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젓
육젓을 보면 짙은 갈색의 거무튀튀한 색깔, 멸치가 짓이겨진 모습에 비린내와 발효된 짠내가 진동을 해서 도무지 사람이 먹을 걸로 안 보일 정도다. 보통은 육젓을 끓인 다음 건더기는 걸러내고 액젓으로 사용한다. 과거에는 육젓을 사다가 집에서 끓이고 짜서 액젓을 만들었지만 요즈음은 아예 병에 담은 액젓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오히려 전문 시장 아니면 육젓을 보기는 어렵다. 대략 3개월에서 6개월 정도 발효를 시키는데 처음에는 비린내가 진동을 하지만 발효가 진행될수록 점점 누그러진다. 6개월 정도가 되면 멸치 뼈까지 삭을 정도로 발효가 많이 진행되는데 당연히 장기 발효시킨 것일수록 고급품이고 값도 비싸다.
새우젓과 함께 한국음식에서 쓰임새가 넓은 젓갈 중 하나다. 일단 김치에는 새우젓과 함께 필수 요소이고, 각종 무침 요리에 간을 맞추고 감칠맛을 더하기 위해서도 사용된다. 전라남도 쪽 김치는 젓갈을 대량으로 투입해서 맛이 진하고 강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김치 빛깔이 갈색을 띨 정도로 멸치젓을 많이 때려넣는 지역도 있다. 하지만 짜고 비린 맛이 강해서 그냥 먹는 일은 거의 없자만 전라남도의 해안이나 섬 사람들 중에는 육젓을 그냥 끓여서 먹기도 했다. 지금은 좀 드문 모습이지만... 육젓을 다져서 쌈장으로 활용하는 모습은 지금도 남도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제주도에서는 '멜젓'이라고 부르며 돼지고기를 여기다 찍어 먹는데, 요즈음은 제주도식 돼지고기 전문점이 여러 지역으로 퍼지면서 멜젓에 찍어먹는 방식도 같이 퍼졌다.
이탈리아에서 발전해서 유럽 쪽에 많이 퍼진 앤초비 역시 멸치를 비롯한 청어류의 생선을 발효시켜서 만든다는 점에서 서양 멸치젓이라고 종종 부른다. 하지만 만드는 방법이나 먹는 방법은 많이 다르다. 소금과 향신료를 써서 발효시키는 부분은 비슷하지만 그 다음에 뼈를 발라내서 올리브유에 담그고, 보통은 병이나 통조림 형태로 만들어서 그 상태로 추가 숙성이 진행되도록 한다. 또한 멸치젓은 원래 모양을 거의 잃어버릴 정도까지 푹 삭히지만 앤초비는 그렇게까지 하지 않고 원형을 유지하는 상태에서 반으로 갈라 뼈를 제거하고 병이나 통조림에 넣는다. 요리를 할 때 보조 재료로 쓰이기도 하지만 그냥 먹거나 샐러드에 뿌려 먹기도 하고, 페이스트로 만들어서 빵에 발라먹거나 피자, 파스타를 비롯한 다양한 요리에 활용한다.
까나리젓이 멸치젓과 쓰임새가 비슷한 젓갈로 종종 거론된다. 둘 다 액젓으로 주로 쓰인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멸치젓을 쓸 곳에 까나리젓을 대신 써도 웬만하면 괜찮다. 남해안 쪽은 멸치젓을, 서해안 쪽에서는 까나리젓을 주로 써 왔는데 멸치젓은 감칠맛이 좀 더 많이 나고 까나리젓은 맛이 좀 더 깔끔하다는 정도의 차이가 있으므로 김치나 무침 요리를 할 때 입맛에 맞게 선택해서 쓰면 된다. 그밖에도 황석어젓, 갈치젓 같은 것들이 김치에 들어가는 젓갈로 종종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