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고기
이름만으로 보면 불에 구운 고기라는 뜻이지만 얇게 썬 고기를 양념에 재운 다음[1], 불에 구워서 먹는 음식. 한국음식을 대표하는 요리 중 하나다. 외국인들에게 한국음식을 물어보면 김치와 함께 꼽는 게 불고기.
사실 한국음식에서 양념에 재워 굽는 고기는 꽤 많이 있다. 갈비도 양념에 재운 다음 불에 굽지만 이쪽은 갈비라고 하지 불고기라고는 안 한다. 고깃집에 가면 갈빗살이나 안창살을 비롯한 여러 가지 고기들을 두툼하게 썰고 양념에 재워서 불에 구워먹지만 이렇게 두툼한 녀석은 불고기라고는 잘 안 한다.
소고기는 기본적으로 간장을 베이스로 단맛을 넣은 양념에 재운다. 단맛은 설탕으로 내기도 하고, 배즙이나 양파즙[2]을 사용해서 내기도 한다. 아무 수식어 없이 그냥 '불고기'라고만 하면 이 불고기를 뜻한다.
돼지고기는 두 가지 스타일이 있는데, 고추장을 베이스로 한 양념에 재운 것이 있고 간장 베이스 양념에 재운 것도 있다. 고추장불고기와 제육볶음이 아주 비슷하다. 고깃집에서는 불에 구워서 먹지만 가정에서는 프라이팬에 굽거나 볶는 식으로 조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인데, 사실 볶아서 만든다면 제육볶음하고 차이는 없다. 반면 간장 베이스 불고기는 숯불이나 연탄불에 구워 먹는 게 정석으로, 특히 돼지불백[3]을 주력으로 하는 기사식당 중에 유명한 곳들이 많다. 어느 스타일이든 소고기보다는 조금 두께가 있는 편이다. 더 자세한 내용은 돼지불고기 항목 참조.
분식집이나 이것저것 하는 백반집에서 종종 '뚝배기불고기'라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뚝배기에 고기와 함께 양념국물을 좀 많이 붓고 양파, 파 같은 채소와 당면을 넣어 한소금 끓이는 식으로 만든다. 불고기 양념을 기반으로 하지만 불고기라고 하기는 약간 애매한 음식.
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한국음식으로 종종 손꼽힌다. 한국음식 하면 우리는 김치를 가장 먼저 떠올리지만 외국인들에게 김치는 매운데다가 특유의 발효향이 꽤나 호불호가 있는 음식임에 비해 불고기는 고추장 돼지불고기가 아니라면 맵지도 않고 낯선 향도 적은 편이라 채식주의자가 아닌 다음에야 호불호가 적은 편이다. 외국인한테 한국음식을 뭐 대접하면 좋을지 모를 때 고기를 먹는지 물어보고 불고기를 대접하면 별로 실패하지 않는다. 한식 세계화를 한답시고 이명박정부가 떡볶이를 밀었을 때 불고기를 비롯해서 외국인들이 좋아할 요리도 많은데 왜 하필 저걸... 하고 아연실색한 사람들이 많았다.
종류
아래의 분류는 주로 지역 기반이며 모두 소고기 불고기다.
서울식 불고기
흔히 불고기라고 하면 서울식 불고기를 뜻한다. 서울식 불고기는 상당히 국물이 많은 편이라서 전골이 아닐까 싶을 정도이고, 이 특성을 이용해서 분식집이나 백반집에서는 뚝배기에 불고기를 끓이다시피 조리한 뚝배기 불고기를 팔기도 한다. 가장자리는 움푹하고 가운데가 솟아오른 불판을 사용해서 가장자리에 양념 육수와 고기, 채소, 버섯, 당면 같은 재료들을 돌려 깔아준 다음 불판 위로 고기와 채소를 올려서 굽는 방식을 많이 사용한다. 양념 육수에 고기와 채소를 적시면서 익혀간다. 이러다 보니 황교익은 아래에서 다루는 내용처럼 서울식 불고기가 스키야키의 영향을 받은 게 아니냐는 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즉 한국의 고기구이가 일본으로 건너간 다음, 나베요리로 발전한 스키야키가 다시 한국의 불고기에 영향을 준 것이라는 주장이다.
언양불고기
말 그대로 울산광역시 언양에서 발달한 불고기로, 이쪽에 가면 아예 언양불고기 마을이 있고 많은 불고기집들이 모여 있다. 서울이나 부산을 비롯한 대도시에도 언양불고기를 내세운 음식점들이 있다. 서울식 불고기는 국물이 자작한 상태에서 먹지만 언양불고기는 테이블에서 석쇠에 굽는 방식이기 때문에 국물이 별로 없는 양념구이 같은 느낌이다. 고기가 얇기 때문에 부드러움을 잃지 않도록 조금씩 올려서 살짝만 구워서 먹어야 한다. 보통 고기구이 하듯이 듬뿍 올려놓았다가는 금방 타버린다.
광양불고기
전라남도 광양시 일대에서 발달한 형태의 불고기. 언양불고기처럼 석쇠에 구워먹는다. 언양불고기는 결대로 고기를 다듬어서 조금 두툼하지만 광양식은 얇게 저민 고기를 사용하는 게 가장 큰 차이다.
바싹불고기
양념한 고기를 석쇠에 얇게 펼쳐서 센불에서 빠르게 뒤집어 가면서 구워내어 말 그대로 국물이 거의 없도록 한 불고기. 석쇠로 구워서 국물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는 언양불고기와 비슷하지만 손님이 테이블에서 직접 구워서 먹는 언양불고기와는 달리 바싹불고기는 주방에서 강한 연탄불로 구워서 접시에 담아 나온다. 또한 언양불고기보다 얇은 ㅗ기를 쓰기 때문에 다 바싹 구워져서 겉보기에도 수분과 기름기가 더 없이 있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제대로 하는 집이라면 겉은 불맛이 파삭하게 날 정도지만 씹으면 안은 촉촉하게 육즙이 있다는 느낌도 받을 수 있다. <역전회관>을 원조급으로 친다. 원래는 이름처럼 용산역 앞에 있었는데 용산역 재개발과 함께 마포로 자리를 옮겼다. 요즈음은 언양불고기도 '언양식 바싹불고기'라고 부를 정도로 바싹불고기라는 이름의 인지도가 높다.
일본 유래설?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이 '불고기'라는 이름이 일본에서 온 것이라는 주장을 펼쳐서 한바탕 논란이 일었다. 더 나아가 지금의 이른바 서울식 불고기는 일본식 스키야키의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까지 했다. 황교익의 주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 불고기라는 말이 등장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으며 일제강점기 이전에는 불고기라는 말이 나온 기록을 찾을 수 없다.
- 우리나라에서는 음식 이름을 통상 재료 + 조리법으로 붙인다. 떡볶이, 갈비탕, 김치찌개와 같은 방식이다. 반면 불고기는 정 반대 조합법인데, 이건 일본식 조어법이다. 즉 야키니쿠(구운+고기)가 우리나라로 건너와서 불고기가 되었다.
- 예전에는 고기를 얿게 져며서 자작한 국물과 함께 익혀 먹는 방식이 없었다. 국물이 자작한 방식의 불고기는 한국식 고기 양념구이가 일본으로 건너가서 스키야키에 영향을 주고, 이 스키야키가 다시 한국에 영향을 미쳐서 나온 것이다.
한국의 대표 전통음식이라고 여겼던 불고기에 대한 이러한 직격탄 때문에 큰 논란이 있었고, 황교익을 비난하는 여론도 크게 일었다. 물론 황교익은 이러한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사실 논리적으로 보면 타당한 부분들이 일부 있다. 우리가 쓰는 말 중에는 겉으로만 한국어이고 조어법은 일본식인 게 은근히 꽤 많다. 대표적인 게 '먹거리'인데, 우리 조어법으로는 목적격 어미를 불인 '먹을거리'가 맞지 '먹거리'는 맞지 않는다. 오히려 이는 일본식 조어법에 가깝다. '먹거리'에 해당하는 일본어인 타베모노(食べ物)는 '먹다'를 뜻하는 타베루(食べる)에서 어근만 남기고 '-거리'에 해당하는 모노(物)를 불여 만든 것이라 조어법으로 보면 '먹거리'가 '타베모노'에 가깝다. 사실 먹거리라는 말이 시민단체에서 식품 대신 우리말을 쓰자고 만들어낸 말인데, 그들도 이게 일본식 조어법인 걸 알면서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모르는 새에 젖어든 것이다. 대략 1920년대 말부터 등장한 것으로 보이는 '불고기'란 이름도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졌을 수 있지만 조어법으로 보면 일본식에 가깝다. 물론 '고기불'이라고 이름을 붙이지는 않았겠지만 고기구이라든지, 고기양념구이든지, 얼마든지 말이 있는데도 간편하다는 생각 때문에, 그리고 모르는 새 스며든 익숙한 일본식 단어 때문에 이런 말이 탄생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다만 한식 중 세계에서 가장 인기 높은 음식 중 하나인 비빔밥은 비빔+밥으로 주재료가 뒤에 나오며 볶음밥이나 볶음국수 같은 예외도 있으므로[4] 단순히 '불고기'라는 이름만 가지고 일본식 조어법이라고 몰아붙이기에는 근거가 부족하지만 일제강점기 이전에는 기록에 불고기라는 이름이 안 나오기 때문에 (요리가 아닌 이름이) 야키니쿠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은 있다. 또한 '불'은 조리 방식이 아닌 재료 또는 두고로 보아야 하므로 황교익의 주장이 틀렸다는 국어학자들의 반박도 있다.[5] 즉 만두전골, 간장게장과 비슷한 맥락으로 봐야 한다는 것. 칼국수도 이와 비슷한 조어법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황교익은 "일제강점기 중에 불+재료로 된 음식 이름이 하나라도 있으면 가져와 보라. 왜 오로지 불고기 뿐인가하고 반박했다."[6][7]
또 한가지 불고기라는 이름이 애매한 것은, 물고기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물고기는 발음을 '물꼬기'라고 하는데 불고기는 '불꼬기'라고 안 하고 '불고기'라고 한다. 즉 이를 들어 역사가 짧고 식자층에서 만들어낸 조어라고 볼 수도 있는데 국어학자들은 평안도 방언에서 온 것이기 때문에 발음 차이가 일어난 것으로 보고 있기도 하다. 평안도에서는 '물고기'도 물고기, 무르고기와 같은 식으로 발음하므로 평안도에서 먹던 고기구이가 서울로 내려오면서 '불고기'라는 이름, 그리고 된소리 없는 '불고기'라는 발음까지 이전된 것으로 보고 있다. 기록으로 남은 근거는 없지만 평안도 출신인 국어학자 이기문이 저서에서 자신이 어렸을 때 불고기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는 이야기를 밝한 바 있다.
이 논란이 벌어지고 언론들의 자극적인 기사 제목까지 어울려서 마치 황교익이 불고기 자체를 일본음식이라고 주장했다는 왜곡된 인식도 퍼졌는데, 위의 주장을 보면 황교익은 불고기가 일본 유래라고 한 적이 없다. '불고기'라는 이름이 일본식 조어법으로 나온 것이고 이른바 서울식 불고기가 스키야키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우리의 고유문화가 이웃나라와 교류하는 과정에서 영향을 받는 일은 얼마든지 있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위에서 보았듯이 불고기의 종류도 다양하고 최근에 개발된 종류도 있다. 불고기에도 콜라나 키위를 넣거나 하는 식으로 우리나라에서 나지 않는 수입 재료를 쓰는 식의 개량도 이루어진다. 모든 문화가 그렇듯 음식문화도 살아 움직이며 발전하고, 분화하고, 영향을 주고받는다. 물론 일제강점기라는 식민지 역사는 단순한 교류도 아니고 우리의 문화가 많은 부분 왜곡 또는 말살되었지만, 그렇다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는 그 사실 자체를 부정하기도 힘들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황교익이 주장하는 내용의 근거가 타당한가 하는 문제는 얼마든지 비판할 수 있지만 우리의 전통음식인 불고기에 일본을 들먹였다는 사실만 가지고 비난하는 것은 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아니다. 또한 일본의 야키니쿠를 비롯한 고기 요리의 상당 부분은 우리나라에서 넘어간 것이다. 그러니 그쪽에서 나름대로 발전을 거쳐서 우리나라로 역수입되는 게 따지고 보면 이상한 것도 아니다. 한국 것과 공통점이 많으니 받아들이기가 쉽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본에 영향을 준 것만 자랑스러워 하고 그 반대는 절대 인정 못하겠다면서 그럴 수 있다는 입장을 '일뽕'이니 뭐니 비난하는 것도 편협한 사고다.
각주
- ↑ 고기가 얇기 때문에 오래 재울 필요가 없다. 오히려 너무 오래 재우면 흐물흐물해질 수 있다.
- ↑ 양파는 날것으로는 매운맛이 나지만 익히면 단맛이 난다.
- ↑ 불고기 백반을 줄여서 '불백'이라고 한다.
- ↑ 다만 볶음밥이나 볶음국수는 전통 음식이라고 보긴 힘들며 이런 이름이 붙은 게 일제강점기 혹은 그 이후일 가능성도 있다. 찜닭은 1970년대에 안동의 한 치킨집에서 처음 개발된 것이다. 또한 위에서 보듯 구이 요리는 거의가 재료+구이로 이름을 붙인다.
- ↑ "황교익이 불지른 '불고기' 어원 논쟁..학자들 "'야키니쿠'설은 엉터리"', <경향신문>, 2018년 10월 12일.
- ↑ "황교익 반박, 국어학자 주장에 "내가 엉터리? 수준 놀랍다"(전문)", MBN, 2018년 10월 12일.
- ↑ '불닭' 같은 음식도 있긴 하지만 이건 2000년대에 등장한 거라 근거로 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