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대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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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를 불려 껍질을 벗긴 다음 갈아낸 반죽에 고기채소를 넣어서 반죽한 다음 원반 모양으로 두툼하게 기름에 부쳐내는 음식. 녹두전, 혹은 녹두부침개라고 부르기도 하고 가끔 빈대떡 대신 '녹두전'으로 메뉴에 올려놓은 음식점도 종종 볼 수 있다.

'떡'이라는 이름이 들어가긴 하지만 을 사용하지 않으며 재료나 만드는 방법이나 우리가 흔히 아는 과는 거리가 있으므로[1] 오히려 녹두전이나 녹두부침개, 혹은 녹두전병이 더 맞는 표현이긴 하다. 지금은 콩기름 같은 식용유로 부치지만 옛날에는 돼지기름으로 부치는 게 정석이었다.[2] 즉 반죽에는 돼지고기를 넣고 비계로 기름을 내어 그 기름으로 부친 음식이었다.

조선시대의 빈대떡은 지금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고 한다. 녹두를 불려 간 반죽을 밤이나 팥에 꿀에 말은 소를 올린 다음 다시 녹두반죽을 위에 덮고 부쳤다고 하는데[3], 그러니까 달달한 디저트에 가까운 음식이었고, 꿀이 들어가는만큼 지금의 이미지에 비해서는 많이 고급졌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과 같이 돼지고기, 숙주나물을 넣고 부쳐내는 서민스러운 음식은 일제강점기 들어서 정착되었고 '빈대떡'이라는 말이 등장한 것도 1920년대로 보고 있다. 이런 방식의 조리법이 문헌에 처음 나타난 것은 1924년에 이용기가 펴낸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인데 여기에 나오는 재료들을 보면 여전히 지금보다는 꽤나 재료가 호화로웠다. 파, 미나리, 배추의 흰 줄거리 데친 것, 쇠고기닭고기,돼지고기를 잘게 썰어 양념한 것, 표고버섯, 석이버섯, 목이버섯, 심지어 해삼, 전복까지도 나올 정도였다.

빈대떡의 어원에 관해서는 빈자(貧者)떡, 즉 가난한 사람이 먹는 음식이라는 말이 변해서 빈대떡이 된 것이라는 설이 가장 널리 퍼져 있지만 실제로 학자들은 '빙져'에서 온 것으로 보고 있다. '빙져'라는 말은 17세기부터 문헌에 나타난다.[4] '빙져'는 한자 餠(떡 병)을 중국식으로 읽은 것으로, 문헌에 따라서 '빙져', 또는 '빙쟈'라고 부른 것으로 나온다. '빙쟈'가 다시 '빈자'로 변하고, 이것이 다시 빈대로 변해서 빈대떡이 된 것으로 추정한다. 어째서 빈자떡이 빈대떡이 된 건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1938년에 나온 조선어사전에는 '빈자떡' 항목이 있는데 그 설명이 "'빈대떡'과 같음"으로 되어 있다. 즉, 이 때 이미 빈자떡보다는 빈대떡이 더 널리 쓰이고 있었다는 증거다. 빈자가 빈대로 변한 과정을 납작한 모양의 벌레인 빈대와 모양이 비슷해서가 아닌가 하는 견해도 있다. 콧날이 납작한 코를 '빈대코'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한 논리다. 이것도 어디까지나 추정일 뿐이고 증거는 없다. 그밖에도 어원에 관해서는 몇 가지 다른 설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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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자떡이라는 말처럼 과거에는 서민들의 음식이었다. 한국전쟁 후에 미국 원조로 밀가루가 밀려들기 전까지는 녹두보다 밀가루가 더 비쌌다.[5] 오히려 녹두는 기후를 잘 안 타고 잘 자라는 편이라 전국적으로 여기저기서 많이 심었다고 한다.[6] 값싼 녹두를 갈아서 되는 대로 재료를 넣어서 부쳐먹는 음식이었다. <빈대떡 신사> 가사에 "돈 없으면 대폿집에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7]라는 가사가 있는 점을 봐도 옛날에는 값싼 음식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서 해방되고 나서 빈대떡집이 확 늘었다는 기록도 있는데, 그만큼 돈 없는 서민들이 그나마 부담없이 배도 채우도 술도 한잔 할 수 있었던 음식이 빈대떡이었다. 이후에 미국 원조로 밀가루가 대량으로 들어오면서 밀가루는 넘쳐나는 상황이 되었고, 빈대떡도 값싼 녹두 대신 밀가루를 섞어서 쓰거나 그냥 밀가루 반죽으로 부쳐 만든 빈대떡도 등장했다. 하지만 밀가루가 들어가면 식감 차이가 많이 나는지라 여전히 빈대떡은 녹두를 갈아만드는 게 정석이고 빈대떡 전문점들은 그렇게 한다.

지금도 빈대떡은 그리 비싼 음식은 아니다. 국산 녹두야 이제는 밀가루와는 넘사벽으로 차이나게 비싸지만 중국산을 비롯한 수입산 녹두밀가루보다는 비싸도 값이 싼 편이라 빈대떡 전문점에 가 봐도 그리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안주다.

녹두 특유의 고소한 맛, 그리고 부침개다운 기름진 맛이 어울려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이다. 녹두를 불린 다음 맷돌로 갈아서 만들면 약간의 입자감도 있어서 더더욱 빈대떡스러운 맛이 난다. 명절 음식으로 여러 가지 전과 함께 종종 등장하는 음식이기도 하고, 막걸리와 함께 걸치는 안주로도 널리 사랑 받는다. 반죽에 함께 넣는 재료도 나물, 채소, 고기, 해산물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변화를 주면 수많은 변형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많은 빈대떡 전문점에서는 갖가지 빈대떡을 메뉴에 줄줄이 올린다. 기본으로 많이 들어가는 재료는 숙주나물, 고사리, 양파, 돼지고기 정도. 만드는 방식은 다르지만 원반형으로 만들고 토핑으로 다양한 변화를 준다는 점에서는 일본의 오코노미야키나 이탈리아의 피자와 닮은 점도 있다. 물론 피자는 반죽 위에 토핑을 얹어 구워내는 방식이고, 빈대떡은 반죽과 함께 섞어서 기름에 부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8]

외국인들도 좋아하는 한국음식이다. 청양고추를 때려넣지 않는 한은 맵지 않고 기름지지만[9] 담백한 스타일이고 반죽에 넣는 재료도 취향에 맞게 다양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외국인들에게 거부감이 적다. 빈대떡 말고도 외국인들이 대체로 은 좋아하는 편이다.

서울 광장시장 빈대떡이 꽤나 유명하다. 두께를 아주 두툼하게 해서 거의 기름에 튀기듯이 겉은 바삭하고 아주 두툼하게 부쳐내는 것이 특징으로, 마약김밥, 대창순대와 함께 광장시장을 상징하는 대표 음식 중 하나다. 체인점으로는 종로빈대떡이 가장 널리 퍼져 있고, 동네에도 전집 하나 정도 있는 곳이 많이 있으므로 이런 곳이라면 빈대떡 정도는 대부분 팔고 있다. 종로 피맛골에서 1945년 광복 직후에 문을 연 청일집[10] 역시도 빈대떡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60년 이상을 한 곳에서 장사해 왔지만 재개발로 일대가 헐리면서 새 건물로 이사를 했는데, 이 때 기존에 쓰던 막걸리잔과 주방용품과 같은 기물을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했다.[11]

각주

  1. 하지만 지지는 방식으로 만드는 전병도 있으므로 이 범주 안에는 들어갈 수 있다.
  2. 지금이야 콩기름이 값싼 기름이지만 옛날에는 기계를 사용한 압착 기술이 부족했으므로 구하기 어려웠다. 오히려 돼지를 잡으면 나오는 부산물인 돼지기름이 더 구하기 쉬웠다.
  3. "근대 서민의 술안주, 빈대떡", 지역N문화, 한국문화원연합회.
  4. http://www.korean.go.kr/nkview/nknews/200008/25_4.htm
  5. 한국도 밀을 키우기는 했지만 제분기술 부족으로 밀가루로는 잘 쓰지 않았고 그냥 쌀이나 보리처럼 밥을 지어먹는 게 보통이었다.
  6. 당장에 동학농민혁명을 일으킨 대장 전봉준의 별명이 '녹두장군'이었다. 관리들의 부정부패에 민중들이 반기를 든 동학혁명의 선봉장의 별명이 조선에서 잘 나지도 않고 비싸서 잘 먹지도 못하는 곡식일 리는 없지 않은가.
  7. 원 가사는 '돈 없으면 대폿집에서'였는데 시간이 흐르며서 '돈 없으면 집에 가서'로 부르는 버전이 생겨났고, 심지어는 원조 가수인 한복남도 이 가사로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원래 가사는 '돈 없으면 대폿집에서'다.
  8. 기본 반죽 + 토핑 방식으로 만드는 방식으로는 오히려 동래파전 같은 음식이 피자에 가깝다.
  9. 물론 기름진 음식을 엄청 좋아하는 외국인들도 많다.
  10. 이 동네에는 해장국으로 유명한 청진옥 창업자의 동생이 운영하는 청일옥이라는 가게도 있는데, 이곳과는 다른 가게이며 둘 다 노포로 이름을 날렸다.
  11. "피맛골 선술집 '청일집' 박물관으로", 연합뉴스, 2010년 2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