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과 소시지를 주 재료로 만드는 찌개요리. 한국식 퓨전 요리의 대표격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하지만 철저하게 한국화된 요리다. 맵고 짠 찌개가 세계인의 사랑을 받기란 쉽지 않은지라... 그래도 외국인들도 점점 한국 음식에 익숙해지면서 부대찌개를 즐기는 외국인들도 늘고 있다. 매운 찌개나 전골로 입문한다면 외국인들에게는 가장 쉽게 적응할 수 있는 음식이기도 하니.[1]
유래
부대찌개의 '부대'는 미군부대를 뜻한다. 요즘이야 햄 소시지가 싸구려 가공식품으로 널렸지만 부대찌개가 처음 등장한 시절에는 미군부대애서 흘러나온 거나 맛볼 수 있었다. 그래서 햄이나 소시지를 (미군)부대에서 나온 거라고 해서 부대고기라 했고 그 이름이 부대찌개로도 넘어갔다. 부대찌개로 유명한 곳이 의정부나 송탄인 이유도 큰 미군부대가 있어서 부대고기를 구하기가 쉬운 편이었기 때문. 물론 지금은 햄 소시지가 정크푸드 취급 받으니 굳이 어렵게 구할 필요가 없긴 한데, 그래도 장사한 지 오래된 가게들 중에는 미군부대에서 널리 소비되었던 스팸이나 콘킹소시지를 고집하는 곳들도 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자존심 상하는 유래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꿀꿀이죽보다는 백번 나은 거다. 전쟁 후에 미군부대 주위에서 팔던 꿀꿀이죽은 그냥 미군 짬밥 나온 걸 드럼통에 넣고 푹푹 끓인 것이다. 우리가 구내식당에서 버리는 짬밥을 팔팔 끓여서 사람이 죽으로 먹는다고 생각해 보라... 생각만 해도 토나올 거다. 우리가 버리는 짬밥은 돼지 먹이로 많이 가는데, 그러니 '꿀꿀이죽'이라는 말이 붙을 만하다. 담배꽁초니 콘돔 껍질이니 별의별게 다 나왔다고 한다. 그것도 60년대까지는 없어서 못 먹을 정도로 식량 사정은 바닥이었다. 부대찌개에 들어갔던 햄이나 소시지에는 가끔 이빨 자국이 있거나 하는 경우는 있어도 꿀꿀이죽처럼 말도 안 되는 게 나오는 정도는 아니었다.[2] 이런 게 우리나라에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 대부분의 나라가 식량난을 해결한 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였다. 그 전에는 서양도 서민들은 귀족이나 부자가 먹고 남은 것을 먹는 건 흔한 일이었다. 일본도 패전 뒤에는 꿀꿀이죽과 비슷한 게 있었다.
처음에는 찌개가 아니라 김치와 채소를 썰어넣고 볶는 요리였는데 역시 국물을 사랑하는 한국인이라 찌개로 발전했다. 초창기의 부대찌개도 그다지 위생적이지는 않았던 듯. 지금이야 정크푸드로 찍힌 신세지만 70년대만 해도 햄이나 소시지 자체가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소수였는데[3] 상태 좋고 멀쩡한 햄 소시지는 따로 암시장에서 팔렸거나 미군하고 줄 좀 있는 사람들이 자랑하면서 먹었을 거다. 부대찌개가 고급 음식도 아니었으니 처음에는 쓰다 남은 것, 먹다 남은 것도 들어가서 이빨자국도 나오고, 그랬던 모양.
많이 알려져 있지만 미군기지가 있던 곳의 주변에서 발달한지라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집들도 이쪽에 주로 분포되어 있다. 원조로 인정 받는 의정부의 오뎅식당 역시 의정부 미군부대 근처에 있다. 부대찌개에 웬 오뎅? 싶을 텐데, 원래는 오뎅을 주로 파는 포장마차였다고 한다. 의정부 쪽은 좀 더 깔끔한 맛이리면 송탄 쪽은 좀 더 미군부대 재료를 많이 넣고 매운 맛을 줄여서 느끼한 성향이 강하다. 의정부는 육군이 주둔하고 있었고 송탄 쪽으로는 오산 미군기지가 있는데 그런 차이를 반영한 것일 지도.
재료
여러 가지 변형이 있지만 대체로 다음과 같은 재료를 쓴다.
- 깡통햄. 스팸이나 덴마크 튤립햄 같은 종류가 제일 좋다. 일단 깡통햄의 기름과 조미료가 부대찌개 맛에는 꼭 필요한지라. 김밥용 햄 같은 것은 절대 사절. 말은 그렇지만 저렴한 부대찌개, 혹은 밀키트 부대찌개는 대부분 닭고기 함량이 높으며, 그나마도 기계발골육, 즉 뼈다귀에 붙은 살쪼가리들을 긁어 모은 저질육을 주로 쓴다.
- 프랑크 소시지.
- 고춧가루 양념, 또는 보리고추장. 쌀고추장 넣지 마라. 완전 꽝 된다.[4]
- 갈은 고기.
- 베이크드빈.
- 마늘 다진 것, 양파, 대파, 두부를 비롯한 몇 가지 채소. 콩나물을 넣는 집도 꽤 있는데, 부대찌개는 알고 보면 걸쭉하고 느끼한
MSG맛이 중요한지라 콩나물을 넣으면 시원한 맛이 오히려 부대찌개와 안 맞는다. 넣고 싶다면 조금만 넣자. 다만 콩나물을 넣고도 꽤 근사한 맛을 내는 가게들도 있다. 쑥갓이 들어가는 집도 있다. - 육수. 하지만 물만으로도 괜찮다. 어차피 햄과 소시지의 조미료가 국물의 진짜 베이스다.
- 슬라이스 치즈.
많은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부대찌개는 김치찌개에 돼지고기 대신 햄하고 소시지만 넣으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건데, 절대 아니다. 그렇게 만들어 보면 절대로 부대찌개 맛이 안 나고 그냥 햄 넣은 김치찌개 맛만 난다. 김치를 아예 넣지 않는 부대찌개집들도 많다. 집에서 부대찌개를 끓여봐도 맛이 잘 안 나는데, 그 이유는 의외로 베이크드빈에 있다. 베이크드빈이 들어가느냐 안 들어가느냐로 맛이 확 차이가 난다. 고춧가루를 주원료로 한 양념장과 함께 베이크드빈의 토마토 소스가 부대찌개 특유의 맛을 내는 비결 중 하나다. 부대찌개 전문점이 아닌 곳은 베이크드빈을 안 넣는 집들이 많은데, 그러면 아무리 잘 끓여도 의정부나 송탄식 부대찌개의 맛이 영 안 난다.
보통 끓이지 않은 상태로 손님이 있는 테이블로 가져와서 끓인다. 부대찌개 전문점이라면 테이블마다 가스레인지는 필수. 2인분부터 주문을 받는 가게가 많은 편이며, 1인분 주문을 받는 집 중에는 1인분은 테이블에서 못 끓이게 하고 그냥 큰 뚝배기 같은 데다가 끓여서 갖다 주기도 한다. 부대찌개에 라면사리를 넣어서 먹는 게 보통인데,[5] 허영만 화백의 <식객>에서는 원래 라면사리는 없었고 라면을 넣으면 라면의 전분과 기름이 녹아나와 국물이 텁텁해지므로 제대로 맛을 즐기려면 사리 없이 먹는 게 좋다는 얘기가 나온다. 또한 라면사리는 국물을 많이 흡수하기 때문에 육수를 좀 넉넉하게 넣어줘야 한다. 대체로 찌개나 전골이 다 그렇기는 하지만... 가래떡 썰은 것을 넣는 집도 많다. 여러 가지 사리를 추가할 수 있는데 음식점마다 다르지만 대략 이런 것들이 있다.
요즘은 부대찌개만 하는 집도 많지만 베이컨 소시지 볶음, 부대고기 볶음, 찹스테이크를 요리로 메뉴에 올리는 집들도 여전히 많다. 원래 부대찌개의 원류가 볶음이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이쪽이 더 원류에 가까운 셈. 정통에 가까운 요리법은 무쇠 솥에 부대고기와 양파, 피망과 같은 재료를 넣고 볶다가 막판에 마늘가루와 A1 스테이크 소스를 팍팍 치는 것. 고기나 소스나 미국 쪽 제품들을 활용한 것이다.
존슨탕
한편 존슨탕이라는 것도 있는데, 부대찌개와 구별되는 가장 큰 차이는 테이블에서 끓이는 게 아니라 미리 끓여서 나오는 것. 김치 대신 양배추가 들어가고 사골 육수를 써서 진한 맛을 내는 것도 특징이다. 감자가 들어가는 것도 특징. 여기에 치즈까지 들어가서 국물이 더더욱 걸쭉하고 진해진다. 부대찌개에서 약간 독일식 스튜처럼 변형된 것이다. 다만 일부 부대찌개집에서는 치즈를 넣은 좀 더 걸쭉한 부대찌개를 그냥 존슨탕이라고 팔기도 한다. 이런 곳은 그냥 테이블에서 끓여 먹는다.
용산미군기지 옆 이태원의 식당이 유래라는 게 정설이고, 이름의 유래는 1960년 대 미국 대통령이었던 린든 존슨 대통령과 연관짓는 설이 있다. 존슨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청와대에서 미국인 입맛에 맞는 음식으로 이걸 주문해서 맛보게 했다는 설이 있다. 미국의 흔한 남자 이름 중 하나인 존슨에서 따왔다고 보는 설도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존슨 대통령에 관련된 일화는 진짜라고 한다. <백종원의 3대천왕>에 출연한 존슨탕 원조집 업주가 실제로 존슨 대통령 방한 때 청와대에서 주문해 갔다고...
다만 앞에서 언급한 원조집 주인의 말에 따르면, 존슨탕이라는 말은 존슨 대통령에서 따온 말이 아니라 영양가가 높아서 몸에 좋았기 때문에 '좋다'라는 말에서 나왔던 거라는 좀 황당한 이야기를 했다. 즉, 좋은→존슨으로 변형되었다는 것. 좀 어거지 같긴 하지만 원조가 얘기하는데 안 믿을 수도 없고. 이 주인 말을 믿는다면 존슨 대통령과 존슨탕은 그저 기가 막힌 우연의 일치였다고 봐야 할 듯하다. 혹시 주한 미대사관이나 주한미군 쪽에서 부대 근처에 존슨탕이라는 게 있는데 대통령 이름과 같이 한번 드셔보시라고 했다면 또 몰라도... 이 원조집 주인분은 가족들과 독일에 이민을 간 적이 있었는데, 독일 음식이 입에 안 맞는 아이들을 위해서 거기서 구할 수 있는 소시지와 채소를 넣고 찌개를 끓였던 게 존슨탕의 유래였다고. 이 이야기를 들으면 김치 대신 양배추가 들어간 이유도 이해할 수 있다.[6] 지금이야 고칼로리에 가공육 덩어리인 부대찌개나 존슨탕을 건강식이라고 하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영양부족에 시달리던 6, 70년대만 해도 배불리 먹을 수만 있으면 건강에 좋은 거니, 고칼로리에 고기 듬뿍 든 요리가 몸에 좋다고 해서 이상할 게 없을 시대다. 게다가 쑥쑥 자라야 할 아이들은 고기를 좀 먹어줘야 하니 더더욱.
섞어찌개
섞어찌개라는 것도 있는데, 가장 유명한 명동의 금강 보글보글 섞어찌개[7]를 보면 햄과 소시지, 갈은 고기가 들어가며 여기에 떡과 라면사리도 들어가기 때문에 부대찌개와 비슷해 보이지만 가장 큰 차이는 오징어가 들어간다는 것. 양념장도 달라서 맛을 보면 고추장 맛이 약간 난다. 그 일대의 몇몇 가게를 비롯해서 가끔 '섞어찌개'를 메뉴에 올린 가게들이 있다. 섞어찌개는 일종의 잡탕이라서 이것저것 집어 넣고 끓이면서 '섞어찌개'라고 하면 되긴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명동의 금강 섞어찌개가 가장 유명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재료를 넣은 것을 '섞어찌개'라는 하나의 요리 스타일로 본다.
라면
라면으로도 나와 있다. 2015년과 2016년 초에 걸쳐 중화라면으로 한바탕 전쟁을 치른 라면 회사들이 2016년 중반부터는 부대찌개로 한판 벌리려는 분위기다.
- 농심 보글보글 부대찌개면
- 삼양라면: 부대찌개 라면은 아니지만 햄맛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부대찌개 계열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원래부터 삼양라면이 그랬던 것은 아니고, 리뉴얼 과정에서 햄맛 라면으로 방향을 틀었다.
- 오모리 부대찌개 라면: GS25의 PB 상품. 컵라면으로만 나오며 오모리 참치찌개 라면의 자매품이라 할 수 있다. 기반이 되는 제품인 오모리 김치찌개 라면처럼 김치가 메인이지만 부대찌개 특유의 맛을 내는 베이크드 빈도 들어 있어서 꽤 성의 있게 만들었다.
- 오뚜기 부대찌개 라면
- 팔도 놀부 부대찌개: 이름처럼 놀부와 콜라보레이션한 것. 물론 놀부 부대찌개의 그 맛을 기대하면 안 된다.
사실 놀부 부대찌개 자체가 맛은 좀 그렇잖아. - 팔도 부대찌개 라면
그밖에
외국인들에게도 꽤 인지도가 있는 요리다. 영어권에서는 '부대찌개'의 어원을 살린 'army soup', 'army stew'로 부르기도 하는데, 정작 왜 이런 이름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미국의 유명한 셰프이자 방송인이었던 앤서니 보데인이 한국음식 중 부대찌개를 정말로 좋아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가장 좋아하는 한국음식이라고 공개적으로 여러 번 언급했기 때문에 보데인 얘기를 하면서 부대찌개를 먹어보고 싶다는 외국인들이 많다.
각주
- ↑ 한편으로는 찌개 그릇 하나에 여러 사람이 숟가락을 넣는 문화에 외국인들이 질겁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부대찌개는 전골처럼 개인마다 떠먹는 게 정석이라 거부감이 적기도 하다.
- ↑ 이렇게 외국 부대에서 흘러나온 식재료로 발달한 음식들이 은근 있는데, 이탈리아의 카르보나라도 사실 2차 대전 후 이탈리아에 주둔했던 미군에게서 흘러나온 베이컨이나 달걀을 활용해서 만들었던 것이고, 미군을 통해 미국으로 역수입되면서 크림 소스를 사용한 미국식 카르보나라가 퍼졌다. 일본의 나폴리탄 스파게티 역시도 패전 후 주둔했던 미군이 묵던 호텔의 요리사가 대충 케첩에 스파게티 국수를 비벼먹던 미군들의 모습을 보고 만든 것.
- ↑ 70년대에도 나름 서민들이 먹을 수 있는 소시지가 있긴 했지만 어육소시지였다.
- ↑ 이건 떡볶이도 비슷해서 쌀고추장만으로 만들면 맛이 텁텁하다.
- ↑ 요즈음은 부대찌개를 인원 수대로 주문하면 라면사리는 무한 리필해 주는 가게도 늘고 있다.
- ↑ 독일에는 양배추를 발효시킨 절임 음식인 자우어크라우트가 있다.
- ↑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로 명동 상권이 망가지면서 2020년 11월에 문을 닫았다. 업주는 '휴업'이라고는 했지만 언제 문을 열 수 있을지, 정말 문을 열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