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버른
Melbourne.
호주 제2의 콩라인 도시이자 빅토리아 주의 주도. 호주의 도시를 이야기할 때 시드니와 함께 가장 먼저 거론되는 곳이다. 그 때문에 이 두 도시 중에 하나를 호주 수도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퀴즈 프로그램에 종종 나왔던 문제.
원어민 발음대로 하자면 '멜번'에 가깝지만 한국어의 외국어 표기법으로는 '멜버른'이다. 멜번보다는 멜버른이 더 멋져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야라강(Yarra River)을 기준으로 북쪽은 구도심. 오래된 건믈들이 즐비하다. 100년 이상 된 건물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남쪽은 비교적 새로 건설된 곳으로 초고층 빌딩들이 많다. 도시의 모습을 보자면 시드니보다는 훨씬 작아 보이는 느낌이지만 인구 수는 400만 명대로 별 차이 안 난다. 멜버른이나 시드니나 도시 권역이 넓게, 많이 펼쳐져 있다.
보통 멜버른 도심(정확히는 구도심)이라고 하면 CBD(Central Business District)를 뜻하는데, 좁게 보면 동서로는 스프링스트리트에서 스펜서스트리트 사이, 남북으로는 플린더스스트리트에서 라트로브스트리트 사이가 된다. 이를 호들 그리드(Hoddle Grid)라고 하며, 딱 이 안에 들어가는 곳들이 호주 우편번호 3000에 속한다. 하지만 서쪽의 도클랜드, 남쪽의 사우스야라 및 세인트킬다 일대와 같은 신도심에 북쪽의 노스멜버른이나 칼튼 일대까지 포함된 좀 더 넓은 권역이 멜버른 시내를 이루고 있다.
치안
안전한 편이다. 가끔 외국인 상대 범죄 사건이 보도되면서 위험한 곳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지만 으슥한 뒷골목이나 공원. 우범지대 같은 데만 안 다니면 밤늦은 시간이라도 안전한 편이다. 어딜 가나 외국인은 밤늦게 으슥한 데 안 돌아다니는 게 정석이다. 그렇다고 내국인도 그래도 되는 건 또 아니다. 멜버른 외곽 지역인 브런즈윅 스트리트 같은 곳은 우범지대로 알려져 있고, 거리가 떨어져 있는 근교 지역인 프랭크스톤은 10대 범죄 때문에 골치를 썩이고 있다. 아주 가끔 총격전이나 묻지마 칼부림이 나긴 하지만 드문 경우고 대체로는 밤늦게 으슥한 곳만 안 다니면 치안 걱정 안 해도 안전한 편이다. 경찰로 답 안 나와서 슈퍼맨과 배트맨이 설쳐대는 미국에 비하면 천국이지 뭘...
어쩌다 가끔 총기 사고가 뉴스에 나올 때가 있는데 아주 드문 일이니까 겁먹을 건 없다. 총기 규제에 관해서는 미국보다는 훨씬 강력하다. 어쨌든 외국 나갔으면 내 나라에 있을 때보다는 조심하는 게 기본이다. 외곽 쪽, 특히 주택가 쪽으로 가면 밤 되면 가로등도 꺼지고 컴컴하니 으스스하다. 생각보다는 큰 일은 안 생기지만 이런 지역의 친구집에 신세 지고 있거나 하면 너무 늦게 다니지 말자.
펍이나 클럽 문 앞에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정부에서 라이선스를 받은 가드가 지키고 있다. 의무로 배치해야 한다. 술에 취해서 행패 부리는 손놈이 있으면 바로 팔 꺾어서 내쫓아버린다. 그러면 경찰차가 바로 실어간다. 만취한 사람한테 술을 판 업주도 벌금을 물기 때문에 업소들도 술주정 민폐에는 단호하다. 혹시 술만 처먹으면 꽐라되는 친구가 있다면 멜버른으로 데리고 가자. 철창 신세 지고 나면 버릇 고칠 가능성이 높다.
교통
멜버른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여기가 진짜 인구 400만 도시 맞아?' 싶을 것이다. 도심 자체가 작을 뿐만 아니라 도로도 작고, 그 작은 도로에 딱히 교통체증이라 할 것도 별로 없다. 우리나라라면 오래된 중소도시 정도로 보일 모습이다. 오히려 진짜 크고 아름다운고층빌딩은 도심 바깥으로 삥 둘러 있다.
버스
도심보다는 주로 외곽 및 근교와 도시를 연결시키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일단 멜버른 도심에는 버스가 거의 다니지 않고 정류장도 몇 군데 없다. 외곽으로 갈수록 버스 배차 간격이 띄엄띄엄한 편이고 하루에 몇 편 없는 경우도 많다. 정류장에 시간표가 적혀 있긴 한데 제 시간을 잘 안 지키고 아예 말도 없이 안 와 버릴 때도 있다. 절대 철썩같이 믿으면 안 된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운행 횟수도 적고 첫차와 막차 시간도 다르다. 평일과 비교해서 첫차가 한두시간 이상 늦게 온다. 일요일은 토요일보다 더 심해서 뜸한 노선은 아예 운행을 안 해버리기도 하고, 운행 편수가 대폭 줄기도 한다. 주말에 외곽 지역에서 버스로 아침 일찍 어디 가는 건 포기하는 게 좋다.
목, 금, 토요일 심야에는 나이트 버스를 운행한다. 몇몇 특정 노선에서 심야에 30분~1시간 간격으로 밤새 버스를 운행한다.
철도
멜버른 철도 교통은 모든 지역 철도망인 메트로의 기점인 플린더스스트리트역과 광역철도망의 거점인 서던크로스역을 중심으로 한다. 고풍스러운 그리고 낡고 지저분한 플린더스스트리트역과 세계의 아름다운 역에 자주 이름을 올리는 멋지구리한 서던크로스역이 한 정거장 거리에 있다.
시내 구간을 순환하는 노선을 시티루프(City Loop)라고 한다.[1] 플린더스스트리트역 - 서던크로스역 - 플래그스태프역 - 멜버른 센트럴역 - 팔리먼트역 - 플린더스스트리트역으로 순환한다. 그런데 출퇴근 시간에는 시티루프가 한쪽 방향으로만 운행되곤 하기 때문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헤메기 십상이다.
예를 들어서 시티루프 바깥에 있는 리치몬드역에서 한 정거장만 가면 플린더스스트리트역이다. 그런데 하필 시티루프가 플린더스스트리트역에서 팔리먼트역 방향으로만 운행되는 시간에 걸리면 리치몬드역에서 시티루프로 반대 방향 한 바퀴를 빙 돌아야 플린더스스트리트역으로 갈 수 있다. 바로 한 정거장 앞인데 삥 돌아가려면 돌아버릴 일이다. 또한 플래그스태프역은 일요일과 휴일에는 영업을 하지 않으므로 열차가 그냥 통과해 버린다.
도시철도는 헬게이트 뉴욕 같은 곳과 비교하면 대체로 안전한 편이다. 다만 그놈의 그래피티 낙서 때문에 열차가 지저분해 보이고 밤늦은 시간에 열차에 사람이 없으면 껄렁껄렁한 젊은 녀석들이 가끔 시비를 걸 때가 있다. 그리 심한 일은 별로 벌어지지 않으므로 외국인이라고 깔보고 욕하면 그냥 참자. 하지만 태권도 유단자라면 어떨까? 그래도 참자 싸움 나면 어느 나라나 외국인이 다 뒤집어 쓰는 게 보통이다. 특히 프랭크스톤 행 열차에 탔다가 깜빡 졸아서 종착역까지 간다면...
열차 문이 자동으로 열리지 않는다. 안에서든 밖에서는 누가 열어야 열린다. 신형은 버튼을 누르는 방식이고 구형은 레버를 밀어야 한다.[2] 사름 별로 없는 역에서 열차 도착했다고 멀뚱멀뚱 있다가는 그냥 가버린다.
전차
지금도 전차(tram)가 주요 교통수단으로 활용되는 몇 안 되는 도시다. 여기서부터는 멜버른스럽게 '트램'으로 부르자. 시드니나 애덜레이드를 비롯한 다른 호주 도시에도 전차가 있긴 한데 거의 한두 개 노선만 남아 있거나 관광용으로 쓰이는 데 반해, 멜버른의 트램 노선은 굉장히 거미줄 같다. 도심에서는 버스나 지하철보다 훨씬 촘촘하게 짜여 있는 대중교통 수단이다. 야라트램(Yarra Tram)이 독점 운영한다.
어딘가로 빨리 가야 할 목적이라면 절대 피해야 할 교통수단이기도 하다. 최고 시속이 36km/h밖에 안 된다. 자전거 좀 타는 사람이 밣으면 트램보다 빠르다. 복잡한 시내 구간에서는 더 느리게 간다. 트램 타고 가고 있는데 문득 창밖을 보니 조깅하는 사람이 나보다 더 빠른 광경도 심심치 않게 목격된다.[3]
2014년부터 시내(CBD) 및 도클랜드 구간이 프리 트램 존(Free Tram Zone), 곧 무료 전차 구역으로 지정되었다. 이 구간 안에서 만큼은 어떤 노선이든 트램이 공짜다. 조깅하는 것보다 느린 걸 돈 받기가 뭐해서일까. 교통카드도 찍을 필요 없다. 단, 프리 트램 존 바깥에서 타서 안에서 내릴 때나, 반대로 프리 트램 존 안에서 타서 바깥에서 내릴 때에는 돈을 내야 한다. 프리 트램 존 안에서 탔을 때 교통카드를 안 찍었다면 구역을 벗어날 때 카드를 찍어야 한다. 안 찍으면 부정승차로 간주된다. 언제나 국경 주변에는 매의 눈을 가진 경비병들이기다리고 있다. 당신을 삥뜯기 위해서...
시내와 도클랜드 구간을 순환하는 35번 트램은 시티 서클(City Circle)이라고 부르며, 무료로 운행된다. 아예 교통카드 단말기도 없다. 하긴 트램도 고물이니까 단말기를 다는 게 불가능할 지도. 프리 트램 존이 생기기 전에는 35번만 무료였는데, 이제는 프리 트램 존 안에서는 어떤 트램이든 무료다. 바깥에서 보면 무척 고풍스러운 느낌이 드는, 하지만 타보면 냉방이고 뭐고 없는 똥고물인 트램이 배치된다. 좋게 말하면 클래시컬하니 어쨌거나 사진 찍기에는 그림이 근사하다. 유지 관리가 잘 되는 편이라서 내부는 낡았지만 깨끗한 편이다.
심지어 트램 레스토랑도 있다. 식당차가 있는 열차야 많은 나라에서 운행되지만[4] 이건 아예 트램 전체가 레스토랑으로 운행된다. 트램 레스토랑이 운행되는 구간은 정해져 있으며 100% 예약제다. 하긴 좁은 트램 주방 안에서 모든 요리 준비를 할 수는 없으니 예약을 받아서 미리 재료를 준비한 다음에 딱 최종 단계의 조리 과정만 거치면 되도록 하는 듯.
이 전차 때문에 멜버른 권역에는 후크 턴(Hook Turn)이라는 독특한 제도가 있다. 우리나라의 버스 중앙차로처럼 전차는 보통 도로의 중앙차로를 점령하는데, 이런 도로의 사거리에서 우회전(호주 도로는 좌측통행이라 우리나라의 좌회전에 해당하는 게 우회전이다)을 하려면 가장 안쪽 차로가 아닌, 가장 바깥쪽 차로에서 대기했다가 신호를 받으면 크게 돌아야 한다. 곧, 직진할 차량은 가운데쪽으로, 우회전이든 좌회전이든 회전할 차량은 가장자리 쪽으로 가야 한다는 뜻이다. 후크 턴을 해야 하는 교차로에는 표시가 되어 있는데, 익숙하지 않으면 아주 헷갈린다. 교통경찰에게는 마르지 않는 딱지의 샘.
목금토 심야에는 일부 노선에서 나이트 트램을 운영한다. 보통 트램은 오전 1시까지 운행하지만 나이트 트램 노선은 목금토에는 30분 간격으로 밤새 트램이 운행된다.
항공
땅덩이 넓은 호주 답게 항공 교통이 발달해 있다. 멜버른 주변에는 여러 개의 공항이 있지만 여객 수송용으로 제대로 쓰이는 곳은 멜버른공항(털라마린공항)과 아발론공항이다. 멜버른공항은 말 그대로 국제선의 거점으로 모든 국제선은 이 공항으로 출도착한다. 국내선도 대부분은 여기서 뜨고 내린다. 아발론공항은 제트스타와 같은 국내선 저가 항공사들이 사용하고 비행편도 많지 않다. 그밖에도 털라마린공항이 생기기 전 멜버른 항공 교통의 거점이었던 에센돈공항, 무라빈공항과 같은 소규모 공항이 있으며, 이들의 실제 기능은 개인 비행기 또는 경비행기를 위한 비행장 수준이지만 근교 지역이나 섬으로 가는 정기운항 여객기도 있다. 우리 땅덩이의 '근교' 개념과 우리보다 열 배 이상 큰 호주의 '근교' 개념은 영 다르다는 점에 유의하자. 부러우면 지는거다.
한국에서 바로 가는 직항이 없다. 예전에 대한항공에서 주 3회 인천-멜버른 구간을 운항했지만 수요 부족으로 2013년 3월부터 단항했다. 멜버른 교민 사회는 다시 복항을 하든지, 아시아나항공을 끌어오든지 하겠다고 큰소리 치고 있지만 감감 무소식. 인구로 치면 시드니와 비슷한 400만 명 대인데도 멜버른은 주 3회 운항편마저 단항된 반면, 인구가 절반밖에 안되는 브리스번에는 아직 대한항공이 여전히 주 3회 운항 중. 역시 인구빨보다 관광빨이 중요하다.
한국에서 멜버른까지 항공편으로 가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으로 시드니 직항편을 이용한 다음 국내선으로 갈아타는 방법이 있고, 아예 다른 외국 항공사의 환승편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예를 들어 싱가포르항공으로 인천-싱가포르-멜버른으로 가는 식이다. 각자 장단점이 있지만 따져보면 오히려 외국 환승을 하는 게 장점이 더 많다. 이유는 이렇다.
- 국제선에서 국내선으로 갈아타는 게 불편하다. 보통 입국수속을 하고, 짐을 찾아서 국내선 카운터로 가서 다시 체크인을 하고 짐을 부쳐야 한다. 이걸 친절하게 가르쳐 주는 것도 아니라서 잘 모르면 짐을 가지고 낑낑대면서 국제선 터미널 지하철 역으로 가서 6 달러를 내고 국내선 터미널로 가는 개고생+바가지까지 감수해야 한다. 조금 사정을 알면 지하철 바가지는 모면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더 자세한 것은 시드니공항 항목 참조.
-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이나 시드니 도착편은 밤에 출발해서 아침에 도착하는데, 시드니 출발편은 아침에 출발한다. 멜버른에서 이걸 타려면 새벽같이 일어나야 한다. 대한항공이 더 빨라서 아침 7시 45분(DST 적용 시기에는 아침 9시)에 시드니 출발이다. 멜버른→시드니 첫 비행기가 아침 6시이고, 한 시간 조금 걸리니까 국내선에서 국제선 터미널 넘어가는 시간까지 따져 보면 한 마디로 답이 없다. 외국 항공사의 경우 캐세이퍼시픽이나 싱가포르항공은 멜버른 편도 하루에 서너 편 정도 꽂고 있고 인천 노선도 하루 너다섯 개나 꽂아 놓고 있다. 타이항공을 비롯한 여러 동남아시아의 항공사들을 활용할 수 있어서 시간 선택의 폭이 많다.
- 항공권 가격도 엇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쌀 때가 많다. 직항에 비하면 약 1~2천 마일 정도 돌아가는 결과가 되지만 그만큼 마일리지를 더 얻을 수 있기도 하다. 베트남항공은 종종 저가항공사인 에어아시아X 만큼이나 싼 항공권을 내놓기도 한다. 정말 살벌하게 싸다.
참고로 환승시간도 살벌하게 길다.베트남항공은 기내식이고 술이고 다 주니까 전부 사먹어야 하는 에어아시아X보다 오히려 이익일 수 있다.
- 부산에서 출발한다면 그냥 캐세이퍼시픽이 진리다. 국적기 이용하면 두 번 환승 해야 하지만 캐세이퍼시픽은 한번에 가능하다. 타이항공으로도 되는데, 운항 편수가 적어서 시간 맞추는 게 좀 더 까다롭다.
참고로, 국적기를 이용하겠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콴타스항공에서 예약하는 것이다. 아시아나항공의 인천-시드니 편에 코드쉐어를 걸어놓았기 때문에 멜버른까지 환승편을 편리하게 예약할 수 있다. 아시아나항공에서도 되긴 하는데, 가격 비교해 보면 살벌하게 차이 난다. 콴타스항공에서 예약해도 인천-시드니 편은 사후 적립 방식으로 아시아나항공에 마일리지 적립이 된다.
문화
호주의 문화 수도라는 자부심이 있다. 어디까지나 자기들 얘기. 시드니 사람들이 과연 그렇게 볼까? 국제적으로 유명한 페스티벌이 여럿 열린다. 3월부터 4월 사이에 4주 동안 열리는 멜버른국제코미디페스티벌은 캐나다 몬트리올의 Just for Laugh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코미디 페스티벌. 이 기간 동안 공연하는 팀만 500 팀이 넘는다고 한다.
커피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멜버른은 꼭 가봐야 할 곳 중에 하나다. 정말로 좋은 카페들이 사방에 널렸다. BBC에서도 인정한 커피의 도시.[5] 이것 말고도 커피로 유명한 도시들의 목록을 뽑는 기사에서 단골로 들어가는 도시가 멜버른이다. 그냥 동네에 있는 카페를 가도 웬만하면 정말 근사한 카페라테나 카푸치노를 뽑아준다. 심지어 길거리에서 사먹어도 우리나라보다는 훨씬 낫다.[6] 다만 스타벅스나 글로리아진 같은 대형 체인점은 피하자. 그런 거 마시려면 굳이 멜버른까지 갈 것 없다.하긴 커피 좀 마시자고 멜버른까지 가는 것 자체가 미친 짓이지만. 하지만 패리스 힐튼이 출동한다면 어떨까? 커피는 물론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계열의 아침식사도 정말 멋진 곳이 많으니, 멜버른에 여행 갔다면 아침에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멋진 카페라테나 플랫화이트, 카푸치노 한 잔과 함께 하는 아침식사는 꼭 한번 경험해 보자. 그리고 제발 이 동네 와서 폴 바셋 찾지 마라. 멜버른만이 아니라 호주에 그 양반 아는 사람 거의 없다. 트램 지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아침에는 유유히 커피 한 잔, 저녁에는 맥주 한 잔 느긋하게 하다 보면 정말 살기 좋은 도시란 생각이 든다. 그러다 집에 오면 살벌한 임대료와 비싼 공과금, 그리고 낡은 시설에 울적해진다.
오래된 펍도 많다. 플린더스스트리트역 맞은 편에 있는 영 & 잭슨을 비롯해서 1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펍들도 찾아볼 수 있다. 지금까지 영업하고 있는 멜버른 시내의 펍 중에 가장 오래된 곳은 1853년에 문을 연 캡틴 멜빌.
우리나라에서는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하다> 때문에 유명해진 그래피티도 멜버른에서 넘쳐나는 문화 중 하나. 어딜가나 '왠지 이런 곳에는 있을 것 같아.' 하는 담벼락에는 어김 없 그래피티가 넘쳐난다. 지하철에도, 펍에도, 길바닥에도 그래피티가 넘쳐난다. 낙서이자 공해이자 범죄라고도 볼 수 있지만 이제는 멜버른의 문화적 다양성과 수용성을 상징하는 아이콘처럼 되어 버렸다.
코스모폴리탄인 만큼 여기 저기 여러 민족의 커뮤니티가 뭉쳐 있다. 이탈리아 거리로 손꼽히는 라이공 스트리트는 꼭 가보자. 이탈리아 음식점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가격도 생각보다는 별로 비싸지 않다. 한국에서 괜찮은 이탈리아 음식점 가는 것보다 오히려 싸다. 누가 페라리의 고향 이탈리아 사람이 아니랄까봐, 아예 천장에 위엄차게 1:1 스케일 페라리 F1 카를 매달아놓은 이탈리아 레스토랑도 있다. ㅎㄷㄷ... F1 호주 그랑프리 때 페라리 팀이 진짜로 라이공 스트리트에서 실제 페라리 F1 카 갖다 놓고 달리는 이벤트를 한 적도 있다고. 목숨이 두 개라면 여기서 페라리 뻑큐라고 외쳐 보자. 거기서 멜버른 공동묘지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안심하자. 차이나타운도 형성은 되어 있는데 규모는 작은 편. 그냥 사방팔방에 널린 게 중국음식점이고 길거리에 다니다 보면 거짓말 조금 더 붙여서 영어 반 중국어 반이 들릴 정도니 그냥 멜버른 자체가 차이나타운일지도. 한국 가게도 곳곳에 있지만 '타운'이라 하기에는 좀 뭣하고, 멜버른 근교 복스힐 쪽으로 나가보면 좀더 타운스러운 한국인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다.
스포츠
포뮬러 1 호주 그랑프리가 멜버른의 알버트 파크에서 열린다. 이름처럼 평소에는 공원으로 쓰이는 곳이지만 공원 도로를 임시 서킷으로 조성해서 경기를 개최한다. 보통 포뮬러 1 의 시즌 개막전으로 열린다. 동네 주민들은 불쌍하지. 그래서 2014년부터는 엔진 배기음이 대폭 다운 되셨다. 팬들은 열받지만 주민들은 좋지 뭐. 원래는 애덜레이드에서 했던 건데 멜버른이 가져 왔다. 애덜레이드 사람들은 "저 놈들이 우리 그랑프리 빼앗아갔다"고 분노하고, 멜버른 사람들은 "니들이 능력 없어서 못 지킨 거지 뭘..." 하는 분위기. 하지만 계속 개최할건지 말건지를 두고는 늘 말이 많다. 그렇게 흥행이 잘 돼도 멜버른 재정으로 보면 개최권료에 이거저거 떼고 나면 늘 적자니, 버니 에클레스톤 좋은 일만 하는 거 아냐? 하는 게 반대 여론. 그런데 이런 현상은 쇼미더머니로 질러대는 나라 빼고는 다 마찬가지다.
남반구에서는 처음으로 1956년에 올림픽을 개최한 곳이 멜버른이다. 테니스계의 4대 그랜드 슬램의 하나로 손꼽히는 호주오픈도 멜버른에서 열린다.
하지만 호주인들이 가장 열광하는 스포츠는 뭐니뭐니해도 호주풋볼. 줄여서 푸티로, 멜버른도 인기가 어마어마하다. 멜버른 팀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더 작은 권역, 즉 서버브(suburb) 단위로 쪼갠 서버스를 연고로 한 팀이 여럿 있을 정도다. 쉽게 말하면 강남구, 영등포구, 은평구, 성북구와 같은 구 단위로 팀이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서던크로스역 바로 옆에 자리 잡은 에티하드스타디움[7]도 푸티 경기장이다. 경기가 있는 날이면 목에 응원하는 팀의 수건을 두른 팬들을 정말 많이 볼 수 있다.
각주
- ↑ 시드니에도 비슷한 도심 순환 구간이 있다. 여기는 시티서클(City Circle)이라고 한다.
- ↑ 조금만 힘 줘서 밀면 된다. 반자동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 ↑ 호주에서는 대도시 시내에서 조깅하는 사람들 모습이 은근히 자주 목격된다. 서울과 같이 사람 바글바글하고 도로 널찍널찍한 거대 도시에 익숙해 있으면 충격과 공포다.
- ↑ 우리나라도 예전에는 새마을호에 식당차가 있었다. 프라자호텔에서 운영했는데 어느 때부턴가 스스륵 사라졌다. 아마 계약 갱신을 안한 듯.
- ↑ "Living in: The world’s top coffee cities", BBC, 23 April 2014
- ↑ 현지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멜버른에 이탈리아계 이민자들이 많다 보니 멋진 커피를 뽑아낸다고들 한다.
- ↑ 에티하드항공이 경기장 타이틀에 자사 브랜드를 붙이는 대가로 광고료를 내다.