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태의 알, 즉 명란을 알집째로 소금에 절인 젓갈. 보통은 고추를 써서 빨갛게 물을 들여서 파는데, 요즈음은 식용색소를 많이 쓰는 편. 물을 들이지 않아서 색깔이 창백한 것은 백명란이라고 부른다. 명태알을 젓갈로 안 만들고 그냥 먹는 경우는 알탕 정도를 빼고는 별로 없기 때문에 그냥 명란이라고도 많이 부른다.
젓갈 중에서 고급 대접을 받는다. 알의 독특한 질감과 짭쪼름하면서도 약간의 비린내, 감칠맛, 약간의 쓴맛이 어울려서 특유의 독특한 맛을 낸다. 먹을 때는 알집을 터뜨린 다음 갓지은 따뜻한 밥 위에 명란젓을 조금 올려서 먹으면[1] 밥도둑이 따로 없다. 참기름을 살짝 치면 더욱 끝내준다. 동해안에서 명태가 잘 안 잡히게 된 이후로는 주로 러시아산 명태가 많이 쓰이고 있다. 명태 자체도 러시아산이 많은 편이고. 한편으로는 알집째 통째로 먹는 것 때문에 동해안 명태가 씨가 마른 원인 중 하나로 비난을 받기도 한다. 알탕이나 다른 생선알 요리도 종종 이런 비난을 받곤 한다.
종종 어란과 비교되는데, 알집을 가공해서 장기 보관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한 점이 있지만 차이가 많다. 어란은 보통 숭어알을 사용하며 젓갈로 보기 어렵다. 염장한 다음 참기름을 발라가면서 서서히 말려 나가는 방식으로 보존성을 높인다. 말리는 과정에서 알집이 터지지 않을 정도로 나무나 돌로 누르기 때문에 모양이 납작하다는 것도 차이. 식감 역시 전혀 달라서 수분이 충분히 들어 있어서 부드러운 명란젓과는 달리 어란은 마치 경성치즈처럼 좀 단단한 맛이 난다. 어란 쪽이 만드는 시간도 더 오래 걸리고 손도 더 많이 가기 때문에, 게다가 제조량이나 수요도 적어서 가격은 명란젓보다 훨씬 비싸지만 비린맛이 상당하기 때문에 명란젓보다도 호불호가 더 갈린다. 어란은 보통 반찬으로 먹지는 않으며, 특별히 양념을 하거나 다른 요리에 넣지 않고 그냥 얇게 썰어서 주로 술안주로 먹는다. 증류주와 잘 어울린다.
요즈음은 우리나라보다는 일본에서 더욱 각광을 받고 있다. 일본에서는 멘타이코(明太子)라고 한다. 뜻을 풀어보면 명태(멘타이)의 자식(코). 그냥 멘타이(明太)라고도 하는데, 일본에서는 명태 자체는 인기가 없고[2] 명란만 인기가 있다 보니 그런 듯. 명란젓을 그냥 명태라고 부르는 꼴이다.[3] 사실 '멘타이'라는 말 자체가 한국어 '명태'가 건너간 말이다. 일본어로 명태는 스케도우다라(すけとうだら)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명란이라고 하면 명란젓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멘타이'라고만 해도 일본인들은 명란젓이라고 알아듣는다.
일본에 처음 명란젓이 등장한 발상지는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지만 오늘날에는 멘타이코 하면 후쿠오카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후쿠오카에는 여러 유명 명란젓 전문 가게들이 있고 여러 가지로 명란을 응용하고 있다. 밥 위에 김가루 뿌리고 명란 하나 올려놓은 멘타이쥬를 오전부터 줄서서 먹을 정도. 자세히 보면 명란젓을 무엇인가로 말아서 감싼 것을 볼 수 있는데 절인 백다시마다. 명란젓을 일본 고유 음식처럼 여기기도 하지만 엄연히 한국에서 건너간 것이다. 부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카와하라(川原)가 해방 후 일본에 돌아가 어린 시절 맛보았던 명란젓을 만들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4] 후쿠오카는 명태가 잡히는 곳도 아니다. 그러나 한국의 문화를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이 후쿠오카이기도 하고 동해로 나아갈 수 있는 항구도 있으니 이래저래 한국의 명란젓이 후쿠오카로 건너가서 흥했다. 물론 우리나라도 여전히 명란젓은 인기 있는 젓갈이지만 워낙에 다양한 종류의 젓갈들이 즐비하다 보니 명란젓 자체는 빨간 명란이냐 백명란이냐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고, 비싼 가격 때문에 오징어젓 같은 젓갈이 대중들에게는 더 친숙하지만 후쿠오카에 가 보면 제조 회사들이나 종류, 응용하는 요리의 면에서 한국보다 확실하게 차이날 정도로 광범위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남의 것 수입해다가 열나게 자기 것으로 발전시키는 일본답게 명란젓도 열심히 고급화를 하고 다양한 요리에 응용하다보니 우리나라보다 종류가 훨씬 세분화되어 있고 이제는 한국 사람들 중에도 명란젓이 일본음식이고 한국으로 건너온 것처럼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하카타역이나 후쿠오카의 유명 백화점에 가 보면 여러 회사들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종류도 다양해서 매운맛의 정도도 약한 것부터 강한 것까지 여러 단계로 나뉘어 있다. 공항에서도 특산물 기념품으로 열심히 팔지만 육류나 수산물은 검역 없이 우리나라로 가지고 들어오면 안 되므로 포기하는 게 좋다.
명란젓을 부르는 다른 일본어 용어로는 '타라코(たらこ)'도 있느데, 원래 타라(たら)는 생선 종류인 대구를 뜻하는 말이다. 즉 원래는 대구알을 절여 만든 것으로 17세기 말엽부터 일본 문헌에 기록이 있을 정도로 오래된 일본음식이지만 지금은 명란젓을 뜻한다. 단, 타라코는 고춧가루를 쓰지 않은 것으로, 멘타이코는 빨간색 명란젓, 타라코는 백명란인 셈이다. 원래 멘타이코의 정식 이름은 고추를 뜻하는 '카라시(辛子)'[5]를 앞에 붙인 카라시멘타이코(辛子明太子)인데 보통은 멘타이코라고 하면 카라시멘타이코를 뜻한다. 요약하면 멘타이코와 타라코는 오늘날은 둘 다 명란으로 만들고 고춧가루를 썼느냐 여부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6] 타라코의 주요 생산지는 후쿠오카가 아닌 홋카이도다. 한편 우리나라는 조선시대까지는 명란젓보다 대구알젓을 더 고급으로 여겼다고 한다. <승정원일기> 효종 3년(1652) 9월 10일 기사에 강원도에서 대구알젓을 올리지 않고 명란젓을 올려 이를 조사하라는 내용이 있었으니, 명란젓을 대구알젓의 값싼 대용품 정도로 본 셈이다.[4]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날것 상태에서 밥반찬으로 먹지만 일본에서는 반찬 말고도 다양한 요리에 응용하고 익혀서도 먹는다. 일본요리 말고도 서양 음식과도 조합해서 여러 가지 퓨전 요리를 만들어냈는데, 가장 대표적인 히트작이 명란파스타. 올리브유, 크림 혹은 버터에 간장과 명란만으로 정말 맛있는 파스타를 만들 수 있다. 피자에도 사용하고, 명란을 으깨어 바른 명란 바게트도 인기고, 관광객들이 기념품으로 많이 사가는 멘베이[7]를 비롯해서 명란으로 맛을 낸 과자도 여러 가지가 있고, 명란을 넣은 마요네즈도 있고, 그밖에도 다양한 요리에 정말 많이 활용한다. 그냥 명란젓은 한국으로 반입이 안 되니 아쉽다면 과자나 소스 같은 것을 사 오는 정도로 만족하자.
각주
- ↑ 너무 많이 올리면 오히려 비린내가 확 덮치고 너무 짜서 별로다.
- ↑ 어묵 같은 데에나 들어가지 그냥 먹는 경우는 거의 없다.
- ↑ 창난젓도 일본에서는 챵자(チャンジャ)라고 부른다. 딱 봐도 '창자'에서 온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 4.0 4.1 "소금과 시간의 맛, 젓갈", 문화재청, 2018년 11월 1일.
- ↑ 그런데 그냥 '카라시'라고만 하면 원래는 겨자를 뜻하는 '芥子'가 된다. 고추는 정확히는 토카라시(唐辛子)다.
- ↑ "明太子&高菜研究:「明太子」と「たらこ」の違いは何? 解決!明太子のよくある質問!", 博多の味 明太子(めんたいこ)のやまや, 2020년 11월 24일.
- ↑ 멘타이코 + 센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