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빼미 여행
야행성 조류의 대표격인 올빼미의 이름을 빌린 말로, 야행성 여행이라는 뜻은 아니고 숙소에 묵는 횟수를 최대한 줄인 여행을 뜻한다. 국내여행은 제주도나 울릉도와 같은 섬 지역을 제외한다면 자가용을 이용할 수 있으므로 시간 선택이 자유롭지만 해외여행은 배편이 있는 일본 후쿠오카나 오사카 정도를 제외하면 일단 목적지로 가려면 항공편을 이용해야 하며, 어느 경우든 공항 또는 항만으로 가서 입출국 수속을 하는 시간도 상당히 깨지기 때문에 일정 짜기가 까다롭다. 그래도 가까운 이웃 나라를 방문한다면, 그리고 적당한 항공편이 있다면 올빼미 여행이 가능하며, 실제로 이러한 수요를 노리는 여행상품이나 항공편도 있다.
흔히 여행 일정을 얘기할 때 '몇 박 몇 일'로 이야기한다. 보통은 숙박 일수는 '전체 여행 일수 - 1'이다. 3박 4일, 7박 8일, 이런 식이다. 숙박은 그만큼 돈이 나가므로 같은 일정이라도 숙박 일수를 하루라도 줄일 수 있다면 그만큼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또한 휴가를 쓰지 않고 주말을 이용해야 하는 직장인이라면 금요일 퇴근 시간과 월요일 출근 시간 사이의 시간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으로 올빼미 여행을 선택한다. 예를 들어,
- 금요일 퇴근 후에 바로 공항으로 가서 비행기를 탄다. 6시 퇴근이라고 치고, 서울 시내 기준으로 최대한 서두르면 저녁 8~9시면 인천공항에 도착할 수 있으므로 밤 10시대 비행편이 있다면 탈 수 있다. 일본처럼 가까운 곳이라면 입출국 수속과 비행시간, 현지 입국 후 이동시간을 감안하면 어찌어찌 늦은 밤에는 도착할 수 있다. 그러면 일단 숙소로 가서 하룻밤 자고 다음날 아침부터 움직일 수 있다. 아예 심야 항공편을 이용하면 현지에 이른 새벽에 도착할 수 있고, 공항에서 한두 시간 개기다가 시내에 도착하면 대략 새벽이나 이른 아침 시간대다. 부산에서 출발한다면 짐은 숙소에 맡겨 두거나 코인 로커에 넣어두고 바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하루치 숙박비를 절약할 수 있다. 일본으로 간다면 밤에 출발하는 페리를 타면 다음날 아침에 도착하므로 배에서 1박을 해결할 수 있다.
- 돌아올 때에도 새벽 항공편을 이용한다. 일요일 심야까지 할 거 다 하다가 월요일 이른 새벽에 출발하는 항공편을 이용한다. 한국에 도착하면 바로 출근한다. 시간이 조금이라도 남으면 근처 사우나에서 씻고 출근하면 꾀죄죄한 모습도 안 보일 수 있다. 너무 빡빡하다면 월요일 오전 반차를 쓰면 조금 더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최대한 쥐어짜면 금요일에 출발해서 월요일까지, 총 4일을 단 1박만 하고 해결할 수도 있다. 물론 실제 여행기간은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에 불과하지만 이 이틀을 아침 일찍부터 거의 풀로 쓸 수 있기 때문에 토요일 아침에 한국에서 출발하는 2박 3일 여행과 비교하면 실제 여행지에서 쓰는 시간은 확실히 더 많다. 금요일 저녁에 출발해서 현지에 도착한 다음 바로 숙소로 가서 자면 2박 4일이 되지만 토요일 아침 일찍부터 일정을 시작할 수 있으므로 효율이 높아진다. 1박으로 쥐어짜는 것보다 좋은 컨디션으로 여행할 수 있는 것도 장점.
당연한 얘기지만 올빼미 여행을 다녀오면 몸은 엄청 축난다. 월요일 아침에 어찌 어찌 출근은 할 수 있지만 당연히 제 컨디션으로 일할 수가 없다. 젊고 체력에 정말 자신이 있지 않으면 배겨내기가 힘들다.
올빼미 여행으로 갈 수 있는 곳
항공편으로는 우리나라에서는 사실상 인천공항밖에는 답이 없다. 국제선 운영이 어느 정도 되는 곳은 인천공항과 김포공항, 김해공항이지만 인천공항만 24시간 이착륙이 가능하므로 심야 및 새벽편 이착륙편을 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스케줄을 짜자면 이론적으로 올빼미 여행을 갈 수 있는 곳은 상당히 많지만 비행기 타고 왔다 갔다 하는 게 전부라면[1] 올빼미 여행이라고 하긴 그렇고, 우리나라에서 금요일 저녁에 출발해서 월요일 아침에 돌아오는 스케줄로 토요일과 일요일을 거의 풀로 현지 여행에 쓸 수 있는 곳만 이 항목에 포함한다.
배편을 이용한디면 부산항애서 시모노세키로 가는 부관훼리나 후쿠오카로 가는 뉴카멜리아호를 이용할 수 있다. 오사카로 가는 팬스타도 있지만 부산항 출발이 오후 3시인 데다가 화요일,목요일,일요일에만 출발하므로 주말을 낀 올빼미 여행은 불가능하다.
일본
우리나라에서 가장 올빼미 여행 수요가 많은 곳으로 전용 여행상품도 많이 있으며 이 수요를 노린 항공편도 있다. 여행 성수기에는 전세기까지 띄운다. 다만 여행사에서 전세기까지 마련해서 기획상품을 판매하지 않는 한은 올빼미 여행이 가능한 곳은 사실상 도쿄 일대 뿐이다. 다른 지역은 출국편은 저녁 시간대가 있지만 귀국편이 새벽 시간대가 없는 게 문제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모두 올빼미 여행 수요를 노린 항공편을 운영하는데, 바로 인천공항-도쿄 하네다공항 항공편이다. 원래 서울과 도쿄 사이의 항공편은 인천공항-나리타공항, 김포공항-하네다공항으로 짝지워져 있는데, 두 항공사가 심야편 한 편씩은 인천공항-하네다공항을 운항한다. 김포공항과 나리타공항은 운항 제한시간대도 있고, 김포공항-하네다공항은 비즈니스 수요를 중심으로 항공료를 비싸게 받아먹고 있기도 하다. 하네다공항에는 자정 언저리에 도착하는데, 도시철도 막차를 타거나 심야버스편으로 도쿄 시내로 들어갈 수 있다.
숙소를 잡았다면 일단 들어가서 잔 다음에 토요일 아침에 가뿐한 마음으로 여행을 시작할 수도 있고, 숙소를 안 잡았다면 공항에서 개기거나, 일단 도쿄 시내로 가서 24시간 영업하는 곳에서 개기다가 아침에 숙소로 가서 짐만 맡겨놓고 돌아다니거나, 영 피곤하다면 저렴한 캡슐 호텔 같은 곳을 구해서 자는 방법도 있다.
하네다공항에서 돌아오는 편은 이른 새벽 시간대에 운항한다. 철도가 끊기기 전까지 공항에 들어오지 않으면 이후 시간대에는 심야 공항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철도 교통편으로 공항에 와서 개기는 것도 괜찮다. 몇몇 식음료 업장은 24시간 영업하지만 심야에는 할증료가 붙으니 주의.
굳이 정기편을 이용해서 다른 지역으로 올빼미 여행을 가고 싶다면 가는 편은 금요일 저녁에 오사카, 후쿠오카와 같은 곳으로 간 다음, 일요일 저녁에 일본 안에서 신칸센이나 국내선 항공편으로 도쿄로 오는 방법도 있다. 시간 낭비 돈 낭비다. 그냥 연차 내자.[2]
홍콩
홍콩도 올빼미 여행이 가능하다. 도시국가라서 관광지들이 조밀하게 뭉쳐 있으며 교통도 편리하기 때문에 짧은 여행 일정을 알차게 짤 수 있다. 홍콩에서 버스나 배편으로 1시간 정도면 갈 수 있는 마카오도 포함할 수 있으며,[3] 현지에서 비자를 받을 수 있으면 중국 선전도 포함.[4] 인천공항과 홍콩공항 각각 심야비행편이 있다. 인천→홍콩 비행편은 밤 9~10시에 출발하는 편이 있는데, 홍콩에 자정 언저리에 도착한다. 심야교통편을 이용해서 홍콩 시내로 들어가거나 공항에서 버티다가 아침 일찍 시내로 들어갈 수도 있다. 홍콩→인천 비행편은 자정을 넘긴 시간에도 있어서 이른 새벽에 인천공항에 떨어진다.
싱가포르
올빼미 여행의 한계가 대략 싱가포르 정도일 듯. 이보다 더 길어지면 비행기 안에서 보내는 시간은 길어지고 항공권은 비싸지는데 현지 일정은 줄어들기 때문에 가성비가 안 나와도 너무 안 나온다. 싱가포르 올빼미 여행조차 가성비 면에서는 별로지만, 그래도 좀 멀리 떠나보고 싶다는 사람들에게는 대략 싱가포르 정도가 한계라고 할 수 있다. 홍콩처럼 도시국가라서 여행지가 오밀조밀하게 몰려 있는 데다가 영어도 잘 통하고 관광 인프라도 잘 갖춰져 있기 때문에 짧은 일정을 알차게 즐길 수 있다. 바로 이웃인 말레이시아도 올빼미 여행이 가능한 거리지만 항공편이 싱가포르만큼 많지 않다. 싱가포르→쿠알라룸푸르로 넘어가는 방법도 있긴 하다. 항공편은 국내선 수준으로 많이 깔려 있어서 환승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환승 시간에 1시간 비행하는 만큼 시간이 깨지므로 여행을 알차게 보내기 힘들다.
일단 싱가포르항공이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인천 노선에 하루 네 편을 굴리고 있기 때문에 시간대의 폭이 넓다. 특히 인천에서는 밤 11시경에 출발하는 항공편이 있어서 싱가포르에 이른 아침에 도착할 수 있고, 싱가포르에서는 새벽 1시경 출발편이 있어서 인천공항에 도착하면 7~8시 정도다. 회사가 서울 시내에 있다면 9시 출근 시간 맞추기는 좀 어렵지만 반차를 내거나 한두 시간 정도 양해를 구하는 정도로 해결이 가능하다. 따라서 금요일 저녁에 출발해서 주말을 싱가포르에서 보낸 다음 월요일 아침에 도착하는 일정을 짜는 게 가능하다. 인천-싱가포르는 대략 6시간 30분 걸리므로 비행기에서 내리면 좀 피곤하긴 하겠지만[5] 토요일 아침부터 일요일 저녁까지 싱가포르 여행을 할 수 있다. 물론 짧은 여행 일정 치고는 항공권 가격이 부담되겠지만...[6]
현지 이동
숙박을 줄이는 방법으로는 현지에서 야간 교통편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예를 들어 후쿠오카와 오사카를 묶어서 여행을 하겠다고 하면, 대략 9시간 정도 걸리는 야간 고속버스편을 이용해서 숙박비를 절약할 수 있다. 돈도 절약할 수 있지만 낮시간에 이동을 하면 그만큼 실제 여행에 쓸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에 잠과 이동을 한꺼번에 해결함으로써 한정된 시간 안에 최대한 효율을 높일 수 있다. 야간에 운행하는 고속버스는 승객들이 잠을 잔다는 걸 전제조건으로 하므로 몇 가지 편의시설이나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좌석별로 커튼을 설치한다든가, 안대, 슬리퍼, 물을 제공한다든가 하는 식. 야간 침대열차를 이용할 수 있다면 좀 더 편하게 잘 수 있지만 비용이 비싸고 최근에는 고속열차가 대세가 되면서 점점 자취를 감추는 모양새다. 물론 1주일 내내 열차 안에서 생활해야 하는 극단적인 사례인 시베리아 횡단철도도 있지만...
각주
- ↑ 예를 들어 유럽이나 미국도 항공편 시간대에 따라 금요일 저녁에 출발했다가 월요일 아침에 돌아오는 일정을 찾을 수도 있다. 하지만 편도 비행시간이 10시간이 넘어간다. 유럽이나 미국은 시차가 크므로 시차가 별로 없는 호주를 기준으로 한다면, 한국에서 저녁 8~9시에 출발하는 항공편은 호주에 아침 7~8시에 도착한다. 입국수속하고 짐 찾고 어쩌고 하면 일정은 대략 점심참부터 시작할 수 있다. 반대로 호주에서 출발할 때에도 저녁 7~8시에는 출발해야 하므로 공항에서 체크인하고 출국수속하는 시간을 감안하면 현지 일정은 3~4시면 사실상 끝난다. 물론 비즈니스 클래스 아니면 이미 현지에 도착했을 때 오랜 비행으로 몸은 파김치가 되어 있을 것이고...
- ↑ 오사카나 후쿠오카는 아침 귀국편도 있기 때문에 반차만 내고 아침 항공편으로 들어올 수 있다.
- ↑ 이쪽 교통편은 24시간 운영하므로 심야에도 움직일 수 있다.
- ↑ 중국도 거리나 항공편에 따라서는 이론적으로 올빼미 여행이 가능하지만 중국 여행은 비자나 이동에 여러 가지 제약 조건이 달라붙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다.
- ↑ 달리 보면 단거리 비행에 비해 눈붙일 짬이 좀 된다는 장점도 있다.
- ↑ 굳이 우기자면 싱가포르에서는 딱 1박만 하면 되므로 숙소 비용 절약으로 항공권 부담을 조금 상쇄할 수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