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고기
돼지의 고기. 소고기, 닭고기와 함께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육지 짐승의 고기라 할 수 있다.
닭고기는 먹는 방법이 많이 다르기 때문에 아무래도 주로 구이로 먹는다는 점에서 소고기와 종종 비교되고 라이벌 구도를 형성한다. 물론 많은 차이가 있다. 돼지고기의 기름은 소고기 기름보다 불포화지방의 비율이 높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소고기나 돼지고기나 상온에서 지방이 굳어 있지만 소고기의 사람의 체온에서도 굳어 있는데 반해 돼지고기는 녹는다는 점 때문에 돼지고기의 기름이 소고기보다는 건강에 더 좋다고 여기는데, 소기름이나 돼지기름이나 소화 과정에서 지방산으로 분해되기 때문에 별반 차이는 없다. 포화지방산 대 불포화지방산의 비율은 대략 소고기 43:57, 돼지고기 42:58, 닭고기 33:67, 오리고기 30:70 선이다.[1] 즉, 소고기나 돼지고기나 그게 그거고, 불포화지방산이 높은 고기를 선택하겠다면 가금류가 훨씬 낫다. 오히려 소고기는 마블링이 별로 없는 살코기라도 살짝 구워먹으면 먹을만 하지만 돼지고기는 비계가 없는 부위라도 바짝 구워 먹기 때문에 퍽퍽해서 먹기 힘들다.
우리나라에서는 소고기에 비해 돼지고기의 가격이 확실히 싼 편이다. 이웃 일본도 비슷하다. 살을 1kg 찌우는 데 소가 돼지보다 필요한 사료의 양이 곱절 이상이기 때문. 넓은 초원에 소를 방목해서 키우는 낙농국가에서는 두 고기가 비슷하거나 오히려 돼지고기가 더 비싸기도 하다. 방목해서 키우면 소야 그냥 풀밭에 풀어놓으면 되니 돈이 별로 안 들지만 돼지는 사료를 사다 먹여야 하니 사료값에 인건비가 나가므로 오히려 비용이 더 비싸게 먹힌다.[2]
우리나라에서 단연 인기 있는 부위는 비계와 살코기의 층이 번갈아 있는 삼겹살이지만 외국에서는 베이컨 만드는 데 주로 쓰이고 한국만큼 인기가 있지는 않다.[3] 그런데 외국인들이 한국의 삼겹살을 먹어 보면 우왁! 맛있다! 하면서 놀라는 반응을 종종 볼 수 있다. 생각해 보면 외국에서는 돼지고기는 주로 다른 요리의 재료로 쓰이거나 소시지, 햄, 베이컨 같은 가공육으로 먹는 게 보통이다. 우리나라처럼 통고기를 그냥 불에 구워서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놈을 스테이크처럼 먹는 경우가 드문 편이다. 그러니 외국인들에게는 나름대로 컬처 쇼크인데 이게 또 맛있기까지 하니... 직화구이 삼겹살의 기름이 얼마나 고소한지 처음 알았다는 반응이 나온다. 보통 우리나라에서는 삼겹살 >>>>> 목살 >>> 다른 부위 순으로 인기가 높다.
삼겹살이나 목살만큼 인기 부위는 아니지만 다릿살도 많이 쓰인다. 특히 우리나라는 앞다릿살의 인기가 많은 편으로, 돼지불고기, 수육, 주먹고기, 뒷고기와 같이 2군급 부위로 많이 쓰인다. 뒷다릿살은 앞에 비해 퍽퍽하다도 괄시 받는다. 반대로 서양은 뒷다릿살이 인기가 많다. 생햄의 끝판왕으로 대접 받는 이탈리아의 프로슈토나 스페인의 하몽이 뒷다릿살을 장기 발효시켜서 만드는 햄이다.
햄이나 소시지의 재료로 가장 널리 쓰이는 고기이기도 하다. 원래 햄은 돼지 뒷다리를 뜻하는 말이었고, 앞서 언급한 프로슈토나 하몽은 말도 하지 말자. 서양에서도 햄과 소시지의 기본은 돼지고기이고, 소, 양, 닭 같은 다른 가축을 썼으면 오히려 가축의 이름을 붙여 준다.
가장 돼지를 많이 키우고 돼지고기 소비도 많이 하는 나라는 뭐니뭐니해도 중국. 물론 인구 때문에 어떤 고기든 엄청나게 소비하지만 중국음식에서는 고기 하면 기본이 돼지고기일 정도로 돼지고기를 무척이나 사랑한다. 중국음식들을 떠올려보자. 소고기 요리 생각나는 게 몇 가지가 있는가? 닭고기 요리도 의외로 돼지고기보다는 별로 다양하지 않다. 중국집 메뉴를 봐도 소고기 요리는 정말 드물고, 닭고기 요리 중 우리가 잘 아는 건 라조기 정도다. 그에 반해 돼지고기는 우리들의 친구 탕수육부터 시작해서 오향장육, 경장육사, 고추잡채, 동파육 등등 줄줄이 나온다.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개량된 중화요리 말고도 중국 본토를 가 보아도 돼지고기 요리의 종류가 압도적이다. 중국요리에 고기 육(肉)자만 들어가 있다면 십중팔구 돼지고기이고, 소고기(牛)나 닭고기(鸡), 양고기(羊) 요리라면 따로 어떤 고기인지를 뜻하는 글자가 들어간다. 2019년 중국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돌아서 돼지가 떼죽음을 당하고 돼지고기 생산량이 급감하자 중국이 수요를 대기 위해서 수입 물량을 엄청나게 늘리는 바람에 전 세계 돼지고기 값이 뛸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금기
종교적으로는 무슬림들이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더러운 동물로 취급하기 때문이라는 것. 유대교도들도 비슷한 이유로 먹지 않는다. 소를 신성하게 여겨서 먹지 않는 것으로 잘 알려진 힌두교도들 역시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데, 역시 불결하게 취급당하기 때문이다. 뭐 사실, 열렬한 신도들이 아니라면 개개인들은 은근히 잘 먹는 사람들도 많다. 그냥 먹고 용서해 달라고 기도 한번 하고 퉁치는 식. 이거밖에는 먹을 거 없는데 금기 음식이라고 안 먹으면 그건 또 종교가 절대 금지하고 있는 자살에 해당되는 거라 둘이 부딪칠 때에는 먹는 게 맞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다만 요즘 돼지고기밖에 먹을 게 없어서 이거 아니면 죽게 될 그럴 상황이 있기는 할지...
돼지라는 동물이 지저분하다는 이미지가 많다는 점도 한 가지 이유일 것이다. 돼지를 생각할 때 똥냄새가 진동하는 불결한 축사에서 똥을 덕지덕지 묻히고 있는 똥돼지 모습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이건 인간이 그렇게 만든 것이나 마찬가지다. 돼지는 자체적으로 체온 조절을 하기가 쉽지 않아서 시원하고 물이 많은 곳에 주로 살던 동물인데, 더워지면 몸을 식히기 위해 물이 필요하다. 깨끗한 물이 없으면 똥물에라도 굴러서 몸을 식혀야만 한다.[4] 돼지는 물이 넉넉하고 환경만 청결하면 용변도 딱 정해진 한 곳에만 볼 정도로 영리하고 깔끔한 동물이다. 한편으로는 시원하고 물이 많은 곳을 좋아하는 특성 때문에 어차피 중동에서는 기르기도 힘들고, 기르려면 돈도 많이 드니까 아예 종교에서 금기시해버렸던 것으로도 추정된다.
각주
- ↑ "닭고기 ‘지방’은 나쁘고 오리 ‘기름’은 좋은가", <경향신문>, 2016년 7월 13일.
- ↑ 다만 방목해서 풀을 먹여 키운 소는 가둬놓고 곡물을 먹인 소보다 지방 함량이 적기 때문에 특히 우리나라나 일본이 선호하는 마블링이 떨어진다. 그래서 수출용은 풀을 먹여 키우다가 일정 기간 동안은 가둬놓고 곡물 사료를 먹여 도축한다. 현지에서도 'grain fed', 즉 곡물 먹여 키운 소고기는 'grass fed', 즉 풀 먹여 키운 소보다 가격이 비싸다.
- ↑ 미국 베이컨은 삼겹살을 쓰지만 유럽은 등심을 주로 쓰기 때문에 같은 베이컨이라고 해도 생김새나 맛에 차이가 크다.
- ↑ 사실 사람은 동물에서 보기 드물 정도로 더워졌을 때 체온 조절을 잘 한다. 온몸에 땀샘이 있어서 열을 전신으로 방출할 수 있는 동물은 그렇게 많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