유명하다. 그런데 원래 골동반은 섣달그믐에 먹는 음식이었다고 한다. 남은 음식은 해를 넘기지 말아야 한다는 풍습 때문에 섣달그믐에 남은 음식을 다 때려놓고 비벼 먹으면서 해치우던 것.[4]
비빔밥에 넣을 수 있는 재료에는 딱히 제한은 없다. 하지만 여러 종류의 나물 및 채소, 여기에 볶은 고기가 들어가는 정도가 흔한 재료. 그 위에 달걀 프라이를 얹는 곳도 많고 좀 더 전통스러운 곳은 날달걀 노른자를 올리기도 한다.[6] 콩나물은 꼭 들어가야 하는 것으로 여긴다.
기내식으로도 인기가 좋다. 국내 항공사들이 주로 제공하지만 일부 외항사도 한국 출발 항공편에서 제공한다. 대한항공이 먼저 들고 나왔고, 아시아나항공도 제공하지만 이쪽은 특화된 기내식으로 쌈밥을 들고 나왔다. 물론 한국인 승객의 입맛에 맞기도 하지만 기내식 중에 그래도 가장 바깥에서 먹는 음식과 차이가 적은 것도 이유다. 기내식은 미리 조리한 것을 냉동 또는 냉장했다가 기내에서 전기 오븐에 데우는 식으로 제공하는지라 맛이 별로인데, 비빔밥이야 밥은 햇반 데워서 주면 되고 재료도 딱히 다시 데울 필요가 없다. 소스 역시 튜브 고추장과 참기름 혹은 볶음고추장 주면 끝. 이코노미 클래스는 믈론 비즈니스 클래스에서도 비빔밥 인기가 좋아서 특히 이코노미는 후반부에서 서빙 받는 좌석은 다 떨어져서 못 먹는 일도 비일비재하다.[7]
가장 유명한 비빔밥을 꼽으라면 역시 전주비빔밥. 전주를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로 손꼽히고, 가격도 비싸서 1만 원은 우습게 넘어가고 12,000~15,000원 정도 가격 대를 형성하다 보니 바가지 논란이 종종 일고 있다. 다만 이런 파인 다이닝급의 비빔밥은 재료와 조리가 고급화로 치달으면서 값비싼 재료들이 들어가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다. 전주 사람들은 이런 비싼 비빔밥은 그닥 즐겨먹지 않는 편. 유명한 전주비빔밥 음식점들도 대체로 외지인과 관광객 위주로 장사를 하는 편이다. 오히려 저렴하면서 해장국으로도 좋은 콩나물국밥 쪽이 전주 사람들에게는 더 많이 사랑받는다. 청국장 비빔밥처럼 소박하게 비벼먹을 수 있는 비빔밥도 있고, 아무튼 값비싼 비빔밥 말고도 선택의 폭은 여러 가지가 있다. 다만 고급화된 비빔밥 역시 고급화된 만큼 풍성하고 좋은 재료로 맛을 낸 음식인 만큼, 맛있게 먹었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진주비빔밥은 옛날에는 전주비빔밥보다도 더 명성이 높았을 정도로 잘 알려져 있는 향토음식이다. 육회가 꼭 들어가는 게 특징이며 여러 가지 나물과 탕국물, 고추장을 넣어 비빈다. 유래로는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의 최후의 결전 때 성 안의 군인과 백성들이 남아 있는 소를 모두 잡고 음식을 모두 가져가다 한데 비벼서 먹었던 것이 시초라는 설이 있다. 하지만 그냥 구전으로 전해내려 오는 이야기일 뿐이고, 이미 태종 때에 한양 정승들이 비빔밥을 먹으러 진주까지 천리 길을 왔다고 하니[8], 그냥 비장하고 멋있는 스토리를 만들기 위해 갖다 붙인 쪽에 가까울 것이다. 북한 쪽으로는 특이하게 밥을 볶아서 사용하는 해주비빔밥이란 것도 있다.
의외로 지금까지 영업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비빔밥 전문점은 비빔밤으로 유명한 전주도, 진주도 아닌 울산에 있는 함양집으로, 1924년에 개업해서 4대째 이어져 오고 있다.[9] 원래 진주 쪽에서 요정을 운영하다가 울산으로 옮겨온 것이라고 하는데, 비빔밥의 스타일도 육회[10]가 들어간 진주비빔밥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나 약간은 차이가 있으며, 생전복 한 점이 위에 올라가는 것도 특징이다.
파생 혹은 응용
흔히 볼 수 있는 파생형으로는 돌솥비빔밥이 있다. 뜨겁게 달군 돌솥에 밥과 다른 재료들을 올려서 내는 것. 비빔밥은 밥의 온도가 거의 다라서 따뜻하거나 미지근하게 먹는 정도라면 돌솥비빔밥은 비벼도 무척 뜨겁다. 비빌 때 뜨거운 돌솥 때문에 치익 칙 하는 소리가 또 식욕을 자극하는 효과가 있다. 돌솥에 닿아 있는 밥이 눌어서 누룽지 같은 고소한 맛을 내는 것은 덤. 비빔밥과 돌솥비빔밥을 같이 파는 업소도 있고, 돌솥비빔밥만 파는 업소도 있다. 다만 뜨거운 돌솥 때문에 밥이나 재료가 탈 수 있으며, 데일 염려도 있다. 일부 식당에서는 손님 앞에 놓고 직원이 직접 비벼주기도 한다. 재료나 소스는 대체로 비슷한 편이나 돌솥비빔밥은 달걀 프라이 대신 날달걀을 넣어서 비비면서 익히기도 하고, 그냥 비빔밥과는 달리 돌솥비빔밥은 온도가 뜨거우므로 참기름 대신 고소한 맛이 있는 버터나 싸구려 마가린을 넣기도 한다. 횟집에 가면 파는 알밥도 돌솥비빔밥의 일종으로, 돌솥에 밥, 날치알, 단무지 다진 것, 다진 파, 다진 양파와 같은 재료들을 넣어서 내 오면 뜨거운 상태에서 비벼 먹는다. 일식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일본에는 이런 게 없으며, 한일 퓨전요리라고 할 수 있다.
중국에서는 돌솥비빔밥이 많이 퍼져 있어서 비빔밥이라면 당연히 돌솥에 나오는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한국의 전주비빔밥 방식으로 비빔밥을 내면 손님한테 이게 뭐냐고 항의를 듣는다나.[11]
고깃집, 특히 육회를 파는 곳이나 비빔밥 전문점 메뉴에는 육회를 올린 육회비빔밥도 종종 볼 수 있다. 횟집 쪽으로 가면 생선회를 넣어서 여러 가지 채소와 함께 초고추장을 넣고 비벼먹는 것도 있지만 이건 생선회비빔밥이나 회비빔밥이라고 하지 않고 회덮밥이라고 부른다. 사실상 육회비빔밥과 비슷한데도 말이다. 우리나라는 웬만한 덮밥은 대부분 비벼먹기 때문에 그게 그거일 수도 있지만... 고기를 다 먹고 나서 남은 고기를 잘게 썰고 콩나물, 김치, 파와 같은 채소와 고추장 양념을 사용해서 불판에 볶아주는 볶음밥을 파는 곳이 많은데, 볶음밥보다는 돌솥비빔밥 쪽에 가까운 맛을 낸다.
청국장 전문점에서도 종종 먹을 수 있다. 비빔밥 하기 좋은 나물이나 무생채를 비롯한 각종 반찬과 양푼을 내 주는데, 밥과 반찬을 넣고 고추장 대신 청국장을 떠서 넣어 비비는 청국장 비빔밥도 인기가 많다. 낙지볶음 전문점에서도 비빔밥으로 먹으라고 양푼을 주는 곳이 꽤 많은 편인데, 단 비빌 반찬은 별로 없고 보통은 간만 약간 한 싱거운 콩나물을 듬뿍 준다. 콩나물과 낙지볶음을 밥과 비벼 먹으면 매운맛을 좀 덜 수 있어서 매운맛에 약한 사람들은 콩나물을 듬뿍듬뿍 넣는다.
삼각김밥 중에도 비빔밥이 인기가 좋은데, 편의점에서 전주비빔밥 삼각김밥은 인기가 항상 상위권이다. 적당히 매운맛으로 한국인들의 입맛에도 잘 맞고 가격도 싼 편이기 때문. 타이틀은 '전주비빔밥'이지만 물론 그냥 말만 그런 것이고 진짜 전주식과는 거리가 멀다. 편의점 김밥 버전도 있다.
그밖에
산케이신문 한국 지국장을 오랫동안 지낸 일본의 극우 논객인 쿠로다 카츠히로가 비빔밥을 깐 적이 있다. 비빔밥을 '양두구육'이라고 하면서 여러 재료들을 예쁘게 잘 장식해 놓고 마지막에는 고추장 넣어서 마구 뒤섞어서 비주얼을 망가뜨린다고 비난했는데, 이에 대한 비난 여론이 커지자 양두구육은 가벼운 농담이네 뭐네 하면서 얼버무린 적이 있다. 일본의 덮밥은 한국의 비빔밥이나 덮밥과는 달리 대체로 비벼 먹지 않기 때문에 속으로야 '뭐 저렇게 먹나' 하고 생각이야 할 수 있겠지만 엄연히 문화 차이이고 정답이 없는 것을 자기 관점만 가지고 비난한 것은 당연히 욕먹어도 쌀 일.
각주
- ↑ 특히 매운 것에 익숙치 않은 외국인들이 선호한다.
- ↑ 일본은 카레라이스 같은 몇몇 특정한 음식을 제외하고는 숟가락을 거의 쓰지 않고 젓가락 만으로 먹는다.
- ↑ 갱(羹)은 '국 갱'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다시마, 무를 주 재료로 해서 끓이는, 제삿상에 주로 올리는 국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 ↑ 4.0 4.1 "골동반(骨董飯)", 한국민속대백과사전.
- ↑ 황광해, "조선시대에는 전주비빔밥이 없었다?", 주간한국, 2011년 10월 7일.
- ↑ 날달걀을 통째로 넣으면 밥의 온도로는 흰자까지 익힐 수 없어서 밥이 너무 질척해진다.
- ↑ 물론 굶는 건 아니고 어쩔 수 없이 다른 음식을 선택해야 한다.
- ↑ "진주비빔밥", 진주관광.
- ↑ “95년 전통의 비빔밥, <울산 함양집>“, 한식 읽기 좋은 날, 한식진흥원,
- ↑ 여름에는 혹시 탈이 날 수도 있어서 익힌 것을 올린다고 한다.
- ↑ "한국 냉면이 연길 냉면에 밀린 까닭", <한겨레신문>, 2014년 10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