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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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lm oil.

팜유라는 이름으로 많이 부른다. 말 그대로 야자나무, 그 중에서도 이름만으로도 더 정확해지는 기름야자나무의 열매에서 추출한 기름이다. 전 세계 식물성 기름 생산량 중 압도적인 1위를 기록하고 있다. 2020/2021년 소비량은 7천3백만 톤으로 2위 콩기름이 5천9백만 톤인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3위인 유채기름은 2천8백만 톤으로 저 멀리 한참 차이 난다.[1]

주로 소비되는 대부분의 식물성 기름이 씨앗에서 기름을 추출하는 것과는 달리 올리브유와 마찬가지로 씨앗이 아닌 열매에서 기름을 짠다. 야자열매 씨앗으로 짜는 기름은 야자씨유(palm kernel oil) 또는 팜핵유라고 따로 부른다. 생산량은 팜유보다 훨씬 적다.

팜유가 식물성 기름 생산량 1위를 기록하는 가장 큰 이유는 뭐니뭐니해도 경제성이다. 같은 면적이라면 팜유의 생산량이 다른 식물성 기름보다 확실히 우월하다. 헥타르당 산출량은 콩기름이 0.4톤, 코코넛기름 0.7톤, 해바라기씨유와 유채기름이 각각 0.7톤인데 반해 팜유는 무려 3.3톤이다. 게임이 안 된다. 팜유가 열대우림 파괴와 그에 따른 오랑우탄 서식지 파괴 문제에도 불구하고 환경단체들이 팜유의 전면 퇴출을 외치지 않는 이유는, 오히려 몇 가지 문제점을 제거한다면 팜유만큼 단위 면적 당 산출량이 뛰어난 식물성 기름이 없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팜유를 대체하자고 다른 작물을 심으면 훨씬 많은 농지가 필요하고 더 큰 환경파괴를 일으킬 수도 있다. 대표적인 국제 환경단체인 국제자연기금(WWF)도 팜유 퇴출은 답이 아니며, 문제점들을 더 빨리 해결하도록 요구하는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2] 여기서 말하는 '문제점'이란, 팜유는 주로 불을 질러 기존의 열대우림을 없애고 야자를 심는 거라 이 때 나오는 막대한 이산화탄소도 문제고[3] 생물다양성 파괴의 정도도 더욱 심하다는 문제가 주된 이유다.

사실 가정에 직접 식용유로 사용할 일은 별로 없다. 일단 가격이 싸기 때문에 대량으로 기름을 사용하는 식품회사나 업소들이 다 쓸어가 버리며, 시중에 유통되는 것들도 대부분 15 리터 철제캔에 들어 있는 것들이라 가정에서 쓰기에는 너무 부담스럽다. 업소에서 튀김 기름으로 많이 쓰는 쇼트닝도 식물성이라면 팜유로 만든다. 팜스테아린유는 상온에서는 굳어 있기 때문에 가정에서 쓰기에 영 불편하고, 팜올레인유는 액체 상태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포장단위가 가정에서 쓰기에는 너무 대용량이다. 또한 싸구려 기름이라는 인식도 많은지라 요즘처럼 올리브유포도씨유와 같이 몸에 조금이라도 좋은 기름을 원하는 시대에는 가정에서 대접 받기 힘들다. 그나마 가정에서 팜유를 식용유처럼 써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마가린으로, 흑히 '벽돌 마가린'이라고 부르는 오뚜기 파운드 마가린의 주성분이 팜스테아린유다. 길거리에서 파는 토스트가 주로 이 파운드 마가린을 사용하며, 과거에는 가정에서도 가끔 사용하지만 요즘은 잘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도 슈퍼마켓에 가면 팔고 있고, 가정에서 쓰기에 부담스럽지 않은 크기기 때문에 써볼만은 하다.

그밖에 가정에서 팜유를 만날 수 있다면 역시 커피 크리머로, 유제품이 아닌 식물성 크림, 즉 프림[4] 역시 팜유로 만든다. 아마도 성분표에 보면 '야자경화유'라고 쓰여 있을 것이다. 팜스테아린유에 수소를 첨가해서 완전히 경화시킨 것이다. 여기에 카제인나트륨과 향료를 첨가해서 분말로 만든 게 크리머다.

팜유가 가장 널리 쓰이는 곳은 뭐니뭐니해도 튀김이다. 튀김은 많은 양의 기름이 필요하기 때문에 고급 음식점이 아니라면 가격 면에서 압도적으로 우월한 팜유가 유리하다. 또한 포화지방이 많기 때문에 불포화지방보다 더 고소하며 열을 가해도 산패가 빨리 일어나지 않는 것 역시 장점. 면을 기름으로 튀기는 인스턴트 라면도 팜유를 애용하며, 각종 스낵 역시 대부분 기름에 튀기기 때문에 팜유를 많이 사용한다. 원래 라면을 튀기는 기름으로는 우지, 즉 소기름이 많이 쓰였지만 팜유가 '식물성 기름'이라는 점을 내세우면서 시장을 잡아먹기 시작했고, 특히 1989년에 터진 우지파동으로 대세는 완전히 팜유로 넘어가 버리고 라면은 물론이고 스낵, 마가린, 쇼트닝 재료로 우지는 거의 힘을 잃어버리고 만다. 다만 우지로 튀긴 것과 팜유로 튀긴 것을 둘 다 기억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우지 쪽이 더 고소하고 맛이 좋았다는 이야기를 한다.

제과제빵 쪽에도 많이 쓰인다. 마가린의 주 원료이기도 하며, 식물성 휘핑크림 역시 팜유로 만든다. 식물성 기름인데도 버터류와 비슷한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특성만 첨가물로 잘 조절하면 버터크림의 대체품으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 오히려 버터나 크림은 '천연'이라는 개념이 강하기 때문에 첨가물 쓰는 걸 꺼리지만 팜유 쪽은 어차피 그런 이미지가 없기 때문에[5] 첨가물을 사용해서 다양한 케이크나 과자의 특징에 맞는 물성을 가진 다양한 제품을 내놓을 수도 있기 때문에 더 편리한 점도 있다.

식용 말고도 다양한 분야에서 재료로 쓰인다. 세제 종류에도 사용되는데 식용으로는 싸구려 취급 받는 팜유지만 비누를 비롯한 세정제 원료로는 오히려 고급 재료 대접을 받는다. 계면활성제는 기름에 강알칼리를 넣어서 만드는데, 싸구려 계면활성제는 석유나 석탄에서 추출한 기름을 쓰거나 각종 동물성, 식물성 찌꺼기에 가까운 재료들에서 기름을 뽑아내는데 반해 고급 계면활성제는 팜유와 같은 재료를 사용한다. 여기에 수산화나트륨을 넣으면 비누처럼 단단한 세제를 만들 수 있고, 수산화칼륨을 넣으면 폼클렌저와 같은 액상세제를 만들 수 있는 식이다. 화장품에도 많이 쓰이는 유화제도 이름만 다를 뿐 알고 보면 계면활성제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화장품 업계에서도 팜유는 널리 쓰인다.

각주

  1. "Oilseeds: World Markets and Trade", United States Department of Agriculture Foreign Agricultural Service, April 2022, pp. 12.
  2. "8 THINGS TO KNOW ABOUT PALM OIL", WWF-UK.
  3. 숲을 불태우지 않고 벌목을 해서 개간을 하면 훨씬 낫지만 비용과 시간이 들어가므로 쉬운 방법을 선택하는 게 문제다.
  4. 동서식품의 '프리마'에서 온 이름으로, 우리나라에서만 통한다. 세계적으로는 네슬레의 커피메이트가 가장 유명한 식물성 크리머다.
  5. 물론 팜유도 원료 자체는 천연이지만 정제 가공 기술을 거치는 데다가 버터크림의 싸구려 '짝퉁'이라는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천연'이라는 말을 써봐야 별 약발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