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육수 또는 매운 양념장에 밀가루로 만든 면을 말아서 먹는 국수 요리. 돼지국밥, 부산어묵과 함께 부산을 대표하는 서민 음식으로 잘 알려져 있다. 부산에 가면 전문점은 물론 분식집이나 중국집에서도 밀면 파는 곳이 수두룩하다. 중국집이야 국수는 바로 뽑을 수 있으니[1] 육수와 양념장만 만들면 밀면 만드는 거야 일도 아니겠지만. 문제는 짜장면 면발에 포장 육수맛의 밀면을 파는 중국집이 걸리면 그야말로 재앙이다.
냉면, 막국수와 함께 차가운 국물이 있는 국수 요리로는 대중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냉면은 북한, 막국수는 강원도, 밀면은 부산이라는 지역 색채도 강하지만 앞에 두 개보다는 전국적으로 퍼져 있지는 않다. 추가하자면 콩국수도 있지만 이건 여름철 한정이라는 이미지가 강한데 반해, 앞에 세 가지는 여름에 가장 인기가 좋긴 하지만 사철 먹는다는 인식이 강하다. 냉면은 원래 북한음식이지만 서울을 중심으로 발전했고, 막국수도 강원도 음식이지만 춘천이 서울에서 가깝다보니 수도권을 중심으로 인지도를 높였지만 밀면은 부산이라는 독자적인 경제권을 등에 업었지만 바깥 동네에서는 냉면의 열화판 취급을 받으니 확장이 쉽지 않있다.
냉면과 비슷한 점이 많은 음식이다. 원래 밀면이라는 것 자체가 한국전쟁 때 부산까지 밀려 왔던 북한 출신 피난민들이 부산에 정착하면서 메밀이나 옥수수가루 같은 것들보다 미국 원조로 넘쳐나던 밀가루가 훨씬 싸다 보니 이를 바탕으로 재료들로 비슷하게 만들어 먹던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냉면에 비해 대폭 다운그레이드된 음식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2] 그 나름대로의 독특한 맛을 발전시키면서 이제는 독자적인 음식으로 인정 받고 있다.
다만 부산이나 주변 경남권을 제외한 타 지역에는 쉽게 전파되지 못하고 있다. 냉면과 막국수가 이미 자리를 잡고 있는 데다가 서울 같은 곳으로 가면 부산 만큼 싸게 팔기도 힘들고, 그러자면 냉면하고 가격 차별도 안 생기는데 맛은 냉면에 비하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메밀이 주는 확실한 차별점이 있는 막국수보다는 특징이 좀 모호하고, 한편으로는 돼지뼈 육수를 베이스로 하는 밀면 맛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호불호가 확이라... 그래서인지 부산 경남이 아닌 타지에서 밀면집 찾기란 쉽지 않다. 최근에는 서울을 중심으로 밀면집이 조금씩 보이고 있지만 아직은 보기가 드물다. 수도권에는 밀면집보다는 강원도의 막국수 파는집이 확실히 더 많다. 일단 닭갈비집에서 막국수를 취급하는 곳이 많으니... 부산에서는 달고 매운 맛이 강한 밀면이 오히려 외지 사람들 입맛에는 안 맞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3] 부산 일대에서 많은 체인점을 운영하는 춘하추동밀면이나 가야밀면 같은 곳도 외지에 체인점을 두고 있지 않다. 이름이 같은 집은 있으나 그냥 이름만 갖다 쓴 것. 그래도 밀면의 인지도가 올라가면서 간편식 제품도 나오고 있으며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종류
거의 모든 밀면집은 냉면처럼 물밀면과 비빔밀면 두 가지를 갖추고 있다. 거의 모든 물밀면은 매운양념을 풀거나 얹어서 나온다. 육수도 어차피 양념장을 풀었을 때 맛이 나도록 만들기 때문에 그냥 푸는 게 낫다. 돼지 누린내를 억제하기 위해서는 필요하지만 매운맛이 싫으면 빼달라고 하자. 매운맛 말고도 물밀면의 육수에서 한약냄새가 나는 곳이 많은데, 역시 누린내를 억제하기 위해 몇 가지 한약재를 넣어서 육수를 내기 때문이다.
'물같은 비빔밀면'이라는 것도 있는데, 기본은 비빔밀면이지만 물밀면 육수를 조금 넣어서 국물이 흥건하게 만든 버전이다.[4] 냉면처럼 대부분은 물밀면보다 비빔밀면의 가격이 500원 정도는 비싸다. 밀면은 냉면과는 달리 회밀면은 없다. 부산이 바닷가라서 생선 구하기 쉬운 데도 말이다. 딱 밀면만 하는 곳도 있지만 만두나 돼지 수육 정도를 메뉴에 갖춰 놓은 곳이 많은 편. 분식집스러운 값싼 밀면집도 있는데 이런 곳은 김밥 같은 것도 있다.
유래
밀면의 원조로 인정 받는 가게는 우암동에 있는 <내호냉면>으로 함경남도 흥남부(현 함흥시 흥남구) 내호리에서 1919년부터 <동춘면옥>이라는 냉면집[5]을 운영하던 정한금[6]이 1.4 후퇴 때 피란 와서 정착한 부산에서 1952년에 개업했다. 가게 이름은 물론 고향 내호리에서 따온 것.
가게 이름이 냉면인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원래는 냉면, 더 정확히는 함흥식 농마국수를 주로 팔았지만 밀면을 만들게 된 계기가 좀 짠한데, 내호냉면 3대 대표인 이춘복의 남편 유상모 씨가 직접 밝힌 내용은 다음과 같다.[7]
“옛날 우암동에 불쌍한 사람들이 많이 살았거든. 거지도 많았어. 이 가게 근처에 있는 동항성당에서 불쌍한 사람들한테 밥을 줬어. 어느 날 신부님이 배급 나온 밀가루로 ‘삯국수’를 해달라고 한 거야. 삯국수 알아? 이북에선 많이 해 먹었어. 집에서 감자 전분을 갖고 식당에 와. 그러면 식당에서 반죽하고 기계로 눌러 면을 만들어 줘. 국수 만들어주는 삯만 받아서 삯국수야. 성당에서 준 밀가루로는 면이 잘 안 나왔어. 어머니가 고생이 심했어. 실패하면 우리 식구가 다 먹었지. 한참 만에 밀가루와 고구마 전분을 7대 3 비율로 면을 만들어냈어. ‘밀냉면’이라고 지었는데 언제부턴가 다들 밀면이라고 하대.”
즉 처음에는 성당의 요청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밀가루로 냉면 육수에 어울리는 국수를 만든 게 시작이었다는 것. 유상모 씨에 따르면 이 밀면을 처음으로 만든 정한금 여사는 정작 밀면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좋아하는 것은 오로지 냉면이었고, 밀면은 돈 없는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싼맛에 먹는 음식이라고 생각했다고. 1세대 밀면집으로는 내호냉면 말고도 <흥남서호냉면>이라는 가게도 있었는데, 가게 이름은 내호리의 이웃 동네였던 서호리에서 따온 것이다. 내호냉면처럼 서호리에서 냉면집을 운영하던 실향민이 1.4 후퇴 때 부산으로 내려와서 차린 가게다. 두 가게가 모두 동네 이름과 함께 '냉면'이라는 상호를 쓰는 것도 비슷하다. 창업주 대에서는 두 가게 사이에 교류도 많았지만 2, 3대로 내려가면서 교류가 거의 끊어졌다고 한다. 아쉽게도 흥남서호냉면은 2대까지 이어진 후 더 이상 대를 잇지 못하고 2012년에 문을 닫았다. 토성동 <함흥냉면> 역시 1세대 밀면 집으로 잘 알려져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1세대 밀면집들은 대개 냉면을 하면서 밀면도 같이 팔았다.
그런데 지금 부산에서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밀면집들은 이런 1세대 가게들이 아닌, 대략 1960년대에 등장한 가야밀면이나 춘하추동밀면, 개금밀면 같은 가게들이다. 바깥으로만 많이 알려진 것도 아니고 실제로 부산 사람들도 가장 많이 찾는 가게들이다. 1세대 밀면집들은 원래 냉면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육수나 양념도 냉면에 가까운 편이지만 지금 부산을 대표하는 밀면집들은 대체로 경상도 사람들의 입맛에 맞춰서 자극성이 강하다.[8]
밀면의 유래에 관한 다른 설로는 세간에 가장 널리 알려진대로 메밀이나 전분[9]을 구하기 힘든 피란민들이 밀가루로 대신 국수를 뽑아서 먹었다는 설, 진주의 진주냉면 혹은 밀국수가 부산으로 건너와서 밀면으로 개량되었다는 설[3], 경상도에서 원래 바지락 육수로 해먹던 밀국수 냉면이 피란민들의 냉면과 섞여서 밀면으로 진화했다는 설[10] 정도가 있지만 <내호냉면>만큼 확실한 근거를 보기는 어렵다.
냉면과 밀면의 차이
냉면과 비교해서 가장 큰 차이는 뭐니뭐니해도 국수. 밀가루를 아예 안 쓰거나 조금만 쓰고 메밀 또는 녹말을 주 재료로 얇게 뽑아내는 냉면과는 달리 밀면은 밀가루를 주 재료로 해서 녹말을 섞어서 만든다. 이름이 밀면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면의 굵기도 좀 더 굵은 편이다. 짜장면이나 우동보다는 얇다. 보통의 밀가루 면보다 좀 더 질겨서 냉면처럼 가위로 잘라먹는 사람들도 많다. 녹말을 많이 넣을수록 면이 질겨진다. 면의 색깔도 냉면은 회색이나 갈색인데 반해 밀면은 노르스름한 색깔을 띤다. 이 역시 녹말 배합이 많을수록 노르스름해진다. 최근 들어서는 밀면에 대한 관심도 많아지고 외지인들도 부산에 오면 꼭 먹어봐야 할 별미로 여기면서 여러 가지 다양한 시도도 나오고 있고, 메밀이나 잡곡을 섞어 만든 밀면도 등장하고 있다. 최근 부산에서 인기를 얻으면서 지점을 여럿 내고 있는 <고메밀면>이 그 대표격.
육수 및 양념장, 고명도 냉면과는 차이가 있다. 소뼈나 소고기 양지, 닭, 꿩 그리고 미풍으로 육수를 내는 냉면과 달리 밀면은 돼지뼈가 기본으로 가게에 따라 소뼈, 닭뼈를 섞는 곳도 있다. 음식점에 따라서는 소뼈가 주재료인 곳도 있고. 여기도 잡내를 잡는 게 중요해서 채소, 한약재, 과일 같은 것들을 넣고 육수를 우려내는 곳이 많다. 위에 올라가는 편육도 소고기가 아닌 돼지고기를 쓴다. 비빔밀면의 양념장도 비빔냉면과는 달라서 감칠맛이 덜하고 고춧가루와 설탕 맛이 좀 더 분명하게 나타난다. 색깔도 냉면은 간장과 육수로 검붉은 색인데 반해 밀면 양념장은 빨간색에 가깝다. 물밀면은 따로 빼달라고 하기 전에는 매운 양념장을 넣어 줘서 풀어 먹는 게 기본이지만 북한식 물냉면에는 고춧가루가 안 들어가거나 들어가더라도 색깔로 포인트를 주는 정도로만 쓰고 매운맛을 내지 않는 게 정석이다.[11] 사실 초창기 밀면은 냉면에서 파생된 거라서 맛이 지금처럼 자극적이지 않은데 60년대 이후에 생겨나서 주류가 된 밀면들은 냉면은 물론이고 1세대 밀면과도 다른 음식이라도 해도 좋을 정도로 경상도 사람들에게 맞춰서 단맛이나 매운맛이 강해졌다.
냉면에는 얇게 썬 무를 식초에 담은 절임이 딸려나오는 게 보통인데, 밀면도 비슷한 게 나오지만 고춧가루를 넣어서 연한 붉은색을 내는 게 보통이다.
이런 걸 제껴놓고 냉면과 밀면 차이를 얘기하자면 일단 밀면이 확실히 싸다! 냉면 전문점은 이미 1만원을 돌파해 버린 데 반해 밀면은 아직도 전문점도 6~8천 원 정도 선을 유지하고 있고 양도 푸짐하다. 정말 싼 곳은 4천 원 정도 하는 가게도 있을 정도이며 이런 곳 중에서도 맛이 근사한 가게들도 적지 않다. 냉면도 싼 곳이 있지만 이런 데들은 직접 가게에서 면을 뽑지 않고 그냥 제품을 쓰는 경우가 많은 반면, 밀면은 웬만큼 저렴한 곳도 직접 면을 뽑아낸다. 물론 1만 원 넘어가는 냉면은 주로 수도권에 물려 있고 밀면은 부산이다 보니 물가 차이라는 것도 있긴 하지만... 그에 더해서 부산에서는 여전히 밀면을 서민적인 음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가격을 확확 올리면 정서적 저항감도 클 것이다. 고급스러운 분위기와 그만큼 고급스러운 가격을 자랑하는 곳도 꽤 많은 냉면 전문점에 비해, 밀면 전문점은 줄 서서 먹어야 할 정도로 유명한 맛집들도 대체로 인테리어도 수수한 편이고 분위기도 수더분하다.
일본의 모리오카 냉면과도 비교해 볼만 한데, 밀가루와 전분을 섞어 쓰는 밀면 국수는 모리오카 냉면과 닮아 있다. 함흥 출신 실향민들이 함흥과는 젼혀 환경이나 식재료를 가지고 만든 것이라 그럴 수도 있다. 육수는 모리오카 냉면이 소고기 국물을 쓴다는 면에서 차이가 있지만 매운맛을 기본으로 한다는 점은 공통점으로 볼 수 있다. 다만 모리오카 냉면는 양념장이 아닌 김치국물로 매운맛을 내며, 매우면서도 달달한 맛을 내는 밀면과는 달리 모리오카 냉면은 단맛이 강하지 않다.
가볼만한 곳
- 신가야밀면: 명성으로는 여기가 부산 최강이다. 유사품도 많으니 주의. 동의대역 인근에 있었던 가야밀면이 진짜 원조다. 이 지역이 재개발로 철거되면서 개금동으로 이사 가서 다시 문을 열면서 '신가야밀면'으로 이름을 살짝 바꾸었다.
- 개금밀면: 밀면 중에는 상당히 깔끔한 국물맛을 낸다. 가격대가 비싸다.
- 고메밀면: 육전을 고명으로 올려주고 국수에 메밀과 고구마전분을 섞는다. 젊은 세대의 입맛을 공략하는 맛으로 인기가 있다.
- 내호냉면: 앞서 언급한대로 밀면의 원조집. 하지만 부산 밀면의 주종을 이루는 맛과는 차이가 있다.
- 춘하추동밀면
각주
- ↑ 다만 중국집에서 짜장면이나 짬뽕에 쓰는 면과는 찰기도 차이가 있어서 제대로 하려면 반죽을 따로 만들어야 하고 굵기도 얇게 뽑아야 한다.
- ↑ 실제로 초창기 밀면집들은 원래 냉면집이었고, 남아 있는 집들은 지금도 냉면과 밀면을 같이 판다.
- ↑ 3.0 3.1 "부산 향토음식 '밀면' 식당이 서울에 적은 까닭은", <연합뉴스>, 2019년 8월 11일.
- ↑ 냉면도 물비빔냉면이라는 게 있긴 하지만 파는 곳이 많지 않은 반면, 물같은 비빔밀면은 부산 밀면 전문점이라면 파는 데가 꽤 많다.
- ↑ 하지만 북한에서는 '냉면'이라고 하면 평양냉면만을 뜻하며, 함흥에서는 육수를 부어 차게 먹는 국수를 '농마국수'라고 불렀다.
- ↑ 동춘면옥의 창업주는 정한금의 시어머니인 이영순.
- ↑ "4대에 걸쳐 지켜낸 100년 냉면의 비결을 듣다", <중앙일보>, 2019년 1월 2일.
- ↑ 2000년대 들어 평양냉면 붐이 불기 전까지 남한에서 냉면이라고 하면 남한 사람들 입맛에 맞춰 발달한 함흥냉면이 주류였던 것을 생각해 보자.
- ↑ 함흥냉면은 밀가루나 메밀을 쓰지 않고 전분으로 만든다.
- ↑ "부산의 맛 <7> 밀면", <국제신문>, 2010년 2월 8일.
- ↑ 다만 서울을 비롯해서 남한 쪽에서 이래저래 생겨난 냉면들은 역시 매운 양념장을 풀어 먹는 것들이 여럿 있다. 대표적인 게 칡냉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