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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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glish cuisine.

말 그대로 영국의 요리. 그러나 요리 대접은 전혀 못 받고 있는 생명유지용 물질.

진짜 영국요리는 꽝인가?

의견이 분분하다. 사실 지금 영국에 가서 음식을 먹는다면 영국요리가 뭐 어떻다는 거야? 하고 생각할 것이다. 런던은 미슐랭 가이드 별을 받은 레스토랑이 즐비한 미식 천국이고 웬만한 런던의 큰 도시들도 맛집들이 곳곳에 있다. 영국요리가 개그 소재로 워낙에 많이 쓰이다 보니 자국민들도 셀프디스를 하고 필요 이상으로 과장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밑도 끝도 없는 낭설이라 보긴 어렵다.

문제는 그래서 영국요리가 뭔가? 하면 별로 기억 나는 게 나오지 않는다는 것. 만약 한국에서 파스타를 먹었는데 맛있다고 치자, 그럼 이게 '한국요리가 맛있네...' 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다. 런던에 가면 미슐랭 별들이 파리보다 더욱 반짝일 정도로 빛난다고 하지만 그게 영국요리의 우수성을 입증해 주는 것인가, 라고 단순히 말하기는 어렵다. 즉 '영국에 가서 먹는 요리'와 '영국요리'는 같지 않다는 얘기다.

유럽에서 가장 문화가 발달했다고 할 수 있는 나라들을 생각해 보자. 이탈리아에는 파스타, 피자, 리소토를 비롯해서 전 세계를 석권하다시피 한 갖가지 이탈리아요리들이 있고, 프랑스는 호화로운 그리고 푸아그라오르톨랑처럼 잔인한 미식의 천국이다. 독일소시지 문화가 발달해 왔고 독일식 족발 요리인 슈바인스학세을 비롯해서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 요리들이 있다.

그럼 영국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이라면 피시 앤드 칩스인데, 이거야 잘 알려진 대로 그냥 생선튀김에 감자튀김이고 길거리음식에 가깝다. 원래는 신문지에 싸주던 것이다. 이것도 어째 바깥으로 나가서 호주미국으로 가면 기름도 느끼함이 덜하고, 생선도 더 신선해 보일 정도로 덜 느끼하며, 더욱 버라이어티하게 튀겨 준다.[1] 그밖에 자주 거론되는 요리라면 영국식 아침식사인 잉글리시 브렉퍼스트가 있지만 이것 역시 알고 보면 칼로리 폭탄들을 이것저것 모아놓은 것에 가깝고, 오히려 외국으로 나가면 다양하게 개량되고 좀 더 고급화의 길을 걸어서 더 맛있어 보일 정도다. 아무튼 나라 바깥으로 나가면 먹었다 하면 배로 갈 것 같은 느끼함을 상당히 덜어낸 스타일로 진화한다. 지금은 영국에서도 얼마든지 고급스럽고 맛있는 잉글리시 브렉퍼스트를 즐길 수 있다.

그밖에 거론할 수 있는 것들은 소고기를 오븐에 구운 선데이 로스트나 크리스마스 요리 정도가 있다. 그보다 더 나가면 뭔가 엽기적이거나 영국 사람들도 '그걸 먹었어?' 하고 놀라는 해기스, 스코치 에그, 블랙푸딩 등등으로 나아간다. 엽기적인 것들은 왠지 모르게 스코틀랜드 쪽 음식들이다. 확실히, 영국요리라고 뭔가 내놓을 게 유럽의 다른 강국들과 비교하면 부실하고 저렴해 보이는 건 아무래도 부인하기 힘들다. 유럽에서 차지하고 있는 역사나 전통, 명성에 비해서 '영국요리 전문점'이라고 해 놓은 음식점을 본 적이 있는지? 하지만 디저트 쪽으로 본다면 아프터눈 티의 전통이 있는 나라답게 어느 나라에도 뒤떨어지지 않는 디저트 문화를 가지고 있고, 홍차 문화를 선도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라멘, 카레, 돈카츠와 같이 외국의 요리들을 이것저것 받아들여 자기화시켜 이제는 일본요리처럼 편입시켜버린 일본의 예처럼, 꼭 전통 영국요리가 아니더라도 영국에 와서 개량과 발전을 이루어 원판과는 동떨어진 영국만의 식문화가 되었다면 그 역시 영국요리로 봐 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정도로 세계적으로 인정 받는 것도 별로 없다. 인도의 커리 문화가 영국으로 넘어와서 스튜 형태의 티카 마살라로 발전했는데, 이는 확실히 영국화된 커리 요리고 영국인들은 자기네들 거라는 부심도 있지만 영국 밖으로 나가면 그렇게 인정해 주는 이들이 별로 없고 오히려 비웃음만 사는 실정이다.

결론적으로, 영국에 여행을 간다면 음식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대도시에는 맛있는 요리를 제공하는 음식점들이 넘쳐난다. 런던은 세계적인 미식의 도시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가격 비싼 거야 어쩔 수 없는 거고. 다만, 영국에 갔으니까 전통 영국요리를 먹어야겠어... 라는 생각은 접어두자.

잘 알려져 있는 영국음식들

  •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 이건 단일한 요리는 아니고 아침식사용으로 먹는 것들을 이것저것 모아놓은 종합판에 가깝다.

그밖에

영국요리가 워낙 악명이 높다 보니 유명인사들이 갖가지 평가들을 남겼는데, 이게 외교문제로 비화한 적이 있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이 2005년 러시아·프랑스·독일 정상회담 기간에 한 발언이 문제가 된 것.

You cannot trust people who have such bad cuisine. It is the country [Great Britain] with the worst food after Finland.
(음식이 형편 없는 나라 사람들은 믿을 수가 없다. 이 나라(영국)는 핀란드 다음으로 음식이 최악이다.)


영국도 불쾌해 했지만[2] 더 열 받은 건 의문의 1패를 당한 핀란드. 졸지에 음식의 악의 축이 되어 버린 핀란드의 유럽의회 의원인 알렉산더 스터브 유럽의회는 시라크에게 "영국핀란드의 권위있는 재료로 수준높은 음식을 만들어 실망시키지 않겠다"면서 만찬에 초청하겠다는 공개서한을 보냈다. 알렉산더 스터브의 부인은 영국인이다. 그런데 시라크는 1999년에 핀란드를 방문했고 고라니와 사슴고기, 생선요리와 같은 전통 핀란드요리로 아주 잘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3] 대접은 잘 받았지만 맛있다고는 안 했다.

문제가 시끄러워지자 프랑스 정부는 시라크의 발언을 언론이 부풀린 것이라고 변명했지만, 문제는 당시 프랑스가 2012년 올림픽 개최권을 놓고 영국과 경쟁하던 때였다. 핀란드에는 투표권을 가진 IOC 위원이 2명 있었는데, 이들이 개최지 투표 직전에 터진 시라크의 망언에 빡쳤을 것은 당연한 얘기. 결국 개최지 투표 결과 파리가 런던에 딱 4표 차이로 졌다.[4] 만약 핀란드 IOC 위원들이 원래 파리 쪽에 투표할 생각이었는데 시라크 때문에 런던에 표를 던졌다면 프랑스는 -2, 런던은 +2가 되어 합이 4가 되는 것이니, 시라크만 아니었다면 적어도 파리와 런던이 동률이 되었을 것이라는 가정을 할 수 있다. 한표가 아쉬운 박빙의 경쟁에서 던진 망언으로 시라크는 프랑스 안에서 욕을 바가지로 들어 먹었다. 이렇게 올림픽 개최권까지 날려먹으면서 핀란드요리와 영국요리를 돌려까기 한 시라크는 그 직후 스코틀랜드에서 열린 G8 정상회담에서는 스코틀랜드 전통요리를 잘만 먹었다.

각주

  1. 영국 쪽은 튀길 때 라드유를 써서 더 느끼하다는 얘기가 있다. 느끼한 게 제맛이라는 분들은 물론 이쪽을 더 좋아한다. 지금은 영국도 대부분 식물성유에 튀긴다.
  2. 시라크는 이 정상회담 직후 G8 정상회담 참석차 스코틀랜드로 갔는데, 도착하자마자 이 발언에 관한 영국 기자들의 질문 공세에 시달렸다.
  3. 시라크 ‘음식 모독’에 핀란드도 발끈, 경향신문, 2005년 7월 6일.
  4. "시라크 실언이 파리를 울렸다", 뉴스메이커 633호, 2005년 7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