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촌으로는 오징어볶음이 있다. 비슷하게 채소와 매운양념을 넣고 볶는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대체로 낙지볶음 쪽이 좀 더 맵고 설탕은 적게 넣는 대신 채소 대비 낙지의 양이 적은 편이다. 그럼에도 낙지의 원가가 오징어보다는 높기 때문에[1] 오징어볶음보다는 가격이 비싸다. 요즈음은 오징어나 낙지나 볶음용으로는 수입산을 많이 쓰는 편인데, 오징어는 주로 남미 쪽에서 들여오는 반면 낙지는 중국산이 대부분이다. 이러나 저러나 오징어보다는 대체로 낙지의 가격대가 높다. 채소는 볶음요리가 대체로 그렇듯 양파를 많이 쓰는 편이며 고추, 대파 정도가 들어가고 당근은 오징어볶음만큼 널리 쓰이지는 않는다.
오징어볶음을 얹은 오징어덮밥은 분식집에서도 흔히 볼 수 있지만 낙지덮밥은 드문 편이고, 분식집에서 파는 낙지덮밥이 오징어덮밥과 천원 정도 차이밖에 안 난다면 중국산 냉동낙지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 우리나라에서 유통되는 낙지의 절대 비율이 중국산이긴 하지만 냉동낙지는 생물이나 냉장품보다 품질이 훨씬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야말로 푸석푸석한 타이어 씹는 질감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친숙한 낙지볶음 먹는 방법은 비벼먹는 식인데, 대체로 낙지볶음은 따로 나오거나 테이블에서 조리해 먹도록 하고 밥은 따로 내는 식이다. 특히 아주 매운 낙지볶음을 파는 음식점은 밥에다 비벼도 매운 맛이 강하기 때문에 삶은 콩나물을 따로 제공해서 콩나물까지 넣고 비벼먹도록 한다. 그래도 맵다.[2] 소면을 비벼먹어도 맛있다.
매운맛이 심한 낙지볶음은 재료를 의심할 필요가 있다. 재료인 낙지의 질이 나쁘다 보니 나쁜 맛을 가리기 위해 매운맛을 아주 세게 쳤을 가능성이 높다. 서울 중심가에서 매운 낙지볶음으로 인기를 끌고 체인점 사업까지 하는 모 가게가 대표 케이스인데, 매운맛을 걷어내고 나면 이게 낙지인지 스펀지인지 모를 정도로 재료의 질이 나쁘다. 중국산 냉동낙지 중에서도 오래된 것을 썼을 가능성이 높다.[3] 너무 맵다 보니까 혀를 달래기 위해 조개탕도 함께 시키게 되므로[4] 가게로서는 일석이조지만 정말로, 그 매운양념을 벗겨내고 나면 낙지의 질에 관해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낙지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낙지볶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낙지 요리를 대표하지만 낙지의 주 산지인 목포나 무안 일대는 주로 탕이나 구이를 많이 먹었지 낙지볶음은 잘 해먹지 않았다. 이쪽 동네는 외지 손님들이 많아지고 낙지볶음을 찾다보니 하는 것일 뿐이다.
조방낙지
낙지볶음으로 유명한 지역은 부산이 손꼽힌다. 부산식 낙지볶음인 '조방낙지'가 유명한데, 여기서 '조방'은 조선방직을 뜻한다. 조선방직은 일제강점기인 1917년에 미츠이그룹이 세운 방직공장이다. 당시 일본 기업들이 대체로 그랬지만 조선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임금체불이 다반사였기 때문에 1922년부터 1923년까지 1년 동안 6차례의 대규모 파업 투쟁이 있었고 1930년에도 조선인 여성노동자들이 대대적인 파업을 벌인 조선방직 총파업이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5] 해방 이후 조선방직 공장은 여러 차례 손바뀜을 거쳐 운영됐고, 한국전쟁 때는 군납 의류를 독식하다시피 하면서 잘 나가기도 했지만 손바뀜 과정에서 부실경영과 주도권 다툼으로 사세가 기울었다. 특히 화학섬유가 주류로 올라서면서 면방직이 주력인 조선방직은 쇠퇴하기 시작한다. 결국 1968년에 부산시가 재개발을 목적으로 인수한 후, 1969년에 청산절차를 거쳐 해체된다.[6] 조선방직 공장은 사라진지 오래고 행정구역으로는 부산시 범일동에 속하지만 지금도 부산 사람들에게는 '조방 앞'이라는 이름으로 통하고 있다. 공장이 문을 닫은 이후에도 그 자리에 도매시장이 들어서면서 한동안 번화가로 번성했다.[7]
당시 부산시의 대공장이었던 조선방직 주변에는 당연히 직원들을 상대로 하는 음식점이 많았는데, 공장 주변에 포진하고 있었던 일명 '조방낙지'가 부산식 낙지볶음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부산 전역으로 퍼졌고, 이제는 전국구 체인점으로 발전한 가게들도 여럿 있다. 원조 가게로 인정 받는 곳은 1963년에 문을 연 '원조 낙지볶음 할매집'으로 알려져 있는데[8], 단골로 오던 조선방직과 인근의 도시 노동자들에게 별미 삼아 낙지를 삶아 내던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그냥 숙회로 냈지만 매운 양념을 찾는 손님들이 많다 보니 고춧가루 양념을 더해 만든 게 조방낙지 스타일로 굳어진 것. 조방낙지는 볶음이라기보다는 국물이 자작한 짜글이 혹은 전골 스타일에 가깝다. 처음에는 재료를 넣은 냄비 뚜껑을 덮어놓고 끓이다가 국물이 자박하게 졸아들면 뚜껑을 열고 볶듯이 뒤집어주는 식이다. [9]
여기에 몇 가지 확장판이 있는데, 예를 들어 삼겹살을 넣은 낙삼, 곱창을 넣은 낙곱이라든가[10], 여기에 새우를 추가한 낙곱새와 같은 것들이 있다. 고독한 미식가의 고로도 2019년 연말 스페셜의 부산 출장편에서 낙곱새를 먹었다. 마무리로 남은 국물과 약간의 건더기에 밥을 볶거나 우동사리를 넣어서 먹을 수도 있다. 고로도 옆 테이블 사람들이 하는 걸 보고 우동사리를 시켜 먹었다.
철판볶음
위의 낙지볶음과는 궤가 많이 다른 철판볶음이라는 것도 있다. 재료도 판이하게 다른데, 일단 콩나물이 듬뿍 들어간다. 콩나물 속 낙지를 찾아라 수준이다. 양파는 아예 안 넣기도 하며, 미나리, 고추, 버섯, 대파와 같은 채소들이 들어간다. 양념은 고춧가루 다대기가 들어가며, 날것 상태의 재료를 철판에 올려놓고 가열한 다음 어느 정도 열이 오르면 채소에서 빠져나오는 수분을 이용해서 볶는다. 산낙지를 이용하는 경우에는 살아 있는 상태로 한 마리를 통째로 넣는데, 낙지가 철판 밖으로 탈출할 수도 있으므로 뚜껑을 덮어 놓는다. 어느 정도 열이 오르고 낙지가 익어가면서 몸부림치다가 잦아들면 가위로 잘라낸다. 보고 있으면 낙지한테는 잔인한 음식이다.
각주
- ↑ 오징어는 바다에 나가 배로 대량으로 잡을 수 있지만 낙지는 주로 개펄에 살기 때문에 하나 하나 캐듯이 잡아야 하므로 일단 품이 많이 들어간다.
- ↑ 이런 가게들 중에는 손님이 원하면 덜 맵게 해 주는 데도 있다. 매운 맛에 영 약하다면 덜 맵게 해 줄 수 있는지 물어보자.
- ↑ 실제로 예전에는 가게 안에 중국산 냉동낙지 박스가 쌓여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 ↑ 콩나물국 정도는 기본으로 제공하기도 하지만 조개탕은 돈 주고 따로 시켜야 하며, 일부 가게는 마치 낙지볶음+조개탕은 기본으로 시켜야 하는 것처럼 소문이 나 있다.
- ↑ "조선방직 총파업", 부산역사문화대전.
- ↑ "정순형의 부산기업 스토리: ① 조선방직", <부산일보>, 2014년 7월 4일.
- ↑ "조방 앞", 부산역사문화대전.
- ↑ "조방 낙지볶음", 부산역사문화대전.
- ↑ 오징어볶음이나 제육볶음도 이런 식으로 하는 곳들이 있다.
- ↑ 이 때 사용하는 곱창은 곱을 모두 제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